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54)
654화. 돌아온 소환숲
휘익-
내 말대로 연두는 바람 위에 올려놓듯 종이비행기를 던졌다.
비행을 시작한 YD-001.
솔직히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이었다.
‘잘 접었어.’
비행기는 잘 접었다.
숙련된 조교인 나를 따라 접었으니 그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허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어떻게 날리는지도.
‘비행기로 따지면 파일럿이지.’
한 번도 비행기를 몬 적이 없는 초짜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고급 비행기더라도 추락할 게 뻔하다.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어떻게 날려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한 거고.
슥.
비행기에 고정된 시선.
한참이 지나도 그 시선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터져 나오는 탄성.
“.. 햐.”
날고 있었다.
완전히 바람을 타고 ‘YD-001’이 직선으로 비행하고 있다.
월이 비행기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엄청난 스피드로 앞을 향해 나아가던 월이 비행기와 달리, 한 마리 철새처럼 유유히 날아간다.
그래서일까.
한 템포 늦게 여기저기서 호응이 터져 나왔다.
“와.. 우와..!”
“엄청 멀리 간다!”
“날아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연두.
이후에도 한참을 뻗어나간 비행기는 사뿐히 수풀 위에 안착했다.
톡.
또 한 번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가 떨어진 곳은 월이 기록보다 한 뼘 정도 앞이었으니.
“연두야!”
바로 소리쳐 연두를 불렀다.
그러자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연두가 나를 바라본다.
다음 장면은 정해져 있었다.
타닷. 탓.
달려오는 연두.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빠른 속도였다.
폭.
“아빠아…”
덩달아 나도 심장이 벅차올랐다.
왜냐고?
비록 내 비행기는 망가져 버렸지만, 그런 나 대신 연두가 멋지게 증명해줬으니까.
우리 비행기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잘했어, 연두야.”
“네에..”
“아니, 이제 연두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공주님?”
세상 좋아하던 연두가 살짝 고개를 들어 묻는다.
“.. 왜여?”
“연두가 1등이니까. 오늘 1등은 왕이나 다름없고.”
“아!”
납득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아직 아니에여!”
“응?”
“아빠 아직 안 했으니까.. 아빠가 일등 할 수도 있어요…”
“연두야…”
맞아, 그랬지.
아직 연두는 내 ‘CR-001’에 벌어진 참사를 모르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한다.
“아빠 비행기가 더 멋지니까! 연두 비행기보다 더 크고!”
확실히 그렇긴 했다.
과거형이라는 게 문제지만.
애써 울컥하는 감정을 추스르며 얘기했다.
“그래, 연두야.”
규칙이 적용되는 건 대결이 끝난 후였다.
이제 미련은 없다.
연두가 내 한을 풀어줬으니,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내 억울함은 저 녀석이 풀어줄 테고.’
거치해 둔 카메라.
비행기 대결을 담으려는 의도이긴 했지만 분명히 담겼을 터였다.
민우의 악행도, 비행기를 잃어 슬퍼하는 내 모습도.
‘.. 취소.’
악행이란 단어는 취소한다.
아무리 그래도 여덟 살 아이한테 부적절한 표현인 거 같았다.
…… 반성해야지.
어쨌거나 구차한 변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빠가 다녀올게.”
“으응!”
자그마한 두 손으로 내 손을 꼬옥 잡고 연두가 말한다.
“아빠, 하이팅..!”
“그래.”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 파이팅!”
터벅. 터벅.
차갑게 식은 머리.
출발선에 선 나는 손 위에 있는 ‘CR-001’을 바라봤다.
한때는 그 어떤 비행기보다 멋졌던 내 첫 작품을.
‘할 수 있어..’
물아일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와 이 녀석은 하나였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순간.
“.. 아빠!”
연두의 부름에 맞춰 나는 비행기를 날렸다.
하늘을 가르는 CR-001.
그러고 나서 장렬히 전사했다.
“…”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정적을 뚫고 외마디 소리가 귀에 들어왔거든.
“.. 풋.”
명백한 비웃음.
그 소리의 주인공은 민우였다.
“아저씨, 진짜 못 날리네요.”
“…”
그렇다.
내 성적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참고로 원래 꼴찌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민우였다.
‘.. 민우보다 못 날렸어!’
원통했다.
그런 와중에도 세연씨는 이기긴 했지만 전혀 기쁘지는 않았다.
차라리 꼴찌가 나았을 정도다.
말해두지만 날리는 방식에 문제는 없었다.
‘얼마나 아팠던 거니, CR-001…’
처량한 신세였다.
주인이자 파일럿인 나나, 지금 내 마음처럼 구겨지고 찢긴 이 녀석이나.
나는 한 번 더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CR-002는 꼭 지켜줄게.’
그와 동시에 나는 ‘CR-001’을 동그랗게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로써 끝이 났다.
내 첫 비행기인 녀석과의 인연이.
***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였다.
‘이건 못 참지.’
남은 건 유리와 레나 두 명뿐이다.
생동감 있게 담기 위해서는 카메라도 거치해 두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바로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슉.
“뭐, 뭐예요.”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밀어서 그런지 당황한 유리.
개의치 않고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생생특파원 초록입니다!”
“네?”
“현재 레나와의 대결을 앞두고 있는데요. 대결에 앞서 소감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많이 긴장되는지 궁금한데요.”
힐끗 레나를 본 유리.
파지직!
또 전기가 튄다.
괜히 장난치려다가 승부욕만 돋우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만.
다시 고개를 돌린 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긴장 하나도 안 돼요.”
“오, 왜죠?”
“어차피 이길 거니까. 이레나는 저 못 이겨요.”
부글. 부글.
빨개진 레나의 볼.
자연히 다음 인터뷰는 레나로 넘어갔다.
“자, 그렇다는데요. 레나 생각은 어떤가요?”
“흥!”
팔짱을 끼고서 레나가 말한다.
“미뉴리는 저 한 번도 이긴 적 없어요!”
“이번에 이겼잖아!”
“내 차례거든? 끼어들지 마!”
그 뒤에 카메라를 응시하며 얘기한다.
“꼭 이길 거예요! 이겨서 미뉴리 못 까불게 할 거예요! 그리고……”
“그리고?”
“…… 인정하라고 할 거예요.”
“뭘 말이죠?”
“아저시랑.. 아저시랑 케미 더 안 좋다고…… 저랑 아저시가 더 케미 좋다고……”
수줍음 가득한 얼굴.
내 얼굴이 아닌 카메라를 보고 있었기에 가능한 말인 거 같았다.
괜히 쑥스럽네.
이상형 월드컵, 그게 뭐라고.
‘진짜 뭐든 지기 싫은가 보네.’
서로에게는 그 무엇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느껴졌다.
잠깐 생각해 봤다.
만약에 유리와 레나가 다루는 악기가 같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감당이 안 됐을 거야.’
연두와도 피아노로 마찰을 빚었던 유리였다.
일방적인 공격이긴 했지만.
새삼 유리와 레나가 다루는 악기가 다르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별개로 이제 빠져야 할 거 같았다.
“네! 두 참가자의 인터뷰 들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생생특파원 초록이었습니다!”
재미를 위해 더 긁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충분히 긁은 거 같고.
“먼저 해.”
“너 먼저 해.”
“네가 먼저 해.”
“싫거든? 왜 내가 먼저……”
이럴 때 방법은 하나였다.
“가위, 바위, 보!”
결과는 유리의 승리였다.
분한 표정의 레나.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유리가 아니었다.
“절대 안 진다면서 가위바위보도 나한테 지네.”
“가위바위보는 진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운으로 진.. 아니, 운으로 진 거는 진 거……”
“… 풋.”
레나 멘탈이 위험하다.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고는 해도, 가끔 이렇게 한국말이 배배 꼬일 때가 있었다.
그 상태로 출발선에 선 레나.
‘.. 누구를 응원해야 하지.’
당연히 공개적으로 한쪽을 응원해서 상처를 줄 생각은 없다.
허나 이번만큼은 레나가 이겼으면 했다.
여기서도 진다면, 정말 멘탈적으로 타격이 클 거 같았으니까.
“누가 이길 거 같아? 킁!”
“Yo…”
유준이의 물음.
그에 답하는 건 매일 붙어 다니는 선재였다.
“나는 걸어~ Yo! 레나의 승리~ 체킷!”
“.. 나도.”
“Why?”
“유리는.. 조금 무서운 거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진심으로 쫀(?) 듯한 유준이의 표정을 보고.
역시 귀엽네.
처음 음악실에서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한결같은 유준이다.
“가자, 레나야!”
하파엘의 응원.
그에 힘입어 레나는 힘껏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사락.
괜찮은가 싶었지만 비행기는 오래 날지 못하고 떨어졌다.
중간 지점이었다.
아주 나쁘다고는 못하지만, 안심할 수도 없는 기록.
“아…”
아쉬워하는 레나.
반대로 유리는 여유만만했다.
겨우 그 정도냐는 듯이 떨어진 비행기를 바라보며 출발지점에 선다.
‘조용하네.’
엄마인 은주아가 안 와서인지 응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걸 어쩐다.
내가 응원하기에는 조금 곤란한데.
“유리, 파이팅!”
다행히 하파엘은 공정했다.
유리에게도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였다.
“Yo, 미뉴리!”
깜짝 놀랐다.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선재를 보고.
설마 응원해주려는 건가?
‘.. 뭐지, 이 어른스러움은.’
그도 그럴 게, 아까 비행기를 날릴 때 유리에게 한 소리 들었던 선재였다.
바보 같다고.
생각해 보면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
이 녀석, 조금 멋있는걸?
그런 내 생각은 이어지는 가사에 박살이 났다.
“미뉴리! 유리멘탈!”
흠칫.
유리의 어깨가 들썩인다.
애써 못 들은 척하지만, 그 속에 타격을 입은 게 보였다.
과연 어떨까.
긴장감 속에 마침내 유리의 손이 올라갔다.
슈욱-
입이 떡 벌어졌다.
그야,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비행이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그 비행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역주행이었다.
‘출발선보다 뒤에 떨어졌어…’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
입을 뗀 건 레나였다.
“미뉴리…”
“…”
많은 게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
승부는 승부였다.
그렇다고 유리가 바로 결과에 승복한 건 아니었지만.
“한 번만.. 한 번만 더 할래요… 방금은 진짜 이상했단 말이에요!”
“유리야.”
나선 건 나였다.
“유리는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정정당당하고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대결 과정에는 어떠한 꼼수도 없었고, 그 누구도 유리 비행기가 역주행하도록 수를 쓰지 않았으니까.
유리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과이긴 하겠지만.
“.. 알겠다고요.”
그런 유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레나였다.
“미뉴리.”
“.. 응.”
“응?”
설마 하는 표정의 유리를 향해 레나는 말했다.
“언니한테는 ‘응’이 아니라 ‘네’라고 해야지.”
보통이 아니다.
한국의 존댓말 문화를 완전히 흡수한 레나였다.
“미뉴리.”
갈등에 빠진 얼굴.
대답하기는 죽기보다 싫지만, 방금 내 말이 걸리는 게 틀림없었다.
규칙대로라면 레나 말을 들어야 하니까.
“.. 에.”
“응? 뭐라고?”
발음을 뭉개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냥 넘어갈 레나가 아니었다.
“… 네.”
결국 유리 입에서 튀어나온 존댓말.
레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유리의 수난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거 같았다.
‘연두는……’
굳이 권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옆에 신하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서열 2위인 월이도 보인다.
“공주마마.”
“여기 물 있어~ Yo!”
“시키실 게 있으신지요, 공주님!”
선재는 존댓말도 랩으로 한다.
그런 와중에 하파엘의 사극 말투에 별안간 웃음이 터졌다.
한국에서 드라마 많이 봤나 보네.
“헤헤..”
수줍은 미소. 연두는 성군이었다.
백성들을 하나하나 굽어살피는 모습이 연두다웠다.
역시 우리 딸이야.
이쯤 되면 의문이 들 터였다. 너는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냐고.
“야!”
이게 무슨 소리냐고?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주인님의 목소리였다.
“빨리 안 오고 뭐 해, 주드?”
오랜만에 듣는 이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주드는 과거 내가 작화를 맡았던 ‘소녀와 환상의 숲’의 원숭이 캐릭터다.
그리고 나는 지금 주드다.
왜냐고? 주인님이 나한테 주드라고 말했으니까.
“지, 지금 갑니다, 원숭!”
바로 주인님께 달려갔다.
그렇다.
지금의 나는 민우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