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48)
548화. 형아학교
“저 황진모 피디입니다!”
황진모 피디.
여러 차례 연락을 받았는데도 저장을 안 해뒀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방송 출연 여부와 별개로 예의였으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바로 번호를 저장했다.
아마 지금 시점에 핸드폰에 저장된 PD 연락처만 해도 수십 개는 족히 될 듯하다.
그나저나 어떤 프로였더라.
몇 번 그에게 출연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던 터라 바로 떠올랐다.
‘단판승부.’
그는 파일럿 프로그램 단판승부의 피디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전에 단판승부 패널로 섭외요청 드린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네. 그럼 오늘도……”
“아뇨.”
그는 내 물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대답했다.
조금은 씁쓸한 목소리로.
“이번에는 단판승부 출연 요청은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네. 아시겠지만 단판승부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잖아요? 이제 끝을 바라보고 있고요. 게스트랑 패널도 이미 섭외는 마무리가 된 상태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단판승부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종영이 될 거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뭐라 말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 생태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피디의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드는 의문.
‘..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말 그대로였다.
나는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을 뿐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니까.
혹시 거절한 게 원망스러워서?
에이, 그럴 리가 없지.
“사실 예정된 수순이긴 했습니다. 워낙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고 횡설수설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근데 이런 얘기를 저한테 해 주셔도 되는 건가요?”
“아, 걱정 마세요! 이건 이미 언론에 전부 공개된 이야기니까요.”
그제야 납득이 갔다.
이미 다 알려진 정보였다니.
무슨 기밀정보라도 되는 양 진지하게 듣고 있던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이제부터가 사실상 본론이었다.
“그래서 저는 종영에 앞서 조금 일찍, 원래 있던 곳으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원래 있던 곳이라면……”
“아는 형아 촬영팀입니다.”
깜짝이야.
생각해 보니 ‘아는 형아’와 ‘단판승부’는 같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다.
인력 부족으로 잠시 거처를 옮겼다는 모양이었다.
“이번에 봤거든요. 원스타에 올리신 영상.”
“아, 네.”
“전에도 그렇고 저희 프로그램을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 기분이 좋더라구요. 헛다리를 짚는 연두도 너무 귀여웠구요.”
“하하..”
“물론 압니다.”
짐짓 진중해진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는 것과 출연 여부는 별개이죠.”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항상 거절해 왔으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당연히 같은 답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겠지.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저희 촬영팀이랑 출연진분들 모두 연두랑 아버님을 꼭 게스트로 모시고 싶어 한다는 걸요. 그러니까 한 번 더 출연을 고민해주셨으면 하고 연락드렸습니다.”
나 역시 경험이 있었다.
함께 일할 동료를 구하고 있는 지금처럼, 거절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도 제안을 건넨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피디의 입장에서도 마음이 불편한 건 매한가지겠지.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고.
‘딱히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딱 잘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는 형아’는 출연을 고려하고 있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으니까.
많은 연두부가 원하고, 연두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그때였다.
‘.. 어?’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영상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연두에게 한 물음이 있었다.
‘형아들이 더 보고 싶어, 아니면 마술사 이윤결 아저씨의 마술쇼가 더 보고 싶어?’
연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지금 머릿속에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건.
실현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얘기를 꺼내서 나쁠 건 없겠지.
“피디님.”
“네.”
“그렇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도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나름 긍정적인 반응이라 생각한 건지 피디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그럴 만도 했다.
평소에 거절하던 반응과는 확실히 달랐으니까.
나는 바로 생각해뒀던 얘기를 뱉었다.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저랑 연두 이외에 또 한 분과 같이 게스트로 출연할 수 있을까 해서요.”
“.. 다른 분이랑 같이요?”
“네. 연두가 그분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잠깐의 침묵 끝에 들려오는 목소리.
“연두가 팬이라구요?”
“네.”
“느낌상 보통 분은 아닐 거 같네요. 그래도 연두랑 초록님과 함께 출연하는 거라면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단독 출연보다도 더 좋을 수 있으니까요.”
그 정도인가?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방송인도 아닌데 방송계에서 그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우선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그분이 누군지.”
딱히 제안을 불편해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의지가 묻어났다.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최대한 섭외해 보겠다는 의지가.
괜한 마음에 이야기했다.
“네, 그런데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이 섭외가 안 되면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분은……”
이제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마술사 이윤결님입니다.”
“.. 네?”
“혹시 모르시나요? 아, 참. 단판승부에도 출연하신 적 있는데……”
“푸핫!”
왜인지 웃음을 터트리는 황진모.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힌 내 귀에 놀랄 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친구거든요.”
“네?”
“윤결이. 그 녀석이랑 저 절친입니다.”
세계 최강의 인맥을 보유한 황진모 피디였다.
***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마음만 먹으면 이윤결의 섭외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모양이다.
그가 말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두 분이 단독 게스트로 출연하셔도 충분히 화제를 모을 수 있을 텐데……”
피디로서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우려였다.
허나 내게는 아니었다.
출연하는 목적이 화제를 끌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니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거지.’
이윤결이 ‘아는 형아’에 출연한다면 가능해진다.
연두가 형아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이윤결의 마술쇼를 직관하는 것도.
나로서는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그런 의견을 전달하자 황진모는 바로 납득하고서 이야기했다.
“하긴, 화제가 필요할 만한 인지도는 아니시긴 하죠. 윤결이는 제가 반드시 섭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또 연락을 나누기로 했다.
사실 이윤결과 동반 출연이 피디의 입장에서도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그 역시 상당히 주가가 높은 편이니까.
‘단판승부에서 게스트로 캐리를 하기도 했고.’
마침 아는 형아에 출연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도 연두와 케미가 잘 맞을 거 같았다.
언변이 뛰어나다 보니 방송에 미숙한 우리를 견인해 줄 수도 있을 거 같고.
‘.. 바라는 게 너무 많은가?’
마냥 얹혀가려는 건 아니다.
그저 함께 출연했을 경우의 장점을 생각해봤을 뿐이지.
뒤이어 학교에 연두를 데리러 가서 이 소식을 전했다.
“연두야.”
“네, 아빠.”
“연두가 엄청 보고 싶어했잖아. 이윤결 아저씨 마술쇼.”
생각만 해도 설레는 듯,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형아들도 보고 싶어 했고.”
“네에..”
“보러 갈 거 같아.”
흠칫 몸을 떤 연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 진짜여?”
“응. 마술사 이윤결 아저씨랑 같이 형아들을 보러 갈 거야. 형아학교 전학생으로.”
“우아……”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듯 연두는 입을 뗐다.
“같이 가죠?”
“응?”
“아빠도.. 같이 가죠..?”
“당연하지. 연두가 가는데 아빠가 안 갈 리가 없잖아.”
그제야 세상 환한 웃음이 연두의 입가에 걸린다.
“언제 가요..?”
“응?”
“이윤결아저씨랑 형아들 보러요.”
“조금만 기다려.”
“흐흥.”
시작된 연두의 콧노래.
집에 갈 때까지 그 흥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
[독일 시리즈 2탄!(feat. 대저택)]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됐다.
이번 영상에는 담겼다.
레나의 본가의 모습과 소피아의 연주, 그리고 베를린 장벽 관광까지.
물론 업로드 허가는 받은 상태였다.
‘이번에도 예고편을 넣었지.’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가 들렸다.
저번 영상 말미에 삽입한 예고편에 대한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핫했으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하다 보니 저번 예고편에 나온 ‘헤롱헤롱 연두’의 모습이 이번 영상에 등장하지 않았거든.
그 여파는 엄청났다.
-뭐죠? 왜 예고편 속 연두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은 거죠?
-본디 예고편이란 다음 회차에 나오는 장면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나요? 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너무 달콤해… 그런데 부족해애…..
┖예고에 나온 장면이 안 나왔는데도 욕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초록님이 더 밉다 ㅠㅠ
┖초록악마의 재능 ㄷㄷ
┖초록님은 얼마나 재밌을까 ㅠㅠ 이렇게 애타는 우리의 모습이.
-잠깐만.. 저게 집이라고???
┖저택도 아니고 성이네 ㅋㅋ 이 정도면 왕실 후손이나 살 법한 집 아니냐?
┖레나 엄청난 금수저였네 ㄷㄷ
┖금수저 ㄴㄴ 다이아수저.
┖ㄹㅇ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집이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시은이도 장난 아닌 거 같던데 ㅋㅋ
┖엥? 시은이는 왜?
┖입는 옷 보면 알 수 있음.
┖시은이 이든 옷만 입자나.
┖지금 말고 연두튜브 초창기 때 옷. 그때 입은 거 보면 다 아동복계의 사넬이라 부르는 하이엔드 브랜드 옷임.
┖ㅁㅊ 님은 그런 거 어케 앎?
┖그쪽에 관심 있어서. 원래 어릴 때 비싼 옷 입는 게 찐부자인 거 알지? ㅋㅋ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다.
전에 우연히 백화점에서 본 하이엔드 브랜드의 옷을 시은이가 입고 있는 걸 봤으니까.
지금은 ‘이든’으로 정착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렇긴 하지.’
간단한 논리였다.
어릴 때는 성장이 빨라서 옷을 사도 금방 못 입게 된다.
그래서 어릴 때 비싼 옷을 입는 게 진짜 부자의 특징이라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연두가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그런 건 거론할 가치도 없는 요소였으니까.
애초에 그걸 알고 친해진 것도 아니고.
-소피아님 연주 미쳤다…
┖와 ㅋㅋ 저분 쇼팽콩쿠르 우승자.
┖엄마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 할머니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말이 안 나오네…
┖연두 진짜 연주에 빠져든 표정이네 ㅎㅎ
┖확실히 저런 연주 직관하면 시야가 넓어지긴 할 듯. 연두도 많은 걸 느끼지 않았을까.
┖ㅇㅈ
┖예고편 버스킹 암시 뭐냐고!!!
┖진짜 하는 건가, 버스킹. 제발 다음 편! 제바알!!!
미리 답하자면 하는 건 사실이다.
비록 시리즈의 마지막에 등장할 예정이긴 하지만.
괜히 미안해지네.
뭐, 어쩔 수 없지. 그만큼 완벽한 편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게 있었다.
원스타에 올린 연두 리액션 영상의 반응을 확인하던 도중에 본 댓글이었다.
-초록님 ㅎㅎ 유리 어머니가 쓴 댓글 보셨어용?
┖유리일 수도 후후.
바로 확인해봤다.
전에 올린 게시글에 남긴 댓글이 화제가 되어 있었다.
-저는 초유케미가 제일 좋네요
웃음이 나왔다.
답 댓글에서는 과연 이 댓글을 누가 남겼을까 하는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유리 어머니 은주아일지, 아니면 유리일지.
‘궁금하긴 하네.’
어느 쪽이든 재미있긴 하다.
그래도 기왕 꼽자면 유리인 편이 더 웃음이 날 거 같긴 하네.
귀엽기도 하고.
유리한테 또 전화가 오면 팩트체크를 해 봐야겠군.
‘이 정도인가.’
대충 할 일은 끝난 상태였다.
내일이 되면 또 몇몇 사람을 만나볼 생각이다.
그중에는 그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도연.’
당시에는 홍원대 미대에 재학 중이었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졸업을 했을 거 같긴 한데.
뭐,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좋아.’
오늘 일과는 대충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바쁘게 하루를 보냈으니 이제 저녁을 챙겨 먹고 연두랑 꽁냥꽁냥 잠들면 되겠군.
그걸로 완벽한 하루였다.
위이잉.
그런데 아직 남은 일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황진모 피디님.
이제는 확실히 저장된 이름.
전화를 받자마자 들뜬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피디님.”
“통화 가능하신가요?”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섭외됐습니다, 윤결이!”
마침 옆에서 고개를 쏙 내미는 연두.
빙긋 웃어 보였다.
최고의 한 끼 이후로 오랜만에 방송국 나들이를 하게 될 거 같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형아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