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40)
540화. 저마다의 밤
독일 시리즈 1탄.
아직 총 몇 부작으로 할지 정해두지는 않았다.
흐름에 맡길 생각이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편집하다 보면 알아서 가닥이 잡히겠지.
“후우..”
독일에서의 시간들을 쭉 돌이켜보며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 생각해봤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기승전결이 존재했다.
나름의 하이라이트도 있었고.
‘좋아.’
어느 정도 느낌이 온다.
시리즈인 만큼 시간의 흐름대로 가되 호흡 조절이란 걸 해 볼 생각이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느낀 점이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거지.’
물론 기본적인 마인드는 그대로였다.
단지 시야를 넓힐 뿐이다.
좀 더 큰 그림을 생각하고 레이스를 하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지금은 그 레이스의 첫 여정이다.
‘가볍게 가 보자.’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카메라 속 보물은 이미 데스크톱에 전부 옮겨둔 상태였다.
어디 볼까.
이제는 조금만 봐도 첫 영상에 어느 정도가 들어갈지 감이 온다.
‘항공 안, 그리고 기내……’
대략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바로 편집을 시작했다.
간만의 편집이라 느껴지는 어색함도 어느새 사라진 채로 나는 편집에 몰두했다.
어느 순간, 나는 자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는 걸.
‘.. 왜 이렇게 재밌냐.’
원래도 그랬지만 유독 더 즐거웠다.
본업으로 돌아간 기분.
이래서 어느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가.
장면 하나하나를 편집할 때마다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 장면을 보고 연두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래도 잠깐의 휴식기 동안 상대를 그리워한 건 연두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침 연두부가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아빠..’
기내에서 구름으로 뒤덮인 창밖을 바라보며 연두가 묻는다.
‘하늘섬에는 누가 살아여?’
‘글쎄. 누가 살까?’
‘아!’
배시시 웃으며 외친다.
‘연두부!’
‘응?’
‘하늘섬에는 연두부가 살아여! 연두부 가족!’
아마 여기서 연두부가 꽤나 감동하지 않을까.
왜 그렇지 않은가.
여행을 가서 창밖을 보는 와중에도 연두부를 생각했다는 거니 말이다.
그리고 이 바로 다음 장면이었다.
‘으음~ 음~ 음~’
이때 깜짝 놀랐지.
즉석으로 연두가 흥얼거린 음이 굉장히 좋게 들렸으니까.
나만의 감상이 아니었다.
‘무슨 음악이야?’
옆에서 유리가 그렇게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잔잔한 분위기였다.
이렇다 할 편집 기법 없이 아이들의 모습과 대화를 있는 그대로 화면 속에 담았다.
맥이 끊기지만 않도록.
‘충분해.’
그것만으로 충분한 느낌이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새 편집본은 8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마무리를 지어야 할 시점이었다.
이미 엔딩은 머릿속에 정해 둔 상태였다.
톡.
유리의 어깨에 기댄 채로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연두의 모습.
놓치지 않고 담았지.
그런 연두를 힐끗 바라본 유리가 작게 흥얼거린다.
“으음~ 음~”
마치 아까 연두의 흥얼거림에 답가라도 하듯이.
역시 예쁜 음이었다.
그렇다.
이게 내가 생각한 시리즈 1탄의 기승전결이었다.
독일 여행의 서막을 알리는 느낌.
주연은 연두랑 유리, 조연은 뒷좌석에 앉은 시은이랑 레나 정도일까.
물론 나도 조연이고.
‘9분.’
정확히 9분 정도에서 영상이 끊겼다.
예상대로였다.
원래 10분에서 끊는 게 정석 아니냐고?
맞다. 이대로 업로드하면 연두부의 무수한 댓글 폭탄이 날아들겠지.
-내 1분 어디 갔어!!
-당장 가져와!!
-지금 바로 1분을 주지 않으면 나는 이 자리에……
뒤는 생략하겠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합리적 추측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1분을 만들어내야 했다.
1분.
애매한 시간이다.
뭘 추가하기에는 짧고, 그렇다고 남겨두기에는 길고.
그래서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허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일부러 남겨둔 거니까.’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깨달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예고편이었다.
주연이가 출연한 ‘프로젝트 101’ 예고편을 보고 다음 화를 갈구하는 나 자신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나도 기깔 나는 예고편을 만들어봐야겠다고.
“흐흐.”
재료는 충분했다.
아까 말했듯 독일 여행은 하이라이트가 존재했으니까.
다시 마우스를 쥐었다.
스륵.
2탄을 안 보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예고편의 정수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거울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비치는 내 모습은 꽤나 사악할 거 같았으니까.
***
편집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영감이 떠올라 방으로 달려갔던 연두도 곡 작업(?)을 마치고 내 옆에 누워있다.
배시시 웃으며 흥얼거린다.
“우리 집 고양이 츄르를 조아해~ 우리 집 누렁이 뱃살이 짱 많아~ 헤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 노래 마음에 드나 보네, 연두야?”
“.. 네에.”
연두부송에 이어 누렁이송까지.
아무래도 연두튜브에 소개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 같았다.
내 쪽으로 돌려 누우며 연두는 말했다.
“누렁이도 좋아했어요..”
“응?”
“피아노 치면서 불러주니까.. 누렁이도 엄청 좋아했어요…”
“하하, 그래?”
“네.”
대충 예상이 간다.
연두가 피아노를 치기만 하면 피아노 위로 올라가서 훼방을 놓곤 하는 누렁이였다.
아마 그 모습이 신나 보였던 거 아닐까.
“그럼 까먹지 말고 있다가 아빠도 들려줘야 한다?”
“.. 네!”
힘차게 대답한 연두는 물었다.
“아빠도 편집 잘했어요..?”
감동이다.
이제는 아빠의 본업도 걱정해 주는구나.
빤히 바라보는 눈망울에 일부러 과장된 제스처를 하며 대답했다.
“그럼, 잘했지! 아빠가 누군데!”
“초록!”
“하하, 맞아. 편집 다 끝내서 업로드까지 했지. 아마 연두도 보면 깜짝 놀랄걸?”
“휴우…”
예상한 반응은 아니다.
환하게 웃거나 보고 싶다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도하는 듯한 한숨이라니.
조금 의아한 마음에 나는 물었다.
“왜 한숨 쉬어, 연두야?”
“다행이에여..”
“뭐가?”
“아까 아빠 핸드폰으로 봤어요. 연두튜브 들어가서.”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설마는 적중했다.
“연두부들.. 화 많이 났어요…”
“…”
장난이 아니라 숨이 턱 막혀왔다.
왜냐고?
며칠 전부터 일부러 연두튜브는 들어가지 않고 있었거든.
내 심신의 안정을 위해.
“.. 어떻게? 어떻게 화 많이 났는데?”
이미 본 상황이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연두가 댓글창을 본 시점은 내가 업로드하기 전이겠지.
그렇다면 연두부의 참을성이 극에 달한 시점일 테고.
‘설마.. 연두가 보면 안 될 정도의 심한 말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아닐 거라 믿는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늘 연두를 생각해서 말하는 착한 연두부니까.
이윽고 돌아오는 답.
“진짜진짜 많았어요.”
“뭐가?”
“아빠가 무서워하는 거.. 히응…”
히읗.
함께 보다 보니 그 뜻을 궁금해하는 연두에게 얘기해준 적 있었다.
아빠가 무서워하는 자음이라고.
히읗으로 뒤덮인 댓글창을 연상하니 조금 섬뜩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 그랬구나.”
“네.”
“다른 건 없었고?”
조금 생각하던 연두의 얼굴이 왜인지 새하얘진다.
다시 드는 불안감.
그 속에서 연두는 떨리는 목소리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뱉었다.
“아빠를.. 아빠를 납치할 거래요…”
꿀꺽.
무시무시한 얘기였다.
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
그러자 여전히 떨리는 연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빠를 납치해서……”
“.. 납치해서?”
“깜깜한 지하실에 가두고……”
“가, 가두고?”
점점 강도가 거세진다.
대체 뭐지.
나를 납치해서 지하실에 가두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 긴장감 속에서 마침내 연두는 말을 끝맺었다.
“연두튜브 편집만 하게 할 거래요! 물이랑 군만두만 주고!”
“…”
한 템포 늦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흣.”
뭔가 했더니 주접이었구나.
사실 조금은 예상했지만 한순간이나마 진지하게 받아들인 내가 바보 같을 정도다.
여전히 연두는 세상 심각한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왔지.’
불과 조금 전 일이었다.
불안함을 머금은 표정으로 방에 들어온 연두가 나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던 건.
손에는 내 핸드폰이 들려있었지.
아마 거실에 놓아둔 내 핸드폰을 보고 내가 납치되지 않은 걸 확인하려 한 모양이다.
순간 궁금해졌다.
“연두야.”
“네, 아빠.”
“그럼 왜 아빠한테 바로 얘기 안 했어? 연두부, 아니 누가 나를 납치하겠다고 한 거.”
“.. 괜찮아여!”
“응? 아빠가 납치돼도 괜찮다고?”
고개를 휙휙 젓고서 연두는 말했다.
“아빠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 연두가 따끔하게 말해줬어요!”
“.. 엥?”
“그러니까 아빠는 안전해여!”
동시에 연두는 내 품에 와락 들어와 안겼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연두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건.
***
한편 그 시각.
일찍 잠에 든 레나와 연두를 제외한 두 아이는 저마다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유리와 시은이였다.
먼저 유리는 혼자 침대에 누운 채로 계속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꺅!”
화면을 보던 유리가 별안간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렀다.
퀸사이즈 침대인데도 굴러서 양 끝을 오가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신나셨다는 거다.
다시 멈춘 채로 유리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히히.”
입에서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유리와 함께 덩달아 멈춘 핸드폰 화면에는 떠올라 있었다.
원스타그램이.
정확히는 연두의 원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들이었다.
‘이건 서연두랑 찍은 거, 이건 다 같이 찍은 거, 그리고 이건……’
버스킹을 마치고 아저씨랑 둘이 찍은 사진이었다.
또다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
‘저도 한 장 부탁해도 될까요? 연주를 감명 깊게 들어서 팬이 됐거든요.’
그 능청스러운 표정이 자꾸만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이 사진 원스타에 올린다?’
그 말에 다시 찍은 사진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옆모습인 데다가 표정도 뚱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당시에 두 번째 사진은 보지 못했다.
‘.. 왜 안 보여줘요?’
‘잘 나왔으니까 인스타로 보도록. 지금은 기다리는 분들이 계신 거 같은데?’
‘아.’
약속대로 원스타그램에는 사진이 올라왔다.
아저씨 말대로였다.
두 번째 사진은 무척 잘 나왔다.
사진 속 아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유리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의 웃음이 예뻐 보인다고.
아저씨는……
“.. 뭐, 잘 나왔네. 흠흠.”
애써 그 정도로 끝맺었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아무리 생각이라지만 굉장히 부끄러워질 거 같았으니까.
이후 유리는 시선을 내렸다.
-유리도 매력덩어리네 ㅋㅋ
┖유리특 : 까칠해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말랑말랑함.
┖ㅇㅈ 츤데레 국룰이자너~
┖어허, 아직 연유코인 매수 안 한 사람도 있나? 나는 첫 번째 사진 올라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분할매수 중.
┖연유 붐은 온다~ 같이 연주하는 날 상한가 간다~
┖연유도 좋은데 의외로 초록님이랑 케미도 너무 좋음 ㅋㅋ 둘이 찍은 사진 뭔가 어색한 듯 귀여워.
┖나만 본 게 아니었네 ㅋㅋㅋㅋㅋ
몇 번째 보는 댓글인지 모른다.
수많은 댓글이 올라와 있었지만 이대로라면 다 볼 기세였다.
물론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또래에 비해 아는 게 많은 유리였지만, 주식과 관련된 용어는 전혀 몰랐으니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좋은 말이야.’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댓글창에서 안 좋은 이야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따뜻함.
댓글을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마음속 깊숙이 온기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유리는 그 기분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퍽! 퍽!
이불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마구 몸부림쳤다.
사람들 앞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혼자니까.
남들 눈치 같은 건 안 봐도 되는 혼자……
슥.
‘.. 응?’
착각인가?
뭔가 인기척이 느껴진 거 같은데.
엎드린 채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유리의 동공이 부풀었다.
동시에 벌어지는 입.
“어, 엄마..”
엄마가 팔짱을 낀 채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아무래도 이 상황을 무마하는 건 엄청나게 힘이 들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