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38)
638화. 우리 주원이…
시작된 첫 회식.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고기가 등장했다.
물론 한우였다.
그 영롱한 선홍빛 때깔에 나뿐 아니라 팀원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마블링 죽인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소고기인지 모르겠네요.”
“연두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동감이다.
고기를 보니 연두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지금 연두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닌, 월이네 집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니까.
‘정확히는.. 시은이랑 레나 옆이지.’
소고기는 언제든 사줄 수 있다.
그러나 친구와의 갈등은, 오해를 풀 타이밍을 놓치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억지로 연두를 데려왔다고 해도 평소처럼 맛있게 먹었을 거 같지도 않고.
‘.. 맛있어여.’
어떻냐고 물어보면 마지못해 그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 그 모습도 귀엽긴 하네.
그새를 못 참고 그런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안 되지, 안 돼.
회식을 하는 동안만큼은 오로지 이 자리에 집중하기로 했으니까.
“고기 올려드릴게요. 너무 많이 익혀 드시지 말고, 이 정도면 익었다 싶으면 바로 드시면 됩니다.”
치지직!
직원이 직접 불판에 고기를 올려줬다.
불판을 만난 고기가 내는 소리는 곧바로 나와 팀원들의 침샘을 자극했다.
집게를 건네받은 건 경리 유하나였다.
“제가 구우려 했는데……”
그렇게 말하자 유하나가 생긋 웃으며 말한다.
“맡겨주세요. 제가 고기 굽는 데에는 도가 텄거든요.”
자진하는데 굳이 집게를 두고 경쟁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이따가 구우면 되는 일이고.
미소를 띠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네, 그럼 부탁할게요.”
확실히 능숙한 손놀림이다.
구울 때의 포인트는 직원의 말이었다.
소고기를 많이 익혀서 먹는 건 하수 중의 하수니까.
“이제 드셔도 될 거 같아요!”
그녀의 말이 신호탄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우리는 누가 먼저다 할 것 없이 소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톡.
소금을 살짝 찍어서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경험했다.
입 안의 모든 미각세포가 하나도 빠짐없이 춤추는 듯한 느낌을.
***
상상을 뛰어넘는 맛에 몇 점을 집어먹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넌지시 입을 뗐다.
“아, 참.”
아직 고기의 향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팀원들의 시선이 고정된다.
묘하게 부담스럽네, 이거.
멋쩍게 웃으며 메뉴판을 손에 들었다.
“음료도 주문하려 하는데요. 마시고 싶은 음료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간단하게 한잔해도 되고요.”
당연한 얘기지만 술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애당초 나는 차를 가져왔으니 마시지 않을 생각이고.
한경우가 말을 받았다.
“오.. 한잔해도 되는 건가요?”
“하하, 물론이죠.”
다 성인인 마당에 마시고 싶다면 막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즐기고자 하는 회식 자리에서.
‘잠깐만. 다 성인은 아니구나?’
순간 드는 생각에 우영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나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서 젓가락을 내려놨다.
…… 성인이잖아!
나도 모르게 우영이를 미성년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술 못 마시는 분 계신가요?”
한경우의 물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의외로 이 사람들, 주당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소주파인데……”
한경우는 팀원들 하나하나에게 좋아하는 주종을 질문했다.
그래 봐야 소주 또는 맥주였지만.
‘다 다르네.’
도연씨는 소주파, 하나씨는 맥주파, 그리고 표식씨는 소맥파였다.
남은 사람은 하나였다.
자연히 우영이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우영님은요? 뭐가 좋아요?”
나도 궁금했다.
일단 술 못 마시는 사람 있냐고 물을 때 거수하지 않은 걸 보면 마시긴 한다는 건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우영이가 술을 마시는 모습은.
‘뭘 좋아하려나.’
노래방 때의 선곡도 그렇고.
요즘 들어 반전매력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우영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어떤 답이 나올지 기대가 됐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네?”
“마셔본 적이 없어서요.”
역시나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귀에 들어왔다.
마셔본 적이 없다고?
의아함이 든 나는 입을 열었다.
“보통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같은 데 가면 마시지 않나요?”
알다시피 대학을 가본 건 아니다.
그래도 대학을 가본 친구 녀석들이 주위에 있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대학교의 술 문화를.
안 마시려 해도 안 마실 수가 없는 이벤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 갔는데요.”
“.. 네?”
“안 갔어요, 신입생 환영회.”
뒤늦게 떠올랐다.
우영이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거스를 수 있는 녀석이라는 걸.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엠티는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안 갔어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길래.”
하기야 그렇지.
신입생 환영회를 빼는 녀석이 엠티를 갈 리가 있겠는가.
‘못 마셔봤을 만 하네.’
그런 이벤트를 죄다 빠진다면 마셔볼 기회가 없을 법도 했다.
그 말인즉슨.
우영이가 술을 마셔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는 거다.
‘.. 재밌잖아.’
그 사실만으로도 재미있었다.
같은 생각을 한 걸까.
한경우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뭐, 오늘 처음으로 마셔보면 되죠. 좋은 자리니까. 일단 마실 생각이긴 하죠?”
“네.”
“뭐 마실래요? 소주? 맥주? 아니면 소맥?”
이어지는 말.
“처음이니까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가장 강한 건 소주예요. 그래서 저같이 강한 사람은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죠. 뭐, 우영님은 처음이기도 하고, 자신 없다 싶으면 맥주나 소맥을 먹는 걸 추천 드리구요.”
설마 했다.
이런 간단한 도발에 걸려들까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우영이는 입을 뗀 상태였다.
“소주, 마실게요.”
정말이지 못 말리는 승부욕이었다.
***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아이들.
연시레, 지우, 하연이, 그리고 월이까지 총 여섯 명이었다.
“…”
침묵이 흐른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
“얼른 안 먹고 머 하나?”
월이가 말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하나둘 포크를 집어 들었다.
상이 부러질 듯한 진수성찬.
자연히 레나는 꿀떡에 가장 먼저 손이 갔다.
슥.
“.. 아.”
하필이면 포크가 겹친 연두와 시은이.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는 누가 먼저다 할 거 없이 포크를 회수한다.
조심스레 연두가 입을 뗀다.
“시, 시은이 먼저 먹어…”
“.. 아냐. 연두 먼저……”
그렇게 둘이 양보하는 사이.
레나는 혼자 웃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고?
‘.. 너무 맛있서.’
꿀떡이 너무 맛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꿀떡을 맛있게 먹는 자기 자신이 밉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손이 갔다.
그런 세 친구를 몰래 주시하던 월이는 생각했다.
‘쉽지 않겠어…’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다 보면 자연스레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을 듯했다.
풀려면 일단 대화가 돼야 하는데, 서로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나머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찡긋. 찡긋.
각각 지우와 하연이를 보며 월이는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미리 약속한 사인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우와 하연이, 둘 중에 첫 타자는 지우였다.
“마, 맞다…”
“응?”
“어, 엄마가 놀다가 전화하라고 했는데…… 나 엄마한테 전화하고 올게..!”
그렇게 처음으로 지우가 방문을 나섰다.
작게 벌어지는 하연이의 입.
놀라서였다. 지우가 저렇게나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할 줄은 몰랐으니까.
‘.. 나도 할 수 있어.’
지우가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하연이는 입 밖에 뱉었다.
미리 준비한 멘트를.
“아야..!”
문제는 너무 의욕이 앞섰다는 거다.
“이상하다? 갑자기 배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화장실에 가야겠다. 월아, 화장실이 어디니?”
준비한 멘트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뱉으려다 보니 생긴 참사였다.
스스로는 만족하고 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망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월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었다.
“빨리 와라! 내가 데려다 줄께!”
“.. 응!”
양동작전.
그렇게 하연이와 월이가 나란히 방을 나섰다.
“자, 잠깐……”
쿵.
말릴 틈도 없이 문이 닫히고 방 안에 남은 건 연시레뿐이었다.
흔들리는 눈동자.
그 속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꼴깍.
꿀떡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는 레나.
그렇게 셋만 남게 된 연시레였다.
***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회식이 이어졌다.
술이 살짝 들어가니 팀원들 텐션이 더 오르기도 했고.
“진짜 대학 동기들한테 하나도 빠짐없이 다 연락 온 거 같아요.”
“하하, 그래요?”
“네. 한 명만 빼고요.”
누구냐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알 거 같았으니까.
“진상이요.”
괜히 미안하네. 이름은 모르는데 진상이라 기억하는 게.
뭐, 쌤쌤으로 치자.
어찌 됐든 간에 그 친구도 나랑 우리 작화팀에 대해 안 좋게 말했다고 하니까.
살짝 찡그리며 서도연이 말한다.
“걔 얘기는 왜 자꾸 해.”
“왜, 재밌잖아. 결국은 네 말대로 됐고.”
“굳이 언급할 필요 없냐는, 아니 있냐는 거지.”
한경우가 낄낄 웃으며 말한다.
“어, 방금 발음 꼬인 거 같은데. 그만 마셔야 되는 거 아니야?”
“장난하냐? 이제 세 잔 마셨는데.”
“흐흐.”
하기야 발음이 꼬일 정도로 마신 건 아니긴 했다.
술이 아무리 약해도.
어느새 서로 경어를 내려놓고 편하게 얘기하고 있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이런 자리에서까지 존칭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고.
“괜찮아, 우영아?”
“네.”
“그래서.. 처음으로 먹어본 술맛은 어때?”
“맛없어요.”
짤막하게 답한 우영이는 덧붙였다.
“그거 말고는 딱히 별 감흥은 없는데요?”
“그렇구나.”
잘 모르겠다.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지만, 술에 관해서는 이런 무미건조한 반응이 오히려 좋다고 볼 수도 있다.
술 때문에 흑역사가 생길 일도 없고.
옆에서 유하나도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잘된 거 같아요.”
“뭐가요?”
“여기, 그러니까 ‘스튜디오 초록’에서 일하게 된 거요. 다른 것도 그렇지만 진짜 이런 분위기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거든요. 팀원분들도 너무 마음에 들고……”
조금은 낯간지럽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을 향해 나는 잔을 들어 올렸다.
비록 콜라가 든 잔이긴 했지만.
“그럼 우리 늦었지만,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낸 기념으로 짠 한 번 할까요?”
“네!”
“좋습니다!”
팅!
여섯 개의 잔이 부딪친다.
“아쉽다.. 다음에는 초록님도 꼭 같이 마셔요.”
“하하, 그래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분명히 즐겁게 마실 수 있을 테니.
우영이도 꼴딱꼴딱 잘 마신다.
‘다행이네.’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 그리 쓰지는 않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 뒤에도 몇 번의 건배가 이어졌다.
술 대신 콜라를 들이켜며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우영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웬걸?
‘.. 맞아?’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피부가 가장 하얀 사람 세 명이 있다.
연두, 예림이, 그리고 우영이다.
그런 우영이의 얼굴이 홍시처럼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우영아?”
푹 숙인 채로 까딱거리는 고개.
왜 지금껏 눈치 못 챘나 싶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인다.
내 부름에 살며시 고개를 치켜든다.
“괜찮아? 얼굴이 빨간데.”
마주친 시선.
그제야 팀원들도 대화를 멈추고 우영이를 주시한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우영이가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흐, 흐흐.”
그러더니 내 어깨에 툭 손을 올린다.
“우리 주원이…”
“…?”
우영이의 말에 휘둥그레지는 직원들의 눈.
나 역시 어깨가 꿈틀했다.
우리 주원이?
아무리 첫 술이라고 해도, 아우의 이런 예의 없는 언동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떼기 전에 한 마디가 더 이어졌다.
“…… 형아.”
그제야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제대로 취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