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
6화. 쓰담쓰담
의사와 간호사가 걷어 올린 셔츠 틈으로 연두의 살결이 드러났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새하얀 피부색이었다.
그런데 흰 피부와 함께 무시할 수 없는 색깔들이 보였다.
믿고 싶지 않지만 눈으로 확인한 이상 현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두의 몸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붉고 푸른 멍들이 존재했다.
뒤이어 소매를 걷은 후에도 마찬가지의 상처들이 보였다.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
하필이면 긴팔에 긴바지를 입혀서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연두가 저런 상처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아주 조금도 말이다.
내심 설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최소한 폭력을 써 가며 학대하며 키우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야, 겨우 다섯 살 된 아이였다.
내 다리 하나를 겨우 품에 안을 정도로 작은 여자아이.
심하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외삼촌도 나와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망나니라도 그런 개새끼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나의 외삼촌은 그런 인간이었다.
“흐윽, 시러요! 아빠 보는 거 시러..! 하지 마세요!”
연두는 필사적으로 의사 앞에서 몸부림치고 저항했다.
왜 나한테 숨긴 걸까?
씻는 걸 거부하고, 갈아입지도 못하는 옷을 스스로 갈아입으면서까지 왜.
대체 왜 그렇게 아픈 부분을 나한테 보여주기 싫어했던 걸까?
그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하자 순간적으로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생각했던 거야.’
연두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맞아서 생긴 상처들을 내가 본다면 미움받을 거라고.
누가 그럴 거라고 알려준 것도 아닐 텐데.
이건 비약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친척들 중에 연두의 얼굴을 알던 사람은 없었어.’
다르게 말하면 친척들조차 알지 못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연두는 지금까지 외삼촌이 만든 감옥 속에서 지냈다는 의미였다.
외부와의 교류는 철저히 차단된 폐쇄적인 공간에서.
심지어 외삼촌은 연두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고, 학대했다.
연두가 그곳에서 받은 감정이라고는 미움, 분노 같은 것들뿐이겠지.
그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하며 자랐을 테고.
‘저 생긴 지 얼마 안 된 멍들은.’
그 과정에서 생긴 것들이었다.
연두에 대한 외삼촌의 미움과 분노가 남긴 아픔들.
그런 것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아빠라고 부르며 의지하게 된 나에게는 특히.
“그만.. 이제 그만 놔주세요.”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내 앞에서 연두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내 말에 의사가 연두에게 손을 뗐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
나를 보는 의사와 간호사의 시선이 매서웠다.
이유는 뻔했다. 내가 연두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연두의 몸에 있는 멍들은 누가 봐도 학대와 폭력의 흔적이었다.
다른 이유로 저렇게 불규칙한 상처들이 생기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의사였다고 해도.’
바로 나를 의심했을 것이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거지.
나로서는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던 연두가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왔다.
의사가 잡으려 했지만, 워낙 빨라서 놓치고 말았다.
연두는 곧장 내게로 달려와 안겼다.
“흐윽.. 흡. 흐아앙!”
연두는 내게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며 말했다.
“이제.. 아빠 이제 연두 미어요? 흑, 공주님 아니에요? 가족.. 흐아앙!”
바지가 축축해졌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말했다.
“그럴 리 없잖아.”
“…?”
“내가 연두 너를 미워할 리 없잖아. 이렇게 예쁜 공주님인데. 가족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어.”
“가족..”
“그래, 원래 가족은 그런 거야. 아빠는 앞으로도 연두 너 미워할 일 없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연두의 격한 숨소리가 점차 가라앉았다.
이제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눈물방울이 연두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긴 했지만.
나는 한동안 연두를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환자가 없어서일까. 의사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 그렇게 된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나는 의사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오늘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 연두를 맡게 된 경위. 방금까지만 해도 연두의 얼굴조차 몰랐다는 점.
연두가 혹시나 아픈 곳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병원에 데려왔고, 몸에 멍이 있을지는 꿈에도 몰랐다는 것.
끝으로 쓰레기 같은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쩔 수 없어.’
최대한 남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 주제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고 경찰서에 출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 물론 연두를 옆에 두고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내 말에 안심이 된 모양이라.’
연두는 밖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잠깐 맡겨둔 상태였다.
지금은 나와 의사, 그리고 아까부터 있던 간호사뿐이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의사가 말했다.
“그런 거였군요..”
“네. 믿기 힘드실 수도 있지만 전부 사실입니다.”
솔직히 전부 말한 입장에서도 조금 겁이 났다.
혹시 내 말을 안 믿고 경찰에 신고하면 어쩌나 하고.
의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믿어요. 연두가 의자에서 주원 씨한테 달려갈 때부터 생각했거든요. 뭔가 사정이 있겠구나 하고.”
“아.”
“아이가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달려간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그 후에 둘이 나눈 대화를 듣고서는 더 확신했고요.”
이해해 줘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다.
의사는 갑자기 양손으로 내 손을 꾹 잡으며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그런 결정을······”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나서야 나는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감동을 받은 건가? 의사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심지어 옆의 간호사는 소리 없이 끅끅 오열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 슬프고 그런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연두가 지금껏 어떻게 지내왔을지 생각해서 슬퍼진 건가?
그런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나도 미치도록 슬프니까.
나는 적당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열이 받아서 키우게 됐지만, 저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 아니요. 좋은 사람이에요.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아무리 충동적이었다고 해도 결국 주원 씨가 결정한 거잖아요. 연두를 위해서, 스스로 키우겠다고.”
옆에서 간호사는 맞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런 분위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가 말한 연두와 제 사정은 두 분만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 안다고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는 못하겠지만, 저는 최대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주원 씨 생각이 뭔지.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젊은데도 생각이 깊은 사람이네요. 내가 딸이 있었으면 소개해 주고 싶을 만큼.”
“하하…”
제가 편의점 알바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거 알면 그런 말 못 하실 텐데.
물론 이것도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아이 키우는 거 힘들 텐데. 앞으로 연두 아프거나 하면 꼭 여기로 오세요. 무상으로 진료해 드릴 테니까.”
“아, 아닙니다! 여기로 오겠지만, 병원비는 제대로 내겠습니다. 제가 조금 부담돼서요.”
“부담 안 가져도 되는데······”
“아뇨. 이번에 월급 들어와서 괜찮습니다.”
편의점 월급이라고는 안 말했다.
의사는 흐음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더 말하면 강요가 되겠네요.”
***
영수증을 확인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눈치챘다.
병원 영수증이랑 약국 영수증이 너무 비용이 차이 났다.
‘말이 안 돼.’
병원에서 이것저것 다 검진했는데 이 정도 비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의사가 의도적으로 병원비를 낮춰준 게 틀림없었다.
뭐,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거절하는 것도 오버겠지.
사실 약국에서 나온 비용도 내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가자, 연두야.”
“집으로요?”
“그치. 이제 집에 가야지.”
“우아.. 집 간다! 헤헤!”
신난 연두를 향해 내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연두 아야한 데 없을 거야. 아, 근데 연두야.”
“네에!”
“연두 이제 집 가면 씻을 수 있겠어?”
잠깐의 침묵 끝에 연두가 씩씩하게 외쳤다.
“.. 씨슬 수 이써요!”
“아유, 예쁘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잠깐 마트에 들려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산 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짐을 내려놓고 연두를 바라봤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
많이 피곤했지만, 이번만큼은 연두를 꼭 씻겨야 했다.
연두를 데리고 나는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괜찮아, 연두야.”
막상 다시 내 앞에서 상처를 꺼내려니까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웃으며 기다렸다.
그러자 연두는 천천히 붉고 푸른 멍들을 드러냈다.
바라보는 게 힘들었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솨아아.
나는 샤워기에 물을 틀었다.
연두는 입을 헤 벌리고 물이 나오는 걸 바라봤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입을 열었다.
“손 한 번 대 봐, 연두야. 차가운지 뜨거운지 적당한지.”
연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조심스레 손을 갖다 댔다.
“아, 차거!
“큭큭큭, 속았지롱.”
“으으…”
연두는 내가 놀린 걸 알았는지 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아빠아..”
“하하, 미안.”
“조요.”
“응?”
“그거.. 나 조요.”
연두가 자그마한 손가락으로 샤워기를 가리켰다.
내가 샤워기를 들며 물었다.
“이거?”
“네.”
“싫은데?”
한 번 더 놀리자 연두의 깊은 눈에 호수처럼 물기가 맺혔다.
잠깐. 설마 울려는 건가?
불안해진 나는 다급하게 샤워기를 넘기며 말했다.
“주, 줄게. 줄게, 연두야.”
샤워기를 넘겨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연두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무거운 건지 두 손으로 잡고 끙끙거렸다.
나는 불안해서 가까이에 선 채 말했다.
“조심해, 연두야. 놓쳤다가 발 찧으면 큰일… 아아악!”
그런데 웬 물줄기가 갑자기 내 목구멍을 강타했다.
연두가 샤워기를 세게 잡으려다가 힘 조절이 안 돼서 내 얼굴에 쏴 버린 것이다.
대참사였다. 나는 옷도 입고 있는데.
“아, 아빠! 갠차나여..?”
아니, 전혀 안 괜찮다.
연두는 당황했는지 샤워기를 들고 주위를 마구 난사했다.
나는 가까스로 연두에게 다가가 샤워기를 붙잡았다.
그러나 별 의미는 없었다. 나는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으니까.
“요 녀석..”
그러자 연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빠아.. 연두 뿌릴 거예요..?”
이런 표정으로 말하면 보통은 안 뿌릴 텐데, 나는 예외였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응.”
“꺄아아!”
목욕은 순식간에 물놀이가 되었다.
뭐, 그런데 즐거웠다. 장난 아니고 진짜로 즐거웠다.
***
즐거운 목욕, 아니 물놀이가 끝나고 나는 처방받은 연고를 몸 구석구석의 멍에 발라줬다.
연두가 뭐냐고 묻는데 설명해 주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결국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주는 약이라고 설명했지.’
그 정도로 설명하는 게 최선이었다.
약을 발라주고 난 후, 나는 간단한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라고 해 봐야 계란프라이랑 김치였지만.
이건 여담인데 나는 자취 생활 6년 차라 계란 요리만큼은 셰프급이었다.
비록 그게 계란프라이라 할지라도.
비법을 설명하자면 프라이는 굽는 게 아니다. 튀기는 거다.
아, 물론 김치는 편의점표 김치였다. 내 직장이 편의점이니까.
연두는 계란프라이를 입에 넣고는 말했다.
“우아… 마시써요!”
고맙다. 그렇게 말해 줘서. 내일은 더 맛있는 거 해 줄게.
이제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연두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식사에 신경을 써야겠다.
식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건 양치질이었다.
나는 방금 구매한 어린이용 칫솔과 치약으로 연두의 이를 닦아줬다.
다행히 연두는 맛있다며 좋아했다.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꽤 고역이었다.
어땠거나 그렇게 스펙타클했던 하루의 모든 여정이 끝났다.
“연두야.”
“네, 아빠!”
“이거 덮고 이거 베고 자면 돼. 이불이랑 베개.”
“이부리랑 베개..”
연두는 내가 말하는 단어를 따라 하는 습관이 있는 거 같았다.
나는 연두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매트리스에 누웠다.
침대는 부담돼서 매트리스만 사서 깔아 두고 자는데, 이게 의외로 좋다.
그런데 연두가 베개랑 이불을 들고 멍하니 서서 나를 바라본다.
“안 잘 거야, 연두야?”
“누어도 대요..?”
“응?”
“아빠 옆에.. 누어도 대요?”
“당연하지. 원래 가족은 같이 누워서 자는 거야.”
물론 나는 아빠 살아있을 때 같이 안 잤다.
연두는 활짝 웃으며 내 옆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헤헤, 아빠아..”
“편하게 자, 연두야. 힘들었을 텐데.”
“네에.. 아빠도요.. 아빠 고마······”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말하다 말고 잠에 빠져드는 모습은 처음 본다.
잠잘 때 모습마저 진짜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눈썹이 어떻게 저렇게 길까. 나도 진짜 긴 편인데 신기할 정도다.
쓰담쓰담.
방금 씻어서인지 윤기 있는 머리칼이 찰랑거린다.
이 아이가 내 딸이라니. 문득 현실인지 헷갈린다.
“잘살아보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가족이 되었으니까.
그때였다.
한창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내일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화요일이구나. 알바 가는 날.
잠깐만, 알바? 알바 가는 날이라고?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전개하니 놓치고 있던 게 뭔지 알아챘다.
나 바보인가? 왜 이걸 생각 못 하고 있었지?
내일 알바 가면 연두는 어쩌지?
큰일 났다.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