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각오
본방이 시작됐다.
물론 그에 앞서 철저한 준비는 갖춘 상태였다.
카메라, 간식, 그리고 담요까지.
‘준비했으려나.’
담요가 필요한 곳이 또 한 곳 떠오른다.
어쩌면 그걸로도 부족할 수도.
연두와 유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에는 딱히 걸리는 게 없기에 즐기는 마음으로 팝콘이나 뜯을 생각이다.
실제로 팝콘을 구비한 상태다.
아작.
음, 맛있군.
그 사이 형아들의 잡담이 끝나고 우리가 등장했다.
정확히는 연두가.
쾅!
[.. 다들 조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연두가 소리친다.
여담이지만 내가 열어준 거다.
[꼼짝 마! 우, 움직이면 가만 안 둬..!]TV 속 스스로의 모습에 연두가 담요를 움켜쥔다.
큰일이네.
쑥스러워하기는 아직 너무 이른데.
“우으…”
작게 신음하며 연두는 말했다.
“바, 바보같아여..”
“연두가?”
“네.”
“하하, 아빠 눈에는 귀엽기만 한데?”
장면은 슉슉 지나갔다.
그만큼 어느 한 군데 심심하다 느낄 만 한 포인트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긴 그랬다.
촬영중에도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그 긴 분량 중에서도 알짜배기만을 압축해서 편집한 영상이다.
지금 그걸 보고 있는 거고.
‘지루할 수가 없지.’
같은 편집자로서 존경스럽다.
재미없는 영상을 재밌게 편집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게, 재밌는 영상을 정해진 분량에 맞춰 편집하는 거니까.
나라면 분명 머리를 쥐어뜯었을 거야.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노력은 찬란한 결실을 맺었다는 거다.
‘지금 보고 있으니까.’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나도 연두도.
그런 와중에 손에 있는 팝콘을 떨어트리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했다.
…… 내가 저랬다고?
[읍읍! 읍! 읍읍!]이불에 지도.
모함(?)으로 연두를 놀리다가 입이 봉인당한 내가 형아들 틈에서 설치는 장면이다.
믿기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그런 내 모습을 완전히 부각하는 편집이다.
‘저건 초록이 아니잖아.’
겹쳐보인다.
항상 나는 다르다며 내적으로 거리를 두던 불한당녀석들의 모습과.
살짝 연두를 바라보니,
“.. 흣.”
쿡쿡 웃는다.
그러고선 얘기한다.
“거짓말해서 그래요!”
“거짓말?”
“네. 연두 이불에…… 이불에 지도 그렸다고.”
순간 장난기가 일었다.
방송국은 아니지만 이곳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으니까.
“흐응..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
이쯤 되니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진짜인가 하고.
더 몰아가는 건 연두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싶어서 재빨리 해명했다.
“장난이야, 장난.”
“진짜여..?”
“그럼. 우리 연두가 이불에 실례를 할 리가 없잖아. 어!”
담요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설마 지금 담요도 위험에 처해있는 거 아니야?”
“.. 아, 아빠!!”
뒤늦게 말뜻을 알아챈 연두가 소리친다.
냥냥펀치.
이건 누렁이한테 배운 걸까.
‘하나도 안 아파.’
오히려 기분좋다.
장난을 멈춘 나는 연두랑 꼭 붙은 채로 담요를 덮었다.
“이제 진짜 안 그럴게, 연두야.”
뾰로통한 입술.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많이 삐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네.
이제는 정말 장난은 그만둘 생각이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왜냐고?
조금만 기다리면 그 장면이 등장할 테니까.
손에 팝콘을 들었다.
아그작. 아그작.
진짜 팝콘 타임이었다.
***
한편 그 장면을 주원 이상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유리였다.
“이제 곧이야, 아빠.”
“허허, 유리야. 그 말 벌써 일곱번은 한 거 같은데?”
“이번엔 진짜야!”
사실상 그 장면을 보기 위해서 TV를 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거 치고 아까 너무 웃긴 했지만.
‘스물여덟 살 맞냐고.’
생각할수록 웃음만 나온다.
연두를 놀리던 장면.
그건 스물여덟이 아니라 여덟 살, 아니 그 밑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엄마가 웃으며 말했을 정도니까.
‘어머.. 연두아빠가 저런 모습도 있었구나?’
말 그대로였다.
평소의 멋있는.. 아니, 뭐라는 거야.
진지한 모습과 달리 그때의 아저씨는 반에 한 명은 꼭 있는 장난꾸러기 그 자체였다.
특별게스트로 등장하기 전이라 몰랐지만.
‘.. 이상해.’
그런데 이상했다.
그런 장난기 많은 친구를 유리는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다.
‘시끄럽고 방해만 되니까.’
하지만 아저씨를 보면서는 그런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신없이 웃기만 했지.
특별히 엄청나게 웃기거나 한 장면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방송이라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인정 못 했으니까.
단지 일부 특성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닌, 아저씨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만큼은.
유리로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와앙.
한편 화면에는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두의 하트 깨물기.
그걸 본 민경식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흐허허, 유리야. 저 장면 말한 거 아니야?”
“.. 뭐?”
“아고, 귀여워라…”
그러다 딸의 얼굴을 본 민경식은 흠칫하고 덧붙였다.
“물론 우리 유리만큼은 아니지만…”
“.. 됐거든?”
상황극 때 두고 보자.
잘생긴 영훈이랑 아빠와 딸 역할을 했으니 상황은 뒤집어질 거다.
아저씨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느새 이윤결의 ‘나를 맞춰봐’까지 끝이 나고, 특별 게스트가 등장했다.
“오오, 유리다! 유리 나왔다!”
“일부러 그렇게 오버할 필요 없어, 아빠.”
“…”
마침내 시작되는 마술쇼.
기억하는 그대로 동전마술에 속는 연두의 모습이 나온다.
이마에 없는 동전을 떨어트리려 폴짝폴짝 뛰고 뒤통수를 때리고 난리도 아니다.
“푸흣!”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트리며 유리가 말한다.
“저거 봐, 아빠. 어떻게 저걸 속을 수가 있지?”
“하하..”
“아마 이거 보면서 이불킥 엄청 하고 있을걸? 아니, 담요킥인가? 흐흣!”
민경식은 필사적으로 리액션을 억제하고 있었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여기서까지 귀엽다는 말을 남발하면 돌이킬 수 없을 거 같았으니까.
그래서 속으로만 되뇌었다.
‘귀여워…’
딸 말고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보는 건 처음이다.
유리는 TV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 봐, 이제 내가 나갈 거야.”
“그래.”
그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민경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똑같이 진행되는 마술을 보고.
‘불쌍한 마술사양반.’
다른 아이를 골랐다면 모른 척 속아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람을 잘못 골랐네.
우리 딸내미는 그런 거 모른다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말하는 아이인데, 아는 걸 모른 척 해 줄 리가 없다.
허나 그가 간과한 게 있었다.
사락.
이윤결은 생각 이상으로 월드클래스인 마술사라는 것.
두 손이 교차한다.
원래라면 손 틈새에 숨겨야 할 동전이 이마에 붙는다.
“어, 어어..?”
그걸 본 유리의 입이 점차적으로 벌어진다.
[.. 풋.] [뭐가 웃기죠, 유리양?] [다 연기하는 게 웃겨서요.]이마에 동전을 붙인 채로 한없이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리.
이윽고 시선은 연두를 향한다.
[너는 엄청 티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하네? 연기.]그런 자신을 보며 유리는 울부짖듯이 말했다.
“아, 안 돼. 그만해. 제발 그만해.”
허나 과거의 유리는 그 간절한 울부짖음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자비없이 장면은 이어진다.
[유리양은 안 해 봐도 되나요?] [뭘요?] [점프나 머리 흔들기나 뒤통수 때리기.] [그걸 왜 해요?]유리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동전은 여기, 내 이마에 없는데.]하이라이트는 맞았다.
유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하이라이트였다는 것만 제외하면.
심지어 회차는 그렇게 종료됐다.
엄청난 일이다.
특별 게스트로 나와서 씬 스틸러 역할을 한 것도 모자라 마무리까지 장식한 셈이니까.
그러나,
“악! 악!”
비명소리에 맞춰서 유리는 마구 발을 굴렀다.
“으어억!”
새로운 스킬.
그 스킬명은 다름 아닌 아빠킥이었다.
***
다음날 아침.
등교한 연두의 교실까지 가는 과정은 꽤나 험란했다.
“꺅! 연두야!”
“어제 잘 봤어! 너무 예쁘더라…”
“우리 가족 다 웃다가 죽는 줄 알았다니까? 연두 동전마술 속는 거 보고. 프흣. 생각하니까 또 웃겨…”
“…”
유리만큼은 아니지만 내상이 큰 연두였다.
속았다는 걸 깨닫고서.
“아, 참! 연두 다음에 나온 친구도 진짜 귀엽더라. 이름이 뭐였지?”
“.. 유리요?”
“아, 맞아! 민유리!”
깔깔 웃는 아이들.
그럴 만도 했다.
당사자와는 달리 제삼자 입장에서는 그저 귀여운 모습에 불과했으니까.
언니들과 헤어진 연두는 교실로 향했다.
도중에 몇 번이고 붙잡히긴 했지만.
교실에 도달했을 때, 연두는 누군가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 예은이?”
얼굴은 잘 안 보였지만 예은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함께 서 있는 건 두 명.
한 명은 선생님이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 어머님.”
자연히 연두는 다가갔다.
“안녕하세여..”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김수희였다.
“어, 연두야! 지금 온 거야?”
“네에.”
“선생님이 교실 문을 막고 있었구나?”
옆에서 예은이 어머니도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연두야. 우리 예은이랑 짝꿍 됐다면서?”
“네.”
“친하게 지내주렴. 우리 예은이가 조금 특이하긴 해도 착한 아이거든.”
4차원이란 뜻이다.
연두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서 예은이를 바라봤다.
“.. 어.”
무언가를 발견한 연두는 말했다.
“다쳤어, 예은아..?”
좋은 눈썰미였다.
양옆으로 가른 머리카락에 가리긴 했지만, 확실히 대일밴드가 붙어있었으니까.
예은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얘기했다.
“이건 영광의 상처야.”
“영강의 상처..?”
“그래. 어젯밤 비밀통로를 찾으려는 나를 해치우려고 문지기인 케르베로스가 집으로 쳐들어왔거든. 설마 집까지 쳐들어올지는 몰랐지만.”
아리송한 연두의 표정을 본 예은이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케르베로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개야. 암흑세계의 화신이라 불리지.”
“…!”
머리가 세 개 달린 개.
그것만으로도 연두를 놀라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얼어붙은 연두는 물었다.
“.. 그런데?”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 방심했다면 당했을지도 몰라. 다행히 원거리에서 매직 애로우를 여러번 적중시켜서 이 정도 상처로 쫓아낼 수 있었지만.”
연두는 생각했다.
알면 다칠 수도 있다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었다고.
그때였다.
옆에서 예은이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야기했다.
“악몽을 꾼 모양이에요.”
예은이의 어깨가 꿈틀했다.
“어제 자고 있는데 쿵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일어나고 보니까 예은이가 침대 밑에 굴러떨어져 있지 뭐예요? 식은땀 줄줄 흘리면서 케르베로스를 무찔렀다느니……”
결국 상처는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생겼다는 소리였다.
어색하게 웃는 김수희.
엄마의 말에 예은이는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야!”
“뭐?”
“그건 꿈이 아니었다구! 진짜 케르베로스였어! 꿈이라면 그런 생생감이 나올 수가 없단 말이야!”
“생동감이겠지.”
“…”
누가 봐도 어색하게 헛기침을 뱉고서 예은이는 말했다.
“역시 모르는군. 당연한 일이지.”
“뭐?”
“이 몸의 엄마라 해도 지구라는 좁은 행성에 사는 생명체에 불과하니까. 다른 세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리……”
꽁.
머리를 쥐어박힌 예은이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적습이다!”
“적습은 개뿔.”
못 말린다는 듯이 호호 웃으며 그녀는 얘기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어색한 인사.
한편 연두는 확실히 마음을 다진 상태였다.
그런 위험한 싸움을 예은이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 예은아.”
결국 교실에 들어가 옆자리에 앉은 연두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연두가.. 연두가 같이 싸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