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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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화. 회식
난데없이 삼자대면을 하게 된 연시레였다.
‘뭐지, 이 상황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었다.
연두 이야기를 듣고 월이네 집에 초대받은 건 연두뿐일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장면에 가장 놀란 건 연두인 거 같았다.
“…”
놀란 나머지 뭐라 말할 생각도 못 하고 눈만 깜빡인다.
맞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간다.
시은이와 레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설마…… 똑같았던 건가?’
그제야 조금 감이 왔다.
반응이 일치한다는 건 이 상황을 똑같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니까.
얼어붙은 세 아이.
덩달아 멍 때리고 있던 나는 뒤늦게 입을 뗐다.
“하하, 여기서 뵙네요.”
“그, 그러게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네요. 연두도 오랜만이네.”
학부모 사이에서도 묘하게 어색함이 감돈다.
이은경은 따로 연두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라는 말.
‘확실히 그렇긴 하지.’
최근 여름방학을 앞두고 대학교 시험 기간을 맞이해서 부쩍 바빠진 그녀였다.
대학교수로서의 직무를 이행해야 하니까.
자연히 연두와도 자주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둘 사이 교류가 줄어든 건 아니다.
만나지 않더라도 그녀는 꽤 많은 시간을 연두에게 할애하고 있었다. 틈틈이 과제를 내주기도 했고.
“.. 안녕하세여, 선생님.”
연두도 꾸벅 인사했다.
다시 침묵이 일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들 사이의 어색함은 학부모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걸.
더 견디기 힘들어 입을 떼려는데,
끼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
“왔나?”
타이밍 좋게 등장한 월이였다.
차례로 월이는 나와 세연씨, 그리고 이은경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선 말했다.
“뭐 할라꼬 그렇게 서 있노? 얼른 안 들어오고.”
“아.”
카리스마 넘치는 한 마디.
그 목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연두의 손을 잡고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게 있었다.
“연두 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
준비한 듯한 표준어.
숨길 수 없는 억양이 묻어나긴 했지만 꽤나 훌륭한 표준어 구사였다.
잠깐, 이걸 평가할 때가 아니잖아.
“응?”
얼떨결에 의문사를 내뱉자 들려왔다.
“안녕히 가세요.”
시은이 엄마도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평등했다.
월이의 집 앞에서.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런 월이의 모습은 마치 산속 절을 지키는 아기 도사님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려 했지만, 도사님이 이렇게 완강해서야 어쩔 수 없지.
귀에 들어오는 연두의 목소리.
“아, 아빠..”
갑작스러운 작별에 당황한 듯한 모습.
나는 애써 미소를 띠었다.
“잘 놀고 있어, 연두야. 이따가 데리러 올게.”
“.. 네.”
그렇게 자취를 감춘 아이들.
상황이 휙휙 지나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벙찐 표정으로 돌아섰다.
옆에는 나와 같은 처지인 두 사람이 보인다.
“우리.. 쫓겨난 거죠?”
세연씨의 말에 이은경이 대답한다.
“그런 거 같네요.”
이게 학부모끼리 나누는 대화라 생각하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뭐, 그럴 만도 하죠.”
“네?”
“월이 입장에서 우리는 초대한 손님이 아니니까요. 초대장을 받은 건 연두랑 시은이, 그리고 레나일 테니까. 다들 보셨죠, 초대장?”
역시나.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의 반응에서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키였던 건가.’
어쩌면 이 관계의 꼬인 실타래를 풀 키는 월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늦게 세연씨가 외친다.
“아!”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덧붙인다.
“그럼 그 초대장, 연두랑 레나도 받은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이제 깨닫는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얘기하는 걸 보니 세연씨뿐 아니라 이은경도 현재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괜찮지 않을까요?”
“네? 뭐가요?”
“아이들을 여기 데려온 거로 우리 역할은 다 한 거 같아서요.”
말 그대로였다.
자세한 건 몰라도 월이는 초대장을 받은 모두가 집에 오길 바랐을 거다.
셋 중 하나도 빠지지 않고.
만약 한 명이라도 오지 않았다면, 월이가 준비한 건 물거품이 됐을지 모른다.
그게 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전부 왔지.’
시은이와 레나도 연두처럼 고민했을 터였다.
허나 중요한 건 하나였다.
이 자리에 왔다는 것, 그렇게 연시레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
이로써 부모로서의 역할은 다한 셈이다.
“우리 역할.. 그러네요.”
“흐흣.”
이은경과 세연씨가 차례로 말을 받는다.
알아들은 모양이다.
내 말속에 숨어 있는 의도를.
‘궁금하긴 하네.’
정확히 뭘 하려고 월이가 연시레를 집으로 초대한 건지 궁금하긴 하다.
뭐, 괜찮았다.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건 뒤로 미루면 미루는 대로 재미있으니 말이다.
툭.
월이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나는 발을 내디뎠다.
***
얼떨결에 월이네 집에 입성한 연시레.
따뜻한 집.
소박하지만 포근한 느낌을 주는 가정집이었다.
부엌을 향해 걸어가니 분주히 움직이는 월이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
“월이니?”
고개를 돌린 안성혜는 세상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공주님들 왔나?”
“안녕하세요..”
“반가워라..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예쁘게 생겼노.”
짧지 않은 서울 생활로 표준어가 섞인 사투리를 구사하는 그녀였다.
예뻐 죽겠다는 표정.
감탄하던 그녀는 곧이어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듯 말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네?”
“엄마 아빠는 같이 안 왔나?”
그 물음에 자연히 연시레의 시선은 한곳을 향했다.
월이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월이는 입을 뗐다.
“보냈어.”
“뭐를? 보내긴 뭘 보내?”
“엄마, 아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건지 안성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월이 니 미칬나?”
“안 미칬다.”
“엄마한테 말 한마디 없이 보내면 우짜노! 음식도 잔뜩 했는데. 빨리 다시 전화해서 오라 캐라!”
“싫타! 이미 멀리 갔다 안 하나!”
“요 가시나야! 뭘 잘 했다꼬 소리를……”
전쟁터가 된 부엌.
연시레는 그저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전투는 한참 더 이어졌다.
“이놈의 가시나, 학 쌔리삘라!”
“아빠한테 이를 거다!”
“어쭈! 아빠가 니 편인 줄 아나? 내 남편이다, 내 남편!”
“내 아빠다!”
“월이 니 안 되겠다. 빗자루 어딨노. 정지에 둔 빗자루.”
“빗자루 없다! 내가 숨깄다!”
정지는 경상도 사투리로 부엌이었다.
부글. 부글.
폭발하기 직전의 안성혜.
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유독 한 마디도 안 지는 딸이었다.
심지어 빗자루 얘기를 꺼냈는데도.
“후.. 월이 니는 이따가 보자.”
가까스로 가라앉힌 그녀는 말했다.
“괜찮다,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는 연시레.
월이 어머니 빼고는 다 괜찮은 거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어여 방에 들어가 있어라. 맛있는 거 갖다줄게.”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려던 연시레를 붙잡고 안성혜는 얘기했다.
“맞다. 레나 꿀떡 좋아한다매? 맞나?”
“.. 네.”
“여기 꿀떡도 있다.”
그녀 말대로 예쁜 접시에 정갈하게 꿀떡이 놓여있었다.
고정되는 시선.
자기도 모르게 레나는 입을 훔쳤다.
“.. 흣.”
그 소리를 들은 연두와 시은이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가,
“…”
세상 어색하게 시선을 피한다.
그런 둘을 본 월이는 ‘역시 그렇군.’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따라오면 된다.”
“.. 응.”
월이를 따라가는 연시레.
몇 발자국 안 돼서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손잡이를 돌리자 열리는 문.
스르륵.
그 틈으로 들어오는 장면에 연시레의 눈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아, 안녕, 얘들아..”
“어서 와..!”
지우와 하연이가 앉아 있었다.
***
집에 잠깐 들른 후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 연두는 잘 있겠지?’
그럴 거다.
월이의 예쁜 마음은 아이들한테도 분명히 닿을 테니까.
연두 걱정은 이걸로 끝내기로 했다.
계속 걱정하고 있을 수도 없고, 곧 찾아올 저녁 시간에는 회식도 앞두고 있으니.
“어, 초록님!”
“연두는 같이 안 온 건가요?”
“데리고 오실 줄 알았는데……”
내가 아니라 직원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연두가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요. 그래서 못 데려왔어요.”
“아.”
“히잉, 아쉽다.. 연두 소고기 잔뜩 꾸워주려고 했는데…”
유하나가 아쉬운 듯 이야기한다.
전부터 느낀 건데, 연두에게 고기를 구워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풋살을 마쳤을 때 친구 녀석들도 그랬고.
‘심지어 그게 보상이었지.’
우습지 않은가.
풋살에서 이긴 보상이 연두 고기 구워주기라니.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뭐,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요. 다음에 부탁할게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우영이가 입을 뗀다.
“친구 집이면……”
궁금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은이 집은 아니야.”
“아..”
자기도 모르게 호응했다가 정색하고선 말한다.
“그걸 물어보려 한 건 아닌데요.”
“하하..”
속 보이는 녀석.
솔직하지 못한 게 오히려 귀엽다니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 네?”
“시은이 집은 아닌데, 거기서 화해의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거든.”
“그래요?”
뒤이어 작게 중얼거린다.
“뭐, 딱히 궁금했던 건 아닌데…”
이거 봐라.
이렇게 속 보이는 혼잣말을 하면서 자기가 귀여운 줄 모르는 게 더 귀엽다.
가끔은 너무 귀여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째깍. 째깍.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말했다.
“슬슬 갈까요?”
“좋습니다!”
“네, 초록님. 잠시만요……”
짐을 챙기는 직원들.
회사를 나선 나는 전에 봐 둔 소고깃집으로 향했다.
우영이와 함께 회사 주변을 거닐던 도중에 발견한 식당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긴 했지만.’
망할 기계.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인형뽑기 기계를 비하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가는 동선에 있는데 거들떠도 안 볼 생각이다.
스윽.
“뭐, 뭐예요.”
당황한 목소리.
나는 개의치 않고 우영이의 눈을 가린 채로 이동했다.
“조금만 참아. 우영이 널 위해서니까.”
“무슨……”
그렇게 우리는 위험지역을 무사히 벗어났다.
“…?”
시야를 되찾은 우영이가 뒤늦게 상하좌우를 둘러보지만 귀여울 따름이다.
이미 지났다, 이 녀석아.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도착했다.
“와..”
“냄새부터 죽이는데요?”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소고기냐.. 많이 먹어도 되나요, 초록님?”
씩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죠.”
마침 적당한 테이블이 있었다.
구석에 위치한 데다가 여섯 명이 빙 둘러앉기에 딱 좋은 사이즈의 테이블이었다.
메뉴판을 펼친 유하나가 묻는다.
“뭘 시키는 게 좋을까요? 제가 돼지는 잘 알아도 소고기는 잘 몰라서……”
빙긋 웃으며 나는 말을 받았다.
“뭐, 고민할 필요 있나요.”
“네?”
“잘 모르면 부위별로 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쏟아지는 호응.
그때 느꼈다. 왜 여러 회사의 높으신 분들이 틈만 나면 회식을 외치는 건지.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프로젝트를 성공한 기념으로 하는 회식이라 더더욱 그랬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시달리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회식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특히나 우리는 팀이니까.
“……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직원.
그렇게 시작됐다.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스튜디오 초록’의 첫 회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