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68)
568화. 폭소
-속보) 이윤결도 동반 출연
방금까지는 여유로웠다.
워낙 인기 프로그램이니 그 정도는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정보야.’
코난이 와서 추리해도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까지는 맞출 수 없다.
안경을 고쳐잡을 만큼 확실한 근거가 있지 않는 한.
잠시 마취총을 맞은 듯 얼어붙어 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달칵.
흘러나오는 실소.
속보가 한가득 추가되어 있었다.
-속보) 2회차 편성
-속보) 아는 형아 최대 시청률 및 레전드 예약
-속보) 강호등 좋아서 폴짝폴짝 뛰다가 살이 20kg 빠진 것으로 추정
-속보) 서울 강동구에 사는 이십대 남성 이모씨도 함께 뛰다가 아랫집이 올라와서 사과했다는 후문이 있어……
-ㅋ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공손한 거 보소.
뭔가 이상하다.
드립은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듯 말하다니.
이러면 더이상 기밀이 아니잖아.
‘아니, 잠깐.’
애초에 기밀은 맞았나?
아니나 다를까.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드는 댓글이 연달아 눈에 들어온다.
-와 ㅋㅋㅋ 드립치는 줄 알았는데 진짜였네.
┖진짜라니까 ㅋㅋㅋㅋㅋ
┖ㄹㅇ 팩트임? 연두랑 초록님 아는 형아 출연하는 거? 진짜로?
┖ㅇㅇ 진짜임
┖와 ㅋㅋㅋ 최고의 한 끼 이후로 품고 있던 염원이 이제야 이루어지는구나.
┖이 기세 몰아서 방송국 다 평정해버리죠, 초록님 ㅎㅎ
┖연두부들이라 그런지 다 순수하네 ㅋㅋ 잼민이들이 어그로 끄는 거 한 두 번 보나. 딱 봐도 구라잖아. 초록창 검색해봐도 안 나오는데. 물론 나도 연두부긴 하지만.. ㅎㅎ
┖진짜라고 ㅂㅅ아. 방금 공식 홈페이지 출연자 명단에 떴다.
┖응, 안 속아~
의심 많은 연두부와 달리 나는 알았다.
100% 진실이라는 걸.
그렇지 않고서야 이윤결과 동반출연한다는 사실까지 알 리가 없다.
‘기밀이니 뭐니 혼자 오버했네.’
생각해 보면 들은 얘기도 있었다.
출연자 명단은 촬영 전에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최고의 한 끼 때도 그랬고.
달칵.
바로 공식 홈페이지로 점프했다.
[출연자 명단]– 234회 : 연두, 초록, 이윤결
– 235회 : 연두, 초록, 이윤결
역시나 올라와 있다.
유투브에 댓글창이 있듯이 여기에는 시청자 게시판이 존재한다.
-섭외 미쳤다 ㅠㅠ
┖사랑해요 피디님… ♥
┖최고의 한 끼 때도 그렇고 연두랑 초록님만 출연하면 2회 편성은 패시브인 듯
┖교복 입은 연두.. 상상만으로 행보캐애…
┖요즘 시청률 주춤하던데 바로 필살기 써버리네 ㅋㅋㅋㅋㅋㅋㅋ
┖이윤결도 요즘 대세인데 동반 출연 ㅋㅋ 케미 기대된다.
실시간으로 수많은 채팅이 올라오고 있다.
그나저나 빠르네.
기사가 올라오기도 전에 연두튜브로 먼저 이 소식을 접하게 될 줄이야.
‘슬슬 기사도 올라오겠군.’
그렇다면 시간문제다.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아무래도 시끌벅적한 하루가 될 거 같았다.
***
늦은 저녁.
두 여자가 마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하나는 풀잎컴퍼니 대표 윤수아.
“짠!”
“먹고 죽자, 죽어!”
단번에 들이키는 동생을 보며 그녀는 말했다.
“뭐야? 이제 두 번째 잔인데 그 만취한 거 같은 멘트는.”
“만취하고 싶어서.”
“.. 무슨 일 있어?”
그녀의 물음에 유하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답했다.
“언니.. 인생이 참 힘들다, 그치.”
누가 봐도 이상한 하나의 모습에 수아는 걱정스레 바라봤다.
오랫동안 봐 온 동생이다.
항상 쾌활한 모습만 봤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처음이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직장을 잃긴 했지만 유쾌한 모습 그대로였고.
“왜 그래? 얘기해 봐.”
그 말을 기다렸던 걸까.
하나는 꼭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속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언니도 알지만.. 내가 다니던 로펌이 망했잖아.”
“그치.”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딜 가도 다시 멋지게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내가 일을 못해서 짤리거나 한 것도 아니니까. 내가 회사를 망하게 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였다.
로펌이 단번에 주저앉은 데 그녀가 기여한 건 단 1%도 없었다.
윤수아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더라고.”
“뭐?”
“낙인이 찍힌 기분이야.”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기분에 윤수아는 고개를 휙휙 젓고서 얘기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로펌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널 피한다는 거야?”
“적어도 이 업계는.”
그렇게 대답했다가 유하나는 가늘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닐 수도 있어.”
“… 허.”
아닌 게 아니다.
확신하고 얘기하는 게 동생의 표정에서 느껴졌으니까.
말이 안 나온다.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편견을 갖다니.
조금만 생각해봐도 일개 경리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건 알 수 있는 문제인데.
‘최소한의 위험부담도 지기 싫다는 건가.’
머리가 지끈거린다.
답답한 마음에 원래 하려던 말도 잊고서 윤수아는 말했다.
“그럼 다 얘기가 잘 안 된 거야?”
“응. 그렇다고 내가 ‘저 때문에 망한 거 아니에요! 윗분들 때문에 그런 건데 왜 저한테 그러세요!’ 소리칠 수도 없잖아.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는데.”
“후하.. 돌겠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지금은 몰라도 한때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던 윤수아였다.
괜히 법조인을 꿈꿨던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녀를 봐 온 고래는 잘 알고 있는 성격이었다.
꼴깍.
한 잔을 들이켰다.
그런 수아를 본 하나가 뒤따라 마시며 얘기했다.
“왜 혼자 마시구 그래, 언니…”
“안 적으면 안 돼?”
“뭘?”
“경력.”
“.. 어떻게 안 적냐? 졸업하고 계속 거기서 일했는데. 그것도 안 적으면 나 무경력자라구.”
하나는 옅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까 회의감이 들더라. 몇 년간 나는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하고.”
“…”
어찌 보면 당연했다.
순탄치만은 않은 직장생활이었지만 꿋꿋이 밝은 모습으로 버텨온 하나였으니까.
그런 다년간의 직장생활이 보답은커녕 빅엿을 먹이고 있는 상황이다.
윤수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열 낼 필요 없어.’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하다.
꿈꿨던 법조인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전향한 이유도 그 부조리함 때문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들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아끼는 동생에게 제시할 좋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전에 먼저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이야?”
“들어가야지.”
“어디에?”
“어디든. 조금 시선을 내리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많더라. 꼭 이 업계를 고집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말은 지금 정해진 곳은 없다는 거지?”
“응, 면접 보려고 한 곳은 있는데.”
“보지 마.”
하나의 얼굴에 떠오르는 아리송한 표정.
“.. 응?”
“보지 말라고, 면접.”
“무슨 말이야?”
원래는 얘기할 생각이었다.
아무 곳이나 억지로 들어갈 바에야 우리 회사로 들어오라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하나야, 너 알지? 우리 MCN 소속 크리에이터.”
“누구? 동한이?”
“아니.”
친분을 알기에 가장 먼저 나온 이름은 고래였다.
다음은 정해져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풀잎컴퍼니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는 공통된 답이 나올 테니.
“그럼.. 연두? 초록님?”
“응.”
“당근 알지. 나 연두랑 초록님 완전 팬이잖아. 근데 그건 왜?”
뜸 들일 건 없었다.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으니까.
“초록님이 조만간 작화팀을 만들어.”
“진짜?”
자신과 관련된 얘기인지도 모르고 유하나는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완전 기대된다…”
그럴 만도 했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유하나가 연두튜브에 유입된 계기는 연두가 아니라 주원이었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SNS에서 본 주원의 그림이었다.
“얼마 전에 초록님한테 전화가 왔거든?”
“응응.”
“나한테 부탁을 하나 하시더라고.”
“어떤 부탁?”
“작화팀에 경리가 필요하대. 그래서 내 주위에 아는 사람 있으면 추천해줄 수 있냐고……”
탁.
포크가 테이블에 부딪혔다.
상기된 표정의 유하나.
“.. 나야?”
“응?”
“그 추천해줄 사람.”
윤수아는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너 말고 누구겠어. 아마 네가 가려던 곳들보다는 훨씬 괜찮을 거야. 너 경력 생각하면 업무도 충분히 감당 가능할 거고. 나름 몇 년의 인연이라 아는데 정말 좋은 분이거든, 초록님.”
주원의 귀가 간질거릴만한 칭찬.
한편 그 시점.
유하나의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모든 선택지는 모조리 사라진 상태였다.
단 하나만 빼고.
“언니..”
“응.”
“사랑해.”
“흐흣, 긍정적인 의미지? 최대한 빨리 소개해주겠다고 얘기했는데. 그래서 오늘 마시자고 한 거고.”
“최, 최대한 빨리? 언제? 어디서?”
호들갑을 떠는 동생을 보며 윤수아는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반전된 분위기.
왜인지 유하나는 포크를 내려놓는다.
술도 안 마시고 쉴 새 없이 입 안에 넣던 안주도 먹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보며 윤수아는 장난스레 말을 붙였다.
“우리 하나.. 오늘 마시고 죽자고 하지 않았나?”
“안 죽어.”
“응?”
“안 죽을 거야. 나 다시 열심히 살아볼 거야!”
삶의 의지를 되찾은 유하나였다.
***
늦은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나와 연두는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와중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참. 연두야.”
“네, 아빠.”
“얼마 전에 유리한테 전화왔었는데.”
눈이 동그래진 연두가 묻는다.
“유리한테여..?”
“응.”
“그럼.. 아빠랑 전화했어요?”
“응.”
“연두는요?”
연달아 묻는 모습에 입가에 번지는 웃음.
나는 얘기했다.
“그때 연두는 자고 있었어.”
“아…”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왜 그때 자고 있었을까 하고 자책하는 거 같기도 하다.
빨리 풀어줘야겠군.
“그래서 아빠가 유리한테 얘기했어.”
“어떤 얘기요..?”
“연두한테 전화하라고 한다고.”
핸드폰을 꺼내 얘기했다.
“어때. 지금 전화해 볼래?”
은주아의 번호이긴 하지만 아직 실례가 될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다.
떠오른 김에 통화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역시 연두는 바로 대답했다.
“네! 전화할래요!”
“그래.”
번호를 입력했다.
발신버튼을 누르며 연두를 향해 말했다.
“아빠가 먼저 받고 바꿔줄게.”
“네에.”
뚜. 뚜. 뚜.
몇 차례의 통화연결음.
곧이어 연결음이 멎고 은주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유리 어머님. 저 연두 아빠인데요.”
“어머, 반가워요.”
반갑게 인사를 받은 그녀는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연두가 유리랑 통화를 하고 싶어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바꿔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 타이밍이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나도 핸드폰을 연두에게 넘겼다.
‘실컷 했으니까.’
나는 저번에 잔뜩 얘기를 나눈 상태였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연두가 귀에 꼭 대고 목소리를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
“여보세요.”
“…!”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귀에서 떼는 연두.
그럴 만도 하다.
스피커폰이라서 사운드가 상당히 컸으니까.
“귀에 안 대도 돼, 연두야.”
“.. 네.”
두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서 말한다.
“유리야..?”
“.. 서, 서연두?”
보아하니 유리는 누군지 모르고 받은 모양이다.
목소리에서 그게 느껴졌다.
한편 목소리를 듣고 유리임을 확신한 연두의 입꼬리가 사르르 올라간다.
“헤헤, 유리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통화였다.
***
“유리야! 전화받아!”
갑작스레 핸드폰을 건네받은 유리는 입을 뗐다.
“여보세요.”
대충 예상은 갔다.
이 시간에 전화올 사람이라고는 할머니나 아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둘 다 아니었다.
“유리야..?”
익숙한 목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동시에 떠올랐다.
연두한테 전해주겠다고 아저씨가 했던 약속이.
“헤헤, 유리다…”
재차 들려온 목소리에 연두인 게 확실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원래는 아무렇지 않게 나오던 모난 말투도 왜인지 입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그렇게 침묵이 길어지려는 타이밍에 들려온다.
“유리야. 연두한테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물꼬를 트는 주원의 말.
그제야 유리는 목을 가다듬은 후 입을 뗐다.
“흠흠, 별 건 아니구…”
“응!”
“단비음악대 연습해야 하는데 너가 괜히 미안해서 못 부를까 봐. 바쁘긴 하지만 하루 정도는 시간 낼 수 있다고 말하려 한 거야. 아님 말고.”
좋아, 자연스러웠어.
쿨해 보였다.
딱히 하고 싶다는 뉘앙스는 아니면서도 팀의 일원으로서 시간은 내줄 수 있다는 반응.
유리만 몰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났다는 걸.
“우아.. 진짜?”
그런데 연두가 더 투명한 게 문제였다.
“그럼 연두가 시은이랑 레나한테 말할게! 유리는 언제 연습할 수 있어..?”
“글쎄.”
일이 잦은 은주아를 보며 많은 표현을 습득한 유리였다.
“이번주는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으응.”
“다음주는……”
한참 더 바쁜 티를 낸 유리는 말했다.
“수요일이 좋겠네. 어때?”
“수요일?”
“응.”
왜인지 바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얼마 후 들려오는 목소리.
“수요일은 안 되는데……”
덜컹.
심장이 내려앉았다.
설마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한 탓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유리는 톡 쏘아붙였다.
“왜? 왜 안 되는데?”
“약속해서..”
“어떤 약속?”
“형아학교에 놀러가기로 했어.”
“형아학교?”
형아학교가 학교 이름인가?
참 이상하다.
그와 별개로 유리의 마음속은 더 복잡해졌다.
‘같이 갈 거야.’
놀러 가기로 했다면 연시은과 이레나는 분명히 함께 갈 거다.
결국 혼자 남는 건 자신뿐이다.
알 수 없는 소외감이 유리를 감쌌다.
“… 거짓말쟁이.”
여러 오해 속에 유리는 결국 감정을 밖으로 내뱉었다.
당황한 연두.
“.. 응?”
“팀이라고 했으면서.. 나만 빼고 다른 학교 놀러가고.. 수요일에 나도 스케줄 없다고 말했는데……”
“유, 유리야…”
“됐어! 나도 너네랑 안 놀아!”
결국 꺼내놓은 속마음.
유리는 아직 어렸다.
감정을 분출한 탓인지 눈가는 톡 건드리면 터질 듯 촉촉해져 있었다.
그때였다.
“.. 푸핫!”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 하핫! 잠깐만, 유리…… 푸흣.”
“…”
못 참고 폭소를 터트린 주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