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74)
574화. 이불에 지도
나를 맞혀봐.
드디어 시작된 코너의 연두의 첫 질문.
‘어디 맞혀 볼까.’
바로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면 내게도 정답을 맞힐 권리는 있다.
자신감은 만땅이다.
아무리 연두부인 형아들이 많다고 해도, 연두에 대해서는 아빠인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 속에서 들려오는 말.
“있잖아..”
뭘 말하려는 건지 벌써부터 수줍음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다.
곧바로 말이 이어졌다.
“내가 엄청 쑥스러웠을 때가 있었어. 그게 언제일까..?”
무척 짧은 질문이다.
그와 별개로 정답이 뭔지는 감이 오지 않는다.
왜냐고?
선택지가 너무 많거든.
‘사소한 일에도 쑥스러워하니까.’
수줍음을 많이 타서 연두가 쑥스러워하는 건 거의 매일같이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답이 아닌 문제의 탄생 배경은 감이 온다.
너무 빨리 끝날 걸 염려해서 피디님이 최대한 살을 쳐낸 게 지금의 질문이겠지.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영철이형아였다.
“정답!”
나름 애청자인 만큼 연두는 능숙하게 호명했다.
“응, 영철이!”
“엄청 쑥스러운 순간?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 호호호!”
“푸흣.”
혼자 웃음이 터졌다.
싸늘한 분위기를 읽고 바로 표정을 지우긴 했지만.
아니, 이게 안 웃긴가?
“.. 연두야.”
수군이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책상 아래 한번 볼래?”
“책상 아래?”
“응. 거기 있는 거 꺼내서 손에 한 번 들어봐.”
책상 밑으로 쏙 들어갔다 나온 연두의 손에는 뿅망치가 들려있었다.
아는형아의 시그니처 무기(?)였다.
용도는 오답자 응징.
“그걸로 정답 틀린 형아 때리면 돼. 알겠지?”
끄덕. 끄덕.
“자, 지금 영철이가 틀렸지?”
“.. 응.”
형아들의 재촉에 뿅망치를 든 연두가 영철이의 앞으로 다가간다.
슥.
공중에 치켜든 손.
그런데 막상 때리려 하니 마음이 아픈 건지 쉽사리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그 손이 움직였을 때,
뿅!
나를 포함한 형아들의 눈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왜냐고?
뿅망치는 영철이형아의 머리가 아닌 연두의 머리를 향했으니까.
그것도 꽤나 센 강도로.
눈을 질끈 감았던 연두가 살며시 눈을 뜬다.
“뭐, 뭐야!”
“왜 그래, 연두야! 갑자기 왜 자학을 하고 그래!”
“못 때리겠으면……”
깜짝 놀란 형아들을 향해 연두는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고선 말했다.
“괜찮아..”
“응?”
“이거 하나도 안 아파서 괜찮아!”
뿅.
이후 영철이의 머리를 살짝 때리고선 유유히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연두는 실험을 한 거다.
먼저 스스로의 머리를 때려서 안 아프다는 걸 확인하고 영철이를 때렸다는 얘기다.
“우와..”
“진짜 천사다, 천사.”
“영철이 감동 먹은 표정 봐. 영철이가 의외로 감수성이 여려서 이러면 확 감동 받는다구.”
그 말에 영철은 찡한 표정으로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 너 안 되겠다.”
“으응..?”
“박영철의 꿈꾸라 1회 출연권! 아무 때나 출연 가능!”
꿈꾸라는 라디오였다.
선심 쓰듯 말하는 영철의 말에 형아들은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일침을 꽂는 건 장원이었다.
“에라이! 차라리 소시지를 하나 사 준다고 그래라! 그거 줘도 안 갖는 거!”
“뭐라고? 장원이 너 지금 우리 꿈꾸라 청취자 꿈꾸미들 무시한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강력한 역공이었다.
방송인들인 만큼 청취자를 앞세운다면 승패는 정해진 셈이다.
자연히 그려졌다.
이다음에 펼쳐질 상황이.
슥.
장원이가 일어선다.
“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감탄사.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국보 센터 출신 장원이는 TV에서 보고 상상한 것 이상으로 거대했으니까.
“우아…”
놀란 건 연두도 마찬가지다.
홀린 듯 옆으로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장원이에게 다가간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어..?”
사과하느라 그 모습을 못 보고 있던 장원이는 뒤늦게 연두를 바라봤다.
교차하는 시선.
한쪽은 한껏 고개를 들었고, 한쪽은 한껏 고개를 내렸다.
‘키다리 아저씨 실사판이네.’
키만 놓고 보면 두 배 정도일 텐데 훨씬 더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당연하다.
덩치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차이 나니까.
“안녕, 연두야?”
“안녕..”
“어떻게.. 나온 김에 아저씨 목마 한번 타고 들어갈래?”
“목마?”
“응.”
수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저 양반 보소. 목 아프다고 뿅망치도 등에 때리라 하는 양반이 뭐어? 목마? 모옥마?”
“.. 너 조용히 안 해!”
뻘쭘해진 장원이 삿대질하며 소리친다.
아무튼 간에 목마가 성사됐다.
잠깐 내가 앞으로 나가서 안전하게 장원의 목 위에 연두를 올려줬다.
“으쌰..”
“괜찮아, 장원아?”
“걱정하지 마. 너무 가벼워서 그냥 일어선 기분이니까.”
노파심에 괜찮냐고 묻긴 했는데 다행히도 괜찮아 보인다.
한편 연두는 신세계를 마주한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지. 내 목마랑은 높이가 차원이 다를 테니까.
‘.. 작아서 미안해.’
괜히 움츠러드는 기분에 고개를 휙휙 저었다.
키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아까 호등이 말처럼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소중한 걸 가졌으니 기죽을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도 신이 난 연두의 표정이 무척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
“아빠! 아니, 초록아!”
“응, 연두야.”
“진짜진짜 높아! 청룡열차 같아..!”
오랜만이네.
목마에서 청룡열차를 연상할 정도면 아직 그날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체감이 그 정도로 높다는 거겠지.
“자! 카메라 보고 인사!”
“헤헤, 안녕..!”
장원이 특유의 포즈로 지미집을 향해 함께 손도 흔든다.
이건 100% 방송에 나온다.
방송을 보며 이 장면이 안 나온 적은 손에 꼽으니.
‘특별하긴 하겠지만.’
연두와 함께라는 점에서 꽤나 특별한 장면이 될 터였다.
왜인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지미집.
위잉. 위잉.
“푸하하!”
“저거 왜 저래? 카메라가 술 마신 거 같은데?”
“정신 차려, 인마!”
아무래도 연두를 봐서인지 카메라도 수줍어하는 거 같았다.
***
한편 그 시각.
촬영팀 분위기는 이례적일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원래라고 삭막한 편은 아니었지만, 늘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또한 아니었다.
촬영팀 피디로서 우진리는 그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형아들도 사람이다 보니 기복이 존재한다.
게스트에 따라 흐름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고, 개개인의 컨디션도 영향을 미친다.
그럴 때면 촬영팀도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한의 재미를 뽑아내는 게 그들의 일이었으니까.
‘솔직히 걱정했는데.’
연두와 초록님.
대박 게스트를 섭외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일었다.
기대가 클수록 부담도 큰 법이다.
보장된 게스트를 데리고 재미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 비난을 감수하는 건 오로지 방송국의 몫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깡그리 사라진 상태였다.
‘최고조야.’
이 자리에서 매번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형아들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어찌 보면 그걸 끌어내는 건 어느 정도는 게스트의 역량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재밌으려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꾸며내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연두의 순수함이 방송의 재미를 한껏 살리고 있었다.
“정답!”
하철이가 번쩍 손을 든다.
아직 ‘엄청 부끄러웠던 일’에 대한 첫 질문이 끝나기 전이었다.
연두의 호명에 하철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이불에 지도를 그렸어! 그래서 엄청 쑥스러웠어!”
“푸흣.”
하철 특유의 무근본 드립이다.
연두는 여덟 살이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이불에 지도를 그릴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흘러나온다.
“연두 이불에 지도 그린 적 없는데……”
세상 진지한 반박.
아무래도 은유를 잘 모르는 눈치다.
영철이 설명해준다.
“연두야!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는 건 진짜 그림을 그린다는 게 아니라 오줌을 싼다는 뜻이야. 자다가 오줌 싸는 거. 오줌이 지도 모양으로 남으니까 그렇게 표현하는 거지. 두 유 언더스탠드?”
엄청난 설명충.
그런 만큼 연두가 말뜻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아, 아니야! 안 그랬어!”
그때 초록이 큭큭 웃음을 참으며 태연하게 입을 연다.
“맞아. 연두 이불에 지도 그린 적 없어.”
“응! 없어!”
“그게 얼마나 예전인데.”
“…?”
형아들의 웃음과 함께 촬영팀에도 폭소가 터진다.
바로 이런 점이었다.
초록님은 가만히 있다가 한 마디씩 던지는데 그게 만루홈런을 터트리곤 했다.
야구선수로 치면 이성엽 같은 느낌.
‘저게 부녀케미지.’
찐 웃음이 터진 영훈이 초록님을 향해 하이파이브를 건넨다.
좋았다는 의미의 제스처다.
옆에서는 호등이형아가 잊지 않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한다.
“초록이, 방금 멘트. 아주 칭찬해~”
“흐흐.”
한 건 했다는 듯 뿌듯함을 감추지 않는 표정도 웃음포인트 중 하나였다.
큰일이다.
편집으로 살려야 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첫 질문인데.
“으으..”
대본을 든 연두의 손이 떨린다.
얼굴이 홍시가 된 연두가 분하다는 듯 초록이를 째려본다.
이윽고 손에 뿅망치를 든다.
“자, 잠깐만.”
위험을 감지한 초록이 뒤늦게 말한다.
“장난인 거 알지, 연두야? 방송적 재미를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거. 원래 예능이란 게 그래. 재미를 위해서 없는 일도 만들고, 때에 따라 있는 일에는 MSG도 팍팍 치고. 물론 방금 말한 경우는 후자이긴 하지만.”
“푸핫!”
우진리는 또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
완전 거짓말쟁이잖아.
사전 인터뷰에서 방송감 없다고 그렇게 걱정하더니 치는 멘트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방금도 그랬다.
‘결국은 없는 얘기가 아니란 소리잖아.’
두 가지 경우를 언급했다.
재미를 위해 없는 일을 만드는 경우, 재미를 위해 있는 일에 MSG를 잔뜩 치는 경우.
그래놓고 이불에 지도 건은 후자란다.
그런 포인트를 가만히 넘어갈 형아들이 아니었다.
“풉!”
“아니, 초록이 뭐야! 갑자기 폭주하는데? 폭주기관차야, 뭐야.”
“부녀 아니랄까 봐. 조용하다가 연두 차례 되니까 장난 아닌데? 이러면 좀 이따 초록이 차례에 연두 기대해 봐도 되겠어?”
“안 되겠다. 초록이 이제부터 내 아들 2호.”
“초록아. 영철이 자리 네가 고정할래?”
진지한 호등의 물음에 영철이 발끈해서 반응한다.
“야! 왜 갑자기 나를 물고 늘어져!”
“명심해 둬, 박영철. 그 자리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자리라는 거.”
“허! 웃겨, 정말! 막상 나 나가봐라. 우리 영철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깨닫고 엉엉 울면서 후회하지. 그때 되면 이미……”
“또 길다, 길어.”
투닥거리는 호등이와 영철.
그러는 한편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연두는 뿅망치를 들고 출동했다.
목적지는 초록의 앞이었다.
뿅!
“억!”
씩씩거리며 걸어간 것 치고 강도는 너무 약했지만 연두는 말했다.
“금지야!”
“.. 응?”
“초록이는 금지야! 이제부터 연두 정답 맞히면 안 돼!”
청천벽력같은 금지 선언.
놀라서 눈을 끔뻑이던 초록이는 말했다.
“차라리 뿅망치 열 대를 맞으면 안 될까?”
“.. 안 돼!”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돌아가는 연두를 보며 풀 죽은 표정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모습까지 완벽하다.
방송을 하는 법을 아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만.”
중간에 하철이가 연두를 불러세운다.
“나도 문제 틀렸는데, 연두야.”
“아.”
뿅!
비슷한 강도의 망치질(?).
아플 리 없는 강도인데도 하철이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세상 놀란 연두의 눈이 커다래진다.
“…!”
“너무 아파! 모서리로 맞았나 봐!”
우진리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엄살이라는 걸.
저런 오버스러운 연기는 하철이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었다.
“어, 어떡해! 괜찮아, 하철아…?”
연두가 손을 뻗는다.
감싸 쥔 부분은 정확히 뿅망치로 때린 부위였다.
몰래 씩 웃으며 하철은 말한다.
“힝, 여기 너무 아포.. 연두가 호 해 주면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어디?”
“여기. 거기 말고. 응, 응.”
결국 연두는 피격 부위(?)에 바람을 불었다.
“호오.. 호오오…”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 하철이 잇몸이 드러나게 웃으며 말한다.
“데헷. 다 나았다. 고마워, 연두야!”
“미안해..”
엄살이었다는 걸 모르는 연두는 아직까지 미안한 눈치다.
멀뚱히 바라보던 형아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저마다 목청을 높여 외친다.
“정답! 정답!”
“이불 말고 아빠 바지에 지도 그렸어! 근데 그게 보물섬 지도였어!”
“수학 빵점 맞았어!”
실소가 흘러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답을 맞히려 하는 형아들은 하나도 없었다.
왜인지 수학 빵점 얘기에 연두가 흠칫한 거 같긴 하지만.
모두 같은 목적이었다.
정답을 뱉은 뒤에 방금 하철의 수법을 그대로 써먹기 위해.
심지어 입을 봉인 당한 초록이도 벌떡 일어나서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읍읍! 읍! 읍읍!”
진짜 특이캐릭터다.
그렇게 점잖아 보이더니 바로 형아들 사이에 융화한 걸 보면.
우진리는 확신했다.
저 텐션에 금세 적응한 걸 보면 분명히 초록님 주위 친구들이 보통 또라이는 아닐 거라고.
그 와중에 영훈이는 초록이 손을 잡고 함께 외치고 있다.
“.. 바지에 똥싸써! 바지에 똥싸써! 푸핫!”
그러다 자기 드립에 터져서는 낄낄 웃는다.
익숙한 장면이다.
웃음이 꽤 비싼 편에 속하지만, 유독 영훈은 방귀나 똥 얘기에 격하게 반응하곤 했다.
보다시피 스스로의 드립에 터질 정도로.
‘완전 난리네.’
이 정도로 과열된 교실을 보는 건 오랜만인 거 같았다.
이게 연두의 힘인가.
오답 맞히기가 된 ‘나를 맞혀봐’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