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5)
595화. 타이푼의 생각
한편 그 시각.
같은 영상을 보고 주원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꾹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
‘.. 안 돼, 안 돼.’
신문물을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탓에 한 발자국 늦게 접한 정보였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비하인드] 대기실 속 뽀짝이들의 비밀 대화
그 속에는 담겨있었다.
아저씨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세 아이의 모습이.
시은이와 레나의 대화가 지나가고, 어쩌면 생략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 튀어나올 때.
[그, 그럼 미뉴리! 너는 어떤 형아가 제일 보고 싶었서?] [.. 아저씨.]유리는 그만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덮고 있던 이불을 쥐고서 데굴데굴 굴렀다.
말도 안 돼.
왜 저렇게 대답한 건지부터, 영상이 업로드된 것까지 믿기지가 않는다.
야속하게도 영상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나, 나는 모른단 말야!] [나는 TV 안 봐! 그러니까 형아들이 누군지도 몰라! 모르는데 보고 싶어할 수는 없잖아.] [… 그러니까 아저씨밖에 고를 사람이 없는 거지.]거의 패닉 상태였다.
어느새 완전히 이불에 돌돌 말린 채로 유리는 마구 소리 질렀다.
봤겠지? 분명 봤을 거야.
‘안 봤을 리가 없어.’
당연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본다는 연두튜브인데, 그 운영자인 아저씨가 이런 영상을 놓칠 리 없다.
이번에는 그럴싸할 변명도 불가능하다.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티 났다. 비겁한 변명이라는 게.
묻지도 않은 얘기들을 제 발 저린 듯이 늘어놓는 게 누가 봐도 찔린 듯한 모습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8년의 인생.
흑역사 따위는 만들지 않고 마이웨이로 살아온 유리였다.
적어도 본인의 기준에서는.
그런데 서연두와 아저씨를 만난 후, 걸핏하면 이불킥으로는 부족한 흑역사가 탄생하곤 했다.
‘.. 만나지 말아야 하나?’
사실 저번에 한 결심이다.
형아학교를 다른 학교라고 착각했을 때, 그 수치심에 절대 아저씨랑 연두를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며칠 뒤에 걸려온 섭외 연락에 바로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형아학교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럼 뭐냐고?
휙. 휙.
눈을 질끈 감고 유리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애써 생각을 떨쳐내려는 순간,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니?”
비명을 듣고 놀라서 달려온 은주아였다.
딸은 보이지 않는다.
이불이 볼록 튀어나온 걸 보니 그 안에 있는 게 분명하다.
“유리야?”
“.. 응.”
은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멀쩡히 대답이 들려오는 걸 보면 큰 문제는 없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방금의 비명은 뭘까.
슥.
자연히 은주아의 시선은 테이블 위를 향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 익숙한 제목의 영상이.
“.. 풋.”
웃음소리에 유리가 들어있는 이불이 꿈틀한다.
“우리 딸. 이거 보고 소리 지른 거구나?”
이미 영상을 봤다는 뉘앙스다.
파고든 이불 속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서 유리가 물었다.
“엄마도 봤어?”
“응.”
“.. 어떻게?”
그렇게 물을 만도 했다.
은주아는 유투브도 SNS도 잘 보지 않는 편에 속했으니까.
가끔 원스타그램에 비즈니스적인 게시물이나 유리의 사진을 올리는 것 말고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엄마가 영상을 봤다는 건……
‘세상 사람이 다 봤다는 거 아니야?’
물론 아니다.
아무리 연두튜브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도 비하인드 영상을 세상 사람들이 다 보지는 않는다.
그저 유리에게 그렇게 와닿았을 뿐.
결국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유리는 씩씩거리며 얘기했다.
“.. 못 참아.”
“응?”
“이건 초상권 침해라구! 고소할 거야!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줄 거라고!”
어디선가 들은 지식을 총동원해서 유리는 분노를 표출했다.
돌아온 건 웃음뿐이었지만.
“.. 푸흣!”
“왜 웃어! 나 장난 아니거든?”
씩씩거리는 딸의 모습에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은주아는 말했다.
“생각 안 나, 유리야?”
“.. 뭐가.”
“방송국 들어갈 때 피디님이 했던 말.”
“무슨 말……”
그때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앞장서서 대기실로 안내하며 PD님이 했던 말.
‘방송국 내에서는 어디서든 촬영될 수 있다는 거 알아두시고……’
‘네, 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흘렸던 이야기였다.
유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런 딸을 향해 은주아는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단톡방이 있거든.”
“.. 단톡방?”
“응. 독일에 갔을 때 만든 학부모 단톡방. 거기에 영상이 올라와서 본 거야.”
실낱같은 희망이 담긴 눈빛으로 유리는 물었다.
“거기에.. 아저씨도 있어?”
“있지. 나랑 시은이 엄마랑, 은경이랑, 레나 아빠랑, 연두 아빠까지 총 다섯 명이니까.”
“…”
이제 방법이 없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영상을 안 볼 리가 없으니까.
체념한 유리는 물었다.
“누가 올렸는데?”
“처음에 올린 건 레나 아빠일 걸?”
“하파엘 아저씨?”
“응. 의외로 정보가 빠르시거든. 그런 거 공유하는 것도 되게 좋아하시고.”
왜인지 하파엘 아저씨가 미워지는 기분이다.
그때였다.
“근데 연두 아빠는 안 볼 거라고 하던데?”
“.. 어?”
이게 무슨 소리지.
동그래진 눈.
그런 유리를 향해 은주아는 얘기했다.
“시은이 엄마가 그랬거든. 시은이랑 연두 아빠가 손가락 걸고 안 보기로 약속을 했다고. 그래서 보고 싶어도 못 본다고 하더라구.”
“.. 진짜야?”
“그럼, 진짜지.”
생각해 보면 연시은과 이레나도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다.
문득 떠올랐다.
아저씨가 비행기에서 했던 말이.
‘아저씨는 거짓말 안 하거든.’
그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래야만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안타깝게도 그 시점에 이미 주원은 영상을 본 상태였지만.
“후우..”
조금은 안정을 찾고 몸을 일으키는 유리의 옆에 은주아가 앉았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근데 유리야.”
“응.”
“전부터 묻고 싶었던 거고,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귀에 대고 그녀는 속삭이듯 덧붙였다.
“연두 아빠 어디가 그렇게 좋아?”
그 한 마디에 얼굴이 잔뜩 달아오른 유리는 소리쳤다.
“아, 안 좋아하거든!!”
“힝.. 너무해. 알려주라. 엄마도 좀 배우게. 응? 응?”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강적은 다른 곳이 아닌 집 안에 있었다는 걸.
이후에도 한참이나 유리는 엄마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
동아리 시간.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 틈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한 아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예은이였다.
살금. 살금.
학기초 동아리를 뽑을 때.
예은이는 자의로 동아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비밀통로를 찾기 위한 지도를 그리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으니까.
‘그럼 예은이는…… 도서부 괜찮니?’
당시에는 아무렴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안전한 거점을 정한 이상, 동아리시간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복도로 나간 예은이는 비밀스러운 움직임을 계속했다.
“저, 저기.. 연두야..”
“응.”
“계속 따라오는데……”
가장 먼저 발견한 건 하연이였다.
그 말에 연두뿐 아니라 함께 걷고 있던 시은이와 레나도 뒤를 돌아봤다.
정면으로 마주친 시선.
“윽.”
짧은 신음을 내뱉은 예은이가 말했다.
“제법이군. 추격의 달인인 괴력대마왕도 따돌린 내 위장이 들킬 줄이야.”
그런 거 치고는 너무 형편없었다.
오히려 알아봐주길 바라는 동작이었다고 하면 납득이 갈 정도로.
실제로 예은이는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 예은아!”
자연스레 합류한 예은이를 향해 연두는 걱정스레 물었다.
“도서실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세상 근엄하게 예은이는 답했다.
“중요한 연구가 있어.”
“응?”
“어쩌면 비밀통로를 찾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지도 몰라.”
“.. 저, 정말?”
“응.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나머지 아이들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섣불리 물어보기도 뭐했다.
연두를 제외하고는 아직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만한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그렇게 향한 음악실.
“왔어, 얘들아? 응..?”
반갑게 인사한 동아리회장 예나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넌 누구니?”
“반갑다. 나는 비밀통로 결사 동아리회장 허예은이다.”
“…?”
“여기를 우리 동아리의 기지로 삼으러 왔다.”
벙찐 표정의 예나.
1학년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들어서가 아니다.
비밀통로 결사 동아리?
‘.. 그런 동아리가 있었나?’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눈앞에 있는 예은이가 상당히 특이한 아이라는 것 정도다.
다행히 예나는 면역이 있었다.
동아리원인 유준이와 선재도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다는 거지?”
“다르다. 나는 비밀통로 결사 동아리의 회장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제안을……”
“그러니까 우리 동아리실이 필요하단 거잖아.”
“…!”
척 하면 척이었다.
선재의 요상한 랩을 듣고서도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 예나였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예은이를 향해 덧붙였다.
“근데 어쩌지? 내가 허락해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선생님이 오시면 얘기해봐야 할 거 같은데.”
“선생님이라…”
중얼거리듯 덧붙인다.
“쉽지 않은 존재지…”
“흐흥, 그래. 그러니까 잠깐 기다릴래?”
끄덕.
그렇게 두 번째 음악실 입성에 성공한 예은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너!”
혼자 앉아있는 지우의 모습이.
“또 발데아의 문자를 해석하고 있었나!”
“으, 응!”
그래도 한 번 본 사이라 그런지 처음처럼 낯을 가리지는 않았다.
지우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저번에 헤매던 문제를 풀어준 친구였으니까.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이게 어려워서……”
“호오…”
문제를 들여다보던 예은이는 입을 뗐다.
“이건.. 쉽지 않군.”
“그, 그치.”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어.”
‘.. 푸, 풀 수 있어?”
“물론이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예은이는 펜을 쥐었다.
허나 쉽지 않았다.
3학년 중에서도 고난도를 자랑하는 수학문제는.
그때였다.
“뭐 하는 거야?”
“유, 유준이오빠..”
“또 수학문제 풀고 있는 거야? 킁!”
갑작스러운 유준이의 등장에 예은이는 말했다.
“이건 수학문제 따위가 아니야. 발데아의 문자로, 나같이 괴수와 싸워 본 선택자만이……”
“이렇게 푸는 거야!”
“.. 에?”
말을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펜을 쥔 유준이의 앞에는 고작 세 줄이 적혀있었다.
그걸 본 예은이의 입이 벌어진다.
“.. 말도 안 돼!”
보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가는 완벽한 풀이과정.
아름다울 정도였다.
“다, 당신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경이로운 존재.
“제자로 받아주세요!”
“.. 엉?”
“이제부터 스승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입에 담기도 거룩한 존재시여…”
잠깐 동공이 흔들리던 유준이는 흐헤 빙구웃음을 지었다.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여운 아이가 스승으로 모시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 오냐. 킁!”
그것도 저번에는 믿음직스럽지 않다며 자신을 무시하던 아이였다.
지금은 선망이 가득한 눈이다.
바로 그때였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들어온다.
“반가워, 얘들아.”
선생님의 등장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흩어져 의자에 앉는다.
예은이도 마찬가지.
너무 자연스럽긴 했지만 눈치 못 챌 유신애가 아니다.
“흐음.. 못 보던 얼굴이 보이는데?”
예은이의 어깨가 꿈틀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만히 앉아있긴 했지만.
그런 예은이의 모습에 유신애가 실소를 뱉으며 말한다.
“거기 연두 옆에 앉은 친구. 설명해 줄래?”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비밀통로 결사 동아리 회장이다. 기지가 필요해 음악실로 왔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한테까지 반말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유신애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 왔다?”
꼴깍.
침을 삼킨 예은이가 말했다.
“…… 요.”
“뭐?”
“…… 왔어요.”
역시 선생님한테는 못 까부는 예은이였다.
***
지우네 집.
늘 그렇듯 익숙한 장면이 펼쳐진다.
테이블에 문제집을 올려두고 모녀가 나란히 앉아있는 장면.
저번을 기점으로 커다란 대단원이 넘어갔다.
분수에서 도형으로.
평면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건 3학년 전체 과목을 통틀어서도 어려운 축에 속하는 파트다.
따라서 이희영은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못 풀었으리라 하고.
풀었다고 해도 답을 알았을 뿐, 완벽히 풀이해내지는 못할 거라 자신했다.
문득 우스워졌다.
엄마로서 잘 풀었길 바라는 게 정상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못 풀었길 바라는 건 아니야.’
단지 믿기 어려웠다.
음악동아리에 들어간 이후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된 지우의 학습능력이.
그 관계성을 말이다.
‘연두가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어요! 피아노 선생님보다!’
당시에는 마음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결국은 그 아이의 말대로 됐다.
지우의 피아노 실력은 말도 안 되게 상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가장 믿기지 않는 건 수학이었다.
지금껏 지우가 실력을 숨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실력이 상승했다.
마치 스펀지 같았다.
집에서 몇 시간을 반복해서 설명해주는 것보다, 동아리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의 효율이 더 높았다.
무엇보다도 지우는 그걸 즐거워했다.
“어때. 잘 풀었니?”
이번에야말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지우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친다.
전이라면 볼 수 없었던 표정이다.
“.. 응!”
페이지를 펼친다.
역시나 두 페이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자, 이 문제 한 번 풀어볼래?”
건넨 건 백지였다.
문제만 보고 풀이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었으니까.
펜이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은경은 생각했다.
‘또 콧구멍을 그리겠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이제는 막지 않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풀이법의 효율을 두 눈으로 보며 몸소 체감했으니까.
그런데 웬걸.
이번에는 콧구멍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각. 사각.
-타이푼의 생각
풀이하기 전에 냅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한 줄을 적는다.
원래 풀이 도중에 건드리는 편은 아니다.
허나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뭘 적은 거니? 타이푼이 뭐니?”
그 말에 지우는 생긋 웃으며 대답한다.
“타이푼은 괴수야!”
“괴수?”
“응! 도형을 좋아하는 괴수인데, 사람들이 비밀통로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 어려운 도형문제를 잔뜩 만든대. 이 문제도 타이푼이 만든 거고.”
“…”
“그러니까, 타이푼의 생각만 알면 풀 수 있는 거야!”
또 나왔다, 이 말투.
지우의 자신감이 극에 달할 때 나오는 말투였다.
그나저나 이 풀이법은 또 뭐람.
‘이것도 그 아이가 알려준 건가.’
유준이라는 아이.
딸에게 수학문제를 가르쳐주는 두 학년 오빠였다.
꼭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지우는 풀이를 개시했다.
‘쉽게 해석하지 못하게 하려고 타이푼은 함정을 파 둬.’
‘하, 함정..?’
‘응. 여기 보면……’
예은이가 말해준 걸 떠올리며.
슥. 슥.
거침없는 손놀림.
유준이에 비해서는 조금 길긴 했지만 흠잡을 데 없는 풀이과정이다.
그래서 따로 물을 것도 없었다.
눈에 들어오는 풀이과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완벽히 이해하고 풀었다는 걸.
‘.. 잠깐만.’
생각해 보자.
앞서 지우가 한 말에 따르면 이 문제를 만든 건 ‘타이푼’이란 괴수이다.
그 말인즉슨, 타이푼은 출제자다.
‘설마……’
소름이 올라왔다.
유준이라는 그 아이는 출제자를 ‘타이푼’이라는 흥미로운 이름으로 바꿔서 지우에게 알려준 건가.
출제자의 의도와 시선을, 의도적으로?
애써 놀라움을 가라앉히며 입을 뗐다.
“지우야.”
“으, 응.”
“이 문제를 가르쳐준 것도 그 오빠니? 유준이라는 오빠?”
반쯤 확신하고 던진 물음이다.
허나 들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아니? 이건 유준이오빠가 가르쳐준 거 아니야.”
“.. 그럼?”
“예은이!”
“예은이가 누구니?”
“연두랑 같은 반 친구인데, 이번에 음악동아리에 들어왔거든. 다른 문제도 예은이가 알려줬어!”
“하, 하하…”
음악동아리.
알면 알수록 의문투성이인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