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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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화. 본방사수
귀갓길이었다.
“그러니까 예은이가 말했어요..”
“.. 뭐라고?”
“학교 안에 숨어있대여.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가..!”
하마터면 나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설마 몰랐으니까.
흥미롭게 듣던 와중에 갑자기 이세계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은이라는 친구, 판타지소설을 많이 봤나 보네.’
확실히 나때랑 다르긴 하다.
애써 웃음을 참은 이유는 간단하다.
연두의 표정이 진지하기도 했고, 호랑이를 이긴다는 민우의 말처럼 마냥 거짓으로 치부하기에는 예은이도 진지하게 얘기한 거 같으니까.
누구나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왜 그렇지 않은가.
당장 학창시절을 떠올려도 굵직한 기억이 두 개나 떠오른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서, 연두야?”
“네?”
“예은이가 그렇게 말해서 연두는 뭐라 했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조금 의외였다.
연두라면 분명히 어떤 방식으로든 격하게 반응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세계는 믿지 못한 걸까.
“재호가 떠든다고 선생님한테 일러서……”
역시 그럴 리가 없지.
재호의 개입으로 멈춘 모양이다.
더 이야기를 들으니, 하교시간에 잠깐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예은아!’
교실을 나서려는 예은이를 연두가 불렀다는 모양.
‘응?’
‘궁금한 게 있어서..’
‘간단하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엄청 바쁘거든. 엄마가 오기 전에 한 군데를 더 가 봐야 하니까.’
설득력 높은 이유였다.
이세계를 찾는 제한조건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없어보이긴 했지만.
엄마는 인정이긴 하지.
그런 예은이의 반응에 연두가 물어본 건 바로 이세계에 관해서였다.
‘아까 예은이가 말한 다른 세계는 어떤 곳이야..?’
그게 연두가 던진 질문이었다.
어떻게 대답했냐고?
‘그건 알려줄 수 없어.’
‘.. 어?’
‘그걸 알려주면 정말 다칠 수도 있거든.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니까. 만약 네가.. 정말 각오가 되어있다면 모르겠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뒤로 예은이는 색안경을 쓰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보통 짝꿍이 아닌 거 같다.
‘나도 궁금하네.’
자존심 상하지만 궁금하다.
앞서 연두가 얘기한 예은이가 종이가 그렸다던 알 수 없는 그림부터, 매번 쉬는 시간마다 쓰고 나간다는 색안경이 무엇일지도.
자연히 연두의 심정도 공감이 간다.
전해들은 나도 이렇게 궁금한데 그걸 코앞에서 보는 연두는 얼마나 궁금하겠어.
“그랬구나.”
“네에..”
“그래서 연두는 어때? 어떻게 하고 싶어?”
자주 하는 물음이다.
언제나 그랬다.
어떤 얘기를 듣더라도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연두의 생각을 먼저 듣는 편이었으니까.
“알고 싶어요..”
역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 예은이.”
“응?”
“예은이가 왜 다른 세계를 찾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어요.”
사뭇 달랐다.
당연히 다른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연두가 궁금해하는 건 짝꿍인 예은이였다.
“아빠…”
그리고 연두는 내가 말해주길 바라는 거 같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아마 예은이가 말한 ‘다칠 수도 있어.’라는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하하..”
이걸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게 우습긴 하네.
조금 생각해봤다.
이 상황에는 뭐라고 얘기하는 게 부모로서 가장 현명한 조언일지.
몇 가지 후보군이 떠오른다.
‘짝꿍이 되게 특이한 친구구나.’
‘다칠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안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예은이 혼자 찾으라 하고.’
‘푸하하! 그런 세계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것도 학교 안에.’
전부 할 법한 이야기다.
짝꿍인 예은이를 4차원으로 취급하거나, 민우 때처럼 이세계같은 건 없다며 팩폭을 하거나.
그런데 왜인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말 위험해보인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리 넓게 잡아도 범위는 학교 내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연두는 짝꿍인 예은이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또 친해지고 싶어한다.
‘내가 저렇게 말한다면.’
그 한 마디로 인해 두 아이가 친해질 기회가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연두의 인간관계는 스스로 만들어가길 바랐다.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따라서 해 줄 말은 이전과 같았다.
“글쎄..”
고개를 돌려 연두를 본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연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예은이랑 친해지고 싶다. 예은이가 왜 다른 세계를 찾고 싶어하는지 알고 싶다. 그게 지금 연두의 진심인 거니까.”
줄곧 말해왔다.
진심으로 다가가면 닿게 되어있다고.
그 말을 번복하고 싶지는 않다.
‘상관없어.’
실제로 예은이가 말하는 비밀통로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도 하나의 과정이니까.
“진심…”
속삭이듯 되뇌는 연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른다.
“맞아요.. 그게 지금 연두 진심이에요..!”
“하하, 그래.”
잊지 않고 덧붙였다.
“다치는 건 걱정하지 말고.”
“.. 으응?”
“만약 그럴 거 같으면, 아빠가 바로 달려가서 구해줄 테니까.”
생긋 웃음짓는 연두.
기대가 됐다.
새 짝꿍인 예은이와 함께 연두가 만들어갈 이야기도.
***
그 뒤로 나는 며칠간 예은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예은이가 내 생각 이상으로 4차원이라는 생각이 든 걸 제외하면.
‘어쩌면 진짜일 수도?’
물론 장난이다.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초등학교 안에 이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은 믿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온다면 한 치의 망설임없이 외칠 거지만.
이세계는 있어요! 라고.
‘재밌긴 해.’
예은이 덕분에 하루하루 연두의 이야기를 듣는 게 더 즐거워지긴 했다.
둘의 관계는 어떤 상태냐고?
아직 이렇다 할 커다란 진전은 없어보인다.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라고나 할까.
나름 맞춤형 전략이다.
예은이처럼 독특한 아이는 너무 서둘러 다가갔다가는 독이 될 수 있으니까.
어쩌면 평생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세계에 대해.
내 입장에서도 그건 곤란하다.
궁금하단 말이다.
언젠가 연두를 통해 예은이가 찾고 있는 세계에 관해 듣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진심으로.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
한편 작화팀에 관해서는 꽤나 진전이 있었다.
작화팀 부지에 대한 게 어느 정도 정해졌고, 풀잎컴퍼니 대표인 윤수아와도 약속을 잡았으니까.
‘유하나라고 했지.’
그녀가 소개해준다는 경리 이름이다.
이번에 함께 보기로 했고.
작화팀 위치와 경리 채용 문제가 해결된다면, 사실상 준비는 끝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뒤로 오랜 시간 머릿속에 그려온 목표다.
그게 현실이 된다.
이 상황에 아무런 동요 없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
마음껏 기뻐하자.
어차피 감정을 제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겨둘 생각이다.
마냥 희망찬 미래만 펼쳐지지는 않을 거라는 걸, 어떤 상황이 닥쳐도 버텨낼 힘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태블릿 속에 그려진 나무를 바라봤다.
뿌리는 깊었다.
“후우..”
이제 곧 시작이었다.
***
역대급 반응을 이끌어낸 두 개의 티저 영상.
며칠 뒤 업로드됐다.
사그라들지 않은 연기를 더 뜨겁게 불태우는 프리뷰 영상이.
[연두랑 초록이가 형아학교에 전학왔습니다!(feat. 카메라맨 이윤결)]제목이 익숙하다.
아는형아 프리뷰영상을 여러 번 본 적 있는 나로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연두튜브 영상 제목을 짓는 방식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왜 이윤결은 카메라맨인 거냐고.’
확실히 카메라맨 역할을 하긴 했지만 나름 함께 전학 온 친구인데.
짠한 기분이 들긴 한다.
티저와 달리 프리뷰는 무려 5분에 달하는 영상이다.
달칵.
클릭과 동시에 재생되는 영상.
이윤결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 학교에 저를 애타게 찾는 공주님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공주님이 없는 관계로 나부터 인터뷰가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아는 형아 시청자 여러분. 초록입니다.”
상당히 민망하다.
메이크업을 받은 직후에 진행한 인터뷰라 그런지.
그 뒤로는 기억하는 흐름이었다.
“.. 응?”
갑작스러운 등장에 얼어붙는 이윤결, 그런 윤결을 보고 수줍어서 내 뒤에 숨는 연두, 보고 싶었던 형아에 대한 질문.
그렇게 영상이 끝났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정도지, 중간중간에 킬링포인트는 무척 많았지만.
스륵.
마우스 커서를 내리자 댓글창이 눈에 들어온다.
-오우 쉣! 프리뷰영상 뭐냐고!
-아니 ㅋㅋ 5분 맞냐? 진짜 50초보다 짧게 느껴지는데?
-ㄹㅇ ㅋㅋ
-누가 내 시간감각에 마법 걸었냐고.
-게스트 이윤결 아니랄까 봐, 우리한테 광역마법 시전해놨네 ㅋㅋㅋㅋㅋ
확실히 짧게 느껴지긴 했다.
나도 웃으며 보다 보니 어느새 영상이 끝나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근데 왜 이윤결은 마술사로 나와서 왜 지가 마법이 걸렸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영상 멈춘 줄 앎 ㅋㅋ 연두 보자마자 얼어붙은 거 보고.
-연두가 메두사냐고 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연두가 마술사로 나온 거 아니냐.
-근데 이해는 간다. 영상으로 봐도 이런데 누구라도 저기 있었으면 똑같을 듯. 심장 안 멎은 게 다행이지.
-ㅇㅈ ㅇㅈ
-연두 이윤결 보고 부끄러워하는 거 실화냐?
-하아.. 아빠 뒤에 숨은 거 봐…
-연두 초록님 말고 저 정도로 누구 좋아하는 거 처음인 거 같은데. 그것도 초면에.
-좋아한다기보다 동경하는 듯.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공부 접고 마술 연습합니다.
-접는다고 하지 마셈 ㅋㅋ 애초에 한 적도 없으면서.
-팩폭 미쳤네 ㅋㅋㅋㅋㅋ
-살살 패라…
그 밖에도 무척 많았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한 칭찬부터 시작해서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댓글까지.
연두 비주얼에 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째깍. 째깍.
시계를 바라봤다.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프리뷰 영상은 본방날 아침에 올라온다는 것.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곧이군.’
얼마 남지 않았다.
아는 형아를 본방사수할 시간이.
***
방송 시작 시간에 맞춰 주원과 연두는 나란히 TV 앞에 앉았다.
비단 둘만은 아니었다.
다른 장소들에서도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엄마, 아빠! 10분 남았서..!”
레나의 독촉에 서둘러 자리에 앉는 하파엘과 이은경.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딸이 방송에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테니.
“어머, 떴다!”
나란히 앉아있던 신세연도 우측 상단에 떠오른 걸 가리키며 말했다.
흠칫하는 시은이.
그러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꾸한다.
“그러네.”
“잠깐만. 뭐야, 이 재미없는 반응은?”
“뭐가.”
“평소에는 거의 보지도 않는 TV를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켜 뒀던 거치고는 너무 심심한 반응인데?”
“…!”
화끈거리는 얼굴.
늘 이렇게 주도권이 바뀌곤 하는 사이좋은 모녀였다.
대체로 시은이가 이기긴 하지만.
“오, 시작하려나 보다.”
마지막은 유리네 집이었다.
오늘은 아빠도 함께였다.
“허허, 우리 유리 예쁘게 나왔나 한 번 볼까?”
“.. 흥.”
유리는 툴툴대듯 말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애들이 보고 싶은 거겠지.”
“엥?”
“저번에 그랬잖아.”
계기가 있었다.
신문을 보던 아빠에게 문득 신문물을 보여주고 싶어진 유리는 보여줬다.
독일 시리즈 중 하나를.
‘이야. 이 세 명이 전부 유리 친구들이야?’
‘친구는 아니고……’
‘셋 다 너무 예쁘게 생겼는데? 으허허! 얘가 연두구나? 엄마가 그렇게 귀엽다고 하던……’
그 상태로 아빠는 독일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아빠미소를 지으며.
그 와중에 유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서운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그렇다.
은주아의 남편이자 유리 아빠인 민경식은 눈치가 제로에 수렴하는 편이었다.
“헉!”
몇주째 깨닫지 못하고 있던 실책을 이제야 깨닫고서 말한다.
“그게 서운했구나, 우리 유리?”
“서, 서운하긴.”
“당연히 유리는 말할 필요도 없어서 안 말한 거지. 친구들이 아무리 예뻐도 아빠 눈에는 유리가 최고로 예쁜데. 일로 와, 우리 딸!”
“악!”
몸부림쳤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체념한 유리는 아빠 무릎에 앉은 채로 TV를 응시했다.
그러다 보니 입이 간질거렸다.
“으으..”
유리가 절대 못 참는 게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아는 척이었다.
혼자 형아학교를 다녀온 입장인 만큼 간질거리는 입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결국 떨어지는 입술.
“있잖아, 아빠.”
“응.”
“형아학교에서 이윤결이란 아저씨가 마술했거든?”
한 번 트인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그 애가 나갔는데……”
“그 애?”
“있잖아. 아빠가 귀여워하는 애.”
이름을 덧붙이려는데 들려오는 말.
“아하. 그런데?”
“…”
바로 알아들은 건 좋은데 괜히 빈정 상하는 기분이다.
…… 바보 아빠.
천진난만한 아빠의 표정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그 동전마술에 속는 거야. 완전 알아채기 쉬운 마술인데.”
“오호, 그런데?”
“그다음에는 내가 나갔거든?”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이 유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근데 나한테 똑같은 마술을 하더라고.”
“똑같은 마술을?”
“응. 나를 아주 바보로 본 거지. 새로운 마술을 했어도 알아챘을 텐데. 내가 똑똑하다는 걸 그 마술사 아저씨는 몰랐던 거야. 보통 여덟 살이랑은 다르다는 걸.”
옆에서 은주아가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정황은 몰랐다.
그냥 영락없는 꼬꼬마가 저런 얘기를 한다는 거 자체가 재미있어서 나온 웃음이었으니까.
한편 아빠인 민경식은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그랬구나. 우리 유리가 똑똑하긴 하지. 근데 어떤 마술이었길래?”
“훗.”
유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건 보면 알 거야. 내가 엄청 멋지게 말했거든.”
“뭐라고?”
“동전은 여기, 내 이마에 없는데, 라고.”
멋들어지게 이마를 가리키며 연기까지 하는 유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