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초통령
연두 덕에 순조롭게 어린이대공원 입성에 성공했다.
입장하자마자 바로 동물이 등장하는 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어린이대공원 안내도였다.
찰칵.
나는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 안내도 사진을 찍었다.
세연 씨가 와 본 적이 있다고는 해도, 혹여나 길을 헤맬 수도 있으니까.
신세연이 호기심을 보이며 말했다.
“어! 카메라 가져오셨네요?”
“네. 연두가 처음 오는 동물원인 만큼,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어서요.”
“하긴, 나중에 남는 건 결국 사진이니까요. 근데 카메라가 되게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하하, 그런가요?”
뭐, 내 분수에 안 맞는 성능의 카메라인 건 사실이니까.
연두튜브를 운영하며 유일하게 협찬을 진행한 로이카 카메라. 만족도는 120%였다.
받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혹시 사진 찍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혼자든 시은이랑 같이든.”
“오.. 그럼 오늘 사진은 주원 씨한테 맡겨도 되는 거예요?”
“..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거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아마도.”
사진 찍는 취미가 있긴 하지만, 굳이 미리 떠벌려 기대치를 올릴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로 적당히 대답하는 게 좋겠지.
신세연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크크, 그렇죠.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감독님!”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요.”
그때 연두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무언가를 엄청 자랑하고 싶어하는 표정인데.
아니나 다를까, 연두는 신나서 입을 열었다.
“우리 아빠 사진 엄청 잘 찌거요..!”
“흐응.. 그래? 연두는 어떻게 찍어도 예쁠 거 같은데.”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연두가 기대치를 잔뜩 올려버렸다.
괜히 부담되는데, 이거.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세연 씨. 안내도도 찍었으니까 빨리 가죠. 기왕이면 동물들을 전부 보고 싶거든요.”
“네, 감독님!”
“…”
아무래도 오늘 내 역할은 확정된 거 같다.
***
동물들이 있는 곳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가는 길은 예쁘게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무성한 나무와 풀, 그 사이에 있는 나무다리를 따라 쭉 걸어가야 했다.
연두는 신이 나서 다리 위를 뛰어다니며 말했다.
“아빠! 다 연두색이에요..!”
그러고 보니 주위가 온통 연두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성하게 자라 있는 풀, 그리고 푸른 향이 가득한 나뭇잎까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네. 전부 연두색이네. 연두가 좋아하는.”
“.. 연두가 좋아하는 연두색?”
“하하, 그래. 연두가 좋아하는 연두색.”
시시한 말장난을 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쁜 산책로라 그런지,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연두와 함께 걷고 있다는 거고.
터벅. 터벅.
그렇게 걸어가던 와중, 옛 궁궐을 연상케 하는 정자와 동그란 연못이 나타났다.
자연스레 내 발걸음이 멈췄다.
그런 나를 보고 신세연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주원 씨..?”
“포인트예요.”
“으응? 포인트요?”
“네. 여기서 사진 한 장만 찍고 가죠.”
의외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장소였다.
‘누구를 찍느냐’도 매우 중요하지만, ‘어디서 찍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즉, 배경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오죽하면 일류 사진가들이 원하는 배경의 사진을 찍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겠는가.
‘물론.’
단순히 사진 찍는 거에 그 정도까지 신경 쓰는 건 오버였다.
하지만 사진에 관심이 많은 나는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배경에서 찍어야 예쁜 사진이 나올지.
지금 내가 멈춘 곳이 바로 그 포인트였다. 소위 말하는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
나같이 사진찍기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였다.
한편, 신세연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요?”
신세연의 눈에는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엄청 화려하고 예쁜 장소는 아니었으니까.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그저 내 눈에 들어온 포인트일 뿐.
나는 카메라를 손에 쥐고 말했다.
“세연 씨. 거기 한 번 서 볼래요?”
“저 혼자요..?”
“일단 혼자 찍어드릴게요.”
“아, 네!”
그녀는 내가 말하는 장소에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 앵글에 담고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여기는 확실한 포인트였다.
“세연 씨. 손은 편안하게 떨궈도 돼요. 평범하게 브이를 해도 되고. 표정은 자연스럽게 웃으면 되고요.”
“이, 이러면 될까요..?
그녀가 손을 브이 자로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찔리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사진 이상하게 나온다는 말 진짜 많이 듣거든요.”
“괜찮아요. 지금 딱 좋은데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뛰어난 사진가의 덕목이었다.
기왕 찍는 거 최대한 예쁘게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내 말에 척척 따라줬다.
최근에 연두를 자주 찍으며 여러모로 생각하고 고민한 나였다.
‘어떻게 하면 예쁜 연두를 더 예쁘게 찍을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터득한 것들을 적용해서 찍을 생각이었다.
나는 살짝 허리를 숙인 채, 카메라를 잡은 손을 움직였다.
카메라는 수직으로, 앵글의 맨 아래에 발끝을 두고, 얼굴은 중앙에 위치하게, 좌우 배경은 2:8 정도로, 뒤의 배경이 전체 앵글에 자연스레 맞아떨어질 때.
내 경험상 이 오 박자가 만족했을 때 가장 완벽한 사진이 나왔다.
나는 신세연의 표정과 자세를 주시하다가, 최적이라 생각되는 타이밍에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검사는 등을 보이지 않고, 일류 사진가는 두 번 찍지 않는 법이다.
물론 내가 지어낸 말이다.
사진 하나 찍는데 유난 떤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빨리 동물이나 보러 가지.’라고 생각한 걸까.
옆에서 시은이가 나를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웅크려 앉아 시은이에게 엄마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어때, 시은아?”
내 말에 시은이가 카메라 속의 엄마를 바라봤다.
이윽고 가늘게 뜨고 있던 시은이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리고 나는 성공했다.
시은이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걸.
“우와..”
“하하, 잘 나왔지?”
“네. 엄마보다 훨씬 예뻐요!”
응?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귀를 한 번 후비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시은아?”
“엄마보다 훨씬 더 예뻐요..!”
시은이는 그렇게 결정타를 꽂았다. 어쩌지? 아이들은 거짓말을 못 한다고 하던데.
아니다. 호랑이도 때려줬다는 민우를 보면 잘하는 거 같기도 하니까.
어쨌든 지금 시은이는 거짓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신세연이 발끈해서 다가왔다.
“시, 시은이 너..!”
후다닥.
시은이는 재빨리 달려가 연두 등 뒤로 숨었다.
신세연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했다.
“주원 씨, 저 좀 보여주세요. 어떻게 나왔길래 그러지..?”
당사자가 보여달라면 보여줘야지.
척.
나는 카메라를 신세연의 손에 넘겼다.
그녀는 사진을 확인하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대박..!”
방금의 발끈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사진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사진 이렇게 잘 나온 거 처음이에요, 진짜. 친구들한테도 셀카고… 아니, 셀카 엄청 못 찍는다는 소리 맨날 듣거든요. 남이 찍어주는 것도 그렇고. 한 번 보실래요..?”
이어서 그녀는 부탁한 것도 아닌데 핸드폰 갤러리를 내게 보여줬다.
얼마나 사진을 못 찍는지 인증하려는 건가?
나는 별생각 없이 사진첩을 봤다.
“와..”
방금 신세연과 시은이와는 다른 의미의 감탄사였다.
어떻게 이 예쁜 얼굴을 이렇게 찍을 수 있는 거지?
세연 씨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애잔한 표정으로 시은이를 바라봤다. 사진 찍는 거 많이 괴로웠겠구나, 시은아.
내 반응이 너무 적나라했는지, 그녀는 핸드폰 화면을 껐다.
“.. 어쨌든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잘 나와서.”
“하하, 아니에요.”
“근데.. 주원 씨가 보기에도 실물보다 사진이 더 낫나요..?”
딸의 말이 꽤 신경 쓰인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보정 하나 없이 찍은 사진인데. 아무리 잘 나와도 실제보다 나을 수는 없죠.”
그제야 그녀는 환히 웃어 보였다.
***
“아빠아..”
“응, 연두야.”
“시으니도 아빠가 사진 찍어줘쓰면 조켔대요!”
“오. 그래?”
시은이는 왜인지 연두의 뒤에 숨어서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연두가 대신 얘기하는 거 보면 나한테 부탁하는 거 자체가 쑥스러운 건가?
나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혼자 찍고 싶어, 시은아?”
시은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연두랑 같이…”
“그래. 아까 엄마 섰던 데에 서 볼래?”
“네..”
공주님 두 명이 앵글에 잡혔다.
찰칵.
“와..”
사진을 확인한 시은이는 신세계라도 마주한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어서 나는 고루 사진을 찍어줬다. 따로 찍어주기도 하고, 셋이 함께 찍어주기도 했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왔다.
그런데 그때, 연두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응.”
“아빠는 안 찌거요..?”
“응? 나는 괜찮은데······”
그때 신세연이 끼어들었다.
“그럼 안 되죠!”
내 의사를 물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신세연은 곧바로 옆에 지나가는 중년 부부를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참 예쁜 가족이네, 허허.”
또다시 우리는 말문이 막혔다.
찰칵.
그렇게 나도 오래간만에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사진 속에서는 왜인지 연두가 나를 바라보며 가장 맑게 웃음 짓고 있었다.
***
나무다리를 지나자 분수대가 나왔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분수를 보며 연두가 입을 벌렸다.
신세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악분수라는 건데, 그냥 지나가죠.”
“왜요?”
“여기는 저녁에 봐야 진짜 예쁘거든요. 조명이 장난이 아니라.”
“그럴 거 같긴 하네요.”
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여기는 동물 친구들 보고 다시 오자.”
“네에..”
이어서 여러 조형물이 있는 상상마을이라는 길을 지나갔다.
재활용품으로 동물을 만들어 놨는데, 별로 흥미는 가지 않았다.
곧 살아 숨 쉬는 동물들을 보게 될 텐데.
“우아…”
막상 연두는 되게 신기하게 바라보는 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상상마을도 빠르게 지나치고 나니, 큰 놀이터가 하나 나왔다.
놀이터에 놀러 온 건 아니니 여기도 스킵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연두에게 동물을 보여줄 생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터벅. 터벅.
놀이터를 지나자 드디어 원하던 장소가 나왔다.
[바다동물관]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다.
방금 전에 비해 사람들이 꽤나 붐볐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어린이날에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평일에도 이 정도면······”
“흐흐, 그쵸! 그럼 들어갈까요?”
“네. 연두야, 준비됐지?”
연두가 설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손 놓으면 안 된다?”
“네에!”
그렇게 나와 연두는 바다동물관에 입장했다.
처음으로 등장한 동물은 바다사자였다.
바위 위에 올라간 녀석이 있어서 눈에 잘 들어왔다.
“이건 바다사자라는 동물이야, 연두야.”
내 말에 연두는 깜짝 놀라 물었다.
“사, 사자요..?”
“응. 근데 땅에 사는 사자는 아니고, 바다사자인데······”
“그럼 사자처럼 힘이 쎄요..? 동물들도 잡아먹고…”
미안한데 그건 잘 모르는데.
연두는 겁먹은 표정으로 내게 꼭 붙어서 바다사자를 바라봤다.
내가 보기에도 생각한 것보다 크고 무섭게 생겼다. 시커메가지고.
괜히 뒤에 사자라는 단어가 붙은 게 아니네.
나는 슬쩍 앞의 간판을 커닝하고는 말했다.
“잡아먹어.”
“.. 진짜요?”
“응. 근데 바다에 사는 동물이라 같은 바다에 사는 동물을 잡아먹지. 물고기나 오징어, 새우, 뱀 같은 거.”
간판에 쓰여 있는 걸 그대로 읽으니, 거의 가이드 뺨치는 설명이 나왔다.
그 덕에 연두는 더욱 겁을 먹었다.
그러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역은 구렁이…”
“응? 갑자기?”
“구렁이도 뱀인데.. 지혜 언니가 구렁이 엄청 쎄다고 했는데.. 바다사자 무서어요…”
아니, 잠깐. 바다사자가 구렁이도 잡아먹나?
순간적으로 뇌가 굳는 느낌이었다.
몰라. 그냥 대충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네. 무섭네, 하하.”
“푸흡.”
옆에서 듣고 있던 신세연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멋쩍어진 나는 입을 열었다.
“무서운 바다사자 말고 다음 동물 보러 가자, 연두야.”
“네에..”
그렇게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 다음 스팟으로 이동했다.
바다동물관은 그렇게 동물이 많은 편은 아닌 듯했다.
동물을 구경한 후, 나는 옆에 있는 물새장으로 향했다.
동물원의 인기 동물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대표적으로는 엉덩이가 빨간 원숭이부터, 국민맹수 호랑이, 목이 긴 기린, 코가 긴 코끼리 등.
스타성 있는 동물들이 각 동물관에 밸런스 좋게 포진하고 있으니까.
[물새장]이곳을 대표하는 동물. 그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시은이와 연두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와다다다!
둘은 누가 먼저다 할 것 없이 달려나갔다.
방금 바다사자를 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푸드덕. 푸드덕.
날지도 못하면서 날갯짓하는 녀석들.
초통령 포로로의 실사판이 그 자태를 드러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