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침팬지 이름이 침팬지인 이유
“엄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 으응? 무슨 소리야! 빨갛긴!”
신세연은 화들짝 놀라 손을 휙휙 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엄마의 강한 부정에도 시은이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엄청 빨간데? 그치, 연두야.”
시은이의 말에 연두는 고개를 들어 신세연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다! 빨강색이다..!”
분홍색도 자주색도 아니고 빨간색이라니. 연두까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까. 이렇게 안면에 홍조를 띠는 그녀는.
신세연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부채질하며 중얼거렸다.
“그, 그러니..? 오늘 볼터치를 너무 했나.. 하하하..”
애꿎은 화장 탓을 하는 그녀를 보니, 자연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물론 눈치가 있기에 티 나게 웃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는데.’
신세연을 그릴 때, 어떤 부분을 실제보다 더 예쁘게 그려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별생각 없이 툭 내뱉은 사실에 근거한 대답이었다. 그녀의 초상화에서 미화한 부분이 없다는 말은.
그 말 한마디에 이렇게 얼굴색까지 변하며 좋아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하긴, 직접적으로 말하면 예쁘다는 뜻이니까.’
남자로 생각하면 잘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외모가 훌륭하다는 말을 듣고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조금의 의문은 존재했다.
‘평소에도 많이 들었을 텐데.’
신세연의 외모를 고려하면, 살면서 예쁘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을 게 뻔했다.
심지어 오늘만 해도 수차례 목격했지.
그때는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녀였다.
하지만 방금의 반응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 그런 건가?’
생각해 보니 짚이는 이유가 있었다. 주목을 받아서 그런 거구나.
아까 초상화 모델을 할 때도 이목이 끌리자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였다.
지금도 아이들과 내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고 있고.
찾아보면 그런 사람은 꽤 많았다.
시선이 집중되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 말이다.
적절한 센스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다음은 원숭이 보러 가죠. 어때, 얘들아?”
이른바, 모른 척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 말을 돌리는 센스였다.
다행히 내 말 한마디에 바로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원숭이의 힘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1위가 아닐까.
동물원에 온 아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동물 순위를 매기면.
‘개성 있는 생김새부터 하는 짓까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건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동물원에 처음 오는 연두도, 유경험자인 시은이도 눈을 반짝였다.
연두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아빠! 원숭이는 진짜 엉덩이가 빨강색이에요..?”
“응? 그치. 빨간색이지.”
“헤헤, 빨리 보고 싶따…”
이상하게 대답하면서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질문에 평범한 대답인데 왜일까.
이어지는 시은이의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엄마도 지금 빨간색인데.”
“…”
눈치가 없는 것도 유전인 건가.
덕분에 빨간색 노이로제 걸리게 생겼다.
***
다행히 이후에 별다른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 이게 모에요..?”
“그건 탱탱볼이라고 하는 거야.”
“태탱볼..?
“응. 엄청 잘 튀어오르는 공인데. 아빠가 사 줄까?”
“사, 사도 대요..?”
“당연하지.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연두야.”
“헤헤..”
“대신 여기 땅바닥에서는 튀기면 안 된다? 잃어버리기 쉽거든.”
“네!”
연두는 곧바로 연두색 탱탱볼을 집어 들었다.
오늘만큼은 장난감 잘 사주는 멋진 아빠가 되기로 결심한 나였다.
그렇다기에 탱탱볼은 지나치게 저렴한 장난감이긴 하지만.
‘뭐, 시간은 많으니까.’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곧바로 원숭이과 동물을 보러 갔다.
내가 왔을 때 이후로 추가된 건지 종류가 매우 다양했다.
‘각종 원숭이, 고릴라, 오랑우탄……’
생긴 건 비슷한데 종에 따라 크기 차이가 상당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아누비스 개코원숭이’라 쓰여있는 우리였다.
눈은 몰렸고 코와 입은 엄청나게 튀어나온 생김새의 원숭이.
척 봐도 잘생기거나 귀여운 느낌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아쉽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원숭이 구경의 묘미는 먹이 주기였다.
바나나를 조금 뜯어서 던져주면 기막히게 받아먹는 게 저 녀석들이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동물에게 먹이 주기가 금지된 상태였다.
연두에게 그런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물론 먹이 주기가 금지된 지금도 먹이를 던져주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사실 나도 준법정신이 그리 투철한 놈이 아니긴 하지만.’
연두와 함께 온 이상, 대놓고 규칙을 어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연두의 앞에서는 가능한 한 모범적인 어른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니까.
이미 연두는 처음 영접하는 원숭이의 자태에 시선을 빼앗긴 상태였다.
“저기 봐, 연두야.”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개코원숭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은 나무기둥 위에 앉아있었다.
먹이를 안 줄 걸 아는지,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카메라에 얼굴이라도 한 번 비춰주지. 되게 비싸게 군다.
연두는 원숭이를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빠. 저 원숭이 모하는 거예요..?”
“음..”
그 질문에 나는 원숭이를 자세히 바라봤다.
유심히 보니 녀석은 엉덩이를 우리 쪽으로 내민 채 발을 긁고 있었다.
“발을 긁는 거 같은데?”
정신없이 쉬지도 않고 긁는다.
무좀이라도 걸린 건가? 아니, 애초에 원숭이도 무좀에 걸리나?
이상할 정도로 오늘은 나사 빠진 녀석들이 많았다.
저 혼자 자빠지는 펭귄, 똥을 싸는 코끼리, 그리고 무좀 걸린 개코원숭이까지.
아니다. 방금 말은 취소한다.
생리현상과 질병을 나사 빠졌다고 표현하는 건 너무하니까.
‘이걸 볼거리가 많아서 좋다고 해야 하나.’
연두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원숭이에게 건네는 질문이었다.
“안녕, 원숭아! 발 마니 간지럽니..?”
“…”
뒤에 몇 차례 이어지는 연두의 말도 가볍게 무시당했다.
원숭이 녀석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번만 돌아봐 주라, 한 번만. 간절한 내 마음속 외침에도 녀석은 꼼짝도 안 했다.
시뻘건 궁둥이를 내민 채 그저 발만 긁을 뿐이었다.
또르르.
상처받은 연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원숭이는 똑똑한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아누비스 개코원숭이는 원숭이가 아닌가 보다.
똑똑하다면 이렇게 예쁜 연두의 말을 깡그리 무시할 리가 없으니까.
최근에 동건이에게 배운 젊은이들이 쓰는 용어가 하나 있었다.
인절손. 인생의 절반을 손해 봤다는 말의 줄임말이었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지금 인생의 절반을 손해 봤다.
‘바보 녀석.’
나는 소리 없이 한마디 해 주고 연두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
“다른 원숭이 보러 가자, 연두야.”
“.. 다른 원숭이요?”
“응.”
연두를 알아보는 똑똑한 원숭이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침팬지 우리였다.
침팬지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고 있었다.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
처음 녀석들의 아이큐를 듣고 놀란 기억이 있다.
70에서 90 정도로 5세 아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했지.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고.
그래서 녀석들의 안목을 믿어보기로 했다.
-침팬지(영장목 성성이과의 포유류)
간판을 확인하고 나는 연두를 양팔로 감싸서 안아줬다.
연두가 우리 안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와아..!”
침팬지는 다른 원숭이들과 다르게 우리가 조금 특이했다.
철창으로 되어 있고,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똑똑한 녀석들이라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서인가?
뭐, 이렇게 떨어진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얘네도 관심을 안 준다는 거지.’
나 때는 철창에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는데.
먹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지금은 철창에 한 마리도 붙어있지 않았다.
머리가 좋은 만큼 바뀐 상황에 적응이 빠른 걸지도.
그래도 시도해 봐서 나쁠 건 없었다.
“연두야.”
“네에.”
“얘네는 침팬지라고 하는 동물인데. 한 번 인사해 볼래?”
“침팬지..?”
“응, 침팬지.”
연두는 내게 안긴 채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안녕, 침팬지야!
“…”
기대와 달리 반응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씁쓸함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쿠웅!
꽤나 육중한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침팬지 한 마리가 철창에 매달려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치 말을 거는 듯 소리를 냈다.
“우끼! 우끼끼!”
연두의 인사를 받아주는 건가?
역시 아까의 개코원숭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얼굴도 훨씬 귀엽게 생겼고.
“아빠! 침팬지예요, 침팬지..!”
“연두가 예뻐서 왔나 보다.”
“히히.”
연두는 계속 침팬지에게 말을 걸며 교감을 시도했다.
침팬지는 같은 울음소리로 화답해줬다.
“우끼끼끼! 우끼!”
이러다 나중에 사육사 된다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육사로 매스컴에 소개될지도.
그런 우스운 생각을 하며 나는 두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연두와 침팬지의 교감을 돕기 위해.
‘.. 응?’
그런데 침팬지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입 모양이 이상했다.
입안에 무언가를 넣고 우물거리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상하다. 먹이를 던져준 것도 아닌데.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찌이익!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연두를 안은 채 뒤로 물러났다.
툭.
그리고 눈앞 바닥에 흥건한 액체가 떨어졌다.
침이었다. 망할 침팬지가 우리를 향해 침을 뱉은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연두가 침을 정통으로 맞을 뻔했다.
열이 받은 나는 고개를 들어 침팬지를 노려봤다.
“쩝.”
녀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순식간에 점프해 사라졌다.
태어나서 동물한테 이 정도로 열이 받는 건 처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연두가 들고 있는 탱탱볼로 저 녀석을 저격해 복수라도 하고 싶지만.
꼭 쥐고 있는 걸 봐선 이미 연두에게 소중한 물건이 된 탱탱볼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어른스럽지 못한 짓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연두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빠아.. 침팬지가 침…”
왜 침팬지 이름이 침팬지인지 알 거 같았다.
나는 연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연두야?”
“네에.. 아빠는요..?”
“아빠는 괜찮아.”
그때 간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철창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마세요! 가끔 침을 뱉는 고약한 아이가 있답니다!
이걸 먼저 봤어야 하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이로써 컬렉션이 하나 추가됐다.
혼자 자빠지는 펭귄, 똥 싸는 코끼리, 무좀 걸린 개코원숭이.
그리고 침 뱉는 침팬지.
***
원숭이 이후에도 우리는 많은 동물을 구경했다.
호랑이와 사자를 포함한 맹수들, 낙타, 하마, 그리고 육중한 곰까지.
그에 따라 시간도 순식간에 흘러갔다.
‘다행히 나사 빠진 녀석들은 없었고.’
침팬지가 뱉은 침이 준 충격도 사라져 갔다.
연두는 동물을 구경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빠! 호랑이랑 사자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하마는 왜 이름이 하마예요..?’
‘곰은 왜 저러케 커요?’
부끄러운 건, 내가 질문에 하나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야, 나는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몰랐으니까.
그걸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 거 같긴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호기심은 사라졌다.
하마가 왜 이름이 하마인지도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하마라고 이름 붙인 거 아닌가?
곰이 왜 큰 건지도 잘 몰랐다. 유전적으로 그냥 크게 생겨 먹은 녀석인 거 아닐까.
‘뇌정지의 연속이었지.’
연두의 일차원적인 질문은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웠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럴듯하게 대답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시은이가 좋아하는 앵무새를 끝으로 마침내 동물 구경이 끝이 났다.
“아빠아..”
“응, 연두야.”
“아거는 업써요..?”
나도 오늘 와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린이대공원에 악어가 없다는 것. 또 기린도 없었다.
“악어가 여기에는 안 산다고 하네?”
“왜요..?”
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결국 나는 ‘악어가 살 만한 환경이 안 돼서일 거야.’라고 대답해 줬다.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쉬워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갈 거죠, 세연 씨?”
“당연히 가야죠! 그러려고 끊은 입장권인데.”
그녀가 웃으며 입장권을 흔들었다.
아직 어린이대공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동물원만큼 재미있는 공간이 존재했으니까.
“가자, 연두야.”
“어디에요..?”
“진짜 재밌는 곳에.”
연두에게 신세계를 보여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