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55)
555화. 전화
교수님과는 무거운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뒤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그 속에서 모든 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지금 시점을 보자면,
타타탓!
장기 계획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밤마다 나가서 달리기 연습을 하곤 하니까.
연두뿐 아니라 시은이도 함께였다.
‘훈련의 효과는 엄청났지.’
둘 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선 시은이.
“9.1초.”
“…”
별다른 표정의 동요 없이 좌우로 머리를 쓸어내리는 모습이 멋있기까지 하다.
거의 9초에 가까워진 기록.
잘은 몰라도 내가 보기에 최상위 구간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고.
타닷. 탓.
다음 차례는 연두였다.
우선 달리는 소리부터 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임의로 그어둔 50m 선에 도달하는 순간에 버튼을 눌렀다.
“헉.. 헉..”
숨을 몰아쉬는 연두.
어느새 옆에 온 시은이가 함께 기록을 바라본다.
아까와 달리 표정에 동요가 일어난다.
“.. 13.2초.”
물론 차이는 컸다.
시은이의 기록과 비교하면 4초 이상의 차이가 나는 셈이니까.
단거리 달리기에서 4초는 엄청난 차이다.
‘괜찮아.’
아까 말했듯 이건 장기 계획이다.
더군다나 나와 시은이는 연두가 막 연습을 시작했을 때의 기록을 알고 있다.
그게 얼마였냐고?
15.6초. 그러니까 무려 2.4초나 기록이 단축된 거다.
“더 빨라졌어, 연두야!”
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본인의 기록 단축은 세상 쿨하게 넘기면서도 연두의 기록 단축에는 격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함께 지켜보는 세연씨 역시 뿌듯한 표정이다.
“헤헤..”
“이렇게 쭉 연습하면 내년에는 계주 할 수 있을 거야. 꼭!”
“응! 꼭 계주 할 거야..!”
“같은 팀으로?”
시은이의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헌데 그 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척.
연두와 시은이가 나란히 서 있다.
손에는 각각 청색 바통과 흰색 바통을 든 채로.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다른 팀이야.’
그렇다.
난데없이 떠오른 상상 속 장면에서 연두와 시은이는 다른 팀이 되어있었다.
뭐야, 대체.
왜 갑자기 이런 상상이 드는 건데.
‘재미있는 구도긴 하네.’
함께 계주로 뛰려고 밤마다 연습하던 두 아이가 상대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
구도가 재미있긴 하다.
단, 그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라면 말이다.
‘우리 연두랑 시은이는 안 돼.’
꼭 같은 팀이 되어야 한다.
그게 이 장기 계획의 가장 완벽한 마무리니까.
설사 다른 팀이 되더라도, 둘이 함께 달리는 그런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겠지.
그럴 거라 믿는다.
‘.. 근데 이게 무슨 설레발이야.’
아직 올해 운동회도 하지 않은 상태다.
내년에 연두가 계주가 될지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이런 상상은 너무 설레발이잖아.
휙휙 고개를 젓는 내 귀에 들려왔다.
“다음에는 꼭.. 꼭 계주 할 거야…”
뭔가 느낌이 달랐다.
평소에 의지를 북돋우던 목소리가 아닌, 어딘가 풀이 죽은 목소리였으니까.
시은이도 그걸 알아챈 건지 묻는다.
“왜?”
“우영이오빠한테 운동회 오라고 했는데.. 안 올 거라고 했어…”
“왜 안 오는데?”
“연두가 계주가 아니라서……”
처음 듣는 얘기다.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올 때 연두가 풀이 죽어있던 게 그래서였나 보군.
자그맣게 한 마디가 이어진다.
“백팀 응원 노래도 알려줬는데……”
그럼 그렇지.
어떤 맥락으로 우영이가 안 간다 했을지 이해가 간다.
그걸 꿈에도 생각 못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연두야.”
“네에.”
“우영이오빠가 안 온다고 했다고 계주를 꼭 해야겠다 생각할 필요는 없어.”
왜냐고?
우영이는 올 거 같거든.
100%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99% 정도는 확신하고 있다.
‘나머지 1%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걸 테고.’
그 생각을 입 밖에 뱉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말했다.
“원래 연두가 왜 계주를 하고 싶었는지 그것만 생각하면 돼.”
“맞아.”
시은이가 맞장구쳤다.
“바보오…… 아니, 그 오빠는 생각 안 해도 돼.”
“하하..”
정정하긴 했지만 바보라는 단어가 너무 명확하게 들렸는데.
그러고 보니 그랬지.
시은이랑 우영이도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니까.
‘볼 수 있겠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이번 운동회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코앞이었다.
비록 계주는 아니지만, 응원부장으로서 활약할 연두의 첫 운동회가.
***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켰다.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은 반드시 시청해야 하는 프로가 있었다.
다름 아닌 ‘프로젝트 101’이었다.
‘벌써 5회네.’
11부작인 걸 고려하면 벌써 거의 절반가량을 달려온 상태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는 사실.
첫 방송 때의 여론과 달리, 프로젝트 101은 초특급 흥행에 성공했다.
‘시청률이 고공행진했으니까.’
심지어 현재도 진행중이다.
주연이는 어떻냐고?
1회와 2회에서 드러낸 존재감을 바탕으로 나름 순조롭게 미션을 수행하고 있었다.
과정까지 모두 순조로운 건 아니었지만.
‘노래 꺼 주세요.’
‘지금 뭐 하는 거지? 아예 연습이 안 됐는데?’
‘평가가 불가능해요.’
놀랍지만 이 말 모두 주연이가 들은 독설이었다.
팀 미션 중간평가에서.
아무래도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 춤 실력이 떨어지는 주연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멘트가 독하긴 했지만.
‘아, 아빠.. 주연이언니…’
연두는 거의 울 뻔 했지.
끝이 아니었다.
지금은 거의 밈(meme)으로 남아 회자되는 댄스 담당 트레이너의 말이 있었다.
‘주연아. 가수가 하고 싶니?’
‘.. 네.’
그렇게 회차가 끝났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한 회차였다.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수직상승한 주연이의 순위가 뚝 떨어졌으니까.
-내가 말했지 ㅋㅋ 걸그룹 뽑는 프로젝트인데 노래만 잘해서 뭐하냐고.
┖극복할 수 있긴 개뿔.
┖저게 춤이냐? 혼자만 ㅈ나 겉도는데 민망해서 보기가 힘들다.
┖세은이 불쌍해 ㅠㅠ 괜히 같이 욕먹잖아.
┖정곡이네 ㅋㅋ 가수가 하고 싶니? 김윤정 말대로 걍 자진하차하고 ‘노래만 하는’ 가수하러 가는 게 나을 듯.
순식간에 뒤바뀐 여론들.
연두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저번주가 그다음 회차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두와 손을 꼭 잡고 방송을 봤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세은아.’
‘응.’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마음이 무너질 만한 독설에도 주연이는 주저앉지 않았다.
도움을 청한 건 세은이었다.
첫 방송 때부터 주연이에게 호의적으로 말을 걸어줬고 지금은 한 팀인 참가자 유세은.
나이는 주연이보다 두 살 어렸다.
‘당연하죠!’
그 장면과 유세은의 개인 인터뷰가 교차편집됐다.
‘주연이언니 춤추는 걸 보는데 제가 연습생 시작했을 때를 보는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제가 도와주고 언니가 열심히 연습하면, 어쩌면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구요.’
생긋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자작곡 들었을 때 이미 주연이언니 팬이 됐으니까요, 헤헷.’
그때부터였다.
둘의 특훈이 시작된 건.
세은은 안무 동작 하나하나를 잘라서 가르쳐줬고, 주연이는 연습실에도 숙소에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똑같은 동작을, 셀 수 없이 말이다.
‘잘 모르겠어요. 아직 1절 안무도 못 끝냈는데 주연이가 할 수 있을지……’
‘언니가 잠을 안 자요.’
‘잠깐 화장실에 가려고 새벽 네 시에 나왔는데 주연이가 연습을 하고 있더라구요.’
사실 그때부터 짐작했다.
이런 팀원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는 건 사실상 반전을 예고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예상은 완벽히 들어맞았다.
특출나지는 않을지 몰라도 주연이는 실수 없이 안무를 소화했다.
그다음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하, 나 어떡하지..’
울컥한 듯 고개를 숙인 트레이너 김윤정의 말이었다.
‘너희 진짜 고생 많았다.’
‘…’
‘주연이 고생 많이 했네. 밤 새웠니?’
극찬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깊이 와닿았다.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건, 그리고 그 장면을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한 법이니까.
‘눈물의 도가니였지.’
주연이를 포함해 팀원들은 모두 거의 오열하다시피 했다.
허나 괜찮았다.
그 복받쳐오르는 감정이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대로 전해졌으니 말이다.
연두도 눈물바다를 만들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그래서일까.
방송이 끝난 뒤 시청자 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와.. 인정할 수밖에 없네.
┖저게 찐 우정이지. 세은이랑 주연이 진짜 왤케 예쁘냐 ㅠㅠ 얘들아, 첫방송 때부터 나는 너희였어.
┖진짜 이 프로젝트 취지에 가장 적합한 회차였던 거 같다.
┖소름 쫙 올라왔음. ‘가수가 하고 싶니?’에서 ‘밤 새웠니?’ 로 바뀔 때.
┖ㄹㅇ ㅋㅋ
┖동생한테 저렇게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큰 용기 아니냐.
┖독설 들었을 때 울었으면 꼴불견이었을 텐데, 저 타이밍에 우는 거 보니까 나까지 울컥하네. 나 공능제인데 ㅋㅋ
┖같이 꺽꺽대면서 오열한 1人
여론은 다시 반전됐다.
그렇게 현시점, 주연이의 순위는 무려 7위였다.
임팩트 치고는 아쉽다 할 수도 있지만 역시 대형 기획사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었다.
‘사실상 공평한 게임은 아니야.’
그럴 수밖에 없다.
기존 팬층이 두터운 건 물론이고 기획사의 소속 선배 가수들이 팬들에게 투표를 권하기까지 하니.
이 상황에서 나도 숟가락을 얹으려면 얹을 수도 있겠지.
내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연두부 파워도 크게 밀릴 거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허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증명하고 있어.’
주연이는 스스로 하나하나 증명해내고 있다.
심지어 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출연 소식조차 알리지 않았지.
아마 주연이 역시 도움을 바라지 않을 터였다.
나 역시 그랬다.
“시작한다, 연두야.”
“네, 아빠!”
지켜보고 싶었다.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주연이가 결승선에 도달하는 순간을 말이다.
저번 회차를 보고 확신했다.
주연이는 그럴 수 있는 아이라고.
***
늦은 저녁.
조금 이르게 연두는 잠에 든 상태였다.
잔뜩 몰입한 채로 ‘프로젝트 101’을 본방사수했으니 고단할 만도 하다.
물론 투표는 잊지 않았다.
슥.
가만히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진짜 예쁘네.
가끔은 이렇게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감정이 물 밀듯 올라오곤 한다.
한참동안 더 보다가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독일 시리즈 5탄!(feat. 캠프파이어)]어느새 대망의 5탄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두 개의 하이라이트 중 첫 번째 하이라이트.
주스를 먹고 취한 연두가 나오는 영상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봤다, 이 장면…
┖설마 5탄에 나올 줄이야. 근데 기다린 보람이 있었따…
┖미치겠네 ㅋㅋ 주스 먹고 취한 거 뭐냐고.
┖취하니까 애교 왤케 많아져, 연두야.. 안 그래도 귀여워서 심장이 감당이 안 되는데 ㅠㅠ
┖저는 이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옆에 사람들 따라하는 게 하나같이 킬링포인트임 ㅋㅋ
┖취한 상태에 몰입한 연두우… ♥
┖그 와중에 초록님 ㅋㅋㅋㅋㅋ 미치겠네. 과하면 독이니까 두 잔만 마시래.
┖주스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두 ㅋㅋ 주위에 권하는 스타일이구나. 혼자 취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다 주스 주네. 결국 받아서 먹는 유리도 너무 귀엽다…
┖ㄹㅇ 츤데레의 정석.
┖초록님. 앞으로 연두한테 오렌지주스 좀 많이 부탁드릴게요(엄근진)
이걸 어쩐다.
이제는 오렌지주스로는 안 취한다는 걸 알게 된 상태인데.
다음은 포도주스로 해 볼까?
와인이랑 색깔이 비슷해서 한 번 더 속을 거 같기도.
“흐흐.”
순간 겹쳐보였다.
막걸리를 우유라고 속이며 건네던 아빠와 나의 모습이.
안 돼.
피는 못 속인다지만 그 정도로 짓궂은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착한 아빠라고.
‘그만 자자.’
오늘은 조금 일찍 잠에 들기로 했다.
해야 할 것도 없고 내일은 소화해야 할 일정이 있으니.
이제 거의 막바지다.
작화팀 팀원을 구하는 과정도.
쪽.
잠든 연두의 볼에 가볍게 뽀뽀하고 누워서 잠에 들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드르륵.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상황이다.
핸드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한 내 입에서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발신인에는 떠올라있었다.
-은주아
은주아의 이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