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49)
549화. 주객전도
“섭외됐습니다, 윤결이!”
딱 하루였다.
이윤결을 섭외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두와 함께 출연하는 거라는 소식을 듣고선 스케줄을 바로 비웠다는 모양이다.
괜스레 걱정이 든 나는 말했다.
“괜히 폐를 끼친 건 아닌가 걱정이네요.”
“에이, 아닙니다. 얘기 꺼내자마자 들떠서 아주 난리가 났는데요.”
“하하, 그런가요?”
대강의 스케줄은 조율한 상태였다.
이미 촬영이 완료된 회차들이 있기에 바로 우리 회차가 방영되는 건 아니다.
고로 중요한 건 촬영 날짜였다.
‘운동회는 마무리되고 난 뒤였으면 했는데.’
마침 방송국이 바라는 일정도 일치했다.
사실상 확정이었다.
나와 연두, 그리고 이윤결이 함께 아는 형아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건.
추가 전달사항이 있긴 했지만.
“확정은 아니지만 아마 2회에 걸쳐서 방영이 될 거 같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다.
최고의 한 끼에 출연할 때도 예외적으로 2회에 걸쳐 방송이 편성됐으니까.
그는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보통은 게스트 당 1회가 편성되는데요.”
“네.”
“연두랑 초록님이 워낙 모시기 힘든 게스트이기도 하고요.”
모시기 힘든 게스트라.
계속 거절한 입장이라 납득은 가지만 낯간지러운 호칭인 건 사실이다.
황진모 피디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윤결이, 아니 이윤결씨도 마술사잖아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직업이다 보니 한 회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 같더라구요.”
“그렇군요.”
바로 납득이 갔다.
최고의 한 끼와 달리 회차별로 메인 게스트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게스트 모두 분량을 뽑으려면 한 회로는 부족할 수 있었다.
‘방금 말했다시피 이윤결은 마술사고.’
당연히 마술을 보여주겠지.
나름 편집자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생각해도 2회에 걸쳐 편성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2회차 편성이라고 해서 촬영을 두 번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2회로 편성하는 게 좋겠다고 회의를 마친 상태입니다. 미리 전달을 드려야 하는 문제라서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연락드렸습니다. 윤결이, 아니 이윤결씨 섭외가 완료됐다는 것도 빨리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 호칭을 헷갈리는 걸 보니 보통 친한 게 아닌 모양이다.
절친을 넘어서 깐부일지도.
스피커폰이 아니라 옆에 있는 연두는 무슨 대화를 하는지 감을 못 잡는 눈치다.
뭐, 이따가 알려주면 되겠지.
“말씀하신 건 전부 이해했는데요. 그렇게 하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달라지는 거라……”
조금 생각하던 그는 말했다.
“우선 당연한 얘기지만 2회에 걸쳐 방영된다는 것과 촬영 시간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있겠네요. 그 외에 변동사항은 없다고 보셔도 될 거 같습니다.”
딱 예상한 정도였다.
최고의 한 끼 때도 중간에 끊어가긴 했지만 특별한 변동사항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다.
기왕 다녀오는 거 형아학교를 제대로 즐기고 와야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넵. 추가적으로 전달사항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고 전화를 끊었다.
잘 모르겠다.
마술사 이윤결과 우리의 동반 게스트 출연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아마 사람들은 생각 못 한 조합이겠지.’
사실상 연두의 팬심으로 인해 성립된 거니까.
그래도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누구와도 좋은 케미를 만들어내는 연두지만, 특히나 좋아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최상의 케미를 만들어내곤 하니 말이다.
***
전화를 끊자 연두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 아빠.”
“응, 연두야.”
“누구랑 전화한 거에요..?”
“궁금해?”
“네에.”
“궁금하면 오백 원~”
괜히 들떠서 한참 지난 유행어를 뱉었다.
왜 갑자기 들떴냐고?
그야, 연두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윤결의 섭외가 확정됐으니까.
‘따 놓은 당상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확정이라 못을 박기 전까지 변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못을 박은 거고.
뒤늦게 웃으며 알려주려는데 왜인지 연두는 후다닥 방으로 달려갔다.
‘.. 잠깐만. 또 삐진 건 아니겠지?’
저번처럼 문을 ‘콩’ 닫는다든가.
그런 내 우려와 달리 연두는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서.
짤랑. 짤랑.
분홍색 돼지저금통.
벌써 절반은 거뜬히 채운 동전들이 부딪치며 소리를 낸다.
한 번 저금통을 사 준 후부터, 틈만 나면 저금을 하곤 하는 연두였다.
“여기 있어요..!”
“응?”
“오백 원 여기 있어요! 돼지저금통 안에!”
그제야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방으로 가서 돼지저금통을 가져온 이유를 깨닫고.
궁금하면 오백 원.
그 말에 진짜 궁금했던 연두는 오백 원을 가져온 거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럼 이 안에서 아빠가 오백 원 가져가도 돼?”
끄덕. 끄덕.
고개를 끄덕인다.
장난기가 붙은 나는 마침 옆에 꽂혀있던 가위를 꺼내 들었다.
이윽고 저금통을 향해 가져갔다.
그런 나를 본 연두의 눈이 커다래진다.
슥.
순식간이었다.
앞에 놓아둔 돼지저금통이 연두의 품속으로 사라진 건.
저금통을 꼭 껴안고서 연두는 소리쳤다.
“.. 안 돼여!”
“응?”
“가위로 돼지저금통 하면 안 돼요! 그러면.. 그러면 아파해여…”
부쩍 말을 잘하게 된 연두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순이 흔들리는 건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이겠지.
놀라게 한 건 미안하지만 반응이 궁금해졌다.
“근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에 있는 돈을 꺼낼 수 없는데?”
“…”
어느새 눈물이 고인 눈.
반응을 보아하니 저금하면서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인 거 같았다.
떨리는 입술로 연두는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안 돼요…”
“저금한 돈을 못 꺼내게 돼도?”
“.. 네.”
그러다 연두는 더 울적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사 주기로 했는데.”
“응?”
“노엘이 한국에 놀러오면.. 저금한 돈으로 맛있는 거 많이 사 주기로 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구나.
마음이 아파서 저금통은 못 깨겠고, 그렇다고 안 깨면 노엘한테 맛있는 거 사 줄 돈이 없고.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심각한 거니, 연두야.
웃을 상황이 아닌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 한다.
‘후우. 진정하자.’
여기서 웃어버리면 당분간 진짜 연두한테 미움받을지도 몰라.
호흡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뗐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으응..?”
“연두가 이 저금통을 꽉 채우잖아? 그러면 아빠가 마술을 보여줄게.”
“.. 마술이요?”
“응. 돼지가 하나도 안 아프게 돈을 빼내는 마술.”
촉촉해진 연두의 눈이 반짝인다.
“아빠.. 그런 마술 할 수 있어요..?”
“그럼.”
아마 ‘아빠가 마술을 보여줄게.’ 3탄이 되겠군.
방법이 뭐냐고?
간단하다. 나는 저 돼지저금통을 산 곳을 기억하고 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네에..”
“그리고 500원도 안 줘도 돼. 아빠가 통화한 건 아는 형아 피디님이거든. 피디님이 그랬어.”
귀를 기울이는 연두를 향해 덧붙였다.
“이윤결 아저씨가 바쁜 일정에도 연두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했다더라.”
“지, 진짜여..?”
“응.”
“우아……”
금세 근심이 사라진 연두의 표정.
잠깐만.
뭐지, 이 감정은?
‘설마… 질투?’
휙. 휙.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상대로 질투를 하는 건 너무 갔잖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떤 사람이라도 연두가 나보다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헤헤.. 이윤결 아저씨.”
…… 그렇겠지?
착각일 터였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고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
서도연과 한경우.
둘은 나란히 카페 테이블의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와,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갑자기 초록님한테 먼저 연락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도 아니었고. 안 그래?”
“.. 뭐, 그렇지.”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아예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번호를 교환한 이후로 한 번씩 새해나 명절 때마다 메신저로 인사말을 보내곤 했으니까.
특별한 건 아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복붙한 듯한 인사말.
그럴 때마다 항상 답장이 돌아오곤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먼저 오기도 했고.’
딱 그 정도였다.
별거 아니었지만 경우에게 굳이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트집을 잡을 게 뻔하기 때문.
그야, 도연은 평소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경우였다.
그와 별개로 갑자기 불러낸 이유가 궁금한 건 도연도 매한가지였다.
긴 인연은 아니었다.
처음에 초록님을 알게 된 건 공모전 심사 때였다.
홍원대 미대 재학생이 1차 심사를 맡게 됐고 그 자리에는 도연과 경우도 있었다.
그때였다.
처음 초록님의 그림을 본 건.
‘빨려들었어.’
보는 순간 빨려들었다.
쉽게 볼 수 없는 구도와 역동적인 색채에 충격까지 받았지.
어이없게도 박상영의 트롤링과 나머지 둘까지 엑스 표시를 하는 바람에 탈락이 될 뻔했지만 말이다.
교수님의 개입으로 그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
‘안 그랬어도 어떻게든 올리려 노력했겠지만.’
홍원대는 국내 최고의 미대다.
그 안에서도 도연과 경우는 수석과 차석을 할 정도의 인재였다.
당연히 경우도 심사 때 도연과 같은 입장이었다.
‘아니.. 미X놈아. 존X 잘 그렸잖아.’
박상영을 향해 그렇게 일침을 꽂기도 했고.
다행히 1차 심사를 통과한 그 작품은 최종적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두 번째 만남은 시상식 때 이루어졌다.
‘그다음은 전시회였고.’
어쩌다 보니 식사까지 함께하게 됐지.
식사 도중이었다.
교수님이 과거의 초록님을 떠올렸고, 사실상 홍원대에 합격한 거나 다름없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더 이상의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도연은 알 수 있었다.
‘그 이유가 연두라는 걸.’
분위기는 잘 읽는 편이었다.
상황이 그려졌다. 어린아이와 자신의 미래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을 상황이.
도연은 생각해봤다.
만약 자신이 그 입장이었다면 어땠을지.
‘쉽게 학업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그런 만큼 이상도 높았을 테고 학업에 대한 욕심도 컸을 거라는 건 자명하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했지.’
결국 초록님이 선택한 건 연두였다.
이유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조금만 보고 있어도 초록님이 연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재능은 가려지지 않았다.
초록님은 다시 그림을 그렸고, 여러 분야에 뛰어들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도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류 미대에 진학해도 그걸 활용해 이름을 떨치긴커녕 생계 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역시 긴 인연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원이 도연에게 남긴 인상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일부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도 사실이지만.
‘작화팀을 만들 계획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교수님의 물음에 초록님이 밝힌 포부였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더라.
맞아.
그런 작화팀이라면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툭.
“안녕하세요.”
“… 어?”
고개를 드니 보이는 얼굴.
초록님이었다.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바로 자세를 고쳐앉았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도연씨도, 그리고 경우씨도.”
“네.”
옆에서 한경우가 밝게 인사했다.
“넵, 오랜만입니다!”
그렇게 마주한 셋.
각자의 앞에 음료가 놓였고 주원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랐죠?”
“아.. 네.”
“궁금할 테니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본론이었다.
“작화팀을 만들 계획이에요.”
“…”
그 순간, 묘한 감각이 도연을 감쌌다.
겹쳐 보였다.
과거에 포부를 말하던 초록님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정확하게.
동시에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두 분이랑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요.”
“네.”
즉답에 놀란 주원을 향해 도연은 말했다.
“.. 해요, 얘기.”
그렇게 시작됐다.
제의를 하는 쪽보다 받는 쪽이 더 적극적인 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