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61)
561화. 친구
본격적인 팀 대항전의 시작.
스탠드 좌우로 진영이 나뉘고, 각 팀을 대표하는 색의 깃발이 보급됐다.
그에 따라 열기는 더욱 후끈해졌다.
“우와아!”
함께 열심히 깃발을 흔들면서도 내 시선은 오로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5반의 응원단장이 활약하는 타이밍이니까.
‘놓칠 수는 없지.’
손이 바쁘다.
한 손으로는 깃발을 흔들랴, 다른 한 손으로는 촬영을 하랴.
그렇다고 하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딸이 응원부장인데 응원을 쉴 수도 없고, 저렇게 귀여운 딸의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으니.
그런 와중 보이는 우영이의 손.
“뭐야.”
앞선 여러 돌발행동 때문인지 녀석이 흠칫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반응한다.
“왜요?”
“우영이 넌 왜 깃발 없어?”
“안 받았는데요.”
어허, 그럼 안 되지.
마침 카메라를 컨트롤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는데 잘됐네.
나는 자연스레 깃발을 우영이의 손에 쥐여줬다.
“…?”
물음표가 떠오른 얼굴을 보며 말했다.
“부탁할게.”
“뭘요?”
“응원. 열심히 해 줘야 한다? 나를 대신해서 하는 거니까.”
“그럼 형이 하면 되잖아요!”
살짝 발끈한 목소리.
그럴 만도 한 게, 벌써 내가 맡긴 역할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장 찍어주는 역할과 연두의 2인3각 파트너.
바로 발연기가 발동했다.
슥.
말없이 카메라를 가리킨다.
여기서 포인트는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거다.
바로 이렇게.
“… 하아.”
한숨을 뱉은 우영이는 말했다.
“알겠어요. 땅콩이나 빨리 찍어요, 형.”
“고맙다.”
바로 돌변한 내 시선은 곧바로 카메라를 향했다.
두 손으로 잡아 한층 더 안정적이 된 앵글.
흔들리지 않고 연두를 담는다.
“어머, 귀여워라..”
“아들. 저렇게 예쁜 친구가 응원하는데 지면 안 되겠는데?”
“서연두! 서연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
내친김에 제삼자의 시점에서 우리 5반 응원단장의 특징을 꼽아보기로 하자.
우선 첫 번째.
열정이 넘친다.
힘든 줄도 모르고 흔들리는 깃발이 그 증거였다.
팀원의 사기 증진이 중요한 응원부장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덕목이라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두 번째.
비주얼이 사기다.
증거가 뭐냐고?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번진다.
위아래를 하얀색으로 맞춰 입은 것도 모자라 하얀 깃발을 힘껏 흔드는 모습.
그게 끝이 아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팀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
순간 흠칫했다.
실수로 잘못 칭한 건가 하고.
그야 우리는 백팀이고, 일반적으로는 가사에도 청팀이 아닌 백팀이 들어가는 게 맞으니까.
그러나 바로 사전에 알려준 응원구호가 떠올랐다.
휙.
마치 마이크로 호응을 유도하듯이 깃발을 내미는 연두.
그렇다면 다음은 우리의 몫이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팀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와아아!!!”
그렇다. 이 반전이 포인트였다.
모두가 떼창을 해 노래보다는 고함에 가까웠지만, 오히려 그게 사기를 증진하는 데는 더 효과적이었다.
보상도 바로 돌아왔다.
고개를 돌린 교사가 선언한 거다.
“거기 몇 반이죠?”
“5반이요!”
“응원이 장난이 아니네? 좋아요, 백팀 플러스 1점!”
“우와아!!!”
이런 응원점수가 승패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터였다.
아마 조금 있으면 청팀도 주겠지.
어떻게 아냐고?
‘국룰이니까.’
학창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패턴이다.
딱히 불만이라는 건 아니다.
열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그 패턴만 한 게 없으니.
아, 참. 그러고 보니 우리 응원부장의 마지막 특징을 안 말했네.
세 번째 특징.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내 딸이라는 거.’
제삼자의 입장 아니었냐고?
그런 건 모른다.
늘 그랬듯이 어떤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결론은 하나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딸이라는 것.
“.. 아빠!”
역할을 마치고 연두가 달려와 내 품에 뛰어든다.
“연두.. 응원 잘했어요..?”
확인받고 싶은 모양이다.
꼭 끌어안고 난 뒤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럼. 너무 잘해서 백팀이 응원점수까지 받았잖아.”
“헤헤…”
“진짜 짱이었어.”
옆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우영이오빠도 연두 따라서 응원 진짜 열심히 하던데?”
“.. 진짜여?”
“응.”
환하게 웃는 연두를 보며 우영이는 괜히 입을 뗐다.
“그냥 팔운동 한 거지, 팔운동.”
깃발은 열심히 흔들었다는 뜻이다.
팔운동은 무슨.
아령은커녕 무거운 물건 한 번 안 들어봤을 법한 가녀린 팔인데.
‘안 되겠어.’
조만간 우영이랑 운동 좀 해야겠다.
이제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아질 테고, 그림 그리는 것도 의외로 기초체력이 중요하니까.
그걸 채워주는 것도 파트너의 본분이겠지.
툭. 툭.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녀석이 묻는다.
“그 웃음은 뭐예요, 형?”
100% 안 한다고 할 테니 미리 말해줘서는 안 된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
팀 대항전의 첫 번째 경기는 가볍게 시작됐다.
청백 뒤집기였다.
일정 공간에 청색 딱지와 백색 딱지를 같은 개수로 놓아두고 어느 팀이 더 많이 뒤집는지를 가리는 게임.
‘청색 딱지는 뒤집으면 백색이 되고, 백색 딱지는 뒤집으면 청색이 되니까.’
결국 순발력 게임이다.
연두도 잠시 응원부장의 직분을 내려놓고 게임에 참가했다.
“파이팅!”
“네!”
“잘해라, 땅콩.”
눈에 힘을 꾹 주고 고개를 끄덕인다.
딱지가 펼쳐진 넓은 공간에 각 팀의 아이들이 모두 들어갔다.
휘슬이 울리면 시작이었다.
“선생님! 얘 벌써 뒤집어요!”
“야, 지금 만지면 안 된다고!”
“백팀 반칙 그만해! 반칙으로 이기면 좋냐? 우우우!!”
벌써부터 난리다.
아무래도 팀 대항전의 첫 경기이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치열했다.
그런 아이들을 중재하며 교사가 말했다.
“다들 조용!”
“…”
“반칙은 안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죠? 첫 번째도 안전, 두 번째, 세 번째도 안전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경기중에 만질 수 있는 건 딱지뿐입니다. 혹시 이기기 위해서 다른 팀 친구를 밀치거나 방해한다면 그 팀은 패배로 간주하겠습니다. 알겠나요?”
“네, 선생님…”
다소 사그라든 대답.
괜찮았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분위기를 가라앉힐 필요가 있어 보였으니까.
그런 상황 속에서 휘슬이 울렸다.
삐리릭!
“빨리!”
“앞에 하얀색!”
“영수야, 저기 있다! 저기!”
학부모들의 응원에 따라 진행되는 경기.
치열하다.
이 정도면 차이가 벌어질 법도 한데, 육안으로는 어느 팀이 우세한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연두 파이팅!!”
연두도 정신없이 딱지를 뒤집고 있다.
그러다 그만,
꽈당!
중심을 잃어 넘어진다.
깜짝 놀라 괜찮냐고 소리치려는데, 벌떡 일어난 연두가 다시 딱지를 뒤집기 시작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휙! 휙!
“야! 괜찮아, 땅콩?”
들리지도 않나 보다.
“야! 너 잘못 뒤집었어!”
“스파이다!”
“이 바보야! 우리는 하얀색을 파란색으로 바꾸는 거라고!”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진풍경.
역시 아이들인 데다가 인원이 많으니 평범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팀을 도와준 아이도 보이고.
삐리리!
재차 휘슬이 울렸다.
“다들 동작 그만! 그대로 밖으로 나옵니다!”
아이들이 걸어 나온다.
상대팀을 도와준 청팀 아이는 자책하며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때였다.
“야, 김성우! 회장!”
집계 전이니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다.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성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너 뭐하냐고!”
“뭐가.”
“다 봤거든? 딱지 안 뒤집고 가만히 있는 거.”
주위 시선이 쏠렸다.
어느새 돌아온 연두도 놀란 듯 둘을 바라본다.
콩쿠르 때 봐서 성우에게 말하는 아이가 재호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가 그러고도 회장이냐?”
“…”
“우리팀 지면 네 탓이다! 선생님한테 다 이를 거야!”
타이밍 한번 얄궂었다.
“자, 치열한 경기였네요! 단 세 개 차이로 청팀의 승리입니다!”
“와아아!!!”
“청팀! 청팀! 천하무적 청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사는 말했다.
“청팀, 응원점수 플러스 일 점!”
단 삼 점 차이 승부.
장난꾸러기 이미지긴 했지만 재호의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성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면 뿔이 날 만도 하다.
“봐! 너 때문에 졌잖아!”
“…”
말없이 지나치려는 성우의 어깨를 재호는 또 한 번 붙잡았다.
“계주할 때도 가만히 있을 거냐? 그럴 거면……”
“아, 좀!”
탁!
재호의 손을 거세게 쳐내는 성우.
“그만하라고!”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건지 당황한 재호는 눈만 끔뻑인다.
성우는 덧붙였다.
“그래, 이기기 싫다! 회장도 계주도 너 하든가! 됐냐?”
“…”
한껏 쏘아붙이고 성우는 걸어갔다.
얼어붙은 재호.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 입에서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아앙!”
장난꾸러기라 해도 아직 애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울음을 터트리는 건 당연했다.
뒤늦게 달려온 김수희와 부모님.
“어머! 왜 그래, 재호야?”
“흐아앙!”
“재호야, 왜 그래. 뚝! 뚝 그치고 말해봐!”
“흐아앙!”
“…”
아무래도 진전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이걸 어쩐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 엥?”
절로 흘러나오는 외마디 소리.
‘.. 없잖아!’
연두가 없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여기저기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새 어딜 간 거지?
‘우영이도 없네.’
그나마 안심이었다.
둘 다 동시에 사라질 리는 없으니 같이 어딘가 간 거겠지.
나는 곧바로 연두를 찾아 나섰다.
***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성우.
막상 자리를 뜨고 나니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삐딱선을 탄 적은.
‘내 잘못이야.’
알고 있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재호가 아닌 자신의 잘못이라는 걸.
열심히 참여했다면 세 개 정도는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을 테니.
‘봐! 너 때문에 졌잖아!’
재호 말이 맞았다.
너무 정곡이기도 했고, 따가운 시선들에 심각성을 느낀 나머지 공격적인 반응이 나갔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 방귀는 안 뀌었지만.’
성우가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형이 오지 않는다.
못 온다고 연락이라도 왔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전화가 연결되지도 않았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래, 이기기 싫다! 회장도 계주도 너 하든가! 됐냐?’
자리를 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뱉은 말.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
형처럼 멋있어지고 싶어서 회장이 됐고, 계주로서 멋지게 달리는 모습을 형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다 끝이었다.
‘팀을 지게 만들었어.’
게다가 저런 말까지 해버렸다.
그런 자신을 감싸주고 찾아줄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회장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하하…”
이게 고독인가.
회장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자리였던 건가.
여덟 살 성우가 그렇게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데,
슥.
느껴지는 인기척.
그에 따라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떠올렸다.
“성우야…”
한순간이나마 진정한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가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