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20)
620화. 스튜디오 초록
지우는 세상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가 온 건 꿈에도 모른 채로.
“.. 흣.”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
손은 멋대로 건반 위를 춤춘다.
잘 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떻게 치더라도 찰떡같이 반응하는 선재오빠였으니까.
“Yo~ 나는 밷 보이~ 밷 밷 보이~ ♪”
“나는 안 해 숙제~ 나는 안 들어, 엄마 말~ 체킷!”
“나는 못된 놈! 나는 버릇없는 녀석!”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린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
일탈에서 비롯된 힙합의 참맛을 지우는 느끼고 있었다.
딴. 따단.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입부하고 얼마 안 돼서,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던 어느 날.
‘.. Yo.’
깜짝 놀라 돌아보니 지우의 눈앞에 서 있었다.
힙합소년 하나가.
‘드랍 더 비트!’
‘으, 응?’
‘췤! 췤! 드랍 더 비트!’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몰랐지만 손은 분명하게 피아노를 가리키고 있었다.
반강제로 앉게 된 피아노.
시선에 못 이겨 소심하게 건반을 누르자 들려왔다.
‘Yo, 내 이름은 선재! 사람들은 말해, 천재!’
그때부터였다.
지우와 선재가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건.
특히나 선재오빠가 반항적인 가사를 뱉을 때면 지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쾌함을 느꼈다.
묵은 갈증이 다 풀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 체크! 체크!”
어느샌가 지우는 더블링까지 쳐 가며 비트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선은 뛰어다니는 선재오빠를 향했다.
그런데,
“Yo, 엄마는 나를 혼냈어~ 하지만 나는 안 숙여, 고개!”
선재의 발이 멈췄다.
가사를 끝맺으며 고개를 드는 순간 마주친 사람이 있었으니까.
“…”
건반 위를 춤추던 지우의 손은 이미 멈춘 지 오래였다.
그야, 봤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지우는 간신히 입을 뗐다.
“.. 어, 엄마?”
말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제자리에서 흠칫 들썩이는 선재의 어깨.
허나 당황한 건 둘뿐만이 아니었다.
꼴깍.
연두가 침을 삼켰다.
살짝 고개를 틀어 이희영의 표정을 보고는 재빨리 원위치한다.
깜빡거리는 눈.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던 터라, 연두로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Yo.. 하지만 알아~ Yo! 엄마의 사랑.. 체킷!”
어설픈 수습.
그마저도 랩으로 하는 선재였다.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 속에서, 다들 쥐 죽은 벙어리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들려오는 목소리.
“반갑구나.”
의외로 이희영의 입에서 나온 건 질책의 말이 아니었다.
‘그러려고 온 건 아니니까.’
훈계를 하러 음악동아리를 방문한 건 아니다.
애당초 그랬다.
딸을 제외하면 그녀는 훈계는커녕 딱히 관심을 두지도 않는 타입이었다.
“연두야.”
“네.”
“선생님은 곧 오실 거라고 했지?”
연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갈 테니 바구니를 들고 먼저 가 있으라는 말을 선생님한테 들었으니까.
그런 와중에 지우 엄마를 만난 거고.
“잠깐 여기 앉아서 기다려도 괜찮을까?”
“네.”
“여기 앉으세요!”
아이들은 바로 자리를 안내했다.
그렇게 음악동아리에 순조롭게(?) 입성한 이희영이었다.
***
이희영은 꽤나 포스가 있었다.
힐끗힐끗 눈치를 보게 만들 정도로.
막상 당사자인 그녀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앉아서 음악실 여기저기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어, 엄마..”
그 사이 의자에서 내려온 지우가 가까이 다가왔다.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가 음악실에 온 것도 그렇지만, 방금 스스로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걸렸다.
‘.. 나, 엄청 좋아했지?’
부정하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도 봤겠지.
아마 혼이 날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혼이 나는 것보다도, 엄마의 차가운 표정을 보는 게 더 무서웠다.
“지우야.”
“그, 그게……”
“왜 그러고 서 있니? 어서 앉으렴.”
“.. 어? 으, 응!”
의외의 반응이었다.
혹시 전부 보지는 못한 걸까? 어쩌면 선재오빠만 보고 나는 못 봤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과 함께 지우는 자리에 앉았다.
슥.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냈다.
우선은 엄마가 가장 좋아할 만한 걸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펜을 쥐는데,
“지우야..”
“여, 연두야?”
“같이 하자. 공부…”
어느샌가 옆에 앉은 연두도 책상 위에 펼치고 있었다.
1학년 수학 교과서를.
“으, 응!”
그렇게 갑작스레 공부를 시작한 두 아이.
이희영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그건 그렇고.’
아직 음악동아리에 온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 상태였다.
좀 더 파헤치고 싶었다.
지금껏 확인한 건, 무척 밝은 분위기라는 점이다.
‘지우가 그렇게 웃을 정도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처음 봤다.
뭐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광기 어린 연주를 하는 딸의 모습은.
음은 엉망이었지만.
지우의 소심한 성격을 생각하면, 얼마나 이 장소를 편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가라앉은 거 같긴 한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여기서 보고 싶었던 아이가 몇 명 있었다.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물어보려 고개를 돌리는데, 문제를 보며 끙끙거리는 지우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로서의 의무감이 발동했다.
‘어려운 문제가 있니?’
그렇게 말하려는 참이었다.
“킁!”
깜짝이야.
뒤로 살짝 물러난 이희영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녀가 찾고 있던 아이 중 하나였다.
“모르는 게 있는 거야?”
예고도 없이 나타난 거치고는 너무 자연스럽게 묻는다.
딸아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으, 응!”
“뭐가 어려운 거야?”
“이 문제..”
서술형 문제였다.
수식으로 물으면 간단하지만, 의도적으로 풀어서 헷갈리게 하는 문제.
그걸 수식으로 표현하는 게 문제의 키포인트였다.
‘지우의 약점이지.’
항상 그랬다.
완성된 수식을 푸는 건 잘했지만, 수식을 만들어내는 건 늘 어려워하곤 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희영이었다.
따라서 궁금했다.
말로만 듣던 유준이라는 아이가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해줄지.
“햐!”
문제를 보고 유준이라는 아이는 난데없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말한다.
“선아는 손이 엄청 빠른 거야!”
“으, 응?”
“종이학을 하루에 53개나 접을 수 있는 거야!”
선아는 문제에 나온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자그맣게 연두가 중얼거린다.
“우아.. 연두는 하나도 잘 못 접는데……”
난데없는 연두의 자학에, 이희영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 사이 종이에는 적혔다.
53이라는 숫자와 굉장히 낯이 익은 모양 하나가.
‘.. 콧구멍!’
점 두 개와 좌우를 감싸는 곡선.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딸이 그토록 즐겁게 그리는 콧구멍이었다.
이게 그 원조 콧구멍이구나.
“여기를 읽어보는 거야!”
유준이의 지시에 지우는 또박또박 문제를 읽었다.
“서, 선아가 30일 동안 접는 종이학의 개수는 몇 개일까요?”
“킁!”
시원하게 들이마신 뒤 유준이는 말했다.
“그 개수가 바로 콧구멍인 거야!”
뒤에 이어지는 설명.
가만히 듣고 있던 이희영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신기하다.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건 없는데, 자연스레 사고할 수 있도록 단서를 던져준다.
“.. 아!”
마침내 지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코, 콧구멍은.. 53 곱하기 30!”
끝내 수식을 만들어낸 건 지우였다.
53 × 30 = 콧구멍.
세 줄짜리 문제가 간단한 수식 하나로 정리됐다.
그리고 그걸 못 풀 지우가 아니었다.
“1590!”
“정답인 거야! 킁!”
환하게 웃는 지우.
옆에서 연두도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비록 하나도 못 알아듣긴 했지만.
“연두는 없는 거야?”
이번에는 유준이의 시선이 연두를 향했다.
“어려운 문제! 킁!”
“.. 있어요!”
“뭐든지 물어보는 거야!”
의기양양한 표정.
사양하지 않고 연두는 곧바로 물어봤다.
“이 곱하기 일은 왜 이에여..?”
“…”
콧구멍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문제는 있었다.
수학의 본질을 탐구하는 연두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버린 서유준 선생님이었다.
***
잠시 후.
음악실에 도착한 담당교사 유신애와 이희영은 짧은 대화를 나눴다.
“궁금했거든요.”
“네?”
“최근 지우한테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게 음악동아리로 인한 변화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고요.”
유신애가 옅게 미소 지었다.
사전에 전화로 양해를 구했기에, 오늘 그녀가 방문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감도 없지 않아 있었고.
“그래서.. 어떠셨나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유신애는 물었다.
“음악동아리로 인한 변화가 맞는 거 같나요?”
그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인지 부정적인 방향인지는 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담당 교사인 그녀의 눈에도 지우의 변화는 훤히 보였으니까.
“.. 그런 거 같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두 확인한 이희영이었다.
연두와 아이들은 알던 모습 그대로였고, 유준이라는 아이는 예상대로 영특해 보였고, 그 뒤에는 예은이라는 아이도 만나볼 수 있었다.
화기애애한 동아리 풍경.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지우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는 거다.
‘그럼 괜찮겠지.’
직접 두 눈으로 본 결과,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장소라는 것.
“좋은 동아리인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1반 교실에 가서 기다릴 테니 지우한테 좀 전해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이희영은 돌아섰다.
허나 그녀는 몰랐다.
아이들 틈에서, 자신 역시 웃음 짓고 있었다는 걸.
***
작화팀 운영방식에 있어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업무장소의 유연성도 그중 하나였다.
‘그림의 장점이지.’
태블릿, 또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그림은 어디서든 그릴 수 있다.
꼭 스튜디오 내부가 아니더라도.
특히나 혼자 딸을 키우는 나나, 대학교에 다니는 우영이는 더더욱 업무공간의 유연성이 필요했다.
‘다른 팀원도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였다. 꼭 스튜디오 내부가 아니더라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건.
나태해질 우려가 있지 않냐고?
당연하다.
그러나 그걸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줌을 활용한다거나, 그 밖의 장치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림은 업무량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개인이 아닌 팀 단위라면.
사각. 사각.
장소에 구애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스튜디오에 있는 동안은 손을 쉬고 싶지 않았다.
주연이 자작곡인 봄꽃.
오늘은 프로젝트 첫날이다.
그 이미지를 구체화해서 스케치를 통해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두는 정도가 오늘의 목표였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고.
‘다들 장난 아니네.’
첫날 버프인지 몰라도 스튜디오 내부에는 사각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간간이 얘기를 주고받긴 했지만.
비로소 실감이 간다. 우리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게.
‘.. 팀이라는 거지.’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동시에 기대가 된다.
우리의 첫 프로젝트, 그 완성물이 어떤 모습일지.
‘이제 막 첫발을 떼긴 했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 힘주어 내딛는 첫발이, 앞으로의 여정에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라고.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스튜디오 초록’의 첫 프로젝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