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1)
51화. 누렁이 편
편의점 내부를 거닐던 연두의 발걸음이 한 곳에서 멈췄다.
연두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응.”
“저 보고 시픈 게 이써요..!”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연두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상에는 없었다. 내가 먼저 보여준 적은 많았지만.
연두튜브 댓글이라든지, 포로로 극장판이라든지.
‘심지어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동물원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감춰뒀던 연두였다.
그래서인지 보고 싶은 게 있다는 연두의 말은 꽤 크게 다가왔다.
좋아. 첫 부탁인 만큼 무엇이든 들어주지.
나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보고 싶은 게 뭔데, 연두야?”
연두가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렁이가 보고 시퍼요! 예뿐 누렁이..!”
“응..?”
미적지근한 내 반응에 연두는 금세 표정이 울적해져서 말했다.
“안 대여…?”
“아니, 당연히 되지! 근데 연두가 보고 싶었던 게 누렁이야?”
“네!”
“그렇구나.”
첫 부탁인 만큼 조금은 대단한 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연두는 누렁이를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꺼냈다.
하기야 집에서도 연두는 틈만 나면 누렁이 얘기를 하곤 했지.
‘그것도 누렁이를 보고 싶다는 신호였구나..’
역시 나는 눈치가 제로에 수렴하는 모양이다. 세연 씨 뭐라 할 게 못 됐네.
지금 보니 연두가 서 있는 곳은 고양이용 간식이 있는 진열대 앞이었다.
그걸 보고 누렁이를 떠올린 거 같았다. 저번에 누렁이에게 준 참치캔이 있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연두야. 누렁이가 그렇게 보고 싶어?”
“네..”
“왜 보고 싶은데?”
“걱정대서.. 아야하면 안 대니까..”
연두의 걱정에는 바로 답을 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들른 나는, 누렁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안부를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말이다.
“그럼 일 끝나고 아빠랑 같이 가자. 누렁이 보러.”
“헤헤..”
포옥.
연두가 그대로 달려와 내게 안겼다.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의미인 모양인데.
나는 연두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연두야.”
“네에.”
“보고 싶은 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처럼 뭐든지 얘기해. 알았지?”
“.. 네!”
“흐흐, 예쁘다, 우리 연두.”
누렁이를 보고 싶다는 부탁. 비록 소박하긴 했으나 기분이 좋았다.
연두가 나를 의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아직 퇴근 시간까지는 조금 남은 상황.
끼익.
한 손님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며 편의점에 들어왔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손님이었다.
“행님!”
나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지.
편의점에 자주 오는 고딩 4인방 중 가장 장난기가 많은 동건이였다.
주연이와 매일같이 다투는 앙숙이기도 했고.
“웬일로 혼자 왔어?”
“애들이 다 바쁘대서요. 하주연은 보컬 레슨 갔고, 범재는 또 아빠 도와주러 갔고, 오예림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의 일정을 줄줄이 읊는 녀석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저는 학원가는 도중에 들렸죠. 행님 얼굴 보려고요.”
“하하, 고맙네. 근데 내 얼굴만 보고 가지는 않을 거 같은데?”
“예? 그게 무슨······”
나는 말 없이 손짓으로 녀석을 불렀다.
동건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억!”
녀석은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마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손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동건이는 입을 다물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지.’
연두는 의자에 앉아 잠든 상태였다.
동건이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뭐지? 연두가 왜 여기 있어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데려왔거든.”
“와.. 자는 모습 봐…”
새근. 새근.
동건이는 자는 연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아쉽네.”
“뭐가요?”
“연두가 너희 엄청 보고 싶어했거든.”
“.. 그거 진짜였어요?”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하겠냐.”
그 말에 동건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녀석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행님. 연두가 제 이름도 기억한다고 했죠?”
“응.”
“햐, 역시 연두는 천사가 틀림없는 거 같습니다. 자는 모습부터 모든 게.”
“크크.”
“엥? 왜 웃으십니까?”
“아니, 너 말투가 너무 애늙은이 같아서. 스물다섯인 나보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그러는 거야? 너 서울 토박이라며.”
동건이는 의외로 순순히 대답해 줬다.
장동근과 유우성이 나오는 ‘프렌드’라는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나 뭐라나.
물론 그 영화를 본 입장에서 잘 만든 영화인 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제 말투에 영향을 받을 정도면, 이 녀석이 괴짜임은 틀림없다.
아쉬운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보는 동건이에게 내가 말했다.
“학원 시간 다 된 거 아니야?”
“아뇨. 아직 좀 남았어요.”
“연두 깨워줄까?”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 때문에 연두 꿀잠을 방해할 순 없죠.”
이래서 내가 동건이를 좋아한다.
괴짜이지만 착한 게 이 녀석의 매력이니까.
동건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부러워서 죽으려 할 애들 얼굴이 벌써부터 보이네요.”
“응?”
“걔네 연두 있는 거 알았으면 약속 다 팽개치고 달려왔을 걸요? 특히 하주연은, 킥킥. 얼마나 부러워하려나.”
역시 이 녀석도 나랑 하는 생각이 같았다.
이윽고 동건이는 내게 인사하고 고개를 돌렸다.
“으응..”
그런데 자그마한 목소리가 녀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바로 잠에서 깬 연두의 목소리였다.
“오빠아..?”
“…”
“동거니 오빠…?”
이름이 불리고 나서야 동건이는 고개를 돌렸다.
가만 보면 연두도 참 센스 있단 말이지.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깨는 거 보면.
연두는 동건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헤헤, 오빠 마따..!”
동건이는 흥분해서 되돌아오며 말했다.
“그래, 연두야! 오빠야! 동건이 오빠!”
참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매 상봉인 줄 알겠다.
결국 둘은 간만의 담소를 나눴다.
동건이가 학원을 가야 해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오빠 꺼!!”
연두는 나가는 동건이의 손에 선물까지 하나 쥐여줬다.
무려 화려한 빛깔을 뽐내는 왕꿈트리 젤리를.
손님들에게 받은 수많은 간식 중 하나였다.
잔뜩 감동한 표정으로 젤리를 손에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 동건이의 모습이 감상 포인트였다.
***
퇴근 무렵, 나는 POS기 현금을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매일 교대 직전에 하는 일이었다.
계산상의 시재와 POS기의 현금시재가 일치하는지 세어보는 일.
과부족이 날 경우 내 돈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내가 이런 부분에서는 의외로 민감하니까.’
오늘도 문제는 없는 듯했다. 나는 슬슬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음 타임 알바생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별일은 없었어, 주원 씨?”
“네.”
“공주님도 잘 있었고?”
연두는 배꼽인사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허허, 예의가 바른 공주님일세.”
사장님은 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바로 연두에게 내밀었다.
스윽.
“으응..?”
연두는 얼떨결에 봉투를 건네받았다.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뭔가요, 사장님?”
“사실 연두 알바비 챙겨주러 왔어. 열심히 일했을 텐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나.”
“아닙니다. 제가 따로 주겠습니다. 연두야······”
“신경 쓰지 마, 주원 씨. 연두 덕분에 손님이 얼마나 늘었는데. 그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자네가 그럴까 봐 일부러 최저시급만 넣었네. 열심히 일하면 돈을 받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뭐.”
이렇게 말하는데 더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보답으로 나중에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허허, 기대되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사장님은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
스으으.
밖에서 이 카메라를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동물원에 갈 때까지 5일이 남은 상황, 중간에 영상 하나쯤은 더 올리는 게 좋았다.
그걸 위해 지금 연두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 영상으로 올릴 만한 모습이 나오면 쓰고, 아니면 말면 되니까.
“그렇게 좋아, 연두야?”
“네!”
오랜만에 누렁이를 보러 가는 연두.
손에는 직접 고른 고양이용 캔이 손에 들려 있었다.
‘연두가 살께요..!’
돈도 받았겠다, 연두는 계산도 스스로 했다.
해맑은 미소만 봐도 느껴졌다.
지금 연두가 얼마나 신이 난 상태인지.
‘왼쪽 골목으로 돌아서 울타리가 나오는 길.’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길목의 오른쪽에 풀이 우거진 곳.
누렁이는 그 안에 산다.
이렇게 말하니 꼭 비밀장소 같은 기분이네.
아, 맞다. 지혜 씨한테 그걸 못 물어봤구나. 이 장소는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나중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누렁아!”
“냐앙~”
구수한 이름을 부르자 어여쁜 노란색 고양이가 집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렁이를 보자마자 연두는 가까이 다가갔다.
전과 달리 겁은 조금도 내지 않았다.
“누렁아…”
쓰담. 쓰담.
“냐아~ 미야아~”
연두가 쓰다듬자 누렁이는 풀 위에 배를 보이며 누웠다.
고양이가 경계를 완전히 풀었을 때 보이는 자세였다.
겨우 두 번째인데 저러는 거 보면, 연두의 착한 마음씨를 알아본 모양이다.
“헤헤..”
연두도 그걸 느꼈는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한참 누렁이를 쓰다듬던 연두는 캔을 손에 들었다.
“읏!”
그리고 손잡이를 잡은 후, 있는 힘껏 힘을 줬다.
내가 보기에는 손보다 눈에 더 힘을 주는 거 같지만.
“끄응…”
그러나 연두의 힘으로 캔을 여는 건 무리였다.
좀 열려주지. 야속한 캔 뚜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연두는 한참을 시도하다가 내게 캔을 내밀었다.
“아빠.. 연두는 못 여러요…”
“그럼 아빠가 열어줄까?”
“네!”
나는 참치캔을 건네받았다.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캔 뚜껑이 열렸다.
“우아…”
대단한 거라도 본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연두.
나는 웃으며 연두에게 참치캔을 건넸다.
툭.
“누렁아. 마시께 머거…!”
짭. 짭.
누렁이는 정신없이 간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연두는 웅크려 앉은 채,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저러다 머리카락 땅에 닿을라.
나는 머리를 넘겨주러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연두의 표정을 본 나는 동작을 멈췄다.
‘.. 착각인가?’
연두는 왜인지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살며시 입을 열었다.
“아빠아..”
“응, 연두야.”
“… 누렁이는 혼자에여?”
섣불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질문에 대해 대답하자면 ‘혼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수개월 전, 처음에 새끼인 누렁이를 봤을 때부터 녀석은 혼자였으니까.
‘길고양이의 숙명이지.’
수많은 위험 요소에 노출되는 길고양이는 대체로 수명이 짧다.
그나마 누렁이는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살고, 내가 집을 만들어줘서 안전한 편이라 할 수 있지만.
지혜 씨랑 내가 밥이랑 간식도 챙겨주니 먹이를 구하러 나갈 일도 없고.
하지만 처음 누렁이를 만났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녀석과 나의 첫 만남은 꽤 특별했으니까.
연두는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혼자인 건 아푼데… 누렁이는 아푸면 어떠케요..?”
“…”
“연두는 아푸면 아빠가 아나주는데······”
연두는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혼자인 게 아프다라.’
이 말이 내게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왔다.
그야, 이건 혼자인 적이 있어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니까.
꼭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고 혼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외삼촌과 함께 산 시간 동안, 연두는 끊임없이 혼자라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나이를 먹고 혼자가 된 나도 느꼈으니까.’
주위에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소외감은 사람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법이다.
짐승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겠지.
“연두야.”
나는 연두의 옆에 웅크려 앉아 말했다.
“그럼 우리가 누렁이 편이 되어주면 돼.”
“.. 누렁이 편?”
“응. 연두가 누렁이 언니가 되고, 아빠가 누렁이 아빠가 되는 거지. 그럼 누렁이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러자 연두는 초롱초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연두가 언니요..?”
“응. 이제부터 아빠랑 많이 오자. 연두 동생 누렁이 보러.”
연두 동생 누렁이라.
어감이 우습긴 했지만, 그리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연두가 최고로 기뻐 보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전에도 몇 번이고 누렁이를 보며 생각했던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집에 들이는 건 그만한 책임감을 요한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나는 누렁이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허나, 앞으로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냐아~”
어쩌면 이 녀석과 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진심으로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