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82)
582화. 선화제
“호구아트는 당연히 우리 딸이 가야지!”
쩌렁쩌렁한 목소리.
처음 등장한 학부형은 바로 강호등이었다.
뒤따라 등장하는 학부형들.
“아니지, 아니지.”
“우리 딸이 가야지!”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시은이의 옆이었다.
왜냐고?
이 콩트에서만큼은 연두가 아닌 시은이 아빠 역할이었으니까.
‘조금 걱정하긴 했는데.’
역할에 몰입하는 연두를 화면을 통해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진심으로 임해야겠구나 하고.
시은이 어깨에 손을 올린 나는 흐름에 숟가락을 얹었다.
“잠깐만요. 이건 논의할 필요도 없는 문제 아닌가요?”
의문형의 말에 이목이 끌린다.
나는 덧붙였다.
“시험 1등! 비주얼 1등! 호구아트는 우리 딸 시은이가 가는 게 맞죠!”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이다.
연두가 아닌 누군가를 ‘우리 딸’이라고 칭하는 건.
그게 어색해서일까.
흠칫.
시은이가 몸을 떤다.
잠깐이지만 흔들리는 연두의 눈동자도 스쳐 지나간 거 같다.
한편 내 말은 도화선이 됐다.
“뭐라꼬?”
레나 아빠 호등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리 봐도 시은이보다는 우리 레나가 더 예쁘지!”
“…”
무섭다.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지금 호등이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학부형이 아닌 조폭이다.
허나 물러나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니라 우리 딸 시은이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까.
그때였다.
슥.
손에 느껴지는 감촉.
시선을 내리니 내 손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시은이의 손이었다.
동시에 귀에 들어온다.
“아저씨보다는 우리 아빠가 훨씬 더 잘생겼어요!”
“.. 켁!”
지금 감싸준 건가?
틀림없다.
위협적인 호등이의 모습에 두 팔 걷고 나서서 감싸준 거다.
비록 연기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감동이다.
“야! 우리 아빠도 괜찮거든? 힘도 세고!”
반대로 레나의 말은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호등이는 말했다.
“아빠가 더 잘생겼다는 말은 안 하는구나?”
“아, 아빠..”
연기라 해도 레나는 레나였다.
거짓말이나 빈말을 못 하는 특성은 그대로라는 뜻이다.
그 틈을 타서 장원이 끼어들었다.
“으휴. 저기는 애나 아빠나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니까. 하여간 교양이 없어가지고.”
갑자기 이렇게 광역디스를 한다고?
“호구아트는 아무나 가나? 우리 연두처럼 예쁘고 교양있는 학생이 가는 거지.”
어쭈.
틀린 말이 없긴 하지만 은근히 열이 오른다.
일침을 꽂은 건 영훈이였다.
“교양? 웃기고 있네.”
“뭐?”
“거울을 봐라, 이눔아! 네 얼굴 어디에 교양이 있는지!”
상당히 매운 디스였다.
얼굴이 시뻘게진 장원은 함께 쏘아붙였다.
“내가 언제 나라고 했어! 우리 연두 얘기한 거지! 그리고 뭐? 이눔? 너랑 내가 나이 차이가 몇인데.”
“허, 나이 차이?”
참고로 영훈이는 소품으로 하얀 수염을 달고 나온 상태였다.
그 말인즉슨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적어도 콩트 속에서는.
“내가 너보다 두 살이 더 많어, 이놈의 시끼야!”
“…”
아니나 다를까.
나이 선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장원은 실소만 흘린다.
영훈의 디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연두가 이쁘긴 뭐가 이쁘다는 거야?”
잠깐만.
이건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는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
“우리 유리처럼 타고난 미모가 진짜로 이쁜 거지. 봐, 나랑 얼마나 닮았는지.”
그 말은 연두는 아니라는 건가?
벌떡 일어난 영훈은 차례로 장원과 연두를 가리킨다.
“천지개벽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 얼굴에서 이 얼굴이 나올 수가 없단 말여.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아니……”
반박을 못 한다.
완벽히 우위를 잡은 영훈이는 사정없이 쏘아붙인다.
“대체 애 얼굴에 얼마가 들어간 거야? 아니면 무슨 금기마법이라도……”
“아니야!”
난데없이 난입한 목소리.
장원이가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과 형아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니라고. 연두는 아무것도 안 했어!”
잘 모르겠다.
왜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가고 있는 건지.
뒤늦게 정신을 차리니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왜 그쪽이 열을 내고 그래요? 숨겨진 연두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연두 보고 웃을 게 아니었다.
현실과 혼동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
이어지는 건 미니게임이었다.
부녀가 호흡을 맞춰 진행하는 여러 게임의 점수를 합산한다.
최종적으로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호구아트에 가게 된다.
“흐흣.”
몸으로 맞춰봐.
동작만 보고 정답을 맞혀야 하는 게임.
시은이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휙! 휙!
하늘을 보며 팔을 마구 휘젓더니 몸을 웅크려 뿅 하고 튀어 오른다.
알 거 같다.
나는 씩 웃으며 얘기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
동그래지는 눈.
옆에서는 들려온다.
“정답!”
끝내 맞춘 건 다섯 문제로 꽤나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하이파이브를 빼놓을 수는 없지.
짝!
“설명 좋았어, 시은아.”
“아저씨도……”
도중에 멈추고 몇 번이나 말을 더듬더니 얘기한다.
“아빠도 잘 맞혔어…”
뭔가 했더니.
호칭이 헷갈렸던 모양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시은이를 향해 말했다.
“좋아. 다음 게임도 잘해서 꼭 일등 하자.”
“응!”
그렇게 의지를 북돋운 우리는 최종적으로 4등을 기록했다.
네 명 중에 사 등.
꼴찌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운이 안 좋았어.’
나머지 게임이 하필이면 내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음 높이기 게임이라니.
트롤링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 시은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었다.
“괜찮아, 아빠.”
괜찮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일등을 차지한 건 연두와 장원이었다.
상식 문제에서 장원이가 고득점을 올린 게 유효하게 작용했다.
“나이스!”
“잘했어요, 아빠..!”
기분이 싱숭생숭하구먼.
기뻐하는 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런 내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 미안.”
“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시은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내가 더 잘했어야 하는데.”
방금 내 시선 때문인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야, 시은아.”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순위는 안 중요해. 시은이랑 같이해서 얼마나 즐거웠는데.”
“정말?”
“당연하지.”
그제야 자그맣게 웃는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서 돌아보니 이윤결이 눈앞에 서 있었다.
저승사자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는데 꼴찌 팀에는 벌칙이 있습니다.”
“.. 갑자기요?”
“네.”
황당하긴 했으나 물었다.
“벌칙이 뭔데요?”
“여러 번 보셨듯이 저는 소멸마법을 쓸 줄 압니다. 눈에 보이는 걸 없애는 거죠. 그런데 그중에 가장 없애기 어려운 게 뭔지 아십니까?”
“뭐죠?”
“바로 사람입니다.”
무시무시한 말과 달리 또 잔뜩 경박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한다.
“꼴찌를 하신 아버님은 제가 이 울트라 캡숑 소멸마법으로……”
그가 손을 뻗어 나를 만지려는 참이었다.
퍽!
갑작스레 끼어든 무언가에 의해 나와 이윤결의 거리가 벌어졌다.
시선을 내렸다.
중간을 가로막고 선 건 다름 아닌 연두였다.
“.. 안 돼!”
떨리는 목소리로 연두는 재차 입을 뗐다.
“아빠 없애면.. 안 돼…”
적어도 내게는 꽤나 큰 울림이 있는 장면이었다.
생각해 보라.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두는 완전히 역할에 몰입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겠지.’
나 역시 그랬다.
진짜 부녀처럼 꽁냥꽁냥하는 연두와 장원이를 보며 조금은 속이 쓰렸다.
아마 연두도 비슷했을 거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연두는 꿋꿋이 역할에 몰입했다.
헌데 그게 깨졌다.
“없애면.. 진짜 미워할 거에요…”
연두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었다.
벙찐 표정의 이윤결.
설마 그 장난에 이 정도로 반응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에라이!”
주위에서 쏟아지는 야유.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나뿐인 듯했다.
나를 등지고 선 연두를 그대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으응..?”
그러고선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 연두야. 아빠는 안 사라져.”
“.. 아빠.”
“아빠한테는 엄청 강력한 마법이 하나 걸려있거든.”
돌아보는 연두의 물기 맺힌 눈동자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연두 옆에서 절대 없어지지 않는 마법.”
그제야 드리우는 미소.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윤결이 외친다.
“여러분! 속보가 도착했습니다! 호구아트에서 네 명을 전부 받아주겠다네요!”
수군이가 깜짝 놀라서 묻는다.
“정말요?”
“네.”
“근데 어떡하죠?”
“뭘요?”
“우리가 안 가, 이눔의 시키야! 그냥 보내주면 되지 똥개훈련을 시키고……”
동시에 터진 웃음.
이렇게 끝이 난 형아학교 전학생으로서의 하루였다.
***
마무리는 해피엔딩이었다.
촬영을 잘 마친 건 물론이고 형아들 하나하나와 인증샷까지 찍고 끝냈으니까.
단 한 명.
이윤결은 연두가 계속 경계하긴 했지만.
‘장난이었어, 연두야.. 나 미워하지 말아줘, 흑흑…’
‘안 미워해여!’
‘정말?’
‘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꼭 중간에 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그러다 본인이 사라지면 어쩌려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이윤결을 살려.. 아니, 가만히 두지 않겠지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하, 그래.”
벌써 며칠이 흘렀다.
연두는 형아학교 전학생에서 다시 선화초등학교 학생으로 돌아갔다.
형아학교도 호구아트 마법학교도 좋지만 역시 연두는 선화초가 잘 어울린다.
‘시은이, 레나, 지우, 하연이, 월이, 민우, 선재, 유준이, 성우, 석호, 재호……’
벌써 내가 알게 된 이름만 해도 엄청나게 많다.
좋은 인연이다.
그 사이에 어울려 즐겁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연두의 모습이 내 눈에는 가장 예뻐 보였다.
유리가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뭐, 단비음악대로 만나면 되니까.’
형아 학교에서 헤어지기 전에 약속은 확실히 잡았다.
조만간 또 만나기로.
이번에는 유리도 나름 협조적이었다.
‘하루 정도는 또 비우면 되니까. 스케줄…’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분명히 즐거운 시간이 될 거라는 것.
***
선화초 음악동아리.
연두의 출연 소식이 알려지고 첫 동아리 활동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핫했다.
연두 주위로 몰려든 아이들.
“연두야! 그럼 형아학교 갔다 온 거야?”
“네에.”
“우와.. 형아들도 실제로 봤겠네? 어땠어?”
동아리 회장인 예나도 질문을 쏟아낸다.
인기 프로그램인 만큼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연두의 출연 소식은 큰 화젯거리였다.
유준이도 킁킁 소리를 내며 귀를 기울인다.
“엄청 착했어요..”
“호등이형아도 봤어? 나 호등이형아 완전 팬인데.”
“호등이형아 볼 만져봤는데……”
“뭐어!?”
눈이 동그래진 예나가 말한다.
“볼을 만져봤다고?”
“네.”
“어땠어? 완전 말랑말랑해? 아니면 탱글탱글?”
이렇게 흥분한 예나의 모습을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듣고 있던 유준이가 입을 뗀다.
“부러운 거야! 나도 형아학교 가 보고 싶은 거야..”
고개를 돌려 레나를 향해 말한다.
“레나는……”
“안 갔다 왔서!”
“응?”
“형아학교! 레나는 안 갔다 왔서!”
세상 어색하다.
유준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레나는 어떤 형아가 제일 보고 싶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킁!”
“.. 아!”
역시 거짓말에는 능숙하지 않은 레나였다.
너무 의식하는 게 문제다.
사실 말해도 상관은 없지만, 비밀에 부치고 있는 레나와 시은이였다.
“Yo!”
다행히 의심받기 전에 힙합소년 선재가 끼어들었다.
“연두는 나왔지 티비~ Yo! 나도 곧 나가지~ 티비! 체킷!”
“너가?”
“Yes. 초등래퍼? 놉! 나는……”
그 시점부터 이미 듣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열리는 문.
스륵.
들어온 건 음악동아리 담당 교사 유신애였다.
“안녕, 얘들아.”
“안녕하세요!”
“연두는 잘 갔다 왔고?”
“.. 네!”
“다행이구나.”
미소를 띠며 그녀는 교탁 앞에 서서 말했다.
“다들 앉으렴. 오늘은 우리 음악동아리에 관해 중요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중요한 얘기요?”
“그래.”
교탁을 향해 아이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서 유신애는 입을 열었다.
“저번 콩쿠르 기억하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선생님이 얘기할 콩쿠르라고는 연두의 초대장이 만들어낸 그 콩쿠르뿐이었으니까.
비록 공식행사는 아니었지만.
“그때도 전교생이 모였지만 원래 선화초등학교에는 큰 축제가 있어. 예나는 알고 있지?”
“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 1학년인 연시레와 달리 예나는 고학년이었으니까.
“.. 선화제.”
그렇다.
그게 선화초등학교 축제의 이름이다.
연간 행사인 만큼 올해에도 선화제는 찾아오게 되어있다.
“선화제는 2학기에 진행하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야. 선화제가 처음인 일학년을 제외하면 다들 알고 있을 테고.”
“네, 선생님.”
“그래서 너희 모두에게 줄 숙제가 있다.”
뒤이어 칠판에 적은 글씨는 두 가지였다.
-주제
“다음 시간까지 선화초에서 우리 음악동아리가 보여줄 걸 생각해오는 거야. 음악과 관련된 거라면 뭐라도 상관없어.”
슥.
선재가 손을 치켜든다.
“선재?”
“제안 있어~ Yo!”
“뭐지?”
“선화제~ 우리는 보여줄 수 있어~ Yo! 리얼 힙합~ 체킷!”
“힙합은 안 된다.”
“…?”
뭐든지 된다더니.
바로 힙합은 배제해버리는 얄짤없는 유신애였다.
굳이 그녀가 자르지 않았어도 모두에 의해 반려됐을 의견이긴 하지만.
그녀는 끝으로 입을 뗐다.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올 거라 믿는다. 그럼 이상!”
그렇게 시작됐다.
선화제를 위한 음악동아리원들의 주제 정하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