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68)
668화. 밥 잘 사 주는 예쁜 연두
거울을 보며 자그마치 수십 번은 표정을 고쳐가며 연습한 웃음이었다.
교본은 주원이었다.
깔깔대며 웃는 게 아니라 살짝 입꼬리를 올려서 짓는 웃음.
굳이 따지면 미소에 가까웠다.
‘.. 이런 느낌인가.’
연습한 끝에 노엘은 꽤나 싱크로율이 높은 웃음을 완성했다고 생각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웃는 게 익숙지 않은 노엘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웃음이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지금 선동이의 눈에 비치는 게 그 결과물이었다.
‘이 녀석..’
처음이었다.
또래 남자애를 보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새하얀 얼굴, 찰랑거리는 금발, 끝이 살짝 올라간 눈썹 아래로 빛나는 녹색 눈동자, 오똑한 콧날과 입술.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았다.
슥.
그러나 비주얼보다도 더 크게 다가오는 건 바로 녀석이 짓는 웃음이었다.
비스듬히 치켜 올라간 입꼬리.
자신을 향하는 눈빛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명백했다.
‘.. 비웃고 있어.’
선동이는 확신했다.
지금 이 금발 녀석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고.
더 열이 올라오는 건, 그 가증스럽다는 듯한 미소마저 치명적일 정도로 잘생겼다는 점이었다.
과한 생각은 아니었다.
노엘의 웃음은 선동이뿐 아니라 주원에게도 그렇게 보였으니까.
‘.. 갑자기 왜 이러지?’
실제로 주원은 무척 당황한 상태였다.
그야, 그가 아는 노엘은 다소 직설적인 때가 있긴 해도 먼저 적의를 드러내는 타입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
옆에 있는 연두의 눈에도 동공지진이 일어난 상태였다.
“자, 자. 처음 봤는데 둘이 인사해야지.”
주원이 다소 어색하게 입을 떼고 나서야 노엘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먼저 입을 뗀 건 노엘이었다.
“Schön, dich zu sehen.”
만나서 반갑다는 뜻의 독일 인사말이었다.
이어지는 줄리의 통역.
그러나 이미 선동이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 말이었다.
“.. 흥.”
그때였다.
가만히 서 있던 선동이가 입을 뗀 건.
“어이, 너.”
그러고선 검지를 들어 냅다 노엘을 가리켰다.
“노엘이라고 했냐?”
“…?”
말이 통할 리 없었다.
머뭇거리던 줄리는 선동이의 말을 노엘에게 전해줬다.
한참 순화해서.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이름이 노엘이라고 했니?”
노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처가 크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노엘로서는 줄리의 통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줄리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최대한 순화해서 말을 전달해서,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풀어보려는 좋은 의도였다.
그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커지는 게 문제였지만.
선동이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웃으면 내가 기죽어서 아무 말도 못 할 줄 알았나 본데 천만의 말씀이야! 나 오선동이라고! 오대수의 아들 오선동!”
이번에도 줄리는 실시간으로 전해줬다.
“그렇게 나를 보면서 웃어주면 나도 아무 말도 안 할 수 없지. 나는 오선동이야. 오대수의 아들 오선동.”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통역이었다.
문제는 주원도 연두도 독일어를 모르는 통에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지만.
노엘은 말할 것도 없고.
‘성공한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묻지도 않은 아버지 이름을 알려줄 정도면 성공이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호감은 얻은 거겠지.
커다란 목소리와 과한 제스처는 단순히 이 애의 성향이겠구나.
노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레나.’
마음속으로 레나를 향해 심심한 감사도 표했다.
선동이는 멈추지 않았다.
겉으로는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노엘의 썩소로 인해 약이 바짝 오른 상태였으니까.
“어디 한번 잘해보자고. 모델로 너한테 절대 안 질 거니까.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나는 이미 사람들이 감자소년이라고 부르면서 엄청 좋아한다고.”
또다시 줄리를 통해 전해졌다.
“잘해보자. 모델로 너한테 지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나를 감자소년이라 부르면서 좋아해.”
노엘은 생각했다.
프로의식이 대단하구나.
마지막에 덧붙인 말을 보니 자신감도 높은 거 같고.
‘이 애도 밝구나.’
자신에게는 없는 밝음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이 애의 눈에서 안쓰러움을 비롯한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불편한 자신의 다리를 봤는데도.
‘신기해.’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자기 할 말만 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노엘이 입을 뗐다.
“잠깐만, 누나.”
그 말에 줄리가 손을 뗐다.
노엘은 직접 두 손으로 휠체어를 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놀란 듯 주춤하는 선동이.
그 앞에 드리운 건 노엘의 희고 긴 손이었다.
“잘 부탁해.”
역시 독일어였다.
악수를 내민 노엘의 입가에는 또 떠올랐다.
일전의 썩소가.
그리고 그 웃음은 선동이의 눈에 정면으로 들어왔다.
‘하하하, 그래. 해 보자 이거지?’
세상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선동이는 손을 겹쳐 잡았다.
두 아이의 악수.
동상이몽의 현장이었다.
***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현재 나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러려고 노엘을 부른 게 아닌데.
‘벌써 몇 분 째야.’
방에 들어온 후로 쭉 이 상태였다.
팔짱을 낀 채로 노엘을 바라보는 선동이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노엘은 어떻냐고?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가만히 있다가 때때로 한 번씩 썩소를 날린다.
부글. 부글.
그럼 또 열이 오른 선동이가 더욱 강렬하게 노려보는 구조였다.
내가 중재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것도 마냥 쉬운 게 아니다.
‘이상하잖아.’
어느 쪽을 뭐라 해도 그림이 이상했다.
선동이한테 그만하라고 하기에는 노엘이 먼저 원인제공을 한 게 있고.
그렇다고 노엘한테 뭐라 하기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노엘이 와서 한 거라고는 몇 차례 웃고 인사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 웃음이 문제긴 하지만.’
웃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안 그래도 웃음이 없는 아이인데.
잘잘못이 있다면 해결이 가능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어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도 있고.
‘레나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줄리가 있지 않냐고?
물론 그렇다.
그런데 내 생각에,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줄리도 원인이 없지는 않은 거 같다.
근거는 없다.
그저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선동이오빠..”
중간에서 연두가 분위기를 풀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노엘 엄청 착해여..”
“뭐?”
“독일에서 연두 많이 도와주고, 피아노 연습도……”
그런 연두의 말에도 선동이의 얼굴에는 뚱한 표정이 가시지 않았다.
되려 그 반대다.
노엘 편을 든다고 생각한 걸까.
“노엘.”
“응.”
“선동이오빠는……”
안쓰러워 죽겠네.
중간에 껴서 양쪽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막상 노엘은 세상 편안해 보이지만.
‘어떤 생각인 걸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노엘의 속마음도 그렇고, 줄리가 말을 어떻게 전하는지도 궁금했다.
레나가 있었다면 바로 알려줬을 텐데.
“어이, 너.”
연두의 중재가 끝난 뒤.
둘 사이의 긴 정적을 깬 건 선동이였다.
“연두랑 친구라고 했지?”
“응.”
왜인지 이다음에 선동이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거 같았다.
처음 만났던 시절부터.
선동이는 한 살 차이에도 예민한 유교보이였으니까.
“나는 연두보다 한 살 많은 아홉 살이야.”
“아홉 살?”
“그래. 그리고 너는 연두랑 친구고. 그러니까 나는 너보다 한 살 많은 형이라는 거지!”
얼굴에 번지는 의기양양한 표정.
나이로 기선제압을 하고 들어가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선동이의 말이었다.
확실히 정론이기도 했다.
연두와 노엘이 친구라면, 선동이가 형이 되는 게 맞으니까.
‘.. 노엘이 한국인이었다면 말이지.’
변수가 존재했다.
이건 말해줘야겠다 싶어서 나는 입을 뗐다.
“형이라고 불러봐, 형이라고!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발 늦긴 했지만.
“저기, 선동아.”
“네.”
“노엘은 독일인이야.”
“독일인이요?”
“응.”
“그게 왜요? 저는 한국인인데요?”
“그러니까.. 한국 나이랑 다르다는 거지. 노엘은 여덟 살이지만, 한국 나이로 치면 열 살이거든.”
“켁!”
놀란 나머지 사레가 들린 선동이.
“그런 게 어딨어요!”
“모르는 거야?”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알고 있다.
한국 나이와 외국 나이를 세는 기준이 다르다는 걸.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선동이.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뗀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법을 따라야죠!”
“한국 법대로 하면 노엘이 열 살인 건데……”
“…”
또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힐끗 고개를 드는 선동이.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노엘의 옆에 앉아있는 줄리였다.
“저기요, 누나.”
“응?”
“전했어요? 방금 한 이야기.”
줄리가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선동이가 형, 아니 노엘의 눈치를 보며 말한다.
“제가 하는 말 좀 전해주세요.”
“어떤 말?”
“내가 한 살 더 많긴 하지만… 친구로 지내자.”
“.. 풋.”
웃음을 터트린 줄리가 대답한다.
“알겠어!”
바로 말을 전해주는 줄리.
초조한 표정의 선동이 눈에 비치는 건 노엘의 썩소였다.
이쯤 되니 익숙해졌다.
‘동의의 표시겠지.’
선동이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부들부들 떨긴 하지만.
그렇게 꼬일 대로 꼬인 족보는 극적으로 친구로 합의됐다.
***
노엘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컴퓨터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까지 진이 빠진 기분이다.
감이 안 온다.
촬영 전에 둘을 만나게 한 게 잘한 건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긴 했는데, 마냥 또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거 같고.
‘소통이 되긴 했으니까.’
비록 기적의 소통이긴 했지만 말이다.
끝까지 지켜본 결과, 노엘의 웃음에 나쁜 의도는 존재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오히려 그 반대면 몰라도.
“아빠아..”
그 사이에 문이 열리고 연두가 들어온다.
반쯤 감긴 눈.
“연두 졸려여…”
그럴 만도 했다.
둘 사이에 껴서 연두도 여러모로 고생했으니.
편집을 끝내고 잘 생각이긴 하지만, 일단 연두를 재워주는 게 우선일 거 같았다.
“읏차!”
번쩍 연두를 들어 올려 침대에 눕혔다.
옆에 누워서 말했다.
“얼른 자, 연두야.”
“네에.”
나를 꼭 껴안고서 자려는가 싶더니 연두가 얘기한다.
“아빠.”
“응, 연두야.”
“선동이오빠랑 노엘.. 싸운 거에여..?”
역시 연두의 눈에도 헷갈린 모양이다.
확실히 오묘하긴 했다.
얼핏 보면 잘 얘기하는 거 같다가도 불꽃이 튀었으니까.
그 방향이 다소 일방적이긴 했지만.
“아니야, 싸운 거.”
그래도 그게 싸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느껴진 게 있었다.
잔뜩 약 올라 하는 선동이도, 속을 모르겠는 노엘도 서로를 미워하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오해가 있는 거 같긴 하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단 말이지.’
실은 그랬다.
아까 처음부터 카메라로 둘이 만나는 모습을 담았다.
이든 모델의 만남.
예상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둘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사진작가로서의 내 혼을 자극했다.
‘정반대의 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게 느껴졌고.
그래서였다.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역시 오늘 둘을 만나게 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연두야.”
“.. 네.”
“둘은 분명히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시간은 많으니까.”
“진짜여?”
“응, 아빠가 약속할게.”
내 일도 아닌데 약속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피곤에 젖은 눈으로 연두가 힘겹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랬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연두는 선동이오빠도 좋아하고, 노엘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스르륵.
오랜만이다.
말하다 잠에 빠져드는 연두를 보는 건.
절로 입가에 번지는 미소.
한동안 연두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이건 끝내고 자야지.’
편집하던 영상이 있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이긴 했지만.
화면에 떠올라 있는 건 노엘의 얼굴이었다.
‘몇 번을 봐도 잘생겼네.’
원래 노엘을 연두튜브에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괜히 독일 여행 시리즈에서 노엘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왜 노엘이 등장하냐고?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노엘이 이든 모델로 결정됐다.
지금껏 나는 연시레가 촬영하는 모습이나 관련 영상을 연두튜브에 꾸준히 업로드해 왔다.
그게 홍보의 일환이 되기도 했고.
이제는 선동이와 노엘이 정식으로 합류하게 된 상황이었다.
연두부들에게 노엘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물론 동의를 구했다.
당사자인 노엘은 물론이고, 보호자인 소피아에게도.
소피아는 말했다.
‘물론 괜찮아요. 모델을 하는 마당에 연두튜브에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죠. 무엇보다도……’
보고 싶다는 모양이었다.
제자인 노엘이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확실히 그녀가 보기에도, 연두튜브만큼 좋은 창구가 없었다.
‘보여주고 싶어.’
흔쾌히 허락해준 만큼, 꼭 그녀에게 제자인 노엘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궁극적으로는 노엘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의 추억을.
[독일에서 온 친구 맛집 소개해주기!(feat. 밥 잘 사 주는 예쁜 연두)]이게 그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