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56)
556화. 중요한 일정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리는 연두튜브를 보고 있었다.
새로 영상이 올라왔으니까.
[독일 시리즈 5탄!(feat. 캠프파이어)]벌써 5탄이었다.
화로에 불을 피워두고 캠프파이어를 한 날.
그 날은 유리의 마음속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프로스트..!’
연두의 건배사 후에 독일식으로 한 건배였다.
다음은 취한 연두가 등장한다.
짓궂은 아저씨 때문에 취하면 더 귀여워진다는 개념이 주입된 상태로 연두는 말한다.
‘.. 유리도 같이 취하자!’
‘보고 싶은데.. 유리 더 귀여워진 모습……’
지금도 잘 모르겠다.
평소라면 트집을 잡았을 텐데 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건지.
그 분위기에 취했던 걸까.
‘아.. 갑자기 목이 마르네?’
‘.. 캬.’
화면으로 봐도 어설프기 그지없는 연기.
“우아악..!”
유리는 뒹굴대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흑역사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인 은주아와 주원이 원스타 댓글을 봤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요즘 들어 엄마가 이유없이 자신을 보며 쿡쿡 웃는 일이 많아졌다고.
‘옛날 옛날에……’
익숙한 도입부.
파비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처음으로 유리는 넘기기 기능을 사용했다.
처음이었다.
영상을 여러번 본 적은 있어도 넘겨버린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 무섭단 말이야.”
겉보기와 달리 유리는 겁이 엄청나게 많았다.
저택에서 괜히 화장실에 가려고 혼자 방을 나섰다가 복도에 주저앉아서 벌벌 떤 게 아니다.
실눈을 뜨고 휙휙 넘기는 와중에 멈춘 장면.
화악.
또 한 번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하필이면 멈춘 장면은 이야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냅다 옆에 있는 연두를 끌어안은 장면이었다.
그것도 흐엑 따위의 괴상한 소리를 내며.
수줍음에 얼굴을 가린 유리는 손 틈새로 화면을 보고 생각했다.
‘..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말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연두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다.
또다.
독일에서 몇 번이고 느꼈던 심장이 간질거리는 이 기분.
뒤이어 본 댓글은 언제나와 같았다.
-유리 저걸 받아주네 ㅎㅎ
┖이러니까 내가 연유코인을 안 사고 배겨? 저렇게 달달구리한데?
┖언니가 많이 아낀다, 유리야… ♥
┖내 생각엔 초록님도 유리 되게 좋아하는 듯. 편집하신 거 보면 뭔가 아끼는 게 보임 ㅋㅋ
┖ㅇㅈ 초록님도 연유코인 미는 듯 ㅋㅋㅋㅋㅋ
┖그럴 만도 하지. 유리로 추정(?)되는 댓글도 있고 ㅎㅎ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분이 묘했다.
초록님이 아저씨라는 건 알고 있다.
아저씨도 나를 좋아한다고?
어느새 입꼬리가 상승한 것도 모르고 유리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뭐라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거 같잖아.’
그건 인정하기 싫었다.
먼저 인정하는 건 지는 거니까.
원스타에 작성한 댓글은 까맣게 잊은 채로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불가항력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걸 어쩌겠는가.
…… 케미가 좋다는 걸.
“흠흠…”
괜히 헛기침을 뱉었다.
어느새 영상이 끝난 화면에는 다시 한 번 제목이 떠올랐다.
독일 시리즈 5탄.
‘벌써 5탄…’
독일에 갔다 왔기에 순서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알 수 있었다.
버스킹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한 기분이다.
버스킹 영상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리즈가 끝이 나지 않길 바랐다.
‘영상은 계속 올라오겠지만.. 나는 없을 테니까.’
단지 관심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자신을 향한 연두부의 댓글에 많이 웃긴 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가 존재했다.
…… 싫었다.
앞으로 올라올 수많은 영상들, 그 일상 속에 자신은 없을 거라는 게.
‘나머지는 다 있겠지.’
연두와 아저씨는 물론이고 연시은과 레나도 있을 거다.
그래도 즐거울 터였다.
유리가 없을 때에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독일에서의 영상을 보며 유리의 마음속은 그때의 감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장 큰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화면 속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그 시간을 보내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감정적이 된 유리는 핸드폰에 손을 가져갔다.
-연두 아버님
연두의, 그리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거창한 게 아닐지라도 적어도 남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뚜. 뚜.
귓가에 울리는 통화연결음.
심장소리에 맞춰 뛰던 그 소리가 멈춘 뒤에 들려왔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여보세요.”
***
평범하게 전화를 받았다.
바로 ‘어, 유리야.’ 하고 전화를 받았다가 은주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상당히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거 같으니까.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역시나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 건 유리의 목소리였다.
“여, 여보세요.”
다른 의미로 민망한 느낌.
그런데 상관없다.
민망해하는 건 내가 아닌 유리 쪽이니 말이다.
“안녕, 유리야.”
“.. 네.”
“실수로 전화한 거야?”
“네?”
“아저씨가 그랬잖아. 실수로 하는 전화라도 상관없다고. 그러니까 심심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
표정이 짐작이 간다. 어쩔 줄 몰라하고 있겠지.
첫 번째는 몰라도 두 번째로 건 전화까지 실수라고는 못 할 테니까.
결국 내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근데 이걸 어쩌지?”
“.. 왜요?”
“연두는 잠들었거든. 그래서 지금은 아저씨밖에 통화 못할 거 같은데.”
그 말이 활로가 된 걸까.
민망함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평소 유리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쉽네요.”
“응?”
“서연두한테 할 말 있어서 전화한 건데 벌써 잘 줄은 몰랐거든요. 흠흠.”
그랬구나.
당연한 얘기긴 한데 조금은 서운하네.
나도 꽤나 유치한 녀석이라 서운함은 담아두지 않고 드러내는 편이었다.
바로 이렇게.
“…… 끊을까?”
진짜 끊는다는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삐졌다는 사실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전달했을 뿐이다.
생각보다 반응이 격했다.
“아, 아니요!”
“아저씨랑 얘기하기 싫은 거 아니었어..?”
“누가 얘기하기 싫대요? 그리고 아저씨가 서연두한테 제 말 전해줘야죠!”
“하하, 그래.”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연두한테 할 말이 뭔데?”
착각이겠지?
뭔가 고민하고 있는 거 같은 텀인데.
그 텀이 길어져 다소 어색해지려는 찰나에 유리는 입을 열었다.
“.. 다, 다, 단비음악대!”
“엥?”
생각지 못한 키워드다.
이 키워드를 유리가 먼저 꺼내는 건 처음 아닌가?
횡설수설하며 유리는 말했다.
“저번에 그랬잖아요.”
“언제?”
“전화할 때요! 서연두가 단비음악대 연습하자고. 혹시 그럴까 봐요!”
“응?”
“걔는 바보같이 착해서.. 내가 필요한데도 말 못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하고 전화한 거죠. 조금 바쁘긴 해도, 시간 못 낼 정도는 아니니까.”
또 이 표현 나왔네.
초등학교 1학년인데 구사하는 표현은 아주 다 큰 성인 못지않다.
그와 별개로 웃음이 터질 뻔 했다.
‘너무 투명하게 보이잖아.’
역시 즉석에서 떠올린 게 틀림없다.
유리 정도로 똑똑한 아이라면 미리 생각해놓고 이렇게 속보이게 얘기할 리는 없으니까.
뭐, 준비했더라도 나를 속일 수는 없었겠지만.
“그랬구나? 우리 유리가 연두한테 그런 말을 하려 한 거구나?”
소위 말하는 우쭈쭈 말투였다.
“그, 그쵸.”
“근데 연두한테는 안 전해줄 거야.”
“네? 왜요?”
“아저씨는 단비음악대가 아니잖아. 단비음악대에 관련된 건 직접 얘기해야지. 그러니까 연두한테는 유리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는 것만 전해줄게. 얘기는 직접 하도록.”
나름 생각이 있었다.
솔직하지 못한 유리를 위해 또 통화할 명분을 만들어주려는 의도였다.
못 이기는 척 수긍하는 유리를 향해 말했다.
“아, 참. 근데 유리야.”
“네.”
“연두튜브는 보고 있어? 유리도 계속 나오는데.”
원스타그램은 물어볼 것도 없다.
댓글을 누가 달았는지가 관건이긴 한데 그걸 들춰냈다가는 유리가 수치심에 앞으로 통화를 못할 거 같아 묻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적당한 날이 오겠지.
‘원래 맛있는 건 아껴먹는 법이니까.’
지금은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어쩌면 새로 올라온 영상을 보고 전화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윽고 들려오는 유리의 목소리.
“.. 봤어요.”
“오, 그래?”
“그냥 심심해서요.”
“어때, 재밌었어?”
“뭐 그냥.. 이상한 댓글이 많긴 했는데……”
그 말에 눈썹이 꿈틀했다.
이상한 댓글?
그 표현을 악플과 동의어라 받아들인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유리에 대한 안 좋은 얘기라도 있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
연두튜브 댓글창은 수질로 치면 청정수 중의 청정수니까.
다행히 유리의 말에 그 걱정은 불식됐다.
“아니요. 안 좋은 얘기는 아닌데……”
“그럼?”
“.. 아저씨는 댓글 안 봤어요?”
“아니, 봤는데 딱히 이상한 댓글을 보지는 못해서. 워낙 댓글이 많기도 하고.”
“어떤 댓글 봤는데요?”
그 뒤에는 같은 구조의 대화가 반복됐다.
내가 대답하면 유리가 ‘그거 말고요.’ 라 말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의아한 마음이었다.
혹시나 해서 나는 입 밖에 뱉었다.
“그럼.. 초유케미 잘 어울린다 이런 말?”
“…!”
처음으로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그 말은 아니긴 한데요. 유치하기도 하고.”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유리는 덧붙였다.
“..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어떤 얘기?”
“아, 아저씨가 저를 좋아한다? 막 그런 얘기요! 절 아껴서 편집 잘 해 주는 거라고. 완전 웃기죠. 아저씨는 저 좋아하지도 않고 편집도 이상……”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너무 별 거 아닌 댓글이라 김이 새는 기분이다.
실소를 뱉으며 얘기했다.
“당연하지.”
“네?”
“좋아하고 아끼는 거 맞다고. 그래서 편집도 열심히 했고. 미워했으면 영상에 넣지도 않았지.”
“…”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보다 내 심장 깊숙한 곳에 비수같이 꽂힌 말은 따로 있었다.
“근데.. 편집이 그렇게 이상했니, 유리야…?”
이건 진짜 마상(마음의 상처)이다.
나름 연두튜브 공식 편집자에 이번 5탄은 특히나 뼈를 갈아서 편집한 영상인데.
갑자기 우울해지려 그러네.
“.. 거짓말.”
“어?”
“아저씨는, 아저씨는 진짜 거짓말쟁이에요.”
업보인가.
비행기에서 친 거짓말 탓에 아직도 벗겨지지 않는 프레임이었다.
***
홍원대학교 강의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교양수업이 끝났다.
과목은 인행심.
저번 일로 은서린은 아직도 토라져 있는 상태였다.
“야, 그만 풀어. 팀플도 안 끝나서 같이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잖아.”
“.. 팀플은 참여할 거야.”
“그런데?”
“이 기분은 절대 안 풀려. 넌 모른다구.”
울상이 된 서린은 덧붙였다.
“너 이름은 기억했잖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잊어버릴 거면 둘 다 잊어버리지 괜히 한 명 이름은 기억해서는 상황이 더 심화됐다.
기억해줬다는 점에서 기분은 좋았지만.
‘얘는 서운할 만도 해.’
그도 그럴 게 훨씬 접점이 많았다.
소문을 듣고도 먼저 다가가서 팀을 하자고 한 것도 그렇고, 대놓고 여러번 호감을 표현하기까지 했으니.
막상 상대는 그걸 눈치챘는지조차 감이 안 오지만.
‘설마 눈치채고 이름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건 아니겠지?’
소름이 올라온다.
만약 그런 거라면 서린이가 너무 안쓰러울 거 같았다.
어쨌든 친구이기도 하고, 같은 팀원으로서 이 상황은 중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팀플은 참여하고 선우영이랑 말은 안 하겠다는 거야?”
“응.”
“뭐야, 그게. 완전 초딩식 대처잖아.”
“그래, 나 초딩이다! 어쩔래!”
“…”
은정 역시 공감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어찌 보면 서로 상극이라 둘이 친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탄식을 내뱉은 은정은 말했다.
“만약에 사과하면?”
“뭐?”
“선우영이 먼저 사과하면 어쩔 건데?”
늘이듯 서린이 되물었다.
“.. 사아과?”
“그래.”
“선우영이, 나한테?”
“그래, 너한테.”
“그럼 당연히 받아줘야지. 그런데……”
뒤에 이어질 말은 둘 다 알고 있었다.
현실성이 없다.
방금만 해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강의실을 나서던 우영이었다.
사과하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일단 나가자. 여기 앉아있어서 뭐 해.”
“.. 응.”
마지막으로 일어선 둘은 강의실 문을 나섰다.
그런데,
“.. 어?”
은정이 외마디 소리를 내뱉었다.
강의실 문 옆 복도에 기댄 채로 서 있는 남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우영이었다.
“뭐야? 너 왜 여기 서 있어?”
뒤늦게 우영을 본 서린은 반사적으로 홱 고개를 피했다.
살짝 한숨을 뱉는 우영.
이윽고 입 밖으로 나온 건 짧은 한 마디였다.
“미안.”
“… 네?”
“이름 기억 못한 거 미안해. 팀원이면 이름은 기억했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둘.
설마 사과를 하려고 기다렸을 거라는 건 조금도 생각 못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간신히 입을 뗀 건 서린이었다.
“그, 근데 왜 제 이름만 기억 못한 거에요?”
“뭐?”
“아니, 따지는 건 아니구… 은정이 이름은 기억했는데 제 이름만 기억 못 했으니까. 그냥 궁금해서……”
짤막하게 우영은 답했다.
“그냥, 더 쉽잖아.”
“네?”
“은정이란 이름이 더 쉽잖아. 은서린이라는 이름보다.”
“.. 아.”
뭔가 이상한데 틀린 말은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였다.
내 이름이 어렵긴 하지.
사실상 기분은 풀린 상태.
그런데도 뭔가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아쉽다는 기분이 들었다.
애써 연기하며 서린은 말했다.
“그럼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 뭐?”
“소원이요.”
우영이 표정을 찡그렸다.
“사과했으면 됐지. 무슨 소원을 들어줘.”
그럴 만도 했다.
사실 땅콩이랑 한 약속이 없었다면 이렇게 사과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
미치겠네.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니 안 지킬 수도 없고.
서린은 물러나지 않았다.
“하,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 있잖아요! 이상한 소원은 안 빌게요!”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팀플에서 제일 중요한 게 팀워크인데. 이름도 기억 못하는 거 보고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알아요?”
“…”
우영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머릿속에는 연두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약속이에여?’
분명히 그 말에 우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고의 말도 있었다.
‘사과 안 하면…… 앞으로 영우오빠라고 부를 거에요!’
그렇게 불리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우영은 말했다.
“알겠어.”
“.. 진짜요?”
“네.”
이게 되다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던진 다트가 과녁의 정중앙에 꽂힌 기분이다.
완전히 기분이 풀린 서린이 헤실거리며 말했다.
“그럼요… 저랑 좀 놀아주세요.”
“뭐?”
“팀워크도 다질 겸, 저랑 수업 끝나고 놀자구요. 딱 하루만.”
이제는 그냥 체념이었다.
대충 알겠다고 하고 자리를 뜰 셈으로 우영은 답했다.
“알겠어.”
“아, 참! 내일 공강 아니에요? 저도 내일……”
“내일은 안 돼.”
단칼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당하는 건 처음이다.
풀죽은 목소리로 서린은 물었다.
“.. 왜요?”
“내일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중요한 일이요?”
“응.”
“뭔지 물어봐도 돼요?”
“아니.”
“…”
굴하지 않고 서린은 돌려서 물었다.
“뭐, 소개팅이나 미팅 이런 건 아니죠? 그런 데 나가는 거 완전 안 어울리는데……”
“아니야.”
“됐어요, 그럼! 다음에는 꼭 놀아줘야 돼요?”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우영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딱히 거짓말한 건 없었다.
실제로 내일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정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