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81)
581화. 호구아트 초대장
시작된 콩트.
촬영장에 먼저 입장하는 건 연시레, 그리고 유리였다.
“우와..”
“여기 앉으면 되는 거지?”
“진짜 마법학교 같아…”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넷은 마법학교 학생이라는 것과, 서로 수석을 앞다투는 경쟁 관계라는 것.
그 밖에 한 번만 봐도 입력되는 간단한 설정들.
그래서인지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 유치하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리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아쉬운 건 딱 한 가지.
짝꿍이 그대로 아빠가 될 줄 알았는데 로테이션이 됐다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원래대로 서연두의 아빠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쟤는 괜찮은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다.
정해진 대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근데 우리를 왜 부르신 걸까?”
시은이의 멘트가 신호였다.
유리가 말을 받았다.
“뭐, 남자애들이 싸워서 그런 거 아니야?”
“남자애들이 왜?”
“나한테 고백하려고 다 몰려와서.”
여기까지였다.
즉석 콩트인 만큼 이후의 전개는 순전히 아이들에 달려있었다.
사실 촬영진은 생각했다.
아이들끼리 조금 뒀다가 상황을 봐서 콩트의 귀재인 형아들을 등장시켜 이어가기로.
“.. 풋.”
허나 생각지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착각하지 마, 미뉴리.”
이건 분명히 대본에 없는 대사였다.
콩트의 기본은 디스다.
디스를 통해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재미를 주는 게 콩트의 가장 중요한 요소니까.
눈이 휘둥그레진 유리.
“.. 뭐? 착각?”
전혀 개의치 않고 레나는 손으로 머리를 튕기며 말했다.
“그래. 남자애들은 미뉴리 너가 아니라 나를 보러 온 거라구!”
찰랑이는 머리칼 사이로 드러나는 눈부신 웃음.
숨 막히게 예쁘긴 했다.
아직 유리가 감을 못 잡은 사이에 입을 연 건 시은이였다.
“.. 흥.”
코웃음 치는 소리에 레나가 고개를 돌린다.
이어지는 시은이의 말.
“너도 착각하지 마, 레나.”
“.. 응?”
“민유리랑 너 둘 다 아니야. 남자애들은 나를 보러 온 거니까. 마법학교 시험성적 1등에 여기서 제일 예쁜 나.”
단발 속에 가려진 표정은 한없이 시크하다.
레나가 발끈해서 말한다.
“저, 저번에는 내가 일등이었서!”
“지금이 중요한 거지.”
“다음에는 내가 또 일등 할 거야! 그리고 예쁜 건 인정 못 해! 교장 선생님이 우리 레나가 제일 예쁘다고 했거든?”
유리는 얼이 빠진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둘이서 이렇게 다투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 말이다.
그것도 얼굴 가지고.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장면이었다.
‘.. 누가 이길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가 유리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설마 내가 모르는 대본 같은 게 또 있었던 걸까.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순전히 연기였다.
지금 시은이와 레나가 주고받는 말은.
그게 가능한 건 평소의 경험으로 단련이 됐기 때문이다.
연기는 연기로, 현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거다.
다년간의 유투브와 이든 촬영을 통해.
대본에는 적혀 있었다.
이번 마법학교 성적을 비롯해서 캐릭터에 대한 간단한 설정들이.
그 설정을 토대로 하는 콩트였다.
‘마법학교 시험 1등, 마법 실력 3등, 미모 1등.’
시은이 대본의 일부였다.
대본을 짠 제작진도 생각 못 한 신의 한 수가 바로 미모에 관한 설정이다.
넷 다 1등이었다.
그런 만큼 미모에서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서연두까지 그러지는 않겠지?’
이 둘은 그렇다 쳐도 평소 이미지를 생각할 때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여기에 연두까지 참전하는 건.
그런 유리의 생각은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아니?”
연두의 목소리였다.
“교장 선생님은 연두가 제일 예쁘다고 했어! 아빠도 그랬고! 그리고 마법은 내가 제일 잘 쓰니까..!”
처음 들어보는 연두의 목소리 톤.
세상 얄밉다.
이런 목소리를 연두가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든 촬영을 하며 시은이를 혼내는 상사 역할, 핼러윈 타락천사 역할 등등 수많은 역할을 섭렵했다는 걸 유리는 몰랐으니까.
“유리는 이번 시험 4등이지? 우리 중에 꼴찌.”
“…?”
심지어 디스까지 한다.
연두는 연기와 애드리브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이쯤 되니 유리도 상황 파악이 됐다.
‘어디 한번 해 보자 이거지?’
대본을 떠올렸다.
열심히 읽지는 않았지만 똑똑해서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1등인 게 뭐였지.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서는 기억해내야 했다.
‘아!’
떠올랐다.
유리는 생각이 떠오르는 동시에 입 밖으로 뱉었다.
“비, 빗자루는 내가 제일 잘 타거든!?”
“…”
완벽히 역할에 몰입한 연시레유였다.
***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한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헬파티가 된 콩트 현장.
그 어마어마한 텐션에 대기실에서 화면으로 지켜보는 형아들도 혀를 내둘렀다.
“아니, 애기들이 콩트를 왜 이렇게 잘해?”
“푸하핫!”
“야, 이거 우리 안 들어가도 되겠는데?”
촬영장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꿀잼전개 덕분에 피디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오디오가 비지를 않는다.
콩트의 귀재만 모아놓는다고 해도 흔치 않은 장면인데.
연두가 입을 연다.
“공부는 꼭 1등 아니어도 돼!”
시험성적 1등 컨셉인 시은이를 겨냥한 말인 듯했다.
실제로도 그렇지만.
물론 유리도 잘하지만 대본의 설정이 4등인 이상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빠가 그랬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연두는 최고의 마법사가 될 거니까…”
그때였다.
시은이가 정곡을 찌른 건.
“아빠가 그랬다고?”
“응.”
“어떤 아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려던 연두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숙련된 연기자라고 해도 현실과 픽션은 헷갈릴 때가 있으니까.
‘연두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 말이 있어. 꼭 1등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면 행복할 수 있으니까.’
수학을 못 해서 풀이 죽은 연두에게 아빠가 해 준 말.
그 말을 한 건 픽션 속 아빠가 아니다.
진짜 아빠였다.
“나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공부는 1등 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하필이면 픽션 속 아빠는 학구열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대치동 아빠 스타일.
옆에서 화면으로 바라보는 진짜 아빠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
현실과 픽션을 혼동해서 말문이 막힌 연두.
테이블을 바라봤다.
오렌지주스 네 개가 놓여있다.
“모, 목이 마르네..?”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주스를 입으로 가져가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이번에는 레나였다.
“히히. 또 취하려고, 연두야?”
“.. 케!”
연두에게도 흑역사는 존재했다.
독일에서 주스를 마시고 취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여러 번 담요킥을 차게 만들었던 흑역사.
“우으…
내상이 깊었다.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고서야 연두는 자리에 앉았다.
진이 빠진 채로.
시은이와 레나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 아!’
그러다 또 깨달았다.
진짜 아빠를 생각해버렸다는 걸.
왜인지 평소와 달리 자꾸만 현실과 헷갈리는 기분이다.
호로록.
말없이 연두는 주스를 들이켰다.
연기는 연기일 뿐.
촬영할 때마다 아빠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되새겼다.
쿵!
그때 열리는 문.
최적의 타이밍에 등장한 교사 이윤결이었다.
***
“요 녀석들!”
마법학교 교사치고는 다소 경박한 등장이다.
손에 든 것도 마법봉이 아닌 뿅망치다.
뿅!
“아야!”
대표로 맞은 피해자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레나였다.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한다.
왜 때리냐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니 이윤결이 말한다.
“교장 선생님이 들어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넷 다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고 뭐 하는 거여. 응?”
누구도 몰랐다.
말투가 왜 갑자기 구수해진 건지는.
그와 별개로 맞은 이유를 납득한 건지 레나가 바로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나머지 둘도 뒤따라 인사한다.
“아, 안녕하세여..”
“안녕하세요.”
남은 건 유리였다.
그냥 넘어갈 교장 선생님이 아니다.
“어쭈. 유리 너는 인사 안 혀?”
“…”
머릿속에 충돌한다.
평소 자신의 이미지와 대본 속 캐릭터로서의 이미지.
대본 속에는 적혀 있었다.
-선생님께 예의 바른 아이.
그게 뭐라고.
눈앞의 셋은 빠짐없이 평소 이미지를 버리고 대본 속 캐릭터로 변모했다.
심지어 연두마저도.
이 상황에 혼자만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하는 건 유리에게 있어서는 지는 거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리는 배꼽에 손을 올렸다.
“아,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배꼽인사였다.
돌아오는 건 짤막한 한 마디.
“오냐.”
“…”
그 한 마디가 무척이나 약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역시 관객을 사로잡는 마술사답게 이윤결은 학생들을 주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유리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 선생님이 없는 동안 뭘 하고 있었지?”
다들 섣불리 대답을 못 한다.
대판 싸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윤결은 말했다.
“또 싸웠구나.”
“어, 어떻게 알았서요?”
“안 봐도 비디오지. 너희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니까.”
정곡이다.
설정상으로는 그랬으니까.
물론 이윤결은 화면으로 다 보고 온 거지만.
“레나는 성적이 떨어졌더라?”
“아..”
“마음이 콩밭에 가서 그래, 콩밭에.”
“.. 콩밭이요?”
“그려. 네 머리를 좀 봐, 레나야. 노오랗게 물들여 가지고 학생답지가 않잖혀, 학생답지가.”
“이, 이건……!”
아무래도 교장 컨셉을 제대로 잡고 나온 거 같았다.
반박하려던 레나는 입을 다물었다.
금발의 머리칼은 자연이었지만 대본에는 적혀 있었으니까.
-요즘 외모에 부쩍 관심이 많아짐. 머리도 노랗게 염색함. 그래서 성적이 떨어짐.
옆에서는 유리가 불을 붙였다.
“선생님! 레나 파마도 하고 싶대요!”
“뭐시여? 빠마?”
뿅!
“.. 아야!”
또 뿅망치를 맞은 레나.
“정신 좀 차려, 레나야. 넌 우리 학교의 자랑이었다고, 자랑!”
킥킥 웃는 유리를 보며 레나가 빽 소리쳤다.
“야, 미뉴리! 내가 언제 파마한다 그랬서!”
“.. 잘못 들었나? 그럼 쏘리~”
부글. 부글.
완전히 적응한 유리에 레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콩트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앙숙 케미를 뽐내는 둘이었다.
“우리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흥.”
유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받는다.
“너만 아빠 있냐? 나도 아빠 있거든?”
“자, 자, 그만!”
뒷골이 땡긴다는 듯 이윤결이 책상을 두드리며 중재했다.
“선생님이 왔는데도 싸우면 어쩌자는 거니? 오늘 너희들을 여기 부른 건 싸우라고 부른 게 아니라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야.”
“중요한 할 말..?”
“그려. 너희들도 알겠지만 우리 형아마법학교에서 너희가 전교 1등에서 4등이잖니? 전교생이 네 명이긴 하지만.”
개그포인트가 맞았던 건지 시은이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바로 정색을 하긴 했지만.
그야, 대본에는 적혀 있었으니까.
-시크한 성격이라 잘 웃지 않음
한편 유리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교생이 네 명이었다니.
전교 4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교생이 네 명이라는 건 몰랐다.
네 명 중에 사 등이면 꼴찌잖아.
태어나서 꼴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수치스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호구아트 마법학교로부터 전보가 날아왔어, 전보가.”
어느새 윤결의 손에는 뿅망치가 아닌 하얀 새가 올라와 있다.
모자 안에 들어가는 새.
파락.
새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나온 건 빨간 리본이 달린 검은색 편지였다.
역시 마법학교다웠다.
현란한 마법에 입이 벌어진 아이들은 물었다.
“그게 뭐예요, 선생님?”
“보면 몰러? 초대장이잖혀.”
“초대장이요?”
“그래. 이 초대장이 와서 너희들은 호구아트 마법학교로 갈 수 있게 됐거든.”
“.. 지, 진짜요?”
잔뜩 흥분한 얼굴.
그도 그럴 게 마법학교 학생들에게 호구아트는 최고의 명문이었다.
허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단다.”
“.. 문제요?”
“단 한 명.”
손가락 하나를 뻗으며 윤결은 말했다.
“너희들 중 한 명만이 호구아트에 갈 수 있다는 거야.”
“…”
드리우는 침묵.
정적을 깬 건 역시 이윤결이었다.
“그래서 부른 거여. 호구아트에 갈 한 명을 뽑기 위해. 섣불리 결정을 내리긴 어려운 사안이니 내가 또 모시기로 했지.”
“누구를요?”
“누구긴, 누구여! 너희들 부모님이지!”
반발은 엄청났다.
그야, 외모 1등 말고도 대본에 공통으로 강조된 한 줄이 있었으니까.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걸 싫어함.
이유는 제각각 달랐지만 싫어한다는 점은 같았다.
연두가 소리쳤다.
“아빠 오면 안 돼요!”
“어허!”
옆에서 시은이도 외친다.
“우리 인생은 우리 거라고요! 디스 이즈 마이 라이프!”
힙합소년 선재에게 배운 영어였다.
허나 효과는 없었다.
이곳은 영어 학교가 아닌 마법학교였으니까.
“조용! 부모님 도착하셨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쾅 하고 열리는 문.
동시에 울린다.
교장실 내부를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호구아트는 당연히 우리 딸이 가야지!”
고개를 떨구는 아이들.
위풍당당하게 등장하는 주원을 비롯한 학부형 일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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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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