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60)
660화.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요즘 말이야.”
“네.”
“세연이.. 아니,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있니?”
윤인주의 물음.
별다른 표정의 동요 없이 시은이는 되물었다.
“만나는 사람이요?”
되묻는 말에 윤인주는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오호호, 내 정신 좀 봐. 아직 애기인데 이렇게 물어보면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지. 우리 시은이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그렇다.
손녀바보인 것과 별개로 윤인주에게 있어서 시은이는 세상 어린아이였다.
그녀는 물음을 정정했다.
“그러니까 할머니 말은.. 엄마가 요즘 만나는 남자가 있냐는 거란다.”
만나는 남자.
이쯤 되면 시은이도 그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윤인주가 간과한 점이 있다면, 시은이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지 않다는 점이었다.
“.. 없어요.”
“정말?”
“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바로 떠올랐다.
그러나 할머니가 얘기한 ‘만나는 남자’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아저씨는 아니니까.’
아저씨는 엄마를 좋아하지만, 그게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으니까.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 똑같아.’
특별하길 바랐다.
엄마처럼 아저씨도 그런 표정을 지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저씨는 늘 똑같았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이 좋았지만, 가끔은 조금 밉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떻든 간에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흐응.. 그러니?”
고개를 끄덕이는 윤인주.
딱히 시은이의 말이 거짓인지 의심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중얼거리듯 그녀는 덧붙였다.
“하긴, 그렇겠지.”
딸 성격은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주변을 지나칠 정도로 신경 쓰는 성격.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한 반항이라고는 이혼을 결정한 게 전부다.
그 하나가 너무 크긴 했지만.
‘얘기 안 했겠지.’
그런 성격을 고려하면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해도 시은이에게는 숨겼을 거다.
절로 나오는 한숨.
혀를 차며 윤인주가 얘기했다.
“우리 시은이를 위해서라도 엄마가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네?”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할머니한테 삐진 게 좀 있는 거 같거든. 원래 얼마나 말을 잘 듣는 아이였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넋두리 형식의 말을 쏟아냈다.
“빨리 집에 들어와야 우리 시은이도 더 좋은 거 먹고, 더 좋은 거 입으면서, 더 좋은 학교에 다닐 텐데. 이렇게 가끔 오는 거로는 할머니가 챙겨주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
“시은이 아빠 될 좋은 사람도 얼른 만나구! 이러다 아무 남자랑 눈이라도 맞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윤인주는 몸서리를 쳤다.
여기서 ‘아무 남자’는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뜻했다.
“어때. 시은이도 아무나 아빠가 되는 건 싫지 않니?”
“네, 싫어요.”
바로 들려오는 대답에 윤인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그렇지.
여덟 살의 나이에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리 없었다.
“할머니도 빨리 시은이한테 좋은 아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시은이에게 이 말을 하는 의도는 간단했다.
아무리 귀에 딱지가 들도록 얘기해 봐야, 세연이는 도무지 집에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딸인 시은이가 얘기한다면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할머니.”
“응, 시은아.”
“좋은 아빠가 뭐예요?”
생각지 못한 물음에 잠깐 말문이 막혔다.
“좋은 아빠 말이니?”
“네.”
“당연히 우리 시은이 엄청 예뻐해 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아빠지!”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좋은 사람 엄청 많이 알고 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할머니는 엄마가 만날 사람에 대해 얘기하면서 엄마 얘기는 하지 않는 건지.
시은이는 잘 몰랐다.
왜 아빠가 없어진 건지도,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가 왜 사이가 나쁜 건지도.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 괜찮아요.”
“응?”
“좋은 아빠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생각과는 다른 손녀의 반응에 윤인주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녀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저는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생기면……”
시은이는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를 예뻐해 줬으면 좋겠어요.”
“…”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위험하면 지켜주고……”
앞서 윤인주가 뱉은 말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하나였다.
대상이 시은이에서 엄마인 신세연으로 바뀌었을 뿐.
시은이는 끝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얼마간 맴도는 정적.
그 정적을 깬 건 한참 뒤에 입을 연 윤인주였다.
“당연하지! 엄마도 지켜줄 멋있는 남자여야지!”
애써 밝게 얘기하긴 했지만, 윤인주는 표정에서 감출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복잡미묘한 감정을.
***
[넌센스 퀴즈에 중독된 연두!(short)]쇼트 버전의 영상.
이번 영상도 상상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위가 천만이라니.’
지금껏 올린 쇼트 영상 중에서는 가장 높은 조회수이다.
넘쳐나는 해외 댓글.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국내 댓글도 간간이 보였다.
-아 ㅋㅋ 연두가 하는 아재개그는 킹정이지.
┖나 원래 아재개그 들으면 정색하는데 왜 미소 짓고 있냐.
┖아재개그 떡상각 씨게 잡혔다…
┖문제 내다가 재밌어서 혼자 웃는 게 미쳤다고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도 문제 풀 줄 아는데…
┖좋아 나도 친구들한테 문제 내러 간다. 딱 대 ㅋㅋㅋㅋㅋㅋㅋ
┖그만두셈. 님이 하면 뺨 맞음.
┖말 개심하게 하네 ㅋㅋㅋㅋㅋㅋㅋ
-외국인들 단합력 미쳤냐고 ㅋㅋ
┖다 웃고 있네.
┖이해는 하고 웃는 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일단 웃으라고.
┖근데 연두 이 나이에 아재개그 이해하고 좋아하는 거 보면 완전 똑똑한 거 아니냐.
┖맞지, 맞지.
┖우리 연두 똑똑하다니까. 피아노 치는 것만 봐도 느낌 오자나.
나도 생각하긴 했다.
아재개그도 어느 정도의 사고력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니까.
전부 보자마자 이해한 건 아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알려주면 곧잘 이해했지.’
그런 걸 보면 우리 연두는 똑똑한 게 틀림없다.
암, 그렇고말고.
그나저나 쇼트 영상이 연달아 터지고 나니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이것도 공식 영상 업로드처럼 굳어질까 봐.
-다음 쇼트 내놔!
-쇼트 영상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렷!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벌써 이런 상태다.
곤란하군.
아무래도 좀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알다시피 쇼트 영상은 올리기는 짧지만 혼자 보기에는 아쉬운 연두의 모습들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너무 많았다.
전부 올리려 하면 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 조절하는 수밖에.
‘할 것도 많을 테고.’
여름방학은 이제 막 시작했다.
계획한 것들을 전부 하려면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나름 열심히 편집해서 올린 쇼트 영상 반응이 좋으니.
‘다음은 뭘 올려 볼까.’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어떤 모습이 등장할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걱정은 되지 않는다.
왜냐고? 언제나 내 옆에 있으니까.
“아빠!”
“응, 연두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 짓게 만드는 내 딸 연두가.
***
얼마 전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소년 음악콩쿠르(유겐트 무라이트).
고작 열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체 1등을 차지해 화제가 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노엘(Noel)이었다.
연주를 지켜본 심사위원들과 관계자들도 한마디씩 말을 주고받았다.
“허허…”
“열 살짜리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온몸에 전율이 돋은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연주하는 자세랑 분위기까지… 솔직히 저는 그 아이 연주 보자마자 이전 연주는 전부 잊었어요.”
“어디서 저런 천재가 튀어나온 건지……”
말 그대로였다.
노엘은 이미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제가 듣기로는 저 아이, 소피아의 제자라고 하던데요.”
“소피아라면……”
“쇼팽 콩쿠르 우승자요.”
“허… 괜히 나온 실력이 아니었군요.”
“근데 다리가 불편한 거 같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사고라도 난 건지……”
빼어난 외모와 불편한 다리.
우승한 것과 별개로 노엘은 여러모로 화젯거리였다.
그들 말고도 관객석에 앉아서 노엘의 연주를 흐뭇하게 지켜본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다름아닌 소피아였다.
자잘한 건 몰라도 그렇게 큰 무대에 노엘을 내보인 건 처음이었으니까.
‘잘했구나, 노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다소 늦은 시점에 노엘을 콩쿠르 무대에 세운 건 그 밖의 요소들 때문이었다.
노엘의 내면, 그리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
‘그렇다고 평생 숨겨둘 수도 없었지.’
노엘은 원석이었다.
피아노로 정점에 서 본 그녀이기에 알 수 있었다.
노엘은 그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는 걸.
다만, 한 가지.
강한 듯 보이지만 노엘은 연약했다.
감정을 죽이고 마음 깊숙이 감추는 법을 너무 일찍 알았을 뿐.
그래서였다.
아끼는 만큼 조심스러웠던 건.
그렇게 출전한 콩쿠르에서, 노엘은 보란 듯이 최상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연주는 어땠니, 노엘?”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노엘을 그녀는 밝은 미소로 맞이했다.
그러나 곧 웃음은 지워졌다.
노엘의 표정에서 어떠한 즐거움과 성취감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연주는 훌륭했어.’
열 살이 한 연주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였다.
그러나 그 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다.
사실상 소피아가 이번 콩쿠르에서 가장 기대한 부분이었다.
규모가 큰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면, 제자의 얼굴에서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으니까.
성취감으로 인한 기쁨을.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땠나요?”
“응?”
“제 연주는 완벽했나요?”
지금도 그랬다.
노엘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가 아닌 감상을 묻고 있었다.
소피아가 원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열 살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로, 스스로 만족스러운 연주였다고 말하길 원했으니까.
“.. 그래. 잘했단다.”
“감사합니다.”
소피아는 답답함을 느꼈다.
피아노에 대한 건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지만, 감정에 대해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이 상태라면 노엘은 3대 콩쿠르에서 우승해도 웃지 않을 거라고.
‘1등을 할 만한 무대였나요?’
그렇게 묻는 노엘의 모습이 그려지는 게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불가능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성취감과 즐거움 없이는 결코 세계 정상의 레벨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불변의 진실이었다.
언젠가는 노엘이 극복해야 하는 벽이라는 뜻이다.
‘.. 모르겠어.’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 감정들을 제자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지.
한동안 머릿속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찾던 소피아는 옅은 미소로 입을 뗐다.
“.. 노엘.”
답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해야 할 말이 떠올랐을 뿐이다.
“고맙구나. 선생님이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연주를 보여줘서.”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래서 말이지. 1등을 차지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주고 싶은데.”
“선물, 말인가요?”
“그래.”
소피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내가 멋대로 준 선물이 노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건 선물이라 할 수 없겠지.”
“선생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면 뭐든 괜찮습니다.”
노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말해주렴, 노엘.”
“…”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뭔지.”
뒤에 덧붙인 말은 하나였다.
뭐든지 들어주겠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진심으로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제자가 원하는 게 뭔지.
‘얘기하지 않겠지만.’
그녀가 아는 노엘이라면 끝까지 얘기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정 밀어붙이면 시답잖은 부탁을 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알았으면 하니까.’
노엘이 조금이라도 자신에 대해 알았으면 했다.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다가 끝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감정에 도달했으면 했다.
그래서였다.
노엘에 대해 잘 알면서도 이렇게 반복해서 의사를 묻는 건.
“저는……”
망설이는 표정.
역시 생각한 대로일까.
그런 소피아의 어깨가 이어지는 노엘의 말에 작게 들썩였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 뭐라고?”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더욱더 선명하게 들려왔으니까.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노엘의 입에서 나온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