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06)
606화. 사랑
부르릉!
“들었지, 주연아?”
“네?”
“주소 찍어. 지금 바로 간다.”
붕붕이의 우렁찬 시동음.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은 주연이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멋대로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얘들아! 주원오빠랑 연두 지금 온대!”
“진짜?”
“응!”
“잘 됐다! 우리 오빠랑 연두 만나면 할 얘기 짱 많잖아!”
“그치, 그치!”
신나서 고개를 돌린 주연이의 얼굴에 어색함이 드리운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찹쌀떡처럼 꼭 붙어있는 범재와 예림이의 모습이.
“.. 헤.”
정확히는 예림이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양새다.
범재는 쑥스러운지 어정쩡하게 서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연이가 중얼거리듯 입을 뗐다.
“진짜 대박이다..”
“뭐가?”
“너희 둘. 주원오빠랑 연두가 보면 뭐라고 그럴까?”
옆에 서 있던 동건이가 인터셉트했다.
“뭐라고 하긴.”
“응?”
“당연히 꾸짖으시겠지. 꾸짖을 갈!”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구시렁거린다.
“하여튼 이래서 커플이란 것들이 문제라니까. 지금도 딱 붙어있는 거 봐.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라는 게 없어요, 예절이. 쯧쯧. 이래서 요즘 세상이 말세라는 이야기가……”
“.. 조동건? 아우야?”
“…!”
흠칫하는 어깨.
그제야 동건이의 위험 감지 센서가 작동했다.
“네, 범재행님!”
“잘하자?”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예의가 바르구나.”
까드득.
“잠깐.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거니? 혹시 지금 이를 간 거니?”
“그, 그럴 리가요.”
“그렇지? 내가 잘못 들은 게 맞는 거지?”
특유의 말투까지 흉내 내며 약 올렸지만 굽신거릴 수밖에 없다.
사실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가지고 약점을 잡는 건.
‘.. 제기랄.’
허나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선전포고를 한 건 범재 쪽이 아닌 동건이였으니까.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 짓던 주연이가 말했다.
“근데 말할 거지?”
“뭐?”
“너희 둘 사이. 주원이오빠한테 전화로 말했거든.”
“.. 사귄다고?”
“아니. 초대박사건이 있다고. 여기로 오면 알려주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바로 오겠다던데?”
살짝 예림이의 눈치를 살핀 범재가 말했다.
“말해야지.”
“그치?”
“응. 원래 말하려고 했어. 그리고 주원이형이랑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선명했다.
워터파크에 놀러 갔을 때.
뜨거운 탕에 들어가 주원이형 얘기를 듣고, 반대로 속마음을 이야기했던 기억.
그 자리에는 동건이도 있었다.
‘얘기해야지.’
그런 적이 있는데도 숨기는 건 도리가 아니다.
이 녀석한테도 마찬가지고.
범재는 살짝 고개를 틀어 동건이를 바라봤다.
“후우..”
짠한 마음에 절로 나오는 한숨.
잔뜩 놀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범재는 동건이의 짝사랑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 하나였다.
허나 그것도 이제는 쉽지 않았다.
원래도 전하지 못했던 마음인데, 이제는 하주연이 데뷔까지 하게 된 상황이니까.
‘난이도는 극상으로 올라간 거지.’
물론 이건 게임이 아니다.
그저 비유일 뿐.
범재로서는 점점 가능성이 옅어지는 친구의 짝사랑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짝사랑 동지로서 얼마나 애가 타는 일인지 아니까.
“힘내라.”
“네, 행님! 엥?”
아무것도 모르는 동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주연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입을 연 건.
“근데 연두는 알긴 알까?”
“뭘?”
“사귄다는 게 뭔지.”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어허, 우리 연두를 뭘로 보고! 당연히 알지!”
“난 모를 거 같은데.”
“그니까. 아직 사귀는 게 뭔지 정확히 알기에는 어린 거 같기도.”
“이제 올 거니까 물어보면 되지.”
“오케이.”
그렇게 선 채로 넷은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근데 우리 연두랑 오빠 오면 어디 갈까?”
“일단 카페!”
“카페 간 다음에는?”
주연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답한다.
“아! 노래방 갈까?”
“노래방?”
“응. 우리 아직 오빠랑 연두랑 다 같이 노래방 간 적은 없잖아.”
여지없이 동건이가 트집을 잡았다.
“징허다, 징해.”
“뭐?”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앞으로 질릴 정도로 노래하게 될 텐데.”
“.. 그런가?”
생각지 못하게 진지하게 받는 모습에 당황한 동건이가 말했다.
“.. 아니, 뭐. 가고 싶으면 가든지.”
그때였다.
둘 사이로 갑자기 누군가 끼어든 건.
“저기요!”
“..?”
“하주연님 아니에요? 프로젝트 101!”
“아, 맞는데……”
“대박!”
휘둥그레진 아이들의 눈.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벌써부터 드러나는 프로젝트 101의 여파였다.
***
한달음에 도착한 목적지.
“오빠!”
“행님! 여깁니다!”
“꺄, 연두야!”
오랜만에 보네, 이 조합.
늦었는데도 반갑게 맞이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랜만이다, 얘들아.”
특히나 주연이는 그랬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니까.
“연두야아.. 언니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여..”
“아구, 내 새끼. 일로 와.”
잠깐만.
그런 호칭까지는 좀 너무 간 거 같은데.
할머니도 안 쓰는 호칭이다.
‘상상이 안 가긴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연두를 ‘내 새끼’라 부른다면 그건 그거대로 적응 안 될 거 같다.
애초에 그건 우리 할머니가 아니다.
그나마 조대새끼가 아닌 쥐방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걸 감사해야겠지.
“카페 갈래요, 오빠?”
“그래.”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초대박사건이 뭔지도 들어야 하니까.”
그 길로 우리는 바로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시작된 담소.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주연이가 입을 뗐다.
“오빠.”
“응.”
“제 앞에 있었죠?”
애매모호한 질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말.
“노래 부를 때. 연두랑 같이 제 정면에 있었죠?”
놀란 나는 되물었다.
“그걸 주연이 네가 어떻게 알아? 아, 친구들이 알려줬나?”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이 맞지 않았다.
왜냐고?
다른 건 몰라도 나와 연두가 어디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을 테니.
“.. 봤어요.”
“응?”
“무대 위에서, 봤어요.”
그 뒤에 나는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소름이 올라왔다.
그럼 그 카메라 앵글을 보며 이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 아닌 진짜였다는 거니까.
“.. 그랬구나.”
“그래서 너무 감사했어요. 아마 그때 오빠랑 연두 못 봤으면 제대로 노래 못했을 거예요.”
“하하, 글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떨림을 가라앉혔을 수도 있다.
허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힘이 됐다는 거니까.”
실질적으로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마음에 걸렸는데.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오길 잘했네.”
“네?”
“확실히 초대박사건인 거 같아서.”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말한 게 전화로 얘기했던 초대박소식이 틀림없다고.
그런데 아니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주연이는 얘기했다.
“.. 아닌데.”
“응?”
“제가 말한 초대박사건은 이게 아니에요.”
그럼 뭐지?
수많은 관객 속에서 나와 연두를, 그것도 분장을 한 우리를 알아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이보다 더 대박이라고 할 만한 소식이 있나?
“흐응, 어떡할까?”
그 사이 주연이는 고개를 돌려 얘기했다.
“내가 말할까? 아니면 너희가 말할래?”
동건이는 내 옆에 앉아있다.
따라서 주연이의 말이 향하는 건 범재와 예림이 쪽이었다.
입을 연 건 범재였다.
“내가 말할게.”
“그래.”
아무래도 나와 연두 빼고는 다 알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그 속에서 범재는 말했다.
“주원이형.”
“응.”
“우리 사귀어요.”
그 한 마디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초대박사건이었다.
***
초대박소식을 들은 나는 질문을 마구 쏟아냈다.
주책이다 싶을 정도로.
“언제부터 사귄 거야?”
“고백은 누가 했어?”
“그럼 범재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예림이를 향한 범재의 짝사랑은.
응원하던 입장에서 그게 이루어졌다고 하니 텐션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나는 연두를 향해 물었다.
“어때, 연두야? 범재오빠랑 예림이언니 사귄다는데?”
“우아…”
다들 흥미로운 눈빛이다.
연두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걸까.
“아빠아. 그럼……”
“그럼?”
“범재오빠랑 예리미언니랑 결혼은 언제 하는 거에요..?”
“켁!”
상상도 못한 물음에 사레가 들린 예림이가 헛기침을 내뱉는다.
범재의 눈동자도 마구 흔들린다.
수습을 위해 입을 열었다.
“연두야. 꼭 사귄다고 결혼을 하는 건 아니야.”
“.. 으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두가 말한다.
“아빠가 말했어요!”
“응?”
“좋아해서 사귀게 되면.. 더 많이 좋아해서 사랑을 하게 된다고!”
확실히 내가 한 말이다.
어디선가 ‘사귀다’라는 표현을 듣고 온 연두가 내게 질문을 한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랑하게 되면… 헤헤.”
배시시 웃더니 설레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하는 게 결혼이라고 했어요.”
되짚어봐도 크게 잘못된 설명은 아니다.
다만,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혼하기 전 단계에서 ‘이별’이라는 녀석이 있다는 걸.
“캬, 행님. 역시 기똥찬 설명이십니다. 사랑이 뭔지 연두한테 제대로 알려주셨네요.”
“연두야, 또?”
불쑥 끼어든 주연이가 말한다.
“오빠, 아니 아빠가 또 사랑에 대해 해준 얘기 있어?”
그런 게 있나?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사실 워낙 추상적인 개념이라 명확하게 설명하기 힘들기도 하고.
“.. 있어요!”
그런데 의외로 연두는 바로 대답했다.
“진짜? 뭔데?”
되게 기대하네. 별거 없을 텐데.
생긋 웃으며 연두가 말한다.
“어른!”
“응?”
“이십 살이 돼서 어른이 되기 전에는……”
잠깐만.
어디서 많이 접한 도입부인데?
그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떠올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빠 말고는 사랑하면 안 된다고 했어여..!”
“푸흣!”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화끈거리는 얼굴.
설마 그 얘기가 여기서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만 웃어줄래, 얘들아?”
“.. 흐흣.”
“너희도 딸 키워보면 알아. 나 정도면 상당히 쿨한 편이라고.”
왜일까.
말할수록 추해지는 기분이다.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연두는 범재와 예림이를 보며 얘기했다.
“범재오빠랑 예리미언니는 사랑해도 돼여!”
“으, 응?”
“어른이니까…”
그 말대로였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지 않았는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동건이가 낄낄 웃으며 끼어들었다.
“뭐, 사랑하는 건 아닌 거겠지.”
“네?”
“연두가 그랬잖아. 좋아해서 사귀게 되면, 더 많이 좋아해서 사랑을 하게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를 향해 말한다.
“근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닌 거 아닐까? 아직은 소꿉장난 같은 거지.”
“소꿉장난이여..?”
“응.”
연두를 향한 말.
그러나 그 말이 향하는 건 범재와 예림이 쪽이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소꿉장난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으면 말 다 한 거지.
‘재밌네.’
나로서는 재밌는 상황이다.
어떻게 반응하려나.
팝콘 대신 커피를 쪽쪽 들이켜며 상황을 주시했다.
“…… 하는데.”
마침내 열리는 입.
명확하지 않은 발음에 동건이가 물었다.
“뭐?”
그러자 들려오는 말.
“…… 사랑, 한다고.”
이번에는 명확했다.
주연이가 입을 틀어막고, 범재는 커피를 냉수처럼 들이켜고, 예림이는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열을 식힌다.
범재, 이 녀석.
물러서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구먼.
“… 사랑.”
세상 감동한 표정으로 짤막하게 뱉은 단어.
이렇게 사랑을 배우는 연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