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26)
626화. 똑같은 말
“건강하고 씩씩하게 크려면 당근은 꼭 먹는 게 좋거든.”
“…”
순간 예은이 숟가락이 멈췄다.
조금은 당황했다.
일시정지를 누른 듯 동작이 멈춘 건 둘째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당근이 그렇게 싫은가?’
오지랖이라 생각하긴 했다.
이렇게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아예 넣지 말걸 그랬네.
그런 생각과 함께 입을 뗐다.
“예은아. 너무 싫으면……”
“.. 흣.”
그런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숟가락을 든 채로 아주 작게 올라간 입꼬리가.
‘.. 웃는 건가?’
표정만 보면 웃고 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묘하게 느껴진다.
이윽고 예은이는 재차 목소리를 냈다.
“왜.. 아빠들은 당근을 그렇게 좋아해요?”
잘 모르겠다.
궁금해서 묻는 건지, 아니면 따지려고 묻는 건지.
어느 쪽이든 나를 향한 물음이긴 했다.
‘아빠들. 거기엔 나도 속하니까.’
궁금해서 던진 물음이라는 가정하에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빙긋 웃으며 나는 예은이와 시선을 맞췄다.
“싫어해.”
“.. 네?”
“아저씨도 당근 싫어했어, 엄청.”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건지 자그맣게 입이 벌어진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달라.”
“…”
“방금 말한 것처럼 내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니까. 그래서 당근을 좋아하게 됐어.”
“좋아하게.. 됐다구요?”
“응. 내가 싫다고 안 먹으면서 연두한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일부러 막 먹다 보니까 생각보다 맛있더라구? 식감도 아삭아삭하고, 색깔도 보면 볼수록 예쁘고……”
한참이나 나는 당근 찬사를 늘어놨다.
그 후에 말했다.
“그러니까 예은이도 눈 꾹 감고 한 번 먹어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될걸?”
“.. 맞아!”
연두가 맞장구친다.
“연두도 당근 싫어했는데.. 좋아하게 됐어..!”
“하하.”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데, 연두야?”
“모르겠어여..”
“그치? 아빠가 말했잖아. 언제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된다니까.”
“으응!”
귀여운 대답.
재차 예은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올라가 있는 입꼬리. 그러나 방금의 미묘한 미소와는 차이가 있었다.
슥.
숟가락을 든 손이 움직인다.
“아암.”
오물. 오물.
햄스터처럼 부푼 양 볼.
그대로 몇 차례를 오물거리던 예은이의 입이 벌어졌다.
“역시……”
이어지는 짤막한 한 마디.
“.. 맛없어.”
불쌍한 당근.
단번에 사랑받는 건 힘들긴 하지.
그래도 여전히 예은이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우고 있었다.
***
식사는 잘 마쳤는데 문제가 생겼다.
“예은아. 진짜 괜찮은데…”
들은 체도 안 한다.
식사대접을 받았으면 보답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러고 있다.
그 최소한의 보답이 설거지였다.
“저기, 예은아.”
“네.”
“설거지해 본 적은 있니?”
“…”
잠깐의 텀이 지나고 굉장히 어색한 답이 돌아온다.
“.. 다, 당연하죠!”
대답을 듣고 확신했다.
처음이라는 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런 예은이를 보고 연두도 소매를 걷고 나섰다.
“도와줄께, 예은아!”
그래.
어쩌면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설거지하는 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거 같으니.
“대신 둘 다 조심해야 한다? 접시나 컵을 깨기라도 하면……”
뭘 생각한 건지 예은이의 어깨가 흠칫 들썩인다.
나는 말을 이었다.
“손을 다칠 수 있으니까.”
그건 내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접시나 컵은 새로 사면 되지만, 상처가 나면 아무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레나가 손을 다쳤던 기억도 있고.
‘안 되겠어.’
훈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둬야겠다.
감독관처럼 옆에 서서 말했다.
“그럼 연두가 세제를 문지르고 예은이가 헹구는 거로 할까?”
“네!”
“뭐, 어느 쪽이든 자신 있으니까.”
그렇게 역할분담이 끝나고 본격적인 설거지가 시작됐다.
쏴아-
결과적으로 말해 설거지는 엉망이었다.
둘 다 의지는 만땅이다.
다만, 설거지는 의지만이 아닌 나름의 경험치와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이다.
슥. 슥.
연두는 세제를 문지르는 게 아니라 바르고 있다.
세상 부드럽게.
그걸 전해 받은 예은이는 물로 헹구는 게 아니라 뿌리고 있다.
“.. 헤.”
옆에 올려두고 짓는 만족하는 표정이 포인트다.
미치겠군.
덤 앤 더머를 능가하는 설거지 듀오다.
‘뭐, 예상은 했으니까.’
제대로 된 설거지일 거라고는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보기 좋았다.
보답하겠답시고 스스로 싱크대 앞에 선 마음이 예뻤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다시 해야 할 거 같지만.
“.. 다 했다! 응?”
설거지를 끝내고 환호하다가 비틀거리는 예은이.
이럴 줄 알았지.
괜히 옆에 서 있던 게 아니다.
키가 안 닿아 의자 위에 올라간 만큼, 넘어지면 다칠 우려가 있었으니까.
툭.
양팔로 조심스레 받쳐줬다.
“조심해야지.”
“.. 아.”
차례로 의자에서 내려주고선 말했다.
“고마워, 얘들아.”
“헤헤..”
배시시 웃던 연두가 중얼거린다.
“설거지 재밌다…”
이전에도 연두는 몇 번이고 설거지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얘기했다.
키가 닿을 정도가 되면 해도 된다고.
“아빠!”
왜일까.
이 해맑은 외침 속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이제 연두랑 같이 설거지해여..!”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다.
“의자 위에 올라가면 연두도 할 수 있어요!”
이러면 키가 안 닿으니까 나중으로 미루자는 핑계도 못 대잖아.
큰일이군.
또 다른 핑곗거리를 강구해 봐야 할 듯했다.
***
일을 마친 조영은이 예은이를 데리러 온 건 늦은 저녁이었다.
“어머.. 죄송해서 어떡해요.”
“하하, 아닙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에 꼭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그녀는 연신 사과했다.
예은이를 찾아 나선 것과 신세를 진 사실을 모두 첫째에게 전해 들었으니까.
주원과 연락을 나누기도 했고.
“예은이 너.. 아니다, 빨리 인사드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예은이가 꾸벅 인사한다.
“안녕히 계세요..”
“감사하다고 해야지!”
“보답했단 말이야!”
“뭐? 네가 무슨 보답을 해?”
“설거지했거든?”
실소를 뱉으며 조영은이 말했다.
“어쭈? 집에서 엄마 설거지할 때는 쳐다도 안 보면서?”
“…”
예은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거짓말을 들켰으니까.
어찌어찌 연두와도 작별인사를 주고받았다.
“잘 가, 예은아..”
“응..”
나가기 직전.
주춤하다 살짝 고개를 튼 예은이가 입을 뗐다.
“…… 될까요?”
“응?”
“또 와도 될까요?”
발그레해진 얼굴로 덧붙인다.
“여, 여기는 안전하니까! 수호동물이 있어서 괴수도 못 들어오고!”
“우리집도 충분히 안전하거든?”
“아니야! 우리 집에는 바보로돈이 산다고!”
“언니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모녀의 대화에 웃음을 터트린 주원이 말했다.
“물론이지. 언제든지 놀러 와, 예은아.”
질세라 연두도 덧붙인다.
“놀러 와..!”
나란히 선 연두와 주원.
다시 돌아선 예은이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즐거웠니?”
혼이 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물음이었다.
자연히 흘러나오는 대답.
“.. 응.”
그런 예은이의 말에 조영은이 말했다.
“다행이네.”
“왜 엄마가 다행이야? 즐거웠던 건 나인데.”
“원래 딸이 즐거우면 엄마도 좋은 거야.”
“치..”
볼멘소리를 내며 예은이는 말했다.
“이상하네. 엄마도, 아빠도.”
조영은이 흠칫 몸을 떨었다.
딸이 ‘아빠’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건 무척 오랜만이었으니까.
그것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니?”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
연두와 같이 설거지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누렁이한테 간식을 주고.
모두 즐거웠다.
그러나 가장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 있었다.
‘내 아이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니까. 그래서 당근을 좋아하게 됐어.’
그 말이 자꾸만 맴돈다.
예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똑같이.. 말했어.”
“응?”
“아니야!”
고개를 휙휙 젓고서 예은이는 얘기했다.
“근데 엄마.”
“응.”
“아저씨가 엄마보다 요리 훨씬 잘한다?”
“…”
대답 대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 조영은이었다.
***
작화팀을 개설했다고 해서 연두튜브 활동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지 않냐고?
‘충분해.’
편집실력이 향상된 탓에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할애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오히려 연두부의 반응을 확인하는 시간이 더 지장을 줄 정도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지.’
어떨 때는 새벽까지 보다 잠든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업로드한 영상 반응을 확인하느라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연두와 초록의 좌충우돌 설거지!(feat. 조기교육!?)]보다시피 요즘은 일상 위주의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번에는 설거지다.
예은이가 왔다 간 이후로, 식사 때마다 연두는 설거지를 못 도와줘서 안달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못 하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가르쳐주기로.
‘자, 연두야.’
‘네!’
‘아빠가 세제를 묻혀주면 깨끗이 헹구는 거야. 여기서 중요한 건 ‘깨끗이’야. 세제가 남아있으면 우리는 다음 식사에서 세제를 먹게 되거든.’
‘세제 먹으면 안 좋아여..?’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잘못하면 쓰러질지도 몰라.’
‘…!’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충격요법.
효과는 굉장했다.
그 뒤로 연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히 세제를 헹궈냈으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아빠 도와주겠다고 의자 올라간 거 봐 ㅠㅠ 너무 귀엽잖아!
┖마음이 너무 예쁘다…
┖그냥 하는 말인데 초록님 멘트 왤케 웃기냐 ㅋㅋ 우리는 다음 식사에서 세제를 먹게 되거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게 개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
┖연두 표정 덩달아 심각해지는 부분에서 현웃터졌다.
┖같이 설거지하는 것만으로도 10분을 웃게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초연케미는 전설이다.
┖수많은 케미 속에서도 1등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이유…
-우리 승준이도 설거지 가르쳐줘야겠네요 ㅎㅎ 연두랑 똑같은 여덟살인데.
┖저두요 ㅎㅎ 너무 예쁠 거 같아요.
┖승준이 오열 ㅋㅋㅋ
┖ㅁㅊ놈아 ㅋㅋ 여덟살한테 그런 드립 치지 마
┖심지어 어머님 댓글인데.
┖내 생각에 연두부 중에 또라이 엄청 많음. 연두튜브에 오면 연두성분으로 정화되는 것뿐이지.
┖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이 영상으로 인해 상당히 많은 아이들이 설거지 조기교육을 받게 될 듯했다.
괜히 미안하네.
뭐, 일찍 배워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나저나 조회수가 이렇게 잘 나올 줄은 몰랐어.’
이번 영상뿐만이 아니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연두부들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영상을 무척 좋아했다.
딱히 그걸 염두에 두고 연달아 올린 건 아니지만.
슬슬 찾아볼 생각이다.
‘콘텐츠다운 콘텐츠.’
뭘 할지는 확정 짓지 못했지만 하려면 얼마든지 있었다.
마침 타이밍도 시기적절했다.
곧 작화팀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하고, 연두의 여름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계속 생각 중이다.
어떻게 연두의 첫 여름방학을 극한으로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연두튜브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나오겠지.’
언제나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댓글창에는 나에 관한 댓글도 보였다.
-곧 초록님 앨범도 나오겠네.
┖ㅋㅋㅋㅋㅋ 그렇게 말하니까 초록님 노래 담긴 앨범 같잖아. 프로미스 앨범인데.
┖초록님 앨범 나오면 팬심으로 삽니다…
┖저도요.. 사서 들어볼지는 미지수긴 하지만…
┖제발 예쁘게 잘 나왔으면 좋겠다 ㅠㅠ 뭔가 초록님 팀으로 잘 안 되면 너무 슬플 거 같아.
┖그니까요 ㅠㅠ
┖근데 초록님은 항상 이럴 때마다 증명했음 ㅋㅋ 그니까 나는 믿음.
┖ㅇㅈ
이런 반응이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반응과, 믿고 응원하는 반응이 혼재했다.
둘 다 고마운 마음이다.
어떻든 간에 내 행보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거니까.
‘증명하는 건 내 몫이고.’
잘 모르겠다.
뭐든지 포장지를 열어봐야 답이 나오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포장지 속 내용물.’
그건 현재의 나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누군가 결과에 대해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이 가능했다.
증명할 자신이 있다고.
첫 프로젝트의 끝은, 이제 며칠만을 앞에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