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0)
590화. 비밀기지
“…… 여기가 맞네요.”
시간에 맞춰 도착한 룸 형식의 식당.
문을 여니 보인다.
풀잎컴퍼니 대표 윤수아와, 왠지 모르게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나를 올려다보는 한 여자가.
‘이 사람이 유하나인가.’
생각 이상으로 젊어 보이는 외모다.
하긴 그렇지.
윤수아가 오래 알고 지낸 동생이라고 했으니 아직 이십대일 테니까.
자리에 앉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초록님!”
그제야 멍하니 바라보던 유하나가 인사를 건넨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하나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횡설수설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불쑥 손을 내민다.
악수하자는 건가.
슥.
악수를 주고받고 서로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손을 뗐다.
뭐냐고, 이 분위기는.
잘 모르겠다.
초면이라 낯을 가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불편한 건지.
‘후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곤란하다.
이런 분위기가 불편해서 일부러 편한 장소에서 보자고 한 건데.
안타깝게도 나는 어색함이 잔뜩 느껴지는 상대의 긴장을 풀어줄 만큼 사교성이 뛰어난 유형은 아니다.
최근에 많이 발전했다고는 해도.
“.. 프흣.”
그때였다.
잠시 잊고 있던 공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그랬지.
여기에는 나와 유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뭐예요, 이 분위기는.”
정확히 내 생각을 대변하는 멘트 뒤에 그녀는 말했다.
“유하나씨.”
“.. 네?”
“공과 사는 지켜주시죠? 아무리 초록님 팬이라고 해도 지금은 팬미팅 자리가 아니니까요.”
텍스트만 놓고 보면 오해할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장난기가 가득 묻어나는 어투다.
그나저나 내 팬이라니?
의문 속에서 잔뜩 당황한 유하나가 입을 연다.
“어, 언니! 팬이라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돌린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바로 시선을 피하는 걸 보고 소리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 진짜인 건가.’
내 팬이라는 말.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장난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방금의 시선 회피는 그 얘기를 안 들었다면 나를 싫어하나 오해했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웠으니까.
‘좋아해야 하나?’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거니까 고마운 일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낯간지럽다.
연예인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를 들으니.
우물쭈물하며 그녀가 입을 연다.
“저기.. 초록님.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구요.”
“네.”
“팬이 아닌 건 아닌데요.”
“네.”
“제가 아무래도 언니랑 친하다 보니까 연두튜브를 되게 일찍부터 알았거든요. 구독자 진짜 적을 때부터.”
“아, 정말요?”
초창기 연두부였구나.
갑작스레 시작된 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호응뿐이었다.
다행히 그건 자신 있다.
주도적으로 얘기하는 건 어렵지만, 타인의 얘기에 호응하며 경청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잠깐만.. 근데 이거 맞아?’
실소가 나왔다.
작화팀을 만들려는 사람이 고작 그 정도에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 사이 유하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때부터 연두튜브를 계속 봤는데요. 연두 대하실 때 자상한 모습이 너무 멋있으시더라구요. 그때는 초록님이 얼굴 공개 안 했을 때였는데……”
맞아. 그런 때도 있었지.
새삼 재미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내가 얼굴공개를 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하니.
“또 제가 그림에 관심이 많거든요. 취미로 화실도 다니고……”
“아, 네.”
“그래서 처음에 연두 채널아트 그리시는 거 보고도 깜짝 놀랐어요. 색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팬이 됐구요.”
수줍어하면서도 할 말은 전부 다 하는 게 신기하다.
“마지막으로는 조금 실례일 수도 있긴 한데……”
슬쩍 내 눈치를 보는 걸 보고 얘기했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진심이었다.
칭찬을 더 듣고 싶다는 건 아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상, 여기까지 들어놓고 툭 끊겨버리면 답답해서 못 참을 거 같았다.
다 들어야 중요한 이야기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런 내 말에 유하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 그런 적이 있었잖아요.”
“그런 적이라면……”
“좀 지난 일이긴 한데, 한 번 초록님 학창시절 카페활동 내용이 공개된 적이요. 아니, 공개라기보다는 발굴됐다고 해야 하나……”
“.. 켁!”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헛기침이 나왔다.
재빨리 물을 마셨다.
실례일 수도 있다는 게 설마 그 얘기였다니.
“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거짓말을 했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덧붙였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되게 반전매력이었거든요.”
세상 진지한 목소리다.
“지금 이미지랑 180도 다른데 그게 되게 반전매력 뿜뿜이라서……”
“하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도 다행이다.
흑역사가 등장한 거치고 그렇게 쑥스러운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아니에요.”
송구하다는 듯이 손까지 휙휙 저으며 부정하는 유하나의 모습.
아직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군.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윤수아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 하나야.”
“응.”
“솔직해서 좋긴 한데, 그게 마지막 이유 맞아?”
“.. 어, 어?”
“초록님 팬 된 이유.”
또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뭔가 있나 본데.
윤수아의 말을 멈추려는 유하나의 필사적인 눈빛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왜요? 뭔데요?”
어차피 흑역사도 거론된 상태.
거리낄 게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윤수아를 바라보던 유하나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한다.
“…… 서요.”
“네?”
“잘생겨서요.”
그 말에 사레가 들린 나는 또 여러 번의 헛기침을 뱉어야 했다.
***
“잘생겨서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붉게 달아오른 그녀를 보며 얘기했다.
“저기, 하나씨라고 했죠?”
“네? 네.”
“방금 그 한 마디로 다 사라진 거 같아요.”
주어없이 건넨 말.
사라졌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느껴진 건지 그녀가 흠칫 몸을 떨더니 말한다.
“뭐, 뭐가요?”
“방금까지 하신 말들의 진정성이요.”
“아니에요!”
세상 당황해서는 부정한다.
“제가 이렇게 보여도 거짓말은 진짜 못해요. 다 진심으로 한 말이에요. 특히……”
“특히?”
“…”
조금 심했나 싶어서 웃으며 얘기했다.
“하하, 장난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당황한 건 사실이지만 기분은 좋았다.
유하나가 말한다.
고개는 내가 아닌 윤수아를 향한 채로.
“이게 뭐야, 진짜..”
“응?”
“공과 사 확실히 구분하라면서 정작 자기가 얘기 다 하게 만들고……”
누가 봐도 윤수아를 향한 말이었다.
“흐흥, 미안. 이렇게 시작해야 오히려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치…”
“초록님도 불편하셨으면 죄송해요.”
“아닙니다.”
확실히 덕분에 분위기는 처음에 비해 훨씬 편해진 거 같다.
마침 음식도 등장했다.
이제 슬슬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유하나가 먼저 운을 뗐다.
“저기, 초록님.”
“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말씀하세요.”
“아까 제가 본의 아니게 팬심을 드러내긴 했지만, 언니 말대로 제가 공과 사 구분은 확실한 편이거든요. 업무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진정성이 묻어나는 말.
짧은 이야기였지만 일에 대한 그녀의 마인드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얘기했다.
“물론입니다.”
그 뒤에는 이어졌다.
본격적인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앞서 말했듯 이건 유하나를 채용할지 말지 결정하는 면접의 자리가 아니었다.
‘채용할 생각이니까.’
내 전문분야는 그림이다.
그에 따라 팀원들을 하나하나 만나고 포트폴리오를 확인한 뒤에 채용을 결정했다.
당연했다.
함께 손을 맞출 팀원을 뽑는 일인데 허투루 할 수는 없으니까.
‘경리는 다르지.’
물론 소중한 동료다.
허투루 뽑아도 되는 건 더더욱 아니고.
허나 경리의 일이 내 일과 맞닿아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이제 막 작화팀을 설립하는 내 안목보다는, 다년간 회사를 운영한 윤수아의 안목을.
‘경력도 마찬가지고.’
경력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여기 그냥 나온 건 아니다.
‘보고 싶은 건 있었지.’
크게 두 가지였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건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 그렇군요.”
그리고 이야기가 거의 끝난 시점의 지금.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판단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망설일 건 없었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그 말씀은……”
토끼눈이 된 그녀를 향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떨리는 손.
이로써 완전체가 된 작화팀이었다.
***
어느 시점을 전후로 연두의 학교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그게 언제냐고?
바로 예은이와 짝꿍이 된 후였다.
“준비됐지, 로에.. 아니, 서연두?”
“.. 응!”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을 나가서 비밀통로를 찾아다녔다.
필수템을 착용하고.
예은이가 매일 끼고 나가는 색안경이었다.
‘이건 매직 글래스야.’
‘매직 글래스?’
‘응. 일반인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통로를 볼 수 있지. 그러니까 이걸 쓰지 않으면 바로 앞에 통로가 있어도 볼 수 없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예은이는 또 하나의 색안경을 꺼내 내밀었다.
‘자.’
‘.. 으응?’
‘받아. 앞으로 통로를 찾으려면 필요할 거야.’
‘연두가 가져도 돼..?’
‘그래. 우리는 파트너니까.’
그 후부터였다.
쉬는 시간마다 예은이와 연두는 선글라스, 아니 매직글래스를 착용하고 교실을 나섰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끝날 때마다 돌아오곤 했다.
“또 나가네, 연두.”
“.. 응.”
그런 연두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는 아이들이 있었다.
시은이와 레나였다.
“예, 예은이랑 많이 친해졌나 봐…”
하연이도 마찬가지였다.
짝꿍이 바뀐 뒤로 쉬는 시간에도 거의 이야기를 주고받지 못하니 어딘가 멀어진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연두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안녕, 하연아..!’
언제나 그렇듯 밝게 인사했다.
단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진 게 서운할 뿐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는데.
‘빨리 동아리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며칠이 지났다.
일찍 등교한 연두가 자리에 앉아있는데 교실 문이 열렸다.
“.. 예은아!”
들어온 건 예은이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리를 향해 걸어온다.
그러자 보였다.
저번에 다친 곳과는 반대편에 붙어있는 대일밴드가.
“예은아. 또 다쳤어..?”
“.. 강적이었어.”
밴드를 손으로 잡으며 덧붙인다.
“문단속을 그렇게나 철저히 했는데 또 쳐들어올 줄이야.”
“이, 이번에도 케르베로스..?”
“아니. 그림자를 쓰는 녀석이었는데……”
교탁에서 그 모습을 본 김수희는 생각했다.
또 침대에서 떨어졌구나 하고.
이야기를 마친 뒤에 얼마간 심각하게 고민하던 예은이는 말했다.
“기지가 필요해!”
“.. 기지?”
“이제 집도 안전하지 않아.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연구할 장소. 그런 장소가 필요하다구.”
말은 멈추지 않았다.
“3동 놀이터? 아니, 거긴 안전하지 않아.. 애기들이 다칠 수도 있고.”
김수희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누가 봐도 세상 조그마한 아이가 애기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 와중에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도 웃음포인트였다.
“기지는 학교 안이어야 해.”
“왜?”
“다른 세계로 향하는 비밀통로는 학교에 있으니까. 적도 마찬가지고. 원래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몸을 숨기려면 그 속을 파고들어야 해. 호랑이로부터 몸을 숨기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고.”
뒷말은 아닌 거 같은데.
어쨌거나 듣기에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예은이는 말했다.
“혹시 알고 있니?”
“.. 응?”
“우리 비밀통로 결사대의 기지로 삼을 만한, 내가 안전하게 연구할 수 있는 그런 장소.”
조건은 학교 안이다.
연두는 고민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아!”
“있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여지없이 찾아온 쉬는 시간.
“안내해 줘.”
“응!”
평소와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앞장서는 게 연두라는 점이었다.
거침없는 발걸음.
그 걸음 끝에 도달한 곳은 어느 문 앞이었다.
“.. 여기인 건가.”
“으응.”
색안경을 쓴 예은이가 양옆을 훑었다.
“좋아. 주위에는 아무도 없군.”
“그럼……”
“응, 열어도 돼.”
컨펌을 받은 연두는 조심스레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르륵.
열리는 문.
그러나 내부는 비어있지 않았다.
문을 여는 동시에 알 수 없는 우렁찬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으니까.
“킁!!”
“저, 적습이다!”
정확히는 그 반대였다.
굳이 습격한 쪽을 꼽자면 상대가 아닌 예은이 쪽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 예은이.
그러자 들려왔다.
“.. 연두야.”
“네에.”
“얘는 누구인 거야? 킁!”
그렇다.
비밀기지로 연두가 점찍은 건 다름 아닌 음악동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