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31)
531화. 이러다 다 죽어!
독일에는 괴담이 많았다.
파비안이 해 준 이야기도 그 수많은 괴담 중 하나였다.
여파는 엄청났다.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부터 침실에 온 지금까지 줄곧 내 양팔은 구속 상태였다.
연두와 시은이에 의해서.
‘무섭긴 했지.’
귀신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잔인한 요소도 없었고.
그러나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태의 이야기라 더욱더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나도 숨 참고 들었거든.
‘겁날 만해.’
충분히 그럴 만하다.
특히나 연두는 이런 장르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니까.
문득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진귀한 장면이었다.
파비안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끼기긱!
별안간 입으로 낸 효과음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으니까.
유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싱거운 듯이 듣다가 점점 동공지진을 일으키더니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흐익!’
우스꽝스러운 비명과 함께 덮고 있던 담요를 집어던졌지.
그 다음이 문제였다.
옆에서 함께 담요를 덮고 있던 연두를 냅다 끌어안은 거다.
‘바로 떨어지긴 했지만.’
쉽사리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침실에 온 지금도 상황은 이어지고 있었다.
일단 문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그마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어디 볼까.
“연두야, 시은아.”
“…!”
이거 봐라.
내 목소리에도 놀라 자빠질 뻔하잖아.
비단 나만의 상황은 아닐 터였다.
아마 은주아와 하파엘도 각각 유리와 레나로 인해 비슷한 입장이지 않을까.
나는 두 명이긴 하지만.
“너무 겁먹지 마.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니까.”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는 어떤 말을 해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노력은 하는 게 좋겠지.
‘자야 하니까.’
그게 제 1의 목표였다.
이래서야 빨리 들어온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빠도 옆에 있고.”
호칭이 애매했다.
연두만 있는 게 아니니 아빠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저씨라 할 수도 없고.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말했다.
독일에 있는 동안만큼은 아빠처럼 대해주겠다고 세연 씨한테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난감하네.
연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시은이도 생각 이상으로 무서워하는 거 같다.
이렇게 나한테 못 떨어지는 걸 보면.
안 되겠다.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좋아!”
“꺅!”
“잘 들어. 아빠도 이야기를 하나 해 줄 테니까.”
또 한 번 놀란 연두가 떨리는 눈망울로 입을 뗐다.
“이야기요?”
“응.”
“무, 무서운 이야기예여? 그럼 싫어요! 하지 마세요..!”
동시에 눈을 질끈 감는다.
실소가 흘러나왔다.
싫어요, 하지 마세요.
이 멘트를 내가, 그것도 연두에게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무서운 이야기 아니야.”
“.. 그럼요?”
“웃긴 이야기야. 연두랑 시은이가 무서운 생각 안 하고 잠에 들 수 있도록 해 줄 웃긴 이야기.”
알다시피 내게 스토리텔링의 재능은 없다.
책을 읽어주는 건 자신감이 생겼지만, 책 없이 맛깔난 이야기를 해 줄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예외는 존재했다.
‘꿰고 있는 경우.’
마치 책을 들고 읽는 것처럼 그 스토리를 소상히 꿰고 있는 경우 말이다.
그런 게 있냐고?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있긴 했다.
웃긴 이야기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건지 연두가 반응했다.
“어떤 이야기인데여?”
시은이도 귀를 쫑긋 세운다.
심호흡을 하고서 말했다.
“지금부터 해 줄 이야기는… 유성초 스나이퍼라 불렸던 한 아이의 이야기야.”
“.. 유성초 스나이퍼?”
“응.”
지금부터 내가 해 주려는 이야기는 이주원이라는 남자의 과거 이야기였다.
그렇다.
내 이야기라는 뜻이다.
‘가능해.’
이거라면 가능했다.
책 없이도 흥미진진하게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왜냐고?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니까 말이다.
“.. 흣.”
왜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시은이의 입에서 공기 섞인 웃음이 새어나온다.
유추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아무래도 시은이는 이야기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있는 듯하다.
“.. 후우.”
얼굴이 화끈거리려 한다.
괜찮다. 이 정도는 감수한 일이었다.
잠깐의 희생으로 아이들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그렇게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틀에 박힌 스타트였지만 그 이야기는 아까와 전혀 달랐다.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총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한 아이가 있었어요.”
“.. 어!”
첫마디가 끝나자마자 연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아빠도 고무줄총 잘 만드는데!”
“.. 하하.”
그럴 수밖에 없지. 이건 내 이야기니까.
애써 그 사실은 감춘 채로 나는 스토리텔링을 이어갔다.
어느새 이야기에 집중하는 연두와 시은이.
‘이걸로 잠들면 좋겠는데.’
참고로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 이야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건 제목이 뭐냐고?
평화고 미켈란젤로.
내게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밤이었다.
***
한편 은주아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유리야.”
“.. 응.”
“이제 불 끄면 안 될까?”
아주 환한 건 아니었다.
침대 머리맡의 작은 전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리는 단호했다.
“안 돼.”
“그럼 엄마 먼저 자도……”
유리는 눈으로 말했다.
안 된다고.
결국 방법은 하나였다.
딸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 생각 못 했어.’
예상 못 한 변수였다.
그도 그럴 게 아까 유리가 연두를 껴안을 때만 해도 세상 즐거워하던 은주아였다.
미래를 보지 못한 거다.
한편 누워있던 유리는 조심스레 팔을 뻗어 무언가를 가져왔다.
집에서 가져온 일기장이었다.
슥.
펜도 집어 들었다.
잠들기 전에 유리는 종종 일기를 쓰곤 했다.
“.. 보지 마.”
일기장은 비밀이었다.
엄마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괜히 삐진 은주아는 말했다.
“흥. 보라고 해도 안 볼 거거덩?”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는 일기장에 글씨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줄이나 적었을까.
스르륵.
눈이 감겼다.
그런 딸을 바라보는 은주아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
‘철저하단 말이지.’
언제나 그랬다.
유리는 일기장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잠든다.
한 번은 몰래 보려고 했다가 들킨 적도 있었다.
‘궁금하긴 하네.’
여러 일이 있었던 만큼 오늘은 어떤 내용을 적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시도하다 깨웠다가는 오늘 잠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최악의 경우였다.
달칵.
꺼지는 불.
그렇게 또 독일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켠 나는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떠오르는 댓글창.
연두성분 결핍을 호소하는 댓글이 가득했다.
-나는.. 말라가고 있어…
-더는 못 견뎌…
-나 너무 힘들어.. 이러다 다~ 죽어!!
-ㅋㅋㅋㅋㅋㅋㅋ 대사 찰떡이네.
-장난 아니고 독일행 비행기 티켓 얼마냐. 더는 한계다.
-연두야 ㅠㅠ 보고 시퍼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소에도 24시간 연두성분 결핍을 호소하는 연두부이니 말이다.
휴재공지를 썼기에 망정이지.
공지 없이 쉬었다면 감당이 안 됐을 거 같다.
-독일 시리즈 존버 간다…
-초록님… 최소 열 편 아시죠? ㅎㅎㅎㅎㅎㅎㅎㅎㅎ
-현재 원스타와 연두튜브 정주행으로 간신히 호흡기만 달고 있는 상태.
-휴재할 때마다 느낀다…
-뭘요?
-연두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거.
-ㅇㅈ ㅋㅋㅋㅋㅋ
-연두는 잘 있겠지? 타지라서 걱정돼 ㅠㅠ
대답해주고 싶네.
다행히 어제 내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와 시은이는 잠에 들었다.
지금도 새근새근 자고 있다.
자는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당장 연두부의 결핍을 해소해줄 수는 없었다.
여기서 편집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도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쌓이고 있으니까.’
양질의 소스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숙련된 편집자로서 이제는 편집에 들어가기 전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내 직감이 말해줬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
분명히 한국으로 돌아가면 순도 높은 연두성분을 한가득 공급할 수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아직 남아 있었다.
어쩌면 독일 시리즈의 하이라이트가 될지도 모르는 버스킹이.
‘기대되네.’
모든 건 작은 변화에서 시작한다.
유리가 바뀌었다.
그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조금이었다.
***
실제로 연습실 풍경은 상당 부분이 바뀌었다.
물론 그 변화의 중심은 유리였다.
달라진 점은 명확했다.
팀 연습이라는 걸 자각하고, 협조적으로 연습에 임하기 시작했다는 것.
“좋아! 다음으로 넘어가자!”
레나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번졌다.
그럴 만도 했다.
정체되어 있던 톱니바퀴가 드디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한 느낌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체감이 컸다.
노엘과는 연습실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
의기양양하게 레나가 물었다.
“어땠서, 노엘?”
“듣기 좋네.”
짧은 감상이었지만 극찬이나 다름없었다.
얼마 전에 했던 말을 생각하면.
복잡하게 엉켰던 실타래가 한 번에 풀리듯이, 미로 속에서 탈출구를 발견한 아이들이었다.
두 개의 피아노는 듣기 좋은 화음을 냈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
그 속에 시은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어갔다.
레나의 역할은 두 가지였다.
연주의 맛을 더하고, 한 번씩 현란한 독주를 통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역할이었다.
그러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닌 레나였으니까.
‘듣기 좋네.’
노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감상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데 그 연주가 안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
특히나 그들이 모두 숙련된 연주자라면.
유리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 달라졌어.’
사실 생각했다.
원래 호흡을 맞춰오던 셋과 달리 자신은 그 틈에 쉽게 섞일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괜히 엇나간 것도 있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마음가짐을 바꾼 것만으로도 모든 게 달라지고 있었으니까.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게 하나의 음악으로 들리는 건.
그건 꽤나 벅차오르는 감각이었다.
스윽.
노엘의 말이 맞았다.
‘얘네는 네 연주를 위한 도구가 아니야. 너는 주인공이 아니고.’
그 말대로였다.
유리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이란 거… 이렇게 즐거운 거였구나.
“.. 유리야!”
연주를 끝내자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반대편에 있는 연두였다.
의자에 앉은 채로 생긋 웃으며 엄지를 척 내밀고는 이야기한다.
“짱이었어!”
그 찰나의 순간.
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자각하지 못한 만큼, 조금의 꾸밈도 없는 웃음이었다.
“.. 너, 너도 나쁘지는 않았어.”
“헤헤.”
처음에는 그랬다.
내키지 않는데도 함께 버스킹을 하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소피아의 말 때문이었다.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의 말이라서.
‘.. 아니야.’
이제는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하고 싶어졌다.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고개를 돌려 본 반대편에는 아직도 연두가 환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