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98)
598화. 위장
“.. 되겠냐?”
완벽한 세이브였다.
이렇게 지켜줄 수 있다는 게 피구의, 특히 혼성 피구의 묘미였다.
정신을 차린 시은이가 입을 뗐다.
“고, 고마워..”
“고맙긴.”
잔뜩 폼을 잡으며 성우가 한 손으로 공을 든다.
으득.
이를 악무는 현우.
입장이 바뀐 상황 속에서 이번에는 성우가 사냥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팔을 빙빙 돌리며 중얼거린다.
“누굴 맞춰 볼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피구.
방금의 공방으로 방심하고 있던 아이들도 집중모드에 들어갔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피구에서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던지는 파워, 공을 받는 캐치 능력, 그리고 공을 피하는 순발력.
의외로 연두는 공을 피하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서연두.”
“.. 으응?”
“내 뒤에 있어. 위험하니까.”
현우의 말이었다.
방금 공격을 성공시킨 뒤에 한 말이라면 더 멋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나름 임팩트 있는 한 마디였다.
외곽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형석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짜식. 스윗하구만, 스윗해.”
그럴 만도 했다.
이제 여덟 살 된 아이들은 그의 눈에는 어떤 말을 해도 애기로 보였으니까.
그런 반응을 보인 건 형석만이 아니었다.
“.. 흐흣.”
쿡쿡 웃으며 레나는 말했다.
“서혀누.. 연두 좋아해?”
“.. 무, 뭐?”
“할머니가 그랬서.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려 하는 건……”
좋아함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원래 그렇게 끝맺었을 말이었지만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리 피구라고 해도 엄연한 대결.
방심은 금물이다.
휘익!
상대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성우는 공을 던졌다.
향한 곳은 레나였다.
“와아!”
“맞혔다!”
“레나 아웃!”
성우는 던지는 힘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다.
허나 판단력이 뛰어났다.
전체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레, 레나야..”
첫 번째 탈락에 당황한 연두.
레나는 말했다.
“.. 괜찮아!”
“응?”
“내가 밖에서 도와줄께!”
그 말대로였다.
아웃된다고 끝이 아니다.
상대 진영 밖에 서서 아군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도도도.
총총 달려간 레나는 생긋 웃으며 외쳤다.
“시작!”
***
다시 시작된 피구.
매서운 공방이 오갔다.
시은이가 속한 팀의 에이스는 단연 성우였다.
“.. 또 받았어!”
“뭐야! 저건 반칙 아니야?”
“김성우 너무 잘 잡아! 어떻게 이겨!”
그 힘은 바로 캐치능력에 있었다.
몇 번의 피구를 거쳐 성우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공을 잡는 게 의외로 쉽다는 것.
‘캐치볼이랑 원리가 비슷해.’
형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틈만 나면 형을 졸라서 캐치볼을 하곤 했다.
글러브를 낀 채로.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제대로 받으면 전혀 아프지 않다는 걸.
‘겁먹을 필요 없어.’
야구공과 달리 피구공은 훨씬 말랑말랑하다.
그리고 세기는 정해져 있다.
아무리 강속구를 던지는 현우라고 해도, 겁먹지 않고 위치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성우는 무적이었다.
“.. 훗.”
승기를 잡은 성우는 하나하나 상대를 탈락시켜갔다.
결국 에이스인 현우까지 아웃된 상황.
‘.. 이겼다!’
성우는 확신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상대는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서연두와 남궁월.
그런 반면에 아군의 생존자는 아직 많이 남아있다.
‘미안하지만 이제 끝내야겠어.’
승부에 있어서 자비는 없는 편이다.
이번 표적은 연두였다.
나름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는 만큼, 경의를 표하며 성우는 공을 장전했다.
슈욱-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에 연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때.
탁.
귀에 들어오는 둔탁한 소리.
감은 눈을 떴을 때 연두의 눈에 들어온 건 월이의 뒷모습이었다.
“.. 워, 월아?”
그대로 선 채로 월이는 말했다.
“.. 내 뒤에 꼭 붙어있어라. 지켜줄게.”
표준어처럼 보이지만 억양은 분명한 사투리였다.
움직이기 시작한 아기맹수.
월이는 성우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유일한 변수이기도 했다.
스으.
먹잇감을 노리는 매서운 눈빛.
딱히 교란을 주려는 의도도 없이 월이의 시선은 정면으로 성우를 향했다.
그 찰나의 순간.
성우의 마음속에 든 감정은, 공포였다.
‘.. 말도 안 돼.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고? 천하의 김성우가?’
그럴 리가 없다.
현우의 강속구도 몇 차례나 받아냈는데.
애써 부정하며 성우는 말했다.
“.. 와라.”
받아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피구공.
침착함을 유지한다면 못 받아낼 공 따위는 없었다.
“.. 후우.”
그 말에 응답하듯.
짤막하게 숨을 내뱉은 월이의 팔이 곡선을 그렸다.
파앗!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공.
문제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의 위력과도 차원이 달랐다는 점이다.
현우의 강속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 어?”
성우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공은 몸을 맞고 튕겨나가 외곽으로 데구루루 굴러가고 있었다.
…… 아웃이었다.
“김성우 아웃!”
“와아!”
“남궁월! 남궁월! 남궁월!”
반전된 분위기.
바깥으로 향한 공은 아이들의 손을 거쳐 다시 월이에게로 넘어갔다.
이제는 무차별적인 폭격이었다.
파앗!
두 번째 공은 시은이를 향했다.
“으앗!”
난데없이 울리는 비명소리.
그러나 이번에도 시은이는 탈락하지 않았다.
비명과 함께 몸을 던진 건, 이전 짝꿍이었던 형준이였으니까.
“.. 주형준?”
“자, 잡으려고 했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걸어나가는 형준이를 보며 시은이는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벌써 두 번째야.’
성우에 이어 두 번째로 도움을 받았다.
심지어 형준이는 아웃됐고.
이대로 폐를 끼치는 건 시은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마침 앞에 멈춰있는 공.
슥.
공을 주워 든 시은이가 앞으로 걸어갔다.
세상 진지한 눈빛.
이윽고 공을 든 시은이의 손이 상공으로 올라갔다.
눈앞에 있는 월이를 맞추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파앗!
공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문제는 그 방향이 월이가 아닌 땅바닥이었다는 거지만.
초강력 스파이크였다.
“…”
모두가 말을 잃은 상황.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풋살 때 엄청난 헛발질을 자랑하던 시은이의 모습이.
***
월이의 하드캐리로 피구는 짜릿한 역전승으로 마무리됐다.
이어지는 급식시간.
“괜찮아?”
줄을 선 시은이가 성우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 응.”
거짓말이다.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진 것도 진 거지만, 마음속 깊이 새겨진 공포심 때문이었다.
‘.. 아프지는 않았어.’
그런 공포와는 달랐다.
완벽히 대비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압도적인 스피드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는 것.
그게 포인트였다.
“아싸!”
“제육볶음이다!”
“많이 줘!”
“그럼 나는 얘보다 더 많이 줘!”
“그럼 나는 얘보다 더 더 많이……”
이미 석호와 재호는 피구 결과는 까맣게 잊고 메뉴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은이가 말했다.
“미안. 내가 잘 못해서.”
“아니야!”
성우는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었을 뿐, 시은이를 탓할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마지막 스파이크는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다음에 팀 되면 꼭 이기자.”
“그래!”
나름 훈훈하게 끝맺은 대화.
그러는 사이 연두와 예은이는 급식을 다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시작됐다.
“헤헤..”
언제나 행복한 급식시간.
배시시 웃으며 연두는 숟가락에 밥과 제육볶음을 올려 손에 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개시하려는 순간,
“.. 응?”
연두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예은아.”
“응?”
“예은이 콩 싫어해..?”
오늘의 메뉴는 콩밥.
그 속에서 예은이는 콩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있었다.
세상 당당하게 예은이는 답했다.
“아니.”
계속해서 콩을 골라내며 예은이는 말했다.
“일반인은 모르는 사실인데, 콩은 괴수랑 싸울 수 있도록 해 주는 내 몸속의 마나를 저하시키는 음식이야.”
“.. 저하?”
“없어지게 만든다는 거지.”
“아!”
“그러니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 거고. 이해했니?”
잠시 후.
또 무언가를 발견한 연두는 말했다.
“예은아.”
“뭐지?”
“예은이 당근 싫어해?”
이번에는 제육볶음 속 당근을 골라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아니.”
역시 부정이다.
그 뒤에 예은이는 또 설명을 덧붙였다.
“일반인은 모르는 사실인데, 당근은 괴수의 험악한 기운에 맞설 수 있는 저항력을 저하시키는 음식이야.”
“아!”
“그러니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 거지.”
그렇게 급식판 한 칸에 수북이 쌓였다.
콩과 당근이.
그걸 보는 연두는 왠지 모르게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시선을 느낀 예은이가 말했다.
“왜 그러니?”
“그게……”
주춤하며 연두는 말했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크려면… 콩이랑 당근은 꼭 먹는 게 좋다고 해서……”
“누가?”
“아빠가!”
흠칫.
살짝 몸을 떤 예은이가 입을 뗐다.
“너는 아빠 말을 믿니?”
“응.”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연두는 답했다.
“아빠는 거짓말 안 하니까!”
“그래? 이상하네..”
“.. 응?”
“나는 아빠 말 안 믿거든. 우리 아빠는 거짓말쟁이라서.”
그러다 예은이는 숟가락을 들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콩과 당근을 모아둔 칸이었다.
푸욱.
한 순간이었다.
구분없이 모아둔 콩과 당근을 한 번에 떠서 입 안에 넣은 건.
우물. 우물.
그 모습을 본 연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예은아..!”
“.. 우에.”
입이 너무 꽉 차서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괜찮아? 콩이랑 당근 먹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앞서 예은이가 한 얘기가 있었으니까.
끝까지 우물우물 씹어서 삼킨 뒤에야 예은이는 입을 열었다.
생긋 웃으며.
“괜찮아. 나는 너무 강해서 조금 약해져도 되거…… 엑.”
“… 예은아!”
“우, 우읍!”
그러나 한 번에 삼켜버린 대가는 혹독했다.
구역질이 잦아들 때까지 예은이는 몇 번이고 물을 들이켜야 했다.
***
주말을 맞아 연두는 누렁이랑 데굴데굴 구르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헤헤, 누렁아..”
“냐아~”
내게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같이 누워서 뒹굴거나, 앉은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거나.
지금은 후자였다.
“아, 참. 연두야.”
“네에.”
“예은이랑 사이는 요즘 어때?”
새 짝꿍이 된 예은이가 떠올라 던진 물음이었다.
그러자 무언가 떠오른 듯 연두가 말한다.
“아빠!”
“응, 연두야.”
“아빠는 거짓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조금은 뜨끔했다.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는 거 치고는 선의의 거짓말이나 장난스레 치는 거짓말을 종종 하곤 하니까.
뭐, 그래도 그 정도는 애교겠지?
“그렇지.”
“그럼.. 거짓말을 많이 하는 아빠도 있어요..?”
“흠, 글쎄..”
턱에 손을 대고서 나는 말했다.
“없지는 않지 않을까?”
이어서 물었다.
“근데 그게 왜?”
“예은이가 말했어요.. 예은이 아빠는 거짓말쟁이라서 아빠 말 안 믿는다고……”
“그, 그래?”
문득 떠올랐다.
독일에 갔을 때 유리로부터 귀가 닳도록 거짓말쟁이라 불렸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네.
‘조금 짓궂으신가 보군.’
딸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예은이 아버지도 많이 짓궂으신 모양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장난기가 많으신 거 아닐까?”
“장난기여..?”
“응. 아빠가 연두한테 가끔 장난치는 것처럼.”
“아..”
납득했다는 듯이 연두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봐요! 그럼 예은이 아빠는 장난꾸러기인 거에요..?”
“하하,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 같다고 생각할 뿐이지.
다시금 뒹굴기 시작한 연두와 누렁이.
그 사이,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고민거리가 떠올랐다.
프로젝트 101.
주연이가 참가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이름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프로그램은 이제 한 회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주연이는 살아남았고.’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전부 극복해내고, 이제는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둔 상태다.
최종 데뷔 멤버는 마지막 무대로 결정된다.
주연이와 연락이 닿은 건 얼마 전이었다.
‘오빠!’
여전히 활기 가득한 목소리였지.
‘어떻게 된 거야, 주연아?’
‘연락 허가를 이제야 받았거든요.. 잘 지내셨죠?’
‘응. 넌 잘 지냈어?’
‘네.’
여러 얘기가 오갔지만 본론은 하나였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마지막 무대에 우리를 초대하고 싶다는 것.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마음에 관련 인터뷰 제의도 전부 거절했고, SNS를 통한 홍보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주연이는 증명해냈다.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최종 관문까지 도달했으니 말이다.
‘끝을 망칠 수는 없지.’
그래서 가지 말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전에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렸다.
첫 콘서트는 꼭 가겠다고 했던 약속.
오디션 프로를 통한 단체 공연이긴 해도 엄연한 콘서트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주연이가 데뷔하는 순간을, 두 눈으로 직접 말이다.
‘방법은 있어.’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
확률 자체가 낮긴 하겠지만, 카메라에 잡히더라도 알아채지만 못하면 된다.
나와 연두라는 걸.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지막인 만큼 확실하게 대비하고 싶었다.
“연두야.”
“네, 아빠!”
“이쪽으로 와 볼래?”
그러니 완벽한 위장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었다.
주연이의 데뷔 직관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