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7)
597화. 피구
“크하하!!!”
고래의 시그니처 웃음에 다시금 몰려든 훈련소 동기들.
그럴 만도 했다.
방송할 때의 광기는 숨겨두고 있던 터라, 동한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갑자기 뭐야?”
“뭔데 그래.”
“진정하고 앉아봐, 고래야. 여친한테 편지 온 재진이도 그러지는 않는데.”
흥미가 가득한 눈.
일어선 동안 본의 아니게 시선을 끌어버린 고래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심장의 떨림은 가라앉지 않았지만.
‘.. 여친? 여어친??’
지금만큼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왜냐고?
그보다 훨씬 소중한 편지가 날아들었으니까.
계속 어질어질한 편지만 읽다가 봐서 그런지, 더더욱 마음속에 와닿는 임팩트는 컸다.
‘그리고.. 있었어.’
아직 편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허나 스치듯이 봤다.
출력된 종이를 빼곡빼곡 채운 글씨와, 그 아래로 보이는 흑백의 실루엣.
치킨이 아니다. 그건 분명히 연두였다.
“후우…”
아껴보고 싶은 마음에 잽싸게 종이를 반으로 접어버렸다.
얼마나 예쁠까.
“뭐냐고.”
“빨리 봐 봐.”
“무슨 특급소식이라도 적혀있어?”
동기들의 재촉에 편지를 손에 고이 간직한 동한은 말했다.
“그.. 이건 혼자 읽고 싶은데……”
“와…”
“그렇게 어그로를 끌어놓고 혼자 보겠다고? 방송인 아니랄까 봐.”
“실망이다, 고래야…”
“나락! 나락! 나락! 나락!”
어질어질하다.
호칭이 바뀐 것도 그렇고, 완벽히 시청자들에 빙의한 동기들이다.
그 순간 고래의 프로의식이 발동했다.
“에이, 행님들 왜 그러십니까. 장난이죠, 장난. 근데.. 이 타이밍에 한 번 시원하게 쏴 줄 큰손형님 한 분 안 계신가요?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멘트도 멘트인데 경박하기 그지없는 말투가 전과는 딴판이다.
웃음바다가 된 3팀 내부.
“푸핫!”
“킥킥, 지금까지 어떻게 얌전히 버텼냐.”
“여기 달풍선 천 개!”
동기 중 한 명의 달풍선 투척에 고래는 바로 반응했다.
“아이고, 이제 훈련소 10일 차 형님이 달풍선 천 개를! 감사합니다! 리액션 원하시는 거 있나요?”
“어, 리액션은 필요 없고 편지나 빨리 공개해.”
“크흠.. 이 편지의 가치는 천 개로는 부족하긴 한데.”
재미를 위한 애드리브일 뿐이었다.
아무리 천상 방송인이라 해도, 연두의 편지로 달풍선 유도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 달풍선도 아니고.
‘한 글자 한 글자 음미하면서 볼 생각이었는데.’
그러기에는 어그로를 너무 끌어버렸다.
뭐, 이렇게 된 이상 동기들이랑 다 같이 보는 것도 괜찮겠지.
한 번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진짜 뭐야? 숨겨둔 여친한테 편지라도 온 거야?”
“.. 없어요.”
한 마디로 일축하는 고래의 답에 멋쩍어진 분대장 동현은 말했다.
“그럼 누군데?”
“여동생이요.”
“여동생?”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여동생한테 온 인편을 받고 그렇게 좋아한다고??”
옆에서 동기 두 명이 말을 주고받는다.
“야, 재승아.”
“응.”
“너도 여동생 있잖아. 여동생한테 온 인편 받고 저렇게 좋아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납득 가는 부분이냐?”
그 물음에 재승은 세상 진지하게 입을 뗀다.
“뭐, 한 마디로 일축할 수 있지.”
“뭔데?”
“미친놈.”
고래는 피식 웃어 보였다.
재승과는 동갑내기로 비속어를 포함한 디스도 편하게 주고받는 사이였다.
해명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편지를 공개하면 납득하게 될 테니.
사락.
미소를 띤 채로 고래는 다시 반으로 접은 종이를 펼쳤다.
[고래오빠…]한 곳을 향하는 모두의 시선.
글씨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하단의 사진이었다.
모두의 입이 벌어진다.
“어어..?”
“얘가 동한이 너 여동생이라고? 이렇게 어린데?”
“미친.. 왜 이렇게 귀여워?”
“여동생도 이러면 인정이지.. 이건 내 여동생이랑은 다른 종족이잖아.”
재승의 말에 옆에서 툭 일침을 꽂는다.
“네 여동생은 널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시비 거는 거냐?”
“킥킥, 쏘리.”
처음 반응은 그랬다.
그걸 보는 동한은 웃으며 생각했다.
아무리 흑백이라 해도 연두를 바로 못 알아보는 걸 보면, 자신을 못 알아본 걸로 신경 쓸 이유는 없겠구나 하고.
그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목소리.
“아니, 잠깐만! 얘 연두잖아!”
“뭐?”
“맞네! 첫 줄에도 적혀있네! ‘연두에요’!”
“그러고 보니까……”
기억을 되새기는가 싶더니 말이 이어진다.
“동한이랑 연두 같이 방송도 했잖아. 나 챙겨봤는데.”
연두라는 사실이 확실시된 후로 3반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이후 쏟아지는 물음.
그런 탓에 편지를 볼 새도 없이 동한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동한아. 너 진짜 연두랑 친한 거야? 방송상이 아니라 실제로?”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답할 수 있다.
“친하죠.”
“와.. 진짜?”
“네. 저 자대배치 받으면 초록이형이랑 면회도 오기로 약속했어요.”
“미친……”
고래라는 게 밝혀졌을 때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임팩트다.
모두의 눈에 부러움이 가득하다.
그쯤 되니 동한의 어깨도 자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띄어쓰기 봐. 진짜 너무 귀엽다…”
“흐흐, 뭔가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하던 거 생각나네.”
“고래옵빠 뭐냐고, 킥킥.”
“이게 그 의도하지 않은 생활애교라는 거냐.”
편지를 바라보는 동기들 모두 표정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이후 고래가 대표로 낭독까지 했다.
“‘안녕하세요, 연두에요. 편지지에 편지 쓰려 했는데 아빠가 안 된다고 훈련소 편지는 핸드폰으로만 쓸 수 있다고……’”
서론의 tmi조차 귀여웠다.
손글씨로 쓴 편지였으면 얼마나 귀여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금도 치사량에 가까운 귀여움인데.
“‘아빠가 훈련소는 많이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서 훈련소에서는 인편이 큰 힘이 된대요. 그러니까 연두가 보내는 인편이 고래오빠한테 큰 힘이 됐으면……’”
잘 맞지 않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에서 오히려 진심이 묻어나는 기분이다.
빼곡히 적은 편지.
어느 한 글자도 허투루 적은 거 같지가 않다고 해야 하나.
“야, 여기 봐! 편지 맨날 보낼 거래!”
심지어 매일 보낸단다.
여자친구라도 해도 인편을 매일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 응?”
바로 그때였다.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본문과 사진 사이의 마지막 줄이 눈에 들어온 건.
-사랑해여, 고래오빠.. ♥
사실 이건 연두가 작성하지 않은 유일한 한 줄이었다.
그럼 누구냐고?
다름 아닌 주원의 소행이었다.
훈련소에 가 본 만큼, 이 한 마디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떨리는 전신.
동기들의 환호 속에 말 그대로 극락에 간 고래였다.
***
[출력 완료]드디어 떴구나.
연두가 보낸 편지가 출력 완료로 바뀐 걸 본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건 편지가 전달됐다는 뜻이니까.
‘뭐, 반응은 생각할 것도 없겠지.’
연두가 손수 적은 편지다.
그에 더해 사진과 마지막 필살 멘트까지 첨부했으니 표정이 상상이 간다.
평생 비밀에 부쳐야겠다.
마지막 문장을 적은 게 연두가 아닌 나라는 건.
[연두의 아는 형아 본방사수!(feat. 담요킥 시즌 2)]그 뒤에는 유투브 반응을 확인했다.
-행복하다…
┖아는 형아 끝나고 침울했는데 바로 이어지는 비하인드와 본방사수 영상. 이게 극락이라는 거냐.
┖10분동안 먹기에 가장 맛있는 간식.
┖이 정도면 케미 하나 더 만들어야 한다. ㅇㅈ?
┖엥? 무슨 케미?
┖연두랑 담요 합쳐서 연담 케미. 같이 두기만 하면 레전드 탄생.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연두 이윤결 싫어하려나.
┖속았다는 거 알았을 때 표정 너무 귀여워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초록님 반응이 더 웃김 ㅋㅋㅋㅋㅋㅋ
┖앜ㅋㅋ 눈치 엄청 보네. 연두랑 눈 마주치니까 조용히 TV로 시선 돌리는 게 킬링포인트.
┖근데 님들아 ㅋㅋ 잊지 말아야 될 게 있음.
┖뭔데요?
┖이거 본 유리는 담요킥 수준이 아닐 듯. 사실상 연두보다 더한 흑역사 적립.
┖어쩌다 보니 흑역사 듀오가 되어버린 연유 케미 ㅋㅋㅋㅋㅋ
역시 반응은 좋았다.
담요킥을 제외하고도 유쾌한 부분이 잔뜩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떤 부분이냐고?
-초록님 보소 ㅋㅋ
┖읍 읍읍 읍읍! 이건 다시 봐도 웃기네 ㅋㅋㅋㅋㅋ
┖가면을 벗은 초록님…
┖근데 다른 사람 보듯이 아무 내색도 안 하고 보는 게 킹받는 포인트.
┖그 와중에 눈동자는 요동치고 있음.
┖전에 파티에서 춤출 때도 그렇고 초록님은 한 번씩 광기를 드러내네 ㅋㅋㅋ
나에 관해서다.
연두랑 유리에 묻혀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지.
그걸 놓칠 연두부가 아니다.
“흐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마우스로 손을 옮겼다.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
달칵.
창을 닫았다.
화면에는 떠올라 있었다.
어제 완성한 두 번째 본방사수 영상의 편집본이.
***
1학년 5반 체육 시간.
아이들 앞에 선 체육 교사 김형석은 목청을 높여 말했다.
“회장 어딨지?”
“여기 있습니다!”
“부회장은?”
“여기요.”
각각 성우와 시은이였다.
운동회 때 형이 온 이후로 성우는 회장으로서의 열의를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만지면 뜨거울 정도의 열정이다.
“나와서 줄 긋자.”
“와!!”
아이들의 환호성.
그럴 만도 한 게, 줄 긋자는 말은 피구를 할 거라는 말과 동의어였다.
피구는 저학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기 종목 중 하나이고.
치익.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흐릿하게 남아있는 자국을 따라 선명하게 줄을 긋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성우가 먼저 튀어 나가고 시은이가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이쪽 할게!”
“응.”
각각 왼쪽과 오른쪽을 맡은 성우와 시은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쳤다.
흠칫 놀란 시은이가 말한다.
“벌써 다 했어?”
“응.”
기본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성우는 덧붙였다.
“회장이니까.”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시은이가 쿡쿡 웃음 짓는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위한 줄을 긋다가, 멈춰선 회장 부회장이 마주 보고 웃는 장면.
얼핏 보기에는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특히나 멀리서 보기에는 더욱 그랬다.
“.. 읏.”
시은이의 전 짝꿍인 형준이가 보기에는 마음이 불편한 장면이었다.
게다가 성우는 강적이었다.
소심한 자신과 달리 멋지고 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강적.
“좋아! 다 그었으면 시작하자!”
“네!”
“오늘은 가위바위보로 팀을 정한다! 아무랑 하면 되고 지면 왼쪽, 이기면 오른쪽으로 간다!”
그 말에 따라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연두도 상대를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현우였다.
“현우야! 나랑 할래..?”
“아니.”
그러나 대답은 싸늘했다.
“너랑은 안 해.”
동시에 휙 고개를 돌리는 현우.
이유는 간단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그 상대와는 필연적으로 다른 팀이 될 수밖에 없다.
‘.. 싫단 말이야.’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같은 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칼같이 한 거절이었다.
그걸 모르는 연두는 충격에 얼어붙었지만.
톡.
그런 연두를 깨운 건 예은이의 한 마디였다.
“.. 저기.”
“으, 응?”
“가위바위보 했니?”
왜인지 상당히 어색한 표정과 물음이다.
연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했어…”
“그럼 나랑 가위바위보 할래?”
별 의미 없는 가위바위보지만 보통은 친한 사이끼리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은이는 없었다.
연두를 제외하고는 친하다고 할 만한 친구가.
“.. 응! 하자!”
밝아지는 얼굴.
그렇게 둘은 손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
승부는 단판에 났다.
연두는 가위, 예은이는 주먹.
“.. 져, 졌다.”
그렇게 팀이 갈렸다.
연두와 월이, 현우, 하연이가 한 팀이었고, 시은이와 성우, 형준이, 예은이가 한 팀이었다.
그밖에도 절반의 숫자로 팀이 나뉘었다.
“좋아! 팀은 다 정해졌나?”
“네, 선생님!”
“그럼 전부 네모 안에 들어간다! 규칙은 알고 있지?”
매번 팀원이 바뀌긴 했지만 피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떨리는 마음으로 연두도 두 손을 꼬옥 쥐었다.
“자, 각 팀 대표 앞으로.”
빠르게 대표가 선정됐다.
“현우야, 네가 나가!”
“내가?”
“응!”
남자 계주이자 운동신경이 좋은 현우가 대표로 선정되어 걸어 나가고,
“김성우!”
반대쪽에서는 역시 계주이자 회장인 성우가 선정됐다.
선을 두고 마주 본 둘.
그 중앙에서 교사인 김형석이 공중으로 볼을 던지며 휘슬을 불었다.
삐리리!
동시에 두 아이가 튀어 오른다.
“우와아!”
“피해!”
“공 잡아, 공!”
벌써부터 과열된 분위기.
선공을 따낸 건 현우 쪽이었다.
슥.
굴러오는 공을 잽싸게 건네받은 은주가 현우에게 공을 건네줬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상대를 아웃시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우나 월이 같은 아이에게 공을 넘기는 게 좋았으니까.
공을 건네받은 현우는 매의 눈으로 상대 팀을 살폈다.
“후우..”
누구든 괜찮았다.
단번에 아웃시켜서 연두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런 와중 눈에 들어왔다.
무방비 상태로 구석에 서 있는 시은이가.
‘안타깝게 됐네.’
단비어린이집 동창의 정이 있으니 첫 번째로 아웃시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무방비로 서 있었다.
나 맞춰주시오 하는 것처럼.
휙.
공을 잡은 채로 손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내리꽂았다.
파앗-
강속구였다.
1학년이 던지는 공이라기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직선으로 나아가는 공.
현우는 생각했다.
이건 못 맞출 수가 없겠구나 하고.
툭.
그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다.
확실히 맞긴 맞았으니까.
공을 맞은 대상이 시은이가 아닌 성우의 두 손이었다는 걸 제외하면.
씩 웃으며 성우는 말했다.
“.. 되겠냐?”
완벽한 세이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