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65)
665화. 서울이다아!
고민이 많았다.
한국에 처음 온 노엘을 어떤 식당으로 데려가는 게 좋을지.
고급 레스토랑은 제외였다.
나랑 연두가 노엘에게 알려주고 싶은 건 그런 맛이 아니었으니까.
‘한국의 맛이지.’
한국에 왔으니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한국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한식당이다. 지금껏 노엘이 접해보지 못했을 음식이 잔뜩 나오는.
[은주네 맛집]허름한 간판.
나 이주원의 맛집 리스트 판별 기준에 따르면 큰 가산점이 되는 요소였다.
식당 이름도 정겹고.
무엇보다도 여기는 나와 연두의 단골집이었다.
단골이 된 이유는 하나였다.
‘맛있으니까.’
집 주위 음식점은 거의 다 섭렵했다.
연두와 같이 가본 곳도 많았고, 연두가 학교에 간 동안은 혼자 가보기도 했다.
그렇게 몇 군데의 맛집을 찾아냈다.
나름 미식가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 몇 군데의 식당만큼은 맛을 자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식당은 그중 하나였다.
“여기예요, 줄리.”
줄리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노엘과는 직접적인 소통이 어려웠으니.
어느 정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줄리가 노엘을 향해 말을 전달해준다.
고개를 끄덕이는 노엘.
슥.
얼굴에는 다소 생소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다.
마치 ‘여기가 식당?’이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는 거 같다.
뭐, 상관없다.
들어가서 음식을 입에 대는 순간에 그럼 의문은 자연히 해소될 테니.
“.. 아빠!”
연두도 잔뜩 신이 났다.
이유는 두 가지겠지.
단골집에 와서 흥이 오른 것도 있고, 그 맛을 노엘에게 알려줄 생각에 신이 난 것도 있고.
지금은 후자가 더 큰 거 같긴 하지만.
“그래. 빨리 들어가자.”
바로 식당에 들어갔다.
숨은 맛집인 만큼 손님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다.
테이블 개수도 적고.
“어!”
주방에 있던 식당 아주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 맛에 단골 하지.
그녀는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 와요! 연두도 오랜만에 오네?”
요즘 방문이 뜸하긴 했다.
식사를 거의 집에서 만들어 먹다 보니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반가워하시는 표정이다.
이윽고 아주머니의 시선은 뒤에 있는 줄리와 노엘을 향했다.
“뒤에 분들은 같이 온 거죠? 어머! 너무……”
어떤 말을 하려 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순간 번지는 표정.
그게 안쓰러움이 담긴 감정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야.’
식당 아주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
자세한 걸 알지는 못하지만, 평소의 표정과 말투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금세 얼굴에서 당혹감을 지운 아주머니가 말한다.
“너무 멋지게 생겼다.. 외국에서 왕자님이 온 줄 알았어요! 옆에 여성분도 너무 미인이시고.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에서 온 건지 물어봐도……”
어찌 보면 아주머니의 반응은 당연했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제 열 살 남짓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면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그게 노엘의 눈에 비친다는 거지만.
‘느껴지겠지.’
못 느낄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느껴지기 마련인데, 눈에 보이는 걸 자각하지 못할 리 없다.
아마 지금껏 수없이 마주한 시선이겠지.
“노엘이랑 줄리언니는 독일에서 왔어요!”
한편 아주머니의 물음에는 연두가 대답했다.
“독일?”
“네.”
“엄청 멀리에서 왔구나. 그럼 노엘은 연두 친구인 거니?”
“네, 친구에여..!”
연두와 아주머니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 뒤에서는 줄리가 노엘에게 전해주고 있다.
아까 아주머니가 한 말이 아닐까.
역시나 노엘이 칭찬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역시 어른스럽네.’
전에도 느낀 바였다.
또래 아이에 비해 노엘은 훨씬 어른스러운 아이였으니까.
유리에게 먼저 사과를 건넨 것도 그렇고.
그런 모습들이 아주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 연두를 봤을 때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느낌은 달랐다.
단지 그런 미묘한 이질감이 들 뿐이었다.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휙. 휙.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으니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편하신 곳에 앉아요!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메뉴는.. 늘 먹던 거로 괜찮죠?”
아주머니의 미소.
확실히 이 멘트를 단골인 내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뱉으니 재미있긴 했다.
나는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네, 늘 먹던 거로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에 온 노엘의 제대로 된 첫 식사가.
***
식사는 금방 준비됐다.
차례로 올라오는 접시들, 끝내 테이블 위를 다 채울 정도였다.
착각이 아니라면 유독 힘을 더 주신 거 같다.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코스요리도 좋지만, 역시 한식의 비주얼은 이래야 했다.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건 못 참지.’
상을 가득 채우는 음식들.
그리고 손이 가는 대로 골라 먹는 재미.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이던 노엘도 조금은 놀란 듯 보였다.
“맛있게 먹어, 노엘.”
“네.”
“줄리도 어서 먹어요.”
대답한 거치고는 둘 다 섣불리 손을 뻗지 않는다.
생소함 때문일까.
이럴 때는 먼저 스타트를 끊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연두야.”
척하면 척이었다.
내 눈을 본 연두가 생긋 웃으며 포크를 들었다.
콕.
첫 메뉴는 소시지 야채볶음이었다.
잠깐만.
원래 이 메뉴가 있었나?
내 기억상으로 저번에 왔을 때는 없었던 거 같은데.
‘오히려 좋아.’
쏘야는 명실상부 연두의 최애 메뉴였다.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노엘이 처음 먹어보는 맛일 거 같고.
‘소시지는 흔하지만.’
독일에 이런 맛의 소시지 야채볶음이 있을 거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
“아빠.. 아 해여!”
미치겠네.
나란히 앉아 나를 바라보는 노엘과 줄리.
의도치 않게 둘 앞에서 달달한 모습을 보여버렸다.
“고마워, 연두야.”
재빨리 받아먹었다.
그대로 더 있다가는 상당히 낯간지러운 상황이 연출될 거 같았으니까.
저절로 움직이는 입.
예상한 그대로 쏘야의 맛은 기똥찼다.
‘제대로네.’
케첩 베이스의 소스를 머금은 소시지와 야채의 만남.
뒤이어 입에 넣은 연두의 입가에도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그러고선 앞을 바라본다.
“…”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두 눈빛이 부담스럽기 쉽지 않은데.
슥.
그제야 노엘도 포크를 손에 들었다.
조심스레 입에 가져간다.
이런 사소한 움직임까지 절도 있는 게 신기하다.
‘메뉴는 역시 쏘야군.’
우리가 먹은 걸 따라서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렇게 첫입을 뗀 노엘.
오물. 오물.
“…!”
그리고 나는 봤다.
노엘의 얼굴에 스치는 짧지만 강렬한 파동을.
***
쏘야로 한식의 세계에 입문한 노엘.
커다란 감흥은 없었다.
상을 가득 채운 음식에 어느 정도 놀란 건 사실이지만, 소시지 야채볶음은 익숙한 비주얼이었으니까.
소시지로 유명한 독일에도 비슷한 음식이 존재했다.
따라서 맛도 예상이 갔다.
‘순서가 있는 건가.’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연두와 아저씨가 먼저 먹는 걸 보면, 이 많은 메뉴 중에서도 순서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렇게 쏘야를 입에 넣는 순간.
노엘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맛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게.. 소시지?’
충격적이었다.
질릴 정도로 먹은 소시지인데 그 맛이 전혀 달랐다.
혀를 강타한다.
독일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달짝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맛과 식감이.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그 자극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어때, 노엘?”
대답하는 걸 잊을 정도였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 사람.
식당 주인 이은주였다.
사실 노엘의 반응은 당연했다.
한식 장인이자 식당 경력 30년에 달하는 그녀의 비법 소스로 만들어진 쏘야였으니까.
“.. 맛있어요.”
다소 늦은 대답.
평소 식사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식사할 때도 늘 적당히 배가 차면 수저를 떼곤 했다.
지금은 어떠냐고?
연두와 아저씨의 손길을 주시하며 노엘은 계속해서 손을 뻗었다.
어느 하나 맛없는 음식이 없었다.
다른 의미로 하나같이 놀라게 만드는 음식뿐이었다.
‘한국의 음식은 다 이렇게 맛있는 건가?’
입 밖에 뱉으면 국뽕이 차오를 만한 의문이 노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였다.
노엘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뭐야?”
다름 아닌 연두가 집어 든 음식의 비주얼 때문이었다.
심지어 연두는 손수 올려줬다.
노엘의 접시에.
톡.
사소하게 챙겨준 거지만, 잘못하면 깻잎 논쟁에 버금가는 김 논쟁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장면이었다.
연두부가 못 봐서 다행이지.
여담이지만 주원은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김이야!”
“김?”
“.. 으응!”
처음 보는 김이라는 음식.
네모난 모양에 숯검정처럼 시커먼 색깔을 띠고 있었다.
왜인지 반짝반짝 빛나고.
여러모로 노엘의 눈에는 썩 내키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직접 준 거니까.’
신경 써서 접시에 올려준 음식이다.
먹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젓가락을 타고 전해지는 까슬까슬한 촉감을 느끼며 노엘이 김을 집어 들었다.
“후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괜찮았다.
지금까지의 식사가 너무 만족스러웠기에, 하나쯤은 불만족스러워도 감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맛이 없더라도.
바스락.
그렇게 김을 입 안에 넣는 순간.
노엘은 직감했다.
수많은 한식 중에서 자신의 최애음식은 김이 될 거라고.
***
식사가 끝났다.
표정 변화가 크게 없어서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나중에는 안심할 수 있었다.
느껴졌거든.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노엘의 얼굴에 번지는 파동이.
“노엘 입에 김 묻었다, 헤헤…”
연두의 말도 한몫했다.
확실히 그랬다.
노엘이 식사 도중에 흘리거나 묻히며 먹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으니까.
김이 그걸 가능케 만들었지만.
‘끝이 아니지.’
여기 오기로 결정한 계기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게 뭐냐고?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여기는 후식으로 꿀떡이 나온다.
“.. 흣.”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단번에 레나를 이해한 듯한 노엘의 표정을 보고.
그마저도 미세한 변화긴 했지만.
“계산할게여..!”
주머니를 열려는 연두를 간신히 말렸다.
전부 동전으로 계산하려다가는 동전 테러가 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일단은 내가 냈다.
그리고 연두 동전을 조금 가져오면 되겠지.
끼익.
식당에서 나온 뒤.
휠체어에 앉은 노엘은 연두를 향해 인사했다.
“잘 먹었어.”
전해주는 줄리의 말에 연두는 대답했다.
“.. 응!”
“너 말대로더라. 꿀떡, 진짜 맛있었거든.”
“다행이다…”
이어지는 노엘의 말.
“다음에는 독일에 놀러 와. 그때는 내가 선물을 준비할게. 독일 음식은 한국만큼 맛있지 않지만. 그럼……”
듣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흡사 작별하기 전에 뱉을 법한 멘트가 이어졌으니까.
설마 오늘이 한국에서 연두를 보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 나를 향해서도 인사한다.
“감사합니다.”
이쯤 되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어떡하지.
나랑 연두는 아직 노엘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데.
아직 이든 모델 얘기도 못 꺼냈고.
그게 거절당한다고 해도, 노엘이 돌아가기 전까지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아직 많으니까.’
한국에 대해 알려주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결국 나는 입을 뗐다.
“저기, 노엘.”
“네.”
“한국에서 우리가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데?”
의아한 표정의 노엘.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노엘이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자주 놀러 갈 생각이었거든. 그렇지, 연두야?”
“.. 네!”
줄리의 말에 놀란 듯한 노엘의 표정.
안 되겠군.
아무래도 말을 꺼내는 시기를 조금 앞당겨야 할 거 같았다.
“노엘.”
“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별도의 설명 없이 나는 바로 돌직구를 던졌다.
“혹시 쇼핑몰 모델 해 볼 생각 없어?”
***
차가 멈췄다.
“도착했어요, 할머니.”
무려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서울.
뒷자리에는 두 명이 앉아있었다.
그중 한 명은 주원의 할머니인 민홍임이었다.
“여기가 어딘데?”
“손주 댁 앞이요. 아파트 이름이 플로리아 맞죠?”
“잠깐 기다려.”
민홍임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울리는 통화연결음.
연결음이 멎은 뒤에 들려오는 건 주원의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주원은 바로 물었다.
“도착하셨어요, 할머니?”
“그래. 삭신이 쑤셔 죽겠다, 삭신이.”
“고생 많으셨어요.”
“말로만?”
“에이, 당연히……”
이제 적당히 말을 돌려 불호령을 피하는 데는 도가 튼 주원이었다.
그래도 두 번에 한 번꼴로 조대새끼가 되곤 했지만.
“지금 도착했다. 너 사는 곳이 플로리아 맞지?”
“네, 맞아요.”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그 말과 함께 끊긴 전화.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은 민홍임은 옆을 바라봤다.
드르릉. 컹.
요란하기 그지없는 소리.
황당한 표정으로 민홍임은 중얼거렸다.
“요놈의 새끼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콩알만 해서는.”
그렇다.
이건 다름 아닌 코 고는 소리였다.
운전석에 앉은 유동길이 껄껄껄 웃으며 얘기했다.
“아까는 그렇게 신나있더니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드르릉!”
다시 한번 울리는 소리에 민홍임은 버럭 소리 질렀다.
“그만 코 골고 일어나, 이놈의 새끼야!”
“으억!”
놀라서 벌떡 일어난 선동이가 의자에 이마를 부딪혔다.
뒤이어 눈을 끔뻑인다.
“여, 여기가 어디예요?”
“어디긴 어디야.”
민홍임의 말에 유동길이 말을 받았다.
“서울 도착했다.”
그 말에 치솟는 선동이의 입꼬리.
뒤에 이어졌다.
코 고는 소리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란 외침이.
“서울이다아!!”
귀를 틀어막는 민홍임과 유동길.
선동이의 두 번째 상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