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80)
680화. 색깔
“노엘보다 선동이가 입은 옷들의 판매량이 훨씬 더 높다고요?”
닫힌 문틈으로 들려오는 말.
순간적으로 선동이는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입은 옷 판매량이 노엘보다 더 높다고..?’
자연스레 벌어지는 입.
아직 아홉 살밖에 안 되긴 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판매량은 곧 능력이다.
그 말인즉슨, 자신이 노엘보다 모델로서 더 활약했다는 걸 뜻했다.
‘내가 노엘을 이긴 거잖아!’
온몸에 느껴지는 전율에 선동이가 몸을 꿈틀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한테는 절대 안 질 거니까!’
습관처럼 뱉던 말.
그 말은 사실 자신감에서 비롯된 말은 아니었다.
처음 노엘을 봤을 때,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한 것도 노엘이 보여준 썩소 때문만은 아니고.
그럼 뭐냐고?
아무리 곱씹어봐도 자신이 노엘보다 잘난 게 떠오르지 않는 탓이었다.
특히 모델로서는.
나름 소싯적 미남으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던 오대수의 아들로서 외모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선동이였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외모를 가진 노엘이었으니까.
괜히 너한테는 절대 안 질 거라는 둥의 이야기를 한 것도 그래서였다.
적어도 그런 약한 생각들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자신감에서만큼은 밀리고 싶지 않아서.
촬영 때에도 그랬다.
자신이 알려준 포즈들을, 정작 더 잘 소화해내는 노엘을 보고 질투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막 찍어도 화보 같았으니까.
‘… 그런데, 내가 진짜로 이겼어!’
아저씨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자신이 지금 듣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끓어오르는 희열을 간신히 참아내며 선동이는 누렁이를 부둥켜안고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흐허허.. 누렁아…”
“냐아..!”
말썽을 부리던 누렁이도 지금만큼은 자신을 축하해주는 것만 같았다.
자연히 드는 고민.
이걸 노엘한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흐흐.”
행복한 고민이었다.
확실한 건, 이 사실을 말한다면 노엘은 절대 그 비웃음이 담긴 썩소를 지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왜냐고?
간단하다. 모델로서 노엘은 오선동한테 졌으니까.
‘고민해 봐야겠어.’
허나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괜히 말했다가 엿들은 걸 들키게 될지도 모르고, 노엘의 사기가 떨어져 두 번째 촬영에 지장이 갈 수도 있다.
그걸 바라지는 않았다.
동업자 정신에 어긋나기도 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해도 이기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선동이는 생각했다.
‘그래. 두 번째 촬영이 끝나면 말하자!’
촬영이 끝나고 녀석이 독일에 들어가기 전에 말해주는 거다.
너 나한테 졌어,라고.
그리고 두 눈으로 똑똑히 봐줄 생각이었다.
노엘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완벽해.’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이행하려면 남은 두 번째 촬영도 진심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오선동을 보여주는 거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
깜짝 놀란 선동이가 옆으로 숨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으니까.
“.. 아, 아저씨.”
바로 발각되고 만 선동이였다.
***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노엘보다 선동이가 입은 옷 주문량이 많다는 소식.
심지어 그냥도 아니고 훨씬이다.
“아마 좀 더 소비자에게 와닿은 게 있었던 거 같아요. 아무래도 노엘보다는 선동이가 친근하고 현실적인 느낌이 있으니까.”
“그렇군요.”
이해가 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부분이다.
노엘은 비현실적이긴 하지.
“사실 굳이 말해야 하나 싶긴 했는데, 초록님한테는 다 말씀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하하,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더 신용받고 있는 모양이다.
고마운 일이다.
사장님 말대로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그와 별개로 주위에 얘기해서 득 될 건 없는 정보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이어지는 오준석의 말.
“그런데 저는 둘 다 너무 마음에 드네요.”
“네?”
“노엘이랑 선동이요. 제가 생각한 이미지에, 아니 그 이상으로 부합하는 느낌이고……’
단순히 옷의 판매량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좀 더 복합적이다.
일례로 쇼핑몰 유입에 있어서는 노엘이 더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모양이니까.
그럴 만도 하지.
나라도 노엘이 보이면 자연스레 마우스 커서가 향할 거 같다.
달칵.
이윽고 종료된 통화.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아, 아저씨.”
선동이가 누렁이를 안은 채로 문앞에 누워있었다.
입을 떼기도 전에 들려오는 말.
“누렁이가 도망가서요. 아저씨 전화하는 걸 들은 건 아니고요.”
“내가 전화하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
그러자 선동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다 들었구나, 이 녀석.
‘아오, 진짜…’
당연한 얘기지만 선동이를 향한 질책이 아니었다.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조심했어야 하는데.
“하하, 선동아.”
“.. 예.”
“들은 걸 뭐라 하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은 거야?”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걸까.
선동이가 눈을 끔뻑이며 대답한다.
“다는 못 들었어요.”
“그럼?”
“진짜에요. 저가 노엘 이겼다는 건 못 들었…… 흡!”
아차 싶었는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선동이.
확실히 정신 못 차린 거 같다.
못 들었다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걸 보니.
‘다 들은 거잖아.’
다른 내용을 못 들었다고 해도 다 들은 거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물이 엎어진 이상, 그런대로 최대한의 수습을 하는 수밖에.
“괜찮아, 선동아.”
선동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내 부주의함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니.
“근데……”
그래도 수습은 해야 했다.
노엘이 알게 된다면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타이밍 한 번 얄궂었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렸으니까.
띠. 띠. 띠. 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할머니와 연두였다.
“.. 아빠!”
손에 든 봉투들.
오늘 저녁거리가 담겨있을 터였다.
“오오!”
어느새 다가간 선동이가 재료들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요즘 끼마다 두 그릇은 기본으로 먹긴 한다.
다 먹고 나면 배를 두드리며 후회하는 것도 패시브이긴 하지만.
‘안 되는데.. 나는 이든의 모델인데…’
생각하니 또 실소가 나온다.
그건 그렇고, 입단속을 시키는 건 조금 뒤로 미뤄야 할 거 같았다.
연두 앞에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
선동이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름 어른스러운 면도 있는……
“흐흐, 서연두.”
“.. 으응?”
“노엘 있잖아. 내가……”
순간 눈이 커다래졌다.
막 어른스러운 면도 있다고 생각하는 찰나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어지는 선동이의 말.
“.. 아니다! 나중에 말해줄게.”
세상 킹 받는 표정.
알면 다친다는 듯이 연두를 바라보는 선동이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다.
이 녀석의 입은 솜털보다 가벼울 거라는 걸.
***
한편 그 시각.
노엘과 레나는 같은 화면을 보며 나란히 앉아있었다.
다름 아닌 이든 홈페이지였다.
그중에서도 이든 옷을 입은 노엘의 모습이 화면에 떠올라있었다.
“우와..”
감탄사를 터트리는 레나.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매일 우중충한 민무늬 옷을 입은 것만 보다가, 말끔히 차려입은 노엘의 사진들을 보니.
스크롤을 내리며 레나는 이야기했다.
“진짜 잘 나왔어, 노엘!”
“.. 그래?”
“응! 이제 옷 많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입고 다녀!”
막상 사진을 바라보는 노엘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실제로 그랬다.
별다른 임팩트가 없었다.
어떤 사진을 보더라도 거울을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느낌이었다.
문득 노엘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레나.”
“응!”
“선동의 사진도 보고 싶은데.”
“선동이오빠?”
눈을 깜빡이는 레나.
아직도 노엘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여기 있어!”
“고마워.”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노엘은 선동이의 사진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왜 스스로의 사진을 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
‘아무 색깔도 없었어.’
말 그대로였다.
자신의 사진을 볼 때는 마치 흑백으로 된 사진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밝은색의 옷을 입어도.
선동의 사진을 보니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느 하나도 같은 사진이 없었다.
수많은 표정이 존재했다.
그와 반대로, 사진 속 자신은 항상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옷을 입어도.
‘.. 나한테는 없는 것.’
선동은 노엘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색깔’이었다.
“.. 흣!”
레나의 웃음소리.
화면 속 선동이의 모습을 가리키며 레나는 말했다.
“이거 봐, 노엘!”
“…”
“선동이오빠 표정! 완전 웃겨! 흐흣…”
레나를 웃음이 터지게 만든 사진 속 선동은 세상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촬영 초반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사진은 연두를 사이에 둔 선동과 노엘이었다.
“.. 프흣!”
다시 한번 레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반대편에 있는 노엘을 바라보는 선동이오빠를 보고.
노엘을 질투하는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에 다시 노엘을 향해 말하려던 참이었다.
“레나.”
입을 뗀 노엘.
대답하니 들려온 건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다.
“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선동처럼.”
색깔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묻는 노엘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
여느때처럼 출근준비를 했다.
아, 그렇지.
선동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눈을 비비며 나오는 선동이를 본 건 오늘 아침이었다.
‘오선동.’
‘.. 으어?’
‘잠깐 나 좀 볼까?’
그렇게 나는 선동이의 손을 잡고 쥐도 새도 모르게 데려갔다.
진실의 방으로.
그 방은 다름 아닌 내 방이었다.
‘일단 축하한다.’
‘뭘요?’
‘이든의 모델로서 뛰어난 성적을 낸 거. 그러나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칭찬으로 시작한 뒤에 본론을 꺼냈지.
‘지금부터, 어제 들은 통화내용을 발설할 시에 제군이 겪게 될 일에 대해 나열하겠다.’
이게 무슨 소리람.
그런 표정을 짓는 선동이를 향해 다시 한번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만 안 둔다는 얘기였다.
나열한 것들 중에 하나만 말하자면, 오랫동안 알고 있던 선동이에 관한 비밀을 유포한다는 것이었다.
그 비밀이 뭐냐고?
‘연두를 좋아한다는 거.’
웬만해서는 꺼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물론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거든요!’
‘오호라. 그럼 바로 연두한테 얘기해도 되지?’
‘…’
바로 무자비하게 제압하긴 했지만.
그 뒤에 들려온 건 한 마디였다.
‘.. 안 말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선동이 입단속을 한 뒤에 진실의 방에서 내보내 줬다.
최선이었다.
이래도 말한다면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안 말하겠지.’
이 정도로 얘기해뒀으니 어지간해서는 비밀을 지킬 거 같긴 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솔직히 말해서 노엘이 그리 상처를 받을 거 같지도 않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뭐, 그래도 말할 필요 없는 문제인 건 맞으니까.’
한층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출근준비를 마쳤다.
마중을 나오는 연두.
“아빠..”
“응, 연두야.”
“안녕히 다녀오세요…”
포옹으로는 부족했다.
쪽. 쪽.
볼에 몇 번이고 뽀뽀세례를 퍼부은 뒤에야 연두를 내려줬다.
뒤이어 눈이 마주친 건 선동이였다.
표정을 보니 아직 나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마지못해 인사를 하긴 하지만.
꾸벅.
귀여운 녀석.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에 할머니께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늘 같은 출근길.
그러나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후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두 번째 프로젝트를 결정짓는 ‘스튜디오 초록’의 첫 미팅날이었으니까.
***
미팅은 총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오전과 오후로.
“안녕하세요.”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미팅 때문인지 팀원들의 얼굴에도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엿보인다.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오히려 득이 되는 법이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있으면 곤란하지만.’
서로에 대해 파악하고 세부적인 요소를 조율하는 미팅의 특성상 주도권이 무척 중요했다.
다행히 경험이 없지는 않았다.
그 경험을 토대로 미팅에 임할 생각이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도연씨와 표식씨.’
이번 미팅 파트너였다.
선정된 건 다른 게 아니라 본인들의 지원에 의해서 결정됐다.
무척이나 힘이 됐다.
기댈 수 있는 팀원이 있다는 게.
사락.
둘 다 스튜디오에 도착한 후에도 미팅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거겠지.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표식님, 도연님.”
“네.”
“잘해 봐요, 우리. 너무 긴장하지 말고.”
둘뿐 아니라 내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긴장하지 말자.
그런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똑. 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말끔히 차려입은 두 명의 남자였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명함을 건네받았다.
명함에 적힌 회사명.
[넥스트]그렇다.
스튜디오 초록의 첫 미팅대상은 다름 아닌 ‘넥스트’라는 게임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