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42)
642화. 좋은 소식
“.. 미친 새X.”
퍽! 퍽!
악몽 같은 순간.
그러나 언제까지고 꿈속을 헤맬 수는 없었다.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후.. 괜찮아.. 괜찮아, 선우영.”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앉은 우영은 격해진 호흡을 가라앉혔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애꿎은 이불을 더 폭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럴 수 있어.”
기억 속에 뱉은 말.
전부 떠오르는 게 신기하면서도, 엄청난 실언이라 할 만한 건 없었다.
차례차례 되짚어봤다.
우선 주원이형을 향해 뱉었던 좋아한다는 말.
‘..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굳이 따지면 좋아하는 쪽이 맞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점에서 세워놓은 기준을 충족하는 데다가, 개인적으로도 주원은 우영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다음은.. 표식이형.’
비슷한 맥락이었다.
최근에 부쩍 친해진 것도 있고, 동료애 차원에서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다.
아직 어색한 사이인 도연선배와 경리 유하나에게 한 말에 또 이불을 찰 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팀 동료잖아.’
그 마법 같은 명분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다.
또 뭐라 했더라.
일련의 과정이 지나가고 나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존재했다.
‘.. 목표는 지브레.’
순간 머리를 쥐어뜯을 뻔했지만, 우영의 방어기제는 또 금방 탈출구를 찾아냈다.
포부를 드러낸 거다.
세계적인 미술가가 될 거라는 건 학창 시절부터 우영이 입버릇처럼 밝히던 포부였다.
그게 개인이 아닌 팀이 됐을 뿐이다.
언제나 최정상을 꿈꿔야 한다.
지브레는 누구나 손꼽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작화팀 중 하나였다.
시시하게 목표를 잡을 바에야, 그 정도는 꿈으로 둬야 한다는 게 우영의 생각이었다.
‘또 뭐라 했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우습게도 그 순간에 우영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하나하나 되짚어보니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만 한 일이 아니었다.
슥.
집어든 핸드폰.
작화팀 단톡방이 떠들썩했다.
한경우 : ㅋㅋㅋㅋㅋㅋ 정확히 지금 열세 번쯤 돌려보는 중입니다.
유하나 : 아, 진짜 치사해요! 혼자만 보려고 찍은 건 아니잖아요!
서도연 : 안 보여줄 거면 오버하지를 말던가.
한경우 : 어, 도연님. 지금 반말하신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팀 동료인데 공적인 자리에서 반말은 조금…(불편하면 자세를 고쳐앉는 연두부)
서도연 : 혼잣말한 건데요.
부쩍 팀원들이 친해진 거 같다.
하기야 어제 취한, 아니 술을 조금 마신 와중에 팀원들 대화 소리가 계속 들려오긴 했지.
왜 그건 잘 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내가 한 말은 이렇게 선명한데.’
그와 별개로 감은 왔다.
경우선배가 말하는 영상은 볼 것도 없이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일 게 분명하다.
어제 스치듯 보기도 했고.
한경우 : 저도 당연히 공유하고 싶죠! 근데 당사자인 우영님 허락도 안 받고 올리는 건 솔직히 오버잖아요. 안 그런가요, 표식님?
최표식 : 그건 그렇죠 ㅎㅎ
한경우 : 그럼 전 열네 번째로 보러 갈게요. 뿅!
최표식 : 언제 일어나시려나, 주인공인 우리 우영님.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정해져 있다.
‘쫌생이처럼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건 하수지.’
그거야말로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전혀 타격감 없는 쿨한 반응을 보여주는 게 우영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우영은 타자에 손을 올렸다.
선우영 : 상관없어요. 어차피 다 기억나고.
좋아, 완벽하다.
전부 기억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메시지가 담긴 간결하고 쿨한 멘트.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한경우 : 정말 다 기억나요, 우영님?.
선우영 : 네.
한경우 : 정말 올려도 돼요?
선우영 : 네.
뭘 또 묻고 그래, 이 선배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한 우영은 부엌으로 나갔다.
***
부엌에는 엄마가 나와 있었다.
“일어났니?”
“응.”
“그러게 술 조금만 마시라니까. 지금 김치찌개 끓여놨으니까 빨리 앉아서 먹어. 식기 전에.”
“고마워.”
“숙취는 없고?”
“없어.”
사실 거짓말이었다.
아직도 머리를 쑤시는 듯한 두통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식탁에 앉아 우영은 숟가락을 들었다.
“후릅.”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 엄마.”
“응.”
“찌개에 뭐 넣었어?”
“넣긴 뭘 넣어?”
“그런 거 있잖아. 다시다나, 미원이나, 라면스…… 아니, msg 같은 거.”
그 말에 유은숙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얘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엄마 그런 거 절대 안 쓰는 거 알면서.”
그 말대로였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 때 msg를 쓰지 않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말을 꺼낸 이유는 하나였다.
후릅. 후릅.
찌개 맛이 평소와 달랐다.
어떻길래 그러냐고?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렇다.
우영은 술 마신 다음 날에 해장할 때 먹는 찌개의 맛을 처음 경험하고 있었다.
“별일이네. 평소에는 아침 잘 먹지도 않으면서 왜 이렇게 잘 먹어?”
“맛있어서.”
은숙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호, 이제야 네가 엄마 요리실력을 좀 인정하는구나? 맨날 msg 좀 쓰라고 뭐라 하더니.”
칭찬은 고래뿐 아니라 엄마도 춤추게 하는 법이었다.
한동안 우영은 식사에 열중했다.
그러다 잠시 잊고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올렸네.’
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어차피 다 기억나지만 그렇다고 안 보기에는 호기심이 든다.
우영은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나 초반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우영의 어깨가 거세게 들썩였다.
“주원이.. 형아.”
변수였다. 기억과는 달랐다.
‘형’이라 부른 건 기억나도 ‘형아’라 부른 건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든 손이 떨렸다.
“내가.. 형 좋아하는 거 알지이..?”
합성일 확률은 없었다.
영상 속 미친놈은 분명히 선우영이었고, 목소리는 빼도 박도 못할 자신의 목소리였다.
우영은 깨달았다.
정확히 기억한 게 아닌, 왜곡된 기억이었다는 걸.
“형은 나 좋아하나?”
영상 속 미친놈이 눈이 풀린 채로 고개를 들며 말한다.
“짜증 나잖아.”
“뭐가?”
“나는 형 좋아하는데, 형은 나 안 좋아하면.”
뭐냐고, 이 구질구질한 새끼는.
영상 속 미친놈은 우영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은 우영이었다.
“아, 우리 경리늼! 이름이…… 맞아!”
“오, 뭔데요?”
“하나님! 하나님이잖아요!”
“…”
맙소사.
이런 진상이 따로 없었다.
문득 도연선배와 경우선배가 말하던 진상이가 떠올랐다.
“.. 제기랄.”
엄마 앞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험한 말이 나왔을 거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었다.
시끌벅적하게 팀원들이 떠드는 와중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미친놈이 흰자만 보이게 고개를 들고서 잔을 내민다.
“.. 지브레에.”
역시 우영의 기억과는 달랐다.
왜곡된 기억 속 모습은 이랬다.
사뭇 진지한 말들이 오가던 와중, 슥 잔을 내밀며 짤막하게 뱉는 거다.
‘목표는 지브레.’
물론 그것도 병.. 아니, 뜬금없는 건 매한가지였겠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재차 미친놈이 외친다.
“목표는.. 지브레!”
이어지는 팀원들의 멘트.
“뭐, 저는 뭐든지 못 할 건 없다는 마인드라서.”
“저는 미친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같이 미치는 타입이라서.”
“취한 김에 하는 말이긴 한데,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미친놈이라서요.”
“저는 뭐, 그림도 안 그리니까 잃을 거 없다는 마인드라서.”
“저는… 이제부터 미쳐볼 생각이라서.”
딱 봐도 갑분싸가 될까 봐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는 멘트들이잖아.
실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주원을 제외하고 모두 취기가 올라 장난스럽지만 진지하게 뱉은 말들이었다.
우영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 엄마.”
영상이 끝나고 우영은 입을 뗐다.
“왜. 찌개 더 줄까?”
“우리 이민 갈까?”
“뭐?”
“외국에서 살자고. 엄마 공기 좋은 데서 살고 싶다며.”
빽 소리치며 유은숙은 말했다.
“이상한 소리 말고 밥이나 마저 먹어! 우리가 이민 갈 돈이 어디 있다고.”
식욕은 달아났다.
아무리 찌개가 맛있다고 해도, 현실과 마주한 지금의 기분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온 건.
“이민 같은 소리 할 시간에 형한테 문자나 한 통 보내.”
“형?”
“주원이형!”
“주원이형한테 문자를 왜 보내?”
“왜 보내긴. 주원씨가 어제 취한 너 데려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집에 도착해서 주정을 얼마나 부리는지. 올 때는 얼마나 그랬을지 상상도 안 간다, 상상도 안 가.”
“…”
우영은 처음으로 생각했다.
삶을 포기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 같다고.
***
뒤늦게 확인한 단톡방.
한경우 : (영상)
밑으로는 쭉 댓글이 이어져 있다.
유하나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엽자나요.
최표식 : 다시 보니 또 새롭네요.
유하나 : 역시 우리 막내 작화가님. 이제 스튜디오 초록 공식 귀요미 등극인가요…
한경우 : 이렇게 내 자리를 뺏기다니 ㅠ
유하나 : 네?
서도연 : 원래 경우님이 착각이 좀 심해요.
우영이는 말이 없다.
그 전에 영상 업로드를 허락한 것부터가 신기하긴 했다.
다 기억나면 그럴 수가 없을 텐데.
‘그럼 그다음도 다 기억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꿀잼 영상을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침 함께 볼 사람도 있고.
우선 저장부터 한 뒤에 영상을 클릭했다.
“연두야.”
“네, 아빠!”
친구들과 화해해서인지 완전히 생기가 돌아온 연두였다.
마침 좋은 타이밍이다.
이런 영상은 즐거울 때 봐야 더 꿀잼이니까.
“아빠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해?”
옆에 붙어 앉은 연두를 향해 물었다.
“어떤 말이여?”
“술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네, 기억해여!”
생긋 웃으며 연두가 말한다.
“귀여워진다고 했어요..!”
“하하, 맞아. 그런데 이번 작화팀 회식 때 누가 술을 먹었는지 알아?”
“누가요?”
“우영이오빠.”
눈이 동그래진 연두가 말한다.
“그럼.. 우영이오빠도 귀여워졌어요..?”
“글쎄.”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한번 볼래? 귀여워졌는지.”
“네에.”
호기심 가득한 눈.
귀여워진 우영이오빠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되나 보다.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나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주원이.. 형아.”
완전히 시청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영상이었다.
대놓고 귀엽다.
형아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연두는 입을 가리고 쿡쿡 웃기 시작했다.
“.. 흣. 아빠. 우영이오빠가 아빠한테 형아래여. 주원이형아..”
“그래서 어때?”
“진짜진짜 귀여워여…”
이걸 어쩐다.
우영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 연두의 모습이 내 눈에는 미치도록 귀여웠다.
계속되는 영상.
처음 보는 우영이의 모습에 연두는 웃음을 그칠 줄을 몰랐다.
촤랑.
건배로 영상이 끝났을 때.
까만 화면에 아쉬움 가득한 연두의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우으.. 끝났다…”
“아쉬워?”
“네.”
“그럼 아빠가 얘기해줄까? 영상에는 없지만, 우영이가 했던 얘기. 연두한테 한 얘기도 있는데.”
“여, 연두한테요?”
“응.”
“해주세요, 얘기..!”
세상 궁금한 표정이다.
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해줘서는 재미없었다.
“아니다. 안 하는 게 좋겠다.”
또르르.
실망한 표정.
“.. 왜여? 왜 안 하는 게 좋아여..?”
“아쉽거든.”
“으응?”
“아빠가 대신 전하기에는 아쉬운 말이라서. 그러니까 연두야.”
“네.”
“나중에 직접 듣자.”
“나중에요?”
“응. 언젠가 우영이오빠가 또 귀여워지는 날이 올 거야. 그때는 바로 앞에서 듣는 거지. 어때? 그게 훨씬 더 좋을 거 같지 않아?”
생각에 빠진 연두.
그러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진다.
“.. 좋아여!”
납득한 거 같아 다행이다.
이 분위기를 타서 전해야 할 소식이 있었다.
“그리고 연두야.”
“네.”
“좋은 소식이 하나 있고, 더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뭐부터 들을래?”
나쁜 소식 따위는 없었다.
빙그레 웃던 연두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콕 찌르며 말한다.
“좋은 소식이요!”
“그래.”
그럴 거라 생각했다.
최고로 좋은 소식은 마지막에 듣는 게 나으니까.
앞뒤 순서를 고려해도 좋은 소식부터 전달하는 게 맞고.
“아빠 작화팀이 주연이언니가 소속된 프로미스 앨범아트를 그렸잖아.”
“네에.”
“그래서 초대장을 받았어.”
“초대여?”
“응. 아빠랑 팀원 전부 주연이언니 첫 음악방송 무대를 보러 갈 수 있는 특별 초대장.”
“우아…”
그렇다.
앨범의 흥행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건지, 우리는 음악방송 방청권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명당자리로.
“축하해여, 아빠..!”
역시 기뻐해 주는구나.
내심 서운해하지 않을까 했다.
좋은 소식에 따르면 초대받은 건 나와 팀원들뿐이니까.
“고마워.”
그런데도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는 연두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감추지 못하는 부러움 가득한 표정은 더더욱 그렇고.
애써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다음은?”
“.. 네?”
“다음은 안 물어봐? 좋은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
“아!”
연두가 자그맣게 입을 뗀다.
“더 좋은 소식은 뭐에요, 아빠..?”
나는 손가락 네 개를 뻗으며 말했다.
“아빠랑 팀원들 말고도 초대받은 사람이 네 명이 더 있어.”
“네 명이요?”
“응.”
또 부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네 명이 누군데요..?”
“한 번만 말해줄 테니까 잘 들어야 한다?”
“.. 네!”
집중하는 표정.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미리 펼쳐 둔 네 개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나는 말했다.
“민유리.”
손가락 하나.
연두의 눈이 깜빡인다.
“이레나.”
손가락 두 개.
이번에는 자그맣게 입이 벌어진다.
“연시은, 그리고… 서연두.”
차례로 접히는 손가락 세 개와 네 개.
그러자 연두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
“후아아…”
그만 웃음이 터졌다.
그렇다.
회사 측에서 추가 제공한 초대장 세 개의 몫은 다름 아닌 연시레, 그리고 유리였다.
‘나도 내 몫을 해야지.’
화해는 아이들의 손에 맡겼다.
그러니 셋이 함께할 시간은 내가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학부모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