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23)
623화. 최고의 선물
“누, 누렁이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거 같았다.
그나저나 누렁이가 왜?
방 여기저기를 훑어봤지만 지금 내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 어?”
그런 와중 눈에 들어오는 방바닥의 얼룩.
명백한 토였다.
연두 토는 아닌 거 같으니,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었다.
“연두야.”
“.. 네.”
“누렁이가 토한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고양이를 키운다면 알겠지만, 고양이는 ‘그루밍’이라는 걸 한다.
그루밍이 뭐냐고?
온몸을 핥아서 털에 묻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행위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는 상당히 많은 털을 삼키게 되고, 그렇게 생성되는 털뭉치를 ‘헤어볼’이라 한다.
‘자주 볼 수 있지.’
계속 몸에 축적할 수 없으니 꽤나 빈번히 고양이는 헤어볼을 토하듯 뱉어낸다.
누렁이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헤어볼을 뱉어낸 적이 있었다.
문제가 있는 행위는 아니었다.
헤어볼을 뱉는 건 누렁이뿐 아니라 어떤 고양이든 자연스럽게 하는 행위니까.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지, 연두는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서 발을 동동 구르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해.’
이렇게까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처음 보는 게 아니니까.
“근데 왜 그렇게 놀란 거야, 연두야?”
“누렁이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연두는 덧붙였다.
“토를 너무 많이 했어여..”
“응?”
주저앉은 채로 연두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책상 밑이다.
그곳을 본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 토다!’
미처 보지 못한 토가 있었다.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한 반응이 스스로도 황당하긴 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네 군데가 더 있었다.
그러니까 누렁이는 총 여섯 군데에 토를 한 거다.
이건 확실히 이상했다.
‘보통 헤어볼은 아무리 많이 뱉어도 두 번 정도니까.’
자세히 보니 헤어볼도 아니었다.
털뭉치가 뭉쳐있는 게 아니라 사료를 뱉어낸 거 같다.
노란색 위액도 보이고.
용케 치우기 쉬운 마룻바닥에만 해 두긴 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 너무 많이 했어.’
연두 말대로였다.
고양이라고 해서 사람과 메커니즘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연두가 여러 번 토를 한다면 어떨까.
생각할 것도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병원에 데려가겠지.
“누렁이는 어딨어, 연두야?”
“저기……”
책장 밑 구석이다.
시선을 낮춰서 들여다보니 누렁이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눈이 마주쳤다.
“… 냐아.”
울음소리에 힘이 없다.
몸도 떨리는 게 확실히 평소 상태와는 다르다.
살짝 손을 내밀자,
탁.
거칠게 쳐낸다.
많이 예민해져 있는 거 같다.
곤란하네.
이런 상태라면 도무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렁아..”
그때였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연두가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막으려 했다.
이렇게 예민한 상태에서 건드렸다가는 다칠 수 있으니.
그런데,
“냐.. 냐아..”
내민 연두의 손을 할짝인다.
아니, 이 녀석.
서운해할 상황은 아니지만 차별 대우가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다행이었다.
‘발톱도 잘라뒀고.’
어지간해서 다칠 일은 없을 거다.
물 때가 간혹 있긴 하지만, 이빨을 세워서 무는 경우는 없으니까.
녀석도 우리를 다치게 하기는 싫은 거겠지.
가족이니까 말이다.
“연두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렁이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
“병원에여..?”
“응. 심각한 건 아닐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러니까 연두가 누렁이를 살짝 들어서 꺼내 볼래?”
병원 얘기에 심각해진 표정.
그래도 내 말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 거 같다.
천천히 다른 쪽 손을 내민다.
“누렁아..”
다행히 저항은 없었다.
연두는 누렁이를 천천히 들어 올려 품속으로 가져왔다.
바로 지금이었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다.
슥.
재빨리 누렁이를 잡았다.
“냐! 냐아!”
거칠게 저항하는 누렁이.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양손으로 꼭 잡고, 미리 한쪽에 준비해 둔 이동장에 누렁이를 집어넣었다.
“누, 누렁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연두.
그럴 만도 했다.
의도와 달리 다소 과격해 보일 수 있는 모션이었으니까.
“냐아! 냐아..!”
이동장에 들어가서는 더욱 구슬프게 운다.
그러나 풀어줄 수는 없다.
연두가 아팠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갔을 테니.
“연두야.”
“.. 네.”
“아빠는 누렁이 데리고 병원에 갈 건데. 연두도 같이 갈래?”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누렁이의 이런 모습을 보고 안 가겠다고 할 연두가 아니니까.
일어나서 눈 깜빡할 새에 옷을 갈아입는다.
“빨리 가여, 아빠..!”
“그래.”
그렇게 우리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
“냐아.. 냐..”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치지 않는 울음.
옆을 바라봤다.
눈물이 맺힌 채로 걸어가고 있는 연두가 보인다.
‘용케 안 울고 있네.’
누렁이가 아프다.
그 사실만으로도 진작에 울었을 법한데 꾹 참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결국 넌지시 입을 뗐다.
“괜찮아, 연두야?”
“네..”
“속상하지? 누렁이가 아파서.”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에여.”
자그맣게 덧붙인다.
“연두가 속상하면.. 누렁이 더 아프니까……”
그렇구나.
누렁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모양이다.
괜히 언니가 아니네.
“너무 걱정하지 마, 연두야.”
대견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병원 가면 금방 나을 거야. 연두랑 아빠도 그렇잖아.”
“.. 네?”
“매일같이 건강한 사람은 없어. 한 번씩 감기에 걸리고, 체하기도 하고, 넘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연두도 아팠던 적이 있지?”
“맞아여..”
“그런데 병원에 가니까 어땠지?”
기억을 되새기는가 싶더니 연두는 얘기했다.
“다 나았어요..”
“그래. 누렁이도 마찬가지야. 병원 가면 금방 나을 거야.”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조금은 안심이 된 표정이다.
이동장 안에 있는 누렁이를 바라보며 자그맣게 속삭인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누렁아…”
“.. 냐아.”
비록 손이 닿지는 않지만.
목소리에 담긴 연두의 따뜻한 마음은 분명히 누렁이에게 닿을 거 같았다.
***
[소망동물병원]끼익.
동물병원에 도착한 나는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 어머!”
오랜만에 보는 의사의 얼굴.
한동안 동물병원을 찾을 일이 없긴 했지.
“오랜만에 오시네요?”
“하하, 그러네요.”
“한동안 안 오시길래 이사 가신 건가 했거든요.”
의사와 내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연두는 다른 누군가와 격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도 있구나, 이 녀석.
“왈!”
처음 동물병원에 왔을 때부터 우리를 격하게 반겨줬던 대형견이다.
‘이름도 기억나네.’
누렁이와 마찬가지로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이 났다.
군밤이.
색깔도 군밤을 연상시키는 갈색이었다.
“아, 안녕..”
누렁이 걱정에 마냥 해맑게 인사하지는 못하는 연두였다.
반가워 보이긴 했지만.
한편 이동장을 본 의사는 말했다.
“누렁이를 데리고 오셨네요?”
“네.”
“어떤 문제가 있나요?”
“누렁이가 토를 많이 했거든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거의 여섯 번 가까이 토를 해서요. 상태도 좀 안 좋아 보이고요.”
간신히 군밤이에게서 벗어나 옆으로 온 연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이동장을 앞에 둔 의사는 얘기했다.
“그랬군요. 여섯 번이면 확실히 많이 하긴 했네요.”
“그렇죠?”
“네. 혹시 토 사진을 찍어두신 게 있나요?”
“아, 여기 있습니다.
바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인터넷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어느 정도는 알아보고 온 상태였다.
그중 하나가 사진이다.
사진을 들여다본 의사가 얘기했다.
“거의 사료로 보이네요. 위액이 조금 섞이긴 했는데.”
내가 본 것과 비슷하다.
“토하기 전에도 상태가 안 좋았나요?”
“아니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다 못해 세상 활발하던 누렁이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료를 급하게 먹다가 체한 거 같네요.”
“네?”
“가끔 그러거든요. 사람도 그럴 때가 있는 것처럼, 고양이도 사료나 간식을 허겁지겁 먹다가 체할 때가 있어요. 누렁이가 아무래도 급하게 사료를 먹었나 보네요.”
그 말과 동시에 의사가 이동장을 연다.
“…”
역시 안 나오네.
집에서는 죽어도 안 들어가려 하는데, 동물병원만 오면 죽어도 안 나오려 한다.
의사는 능숙한 손길로 누렁이를 빼냈다.
낑. 끼잉.
잔뜩 움츠러든 녀석.
보다 못한 연두가 누렁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의사선생님…”
“네?”
“누렁이.. 괜찮아여..?”
간절한 눈빛이다.
그런 연두를 보며 의사는 자그맣게 웃음 지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 으응?”
“조금 체한 것뿐이니까요. 토를 많이 해서 탈수 증상이 있을 테니 수액만 조금 맞으면 돼요. 그럼 금방 건강한 누렁이로 돌아갈 거예요.”
그에 더해 의사는 덧붙였다.
“사실 지금까지 병원을 찾을 일이 없었던 걸 보면 누렁이는 굉장히 건강한 편이에요. 길냥이 출신인데 지병도 없고요. 아마 그래서 자기 소화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이렇게 병원에 오게 된 게 아닌가 싶네요.”
“하하…”
결국 자신감이 불러온 참사라는 거군.
천천히 좀 먹지, 짜식.
어쨌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거니, 나와 연두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처방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고맙습니다…”
안심한 나머지 축 늘어진 연두가 양손을 모아 인사한다.
의사는 미소로 화답했다.
“에이, 뭘. 연두가 해야 할 건 앞으로도 누렁이랑 행복하게 지내는 거야. 약속할 수 있지?”
“.. 네!”
눈에 꾹 힘을 주고 말한다.
“약속할 수 있어요..!”
“호호.”
그렇게 마무리됐다.
잠깐 심장을 철렁이게 했던 누렁이의 배탈 해프닝이.
***
“하아..”
헤드폰을 벗었다.
밀려오는 감정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 들었다.
짤막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 끝났다.”
새벽 시간이었다.
멤버들이 잠든 시간에도 주연이는 매일같이 작업을 하곤 했다.
그 대장정이 끝난 거다.
한 달을 다 채워서도 아니고, 그 절반인 이주 만에.
‘거의 완성된 곡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빨리 끝맺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뿌듯함이 밀려온다.
그 속에서 두 번의 노크 소리와 함께 작업실 문이 열렸다.
“언니..”
잔뜩 졸린 눈으로 들어온 건 그룹 멤버인 세은이었다.
“아직 안 자?”
“작업 좀 하느라. 세은이 너는 이 시간에 어떻게 왔어?”
“자다 일어났는데 언니가 없어서..”
둘은 룸메이트였다.
그러다 보니 줄곧 존댓말을 고수하던 세은도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됐고.
주연의 옆에 다가가서 앉은 세은은 말했다.
“우음.. 곡 작업하고 있던 거지?”
“응.”
주연이는 덧붙였다.
“지금 완성했어.”
그 말에 세은이 눈을 번쩍 떴다.
“완성했다고?”
“응.”
“와, 대박.. 한 달은 걸릴 예정이던 거 아니었어?”
“흐흥, 그러게. 어쩌다 보니……”
“들어봐도 돼?
피곤함 가득하던 눈이 순식간에 반짝인다.
말없이 주연이는 헤드폰을 씌워줬다.
따단. 딴.
귓가를 울리는 멜로디.
톡톡 건드리듯 이어지는 선율에 따라 자연스레 입이 움직인다.
“자꾸 눈이 가네~ 말간 그 입술에~ ♪”
자다 깨서 잠긴 목소리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였다.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세은의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너무 좋잖아.’
물론 알고 있었다.
프로젝트 101 첫날, 주연이언니가 이 곡을 부르는 걸 보고 한눈에 빠져들었으니까.
그런데 그 이상의 임팩트였다.
툭.
곡이 끝나고 헤드폰을 내려놓은 세은이 주연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선 말했다.
“언니..”
“왜 그래.. 별로야?”
“어, 별로야.”
충격받은 주연을 와락 껴안으며 세은은 말했다.
“내 마음의 별로라고! 언니 진짜 천재야?”
“자, 잠깐…… 우읍.”
한참 부둥켜안고 있다가 떨어진 세은은 말했다.
“언니이..”
“세, 세은아.”
“나중에 톱스타 돼도 나 안 잊을 거지? 응?”
그런 세은의 말에 주연이는 쿡쿡 웃음 지었다.
“그래서.. 진짜 괜찮아?”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내 생각에는 이걸 타이틀곡으로 해야 할 판이라구!”
“다행이다…”
댄스곡이 아니니 타이틀곡은 될 수 없었다.
이미 정해진 것도 있고.
그래도 세은이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근데 언니 진짜 장난 아니다. 스케줄도 그렇게 빡센데, 어떻게 새벽까지 작업하다 자?”
“그러게.”
주연이가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
도저히 불가능할 거 같아도, 막상 부딪히고 나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옅게 웃으며 주연이가 말했다.
“우리 빨리 가서 자자.”
“응. 내일 멤버들한테 들려주자. 이사님도 엄청 좋아하실걸?”
“그랬으면 좋겠네.”
둘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곡을 들려주기도 전에, 매니저가 찾아왔다.
“얘들아.”
“네, 오빠.”
“보여줄 게 있으니까 모여볼래?”
멤버들이 한데 모였다.
그 앞에 매니저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올려놨다.
멤버 중 다혜가 물었다.
“이게 뭐예요?”
매니저의 대답은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너희들 데뷔앨범 앨범 아트. 일단 세 곡이긴 하지만.”
“…!”
특히나 놀란 주연이.
곡 완성에 맞춰 최고의 선물이 찾아온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