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09)
609화. 픽 미 업!
[고장난 벽시계]구수한 음률이 울려 퍼진다.
고장난 벽시계.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이 음이 귀에 익었다.
‘예전 노래가 분명한데.’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어떤 곡을 택하더라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하고.
그 예상마저도 뛰어넘는 선곡이다.
-박훈아
가수명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인 것과 별개로 요즘 노래는 확실히 아니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 노래일지도.
“푸핫!”
“대박이다, 흐흣.”
“역시 상상을 뛰어넘네, 우영이는.”
그런 우영이의 선곡에 다들 웃음을 터트린다.
비웃음은 아니다.
워낙 텐션이 올라있던 만큼 뭘 해도 깔깔 웃을 법한 상황이었다.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 노래 알아, 연두야?”
묻긴 했지만 알 리가 없지.
역시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엄청 예전에 나온 노래야.”
“예전에요..?”
“응. 연두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마 우영이오빠가 태어나기도 전일 걸? 그러니까 이 노래가 연두랑 우영이오빠보다 나이가 많은 거지.”
“우아…”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러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뗀다.
“아빠..”
“응, 연두야.”
“그런데.. 왜 벽시계가 고장이 났어요..?”
제목 뜻이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게.”
나도 알 수가 없다.
멜로디는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지만 가사는 하나도 모르니 말이다.
아마 가사를 봐야 그나마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틱.
그 사이 조금은 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됐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
조금 놀랐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놀란 거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미성에.
‘노래할 때 이런 목소리구나, 우영이.’
원래도 목소리가 굵은 편은 아니지만 확연히 달랐다.
노래할 때 목소리는.
비유하자면 불순물이 모두 제거된 원석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오..”
“목소리 진짜 예쁘다.”
“의외로 잘 어울리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부르는 것도.”
동감이다.
원곡은 전혀 다른 느낌일 거 같거든.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음감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비슷할 줄 알았는데.’
양심고백하자면 우영이도 노래를 못할 거라 지레짐작했다.
워낙 나랑 비슷한 점이 많으니까.
소외감 드네. 여기서 노래를 지독하게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겠구나 생각하니.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체하고 있느냐~ ♪”
처음에는 마냥 선곡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노래에 점점 몰입이 됐다.
가사는 깊었다.
예상과 달리 진심을 다해 노래하는 우영이의 모습이 교차하며 더 감성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안 걸까.’
말 그대로다.
이 노래를 우영이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내가 아는 우영이는 음악을 찾아 듣는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 그 분인가.’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천재경 화백.
아마 그녀가 생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영이가 이 노래를 선곡한 것도 납득이 갔다.
가사와 음을 알고 있는 것도.
아무리 미술 외에 관심이 없더라도, 정말 가까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공유하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뜬구름 쫓아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지나간 청춘~ ♪”
어느새 웃던 아이들도 가만히 노래에 몰입하고 있었다.
연두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느낀 건지 몰라도,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
마지막 소절.
그제야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어느 정도 알 거 같았다.
알 수 없다.
벽시계가 왜 고장이 난 건지는.
‘시계가 멈춰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모든 노랫말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이 될 거 같았다.
청춘도 흘러간다.
노래가 끝나자 연두가 살며시 눈을 뜬다.
“연두야.”
“네, 아빠..”
“잘 모르겠네. 왜 벽시계가 고장난 건지는.”
“괜찮아여.”
해맑게 웃으며 연두가 말한다.
“고장나면 고치면 되니까..!”
“흐흣.”
뻘하게 터졌다.
확실히 명안이긴 하다.
마이크를 내려놓자 들려온 건 주연이의 감탄사였다.
“.. 와.”
그러고선 말한다.
“선우영, 너 목소리 진짜 좋다. 집에서 혼자 노래연습이라도 해?”
“아니.”
“그럼? 노래도 잘하던데.”
동의한다는 듯 서린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지는 우영이의 말.
“뭐, 재능인 거겠지.”
그 말을 듣고 우영이가 맞구나 싶었다.
***
우영이가 의외의 노래실력을 선보였지만 귀신같이 균형추가 맞춰졌다.
옆에 앉은 은서린에 의해.
잔뜩 수줍어하며 마이크를 건네받더니 부른 곡은 윤희의 ‘비밀번호 486’이었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
특징을 꼽자면 나 못지않은 음치였다는 것.
상당히 놀랐다. 나 이상으로 음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걸 보고.
‘역시 있어줘야지.’
다 잘 부르면 무슨 재미겠는가.
그렇다고 혼자 그 역할을 맡기는 싫었는데 다행이다.
동지가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여, 여기……”
세상 신나서 부르더니 노래가 끝나니 바로 다소곳해진다.
특이한 캐릭터군.
언제나처럼 동건이의 친화력이 빛을 발했다.
“이야, 노래가 아주 시원시원한데요?”
“.. 그런가요?”
“네. 근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하쉴?”
먼저 편하게 해 주니 잠재되어있던 서린의 인싸력도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좋지, 좋지~”
“뭐야, 나도!”
“저도 반말해도 돼요?”
바로 말을 놓는다.
이후 주연이가 리모콘을 손에 들고서 말한다.
“연두야!”
“.. 네!”
“언니한테 와 봐!”
그 말에 연두가 눈을 찡긋하고서 폴짝 일어났다.
간다는 신호인 걸까.
미소를 짓자 배시시 웃으며 주연이를 향해 달려간다.
“언니 무릎에 앉아!”
무릎 위에 연두를 올려서 양손으로 감싸안는 주연이.
그러고선 묻는다.
“헤헹, 연두는 뭐 부를래?”
하긴 그렇지.
모두 한 번씩 불렀으니 이제 남은 건 나와 연두뿐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마지막 차례인가.
‘설마 안 시켜주지는 않을 거 아냐.’
그럼 장난 없이 진지하게 삐질 거다.
곰곰이 고민하던 연두가 무언가 떠오른 듯 외마디 소리를 낸다.
“아!”
“생각났어, 연두야?”
“네에.”
“뭔데?”
고개를 돌린 연두가 귀에 대고 뭐라뭐라 속삭인다.
순간 흠칫하는 주연이.
“.. 여, 연두야.”
“응.”
“진짜 그 노래가 부르고 싶어?”
왜인지 떨리는 물음에 세상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뭐길래 그러지.
갈등하는가 싶더니 주연이는 마음을 먹은 듯 검색을 시작했다.
[Pick me up]바로 알았다.
왜 주연이가 멈칫했던 건지.
“푸하핫!”
“연두 선곡 센스 뭐야~”
“와.. 왜 생각 못하고 있었지? 하주연이랑 왔으면 이 노래 한 번은 해 줬어야 하는데.”
“흐흣, 쭈여니 얼굴 빨개졌다…”
“오케이. 다음 곡은 ‘벚꽃이 지면’이다.”
“그 곡 아직 업데이트 안 됐어, 멍충아.”
“아, 그러네? 그거 오늘 공개했지? 근데 멍충이는 취소해라.”
그렇다.
픽 미 업은 단연 ‘프로젝트 101’의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곡이었다.
첫방과 파이널을 장식했던 주제곡.
“뭐 해, 다 일어나!”
벌떡 일어나며 호응을 유도하는 동건이.
의도는 뻔했다.
노래도 노래지만 이 곡의 흥행은 바로 중독성 넘치는 댄스에 있었으니까.
마이크는 연두의 손에 넘어갔다.
“저기.. 나는 아까 췄으니까 빠져도 되지?”
주연이가 은근슬쩍 빠지려 했지만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너 나랑, 하냐 장난?”
“.. 응?”
“당연히 네가 맨 앞에서 춰야지! 우리는 처음 춰 본다고!”
“맞아, 맞아!”
흔치 않은 경우였다.
동건이의 말에 예림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건.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연두가 귓속말로 이 노래를 선곡하는 순간부터.
“하아..”
결국 일어서는 주연이.
구석에 앉아서 나는 세상 재밌게 그 모습을 관람했다.
불똥이 튀기 전까지는 말이다.
“.. 행님?”
“응?”
“안 일어나고 뭐하십니까?”
꼴깍 침을 삼킨 내가 되물었다.
“.. 나도 해야 하는 거야?”
“당연하죠!”
주연이도 가세한다.
“대표 춤꾼인 오빠가 빠지면 어떡해요!”
“.. 어떡해요!”
메아리가 아니다.
어느새 주연이 옆에 꼭 붙은 연두가 외치는 소리다.
미치겠구먼.
이렇게 된 이상 뺄 수는 없잖아.
“후우..”
호흡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작한다?”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음악이 시작됐다.
물론 보컬은 연두였다.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 너와 나 꿈을 나눌 이 순간~ ♪”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
시은이만큼 노래를 잘하지는 않지만, 세상 맑고 깨끗한 목소리였다.
흥을 주체하지 못해 둠칫거리는 것도 귀엽다.
‘.. 아직은 아니야.’
모두 가볍게 리듬만 타고 있는 상황.
나 같은 춤꾼은 안다.
진정한 고수는 흔들어 젖혀야 하는 타이밍을 안다는 걸.
그게 언제냐고?
“I want you pick me up!”
바로 지금이었다.
한 손에 마이크를 쥔 연두를 시작으로 모두의 손이 올라갔다.
“pick me, pick me, pick me up~ ♪”
통통 튀는 연두.
그 와중에도 마이크는 손에서 놓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지금만큼은 연두가 센터였다.
“우오오!”
동건이는 열정 과다였다.
춤이면서 춤이 아니다.
그럼 나는 뭐 하고 있냐고? 말해 뭐하겠는가.
“픽 미, 픽 미!”
춤추고 있다.
참고로 아직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또 하나 늘어날 거 같았다.
***
즐거운 시간이었다.
노래방에서 나와 차례로 집에 데려다줬다.
마지막은 주연이였다.
“내일부터 엄청 바쁠 텐데 얼른 들어가 봐, 주연아.”
“네, 오빠.”
“아, 참.”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글거릴 수도 있긴 한데……”
막상 얘기하려니 낯간지럽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딱히 후회할 거 같지는 않고.
내리려다 말고 귀를 쫑긋 세우는 주연이를 향해 말했다.
“주연이 네가 아까 그랬잖아.”
“네?”
“무대 위에서 엄청 떨렸는데, 나랑 연두가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떨림이 가라앉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 맞아요.”
“앞으로도 그랬으면 해서.”
“…”
“힘든 상황이 많을 거야. 그럴 때마다 생각해. 우리가 항상 주연이 네 편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딱히 특별한 존재라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해주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도 외면하지 않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 알고 있으니까.’
단지 그 사실만으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이제는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때 들려오는 웃음소리.
역시 너무 오글거렸나 하는 생각에 얼굴에 열이 올라오려는 찰나.
“.. 오빠는 항상 그래요.”
설마 항상 오글거린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상처받을 거 같은데.
“오글거릴 수도 있다면서, 하나도 안 오글거리는 말을 해요.”
“.. 어?”
“감사해요. 진심으로요.”
그렇게 말하고서 주연이가 횡설수설하듯 덧붙인다.
“으.. 이게 진짜 오글거리는 거 아니냐구요.”
“푸흣.”
웃음을 터트린 나는 말했다.
“그러네.”
“네?”
“장난이야. 잘 전달된 거 같아서 좋네. 나머지는……”
“.. 나머지는?”
“편지로 듣도록.”
그런 내 말에 둥그레진 눈으로 주연이가 말한다.
“편지요? 설마 오빠 저한테 편지까지 쓰셨어요? 그건 진~짜 오글거릴 거 같은데요?”
“.. 윽.”
방금의 복수인가.
뭐, 괜찮았다.
편지는 맞는데 주연이가 생각하는 아날로그식 편지는 아니니까.
편지로 들으라는 게 힌트라면 힌트다.
‘영상편지.’
지금쯤이면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네.
슬쩍 화제를 전환했다.
“연두는 주연이언니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그런 내 물음에 연두가 말한다.
“풀어주세요!”
“응?”
“안전벨트 풀어주세요..!”
내가 아닌 주연이를 향한 말이다.
정차해있으니 상관없겠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니 주연이가 벨트를 풀어줬다.
“됐어, 연두야?”
“네에.”
쪽.
순식간이었다.
불쑥 고개를 뻗은 연두가 주연이의 볼에 입을 맞춘 건.
“.. 으, 응?”
기습뽀뽀에 깜짝 놀라 흔들리는 주연이의 눈동자.
끝이 아니었다.
입술을 뗀 연두가 속삭였으니까.
“연두도.. 항상 주연이언니 편이에여! 그리고……”
“…”
“하고 싶은 말은.. 편지했어요..!”
편지로 대동단결된 초연 부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