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1)
591화. 발표
“얘는 누구인 거야? 킁!”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짜고짜 문을 열더니 혼자 놀라서 뒷걸음질치고는 적습이라니.
늘 앞장서던 모습과는 다르다.
스윽.
어느샌가 연두의 뒤에 숨어서는 묻는다.
“.. 이 사람은 누구?”
“서유준.”
이름을 말한 뒤에 소개하려는 참이었다.
들썩이는 예은이의 어깨.
“서유준!!”
뭔가 있어 보이는 외침이다.
그걸 본 유준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묻는다.
“.. 나를 아는 거야?”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럼 왜 놀란 건데.
그보다 새로웠다.
처음 본 사람을 보고 낯을 가리는 예은이의 모습은.
“예은아..”
“응.”
“여기는 음악동아리야.”
차근차근 연두는 설명해줬다.
앞에 서 있는 유준이의 소개까지 마치고 나서야 예은이는 납득한 표정이었다.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래서 넌 여기를 우리 비밀통로 결사대의 기지로 삼으려 한 거구나.”
어딘가 이상한 말이었다.
기지를 간절히 필요로 한 건 예은이고, 연두는 이 곳으로 데려왔을 뿐이니까.
그래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여기는 안전한 건가?”
“문을 꼭 닫아두면 안전할 거야!”
나름 근거가 있었다.
지금까지 음악동아리는 한 번도 예은이가 말하는 괴물의 습격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이어서 잠깐 생각하다가 연두는 덧붙였다.
“그리고……”
“그리고?”
“친구들도 엄청 많고, 힘이 센 오빠들도 많으니까..”
“과연……”
자연히 예은이의 시선이 앞에 있는 유준이를 향한다.
여전히 연두 뒤에 숨은 채로.
그러고선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그 말을 들은 유준이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시, 실례인 거야!”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직접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약해 보인다’를 돌려 말한 셈이니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1학년 여자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부실한 편은 아니다.
적어도 유준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 서연두.”
“응?”
“부탁이 있어…”
그 사이에 오가는 대화.
부탁이 있다는 말에 연두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야, 처음이었으니까.
파트너가 되기 전과 후를 통틀어 예은이가 무언가를 먼저 부탁하는 건.
“뭔데..?”
그 물음에 예은이는 연두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고선 속닥였다.
“.. 말해줘.”
“응?”
“우리 기지로 쓰고 싶다고…”
얼굴을 잔뜩 붉어져 있다.
역시 그랬다. 예은이는 초면인 누군가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데 면역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부탁이라면.
“유준이오빠..”
“응?”
결국 연두는 예은이 대신 의사를 전달했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을 찾고 있다는 것부터, 괴물로부터 몸을 숨기고 연구할 비밀기지가 필요하다는 점, 그 기지로 음악실이 채택됐다는 점.
진지하게 얘기를 듣던 유준이는 말했다.
“재밌겠는 거야!”
유준이는 열려있는 편이었다.
아무리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도, 섣불리 그 진위를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수학을 좋아하는 것도 그 특성 때문이었다.
같은 수학문제라도 틀에 박힌 방식보다는 일반적으로 시도하지 않을 방법으로 풀어낼 때 훨씬 희열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그 문이 우리 학교 안에 있다는 거야?”
“네에.”
“킁!”
흥분한 유준이는 거칠게 코를 들이마셨다.
아무도 몰랐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부정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연두 뒤에 숨은 예은이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는 건.
그런 예은이와 연두의 귀에 들려왔다.
“그런데.. 내가 허락할 수는 없는 거야…”
동아리 내 위계질서는 확실한 편이다.
“선생님이랑 예나누나한테 말해야 하는 거야.”
“아.”
“일단 들어올래? 킁!”
유준이가 안으로 손짓했다.
확실히 허락을 받으려면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은이는 연두에게 꼭 붙어서 조심스레 발을 뻗었다.
톡.
그러자 눈에 들어왔다.
가족같은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음악동아리 내부가.
***
“우와..”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예은이는 간신히 다물었다.
음악동아리는 넓었다.
강당을 제외한 그 어떤 공간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 어!”
동아리실 내부.
선생님과 동아리회장인 예나는 없었지만 몇몇 동아리원이 안에 있었다.
1반인 지우도 그중 하나였다.
수학문제를 풀던 도중에 들어온 연두를 향해 인사하려다가 침을 꼴깍 삼켰다.
‘.. 처음 보는 애.’
동아리실은 지우에게 가장 편한 공간이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언니오빠와도 친해져서 반에 있는 것보다도 동아리실이 더 좋았다.
그래서였다.
처음 보는 친구를 보고 움츠러든 건.
이 공간에 익숙해졌을 뿐, 낯을 가리는 성격이 사라진 건 아니었으니까.
“지우야..!”
그에 따라 먼저 인사한 건 연두였다.
“뭐 하고 있었어?”
“이거..”
지우가 가리킨 건 수학문제였다.
잠깐 문제를 바라본 연두는 머리가 빙빙 도는 기분에 시선을 뗐다.
그런 연두를 보며 지우가 조심스레 말했다.
“여, 연두야.”
“응.”
“저 애는 누구야..?”
그 시점에 예은이는 안방처럼 음악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기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천애의 요새야.. 이 정도면 케르베로스의 불꽃도 막아낼 수 있겠어!”
“…”
참고로 교탁이었다.
잔뜩 열을 올리며 예은이가 감탄하고 있는 대상은.
“짝꿍이야.”
“짜, 짝꿍?”
“응. 연두랑 같은 반 짝꿍.”
“자, 자리 바꾼 거야? 원래 짝꿍은 하연이였잖아..”
“으응. 자리 바꿨어..!”
그때였다.
교탁에서 예은이가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굳는 지우의 얼굴.
‘어, 어떡해..’
초면인 것도 있고 방금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가까이 온 예은이.
잡아먹을 기세로 걸어온 거 치고는 또 연두 뒤에 몸을 감춘다.
이번에는 연두가 먼저 말했다.
“예은아. 여기는 지우야..”
“지우?”
“응, 윤지우.”
눈이 동그래져서 말한다.
“윤지우!!”
뭔가 익숙한 패턴이다.
그럴 모르는 지우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나, 나를 아니?”
“아니.”
훌륭한 라임이다.
그 덕에 둘은 더 어색해졌다.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 예은이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이, 이건……!”
다름 아닌 지우가 풀고 있는 문제집이었다.
“…… 그런가. 너도 발데아의 문자를 배우는 건가!”
“으, 응..?”
아리송한 표정의 지우를 두고 연두가 물었다.
“발데아가 뭐야, 예은아?”
“발데아는 괴수들이 사는 세상이야.”
“괴, 괴수들이?”
“응.”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예은이는 말했다.
“괴수를 무찌르려면 놈들의 언어를 공부해야 해. 그래야 상대법을 알 수 있거든. 내가 케르베로스랑 플라가 골렘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도 그 녀석들의 언어를 알았기 때문이니까.”
“우아…”
뭔지 몰라도 대단해보였다.
예은이는 말했다.
“잠깐 봐도 되니?”
깜짝 놀란 지우는 답했다.
“.. 응!”
손에 펜을 쥔 예은이.
마치 고대문자를 해석하듯이 거침없이 글씨를 적어내려간다.
어느샌가 매직 글래스를 쓴 채로.
“호오.. 이런 눈속임인가. 제법 머리를 쓰긴 했다만 내 눈을 속일 수는……”
그 중얼거림을 보며 지우는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풀고 있던 건 3학년 문제에, 그중에서도 지우가 특히나 애를 먹고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유준이오빠에게 물어보려 했고.
‘.. 뭘 하는 걸까.’
문제를 푸는 건 아닌 거 같다.
무엇보다도 이건 수학문제일 뿐 괴수의 언어같은 게 아니었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 뭐, 이 정도인가.”
“으, 응?”
“정답은 3번이다.”
지우의 몸이 들썩였다.
풀이과정을 몰랐을 뿐 답이 3번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찍은 게 아니라면 푼제를 풀었다는 건데.
“어, 어떻게 푼 거야..?”
“.. 훗. 괴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면 문제를 푸는 건 코를 파는 것보다 간단해. 자, 여기……”
설명을 시작한 예은이.
콧구멍 풀이법에 이은 괴수 마음 헤아리기 풀이법이었다.
***
홍원대 내부.
복도를 따라 우영은 강의실로 향했다.
손에는 그동안 준비한 자료와 발표과제가 들려있었다.
‘.. 발표라.’
자원한 건 아니다.
그림과 관련된 공모전을 나가거나 경쟁하는 건 좋아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건 딱히 흥미 없었으니까.
그런데 의도치 않게 또 발표자 역할을 맡았다.
왜 또냐고?
간단했다.
지난 팀플에서 팀원의 이름을 전부 빼버리고 혼자 발표한 적이 있으니.
그에 이어서 두 번째다.
어쩔 수 없었다.
‘제일 한 게 없으니까.’
말 그대로였다.
PPT에 익숙한 은서린이 발표준비를 도맡았고, 그 밖의 것들은 최은정이 주도했다.
우영이 한 거라고는 전조작기에 해당하는 연두 섭외뿐이었다.
‘빠져도 할 말 없어.’
기준은 모두 똑같이 적용돼야 했다.
발표마저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면 이름이 빠져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였다.
우영이 발표를 하게 된 건.
적어도 완성된 PPT에 따른 발표내용을 준비하고, 직접 발표하는 것 정도는 해야 밸런스가 맞았다.
‘흐흥, 그럼 믿을게요. 잘 할 수 있죠?’
‘당연하지.’
막상 하면 뭘 하더라도 자신감은 넘치는 우영이었다.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즉석 발표도 아니고 스스로 준비해서 하는 발표인데 그걸 못하는 게 우스운 일이다.
우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요. 그럼 1조부터 차례로 발표해 볼까요?”
“네!”
시작된 발표.
공통된 주제인 만큼 구조 또한 비슷했다.
피아제가 4단계로 구분해 놓은 대상을 각각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인지발달이론의 정합성에 대해 하는 발표였다.
그렇다고 꼭 이론과 일치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모순이나 예외를 찾아내는 것도 조별과제의 의도 중 하나이니 말이다.
“…… 저희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들었어요.”
순식간에 지나간 몇 조의 발표.
그리 임팩트는 없었다.
인터뷰를 통해 느낀 것들보다는, 인지발달이론에 적힌 특성을 재확인하는 측면이 강한 발표였으니까.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했다.
‘따분하군.’
아무리 교양과목이라고는 해도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불필요했다.
이 정도는 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발표였으니까.
‘.. 그런 건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행심은 꿀과목 중의 꿀과목이다.
어지간해서는 만점을 준다는.
교수인 그라고 해서 그런 평판을 모를 리 없었다.
살짝 웃으며 그는 학생들을 훑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이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 조금의 시련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한편 그 웃음을 본 학생들은 생각했다.
‘개꿀이네, 진짜.’
동상이몽이었다.
사실 스스로 발표가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이렇게 대충 하고도 만점을 받을 거라는 생각에서 오는 만족이었으니까.
교수님의 웃음은 그 생각에 더더욱 확신을 가져다줬고.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저희는 감각운동기의……”
이어지는 발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될수록 따분함은 점점 더 가중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내용을 계속 듣는데 물리지 않는 게 이상했으니까.
“후우..”
하품에 이어 한숨이 나왔다.
그럴수록 더 강해졌다.
이번에는 귀여운 학생들에게 반전을 선사해줘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 속에서 또 발표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7조의 발표자 선우영입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우영의 조였다.
비교적 후순위인 만큼 순서에 있어서는 불리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속에서 우영은 발표를 시작했다.
“먼저 0세부터 2세에 해당하는 감각운동기에 대한 발표입니다.”
교수는 생각했다.
또 똑같은 얘기가 길게 이어지겠구나 하고.
그런데,
“솔직히 감각운동기에 대해 할 발표는 없습니다.”
“..?”
귀를 의심했다.
나름 네 단계 중 한 단계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발표할 게 없다니.
벙찐 와중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교수님이 주신 과제는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하는 발표인데, 감각운동기에 해당하는 아이를 관찰한 결과 엉엉 울기만 하더군요. 그다음에는 잠에 들었고요. 말도 안 통해서 감각운동기에 해당하는 특징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푸핫!”
거침없는 발표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웃음.
교수도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지금껏 들은 발표를 통틀어 아까 지은 미소 말고는 처음 짓는 웃음이었다.
‘재밌는 친구군.’
적어도 지금까지의 감상은 그랬다.
적지 않은 페이지의 PPT를 순식간에 넘기며 우영은 말했다.
“보시다시피 팀원 은서린이 PPT로 정리했지만 모든 내용이 앞선 발표자들의 내용과 겹칩니다. 제가 첫 번째 발표자라면 발표했겠지만 일곱번이나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따분하게 만드는 취미는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무언가 떠오른 듯 우영은 덧붙였다.
“인터뷰를 통해 새로 발견한 감각운동기의 특징으로는, 귀가 무척 아프다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또다시 터진 웃음.
딱히 웃기려는 의도 없이 담백한 말투로 하는 발표가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
한편 은서린은 미칠 노릇이었다.
“진짜 미쳤나 봐! 발표를 안 하고 넘어가는 건 뭐냐구!”
옆에 있는 최은정을 붙들고 말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흐흡, 근데 분위기는 좋은데? 교수님도 엄청 웃으시고.”
“그, 그래도……”
불안했다.
웃는 게 꼭 좋은 신호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서린이 혼자 불안해하는 사이, PPT 화면에는 큼지막한 글씨가 떠올랐다.
-전조작기
우영은 말했다.
“다음은 2세에서 7세에 해당하는 전조작기입니다. 저희는 그중에서도 끄트머리인 7세에 해당하는 아이를 인터뷰했습니다.”
두 손을 꼭 모으는 은서린.
발표자인 우영을 제외하고는 오직 둘만이 그 인터뷰 대상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만회해야 했다.
감각적 운동기를 단 몇 마디로 끝내버린 과오를 말이다.
‘.. 가만 안 둘 거야.’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전조작기마저 그렇게 넘겨버린다면 못 참았다.
전조작기는 4단계 중 단연 하이라이트였으니까.
PPT에 가장 공을 들이기도 했고.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먼저 인터뷰한 대상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느샌가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도 우영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우스를 클릭하는 우영.
달칵.
그와 동시에 떠올랐다.
보고 있던 누구도 표정관리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전조작기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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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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