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88)
688화. 퍼즐
계약은 일사천리에 이루어졌다.
세부 사항은 이미 논의가 끝난 상태고, 남은 건 우리의 확답뿐이었으니까.
‘생각 이상으로 기뻐했지.’
참여 의사를 전했을 때.
마치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한 반응에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그만큼 책임감도 생겼다.
신뢰와 기대를 받는 만큼, 최소한 우리가 맡는 일러스트만큼은 완벽하게 그려내야겠다는 책임감이.
팀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건 디자인팀 메일입니다.”
참여 의사를 밝히며 개인적으로 요구한 사항이 있었다.
디자인팀과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
이유는 간단했다.
‘일치해야 하니까.’
멋대로 그려도 되는 게 아니었다.
게임 속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디자인 사이에 이질감이 들어서는 안 됐다.
따라서 필요했다.
이미지를 일치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소통이.
‘비효율적이야.’
중간에 누군가를 거치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건네받았다.
디자인팀의 메일 주소와, 때에 따라서는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연락처를.
“웬만한 건 이 메일로 문의하면 될 거 같아요.”
“네, 초록님.”
아직 중요한 사항이 남아 있었다.
일러스트 작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캐릭터에 대한 정보다.
키가 몇인지, 체형이 어떤지,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머리 길이가 어떤지 등의 세부적인 정보를 모두 알아야 했다.
디테일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47명.’
‘드림 큐!’는 기본 캐릭터만 해도 무려 47명이었다.
체험판을 플레이하긴 했지만, 모든 캐릭터의 특성을 파악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체험판에 불과하고.
‘완성본도 마찬가지야.’
게임 특성상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 업데이트될 설정과 에피소드까지 알고 그리는 건 불가능했다.
따라서 전달받았다.
시나리오 작가가 작성한 방대한 양의 캐릭터 설정집을.
달칵.
이게 내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요구한 사항이었다.
작화에 손을 대기 이전에, 먼저 캐릭터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으니까.
“이건 캐릭터 설정집입니다.”
한경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캐릭터 설정집이요?”
“네.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알수록 디테일이 살아날 거라 생각했거든요.”
“와…”
왜 이렇게 놀라는 거지.
이어지는 한경우의 말에 그 의문은 바로 해소됐다.
“그럼 로아에 대한 복선도 적혀 있는 건가요..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주희의 과거 스토리도……”
“…”
흘러나오는 실소.
옆에서는 서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못 말린다는 듯이.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었다.
고오오.
매서운 눈빛으로 설정집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팀원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우영이였다.
아니, 너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뭐, 좋은 거지.’
이렇게 캐릭터에 대해 몰입한다는 건, 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좋은 현상이었다.
한경우와 선우영.
특히나 이 두 팀원이 그려낼 일러스트가 기대가 됐다.
“새로운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에게 2D 캐릭터 일러스트를 그리는 건 생소할 테니까요.”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캐릭터 일러스트 작화는 지금껏 그려온 그림과는 결을 달리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프로미스 멤버들을 캐릭터화해서 그렸던 걸 제외하면.
그마저도 맛보기 정도에 불과했지.
“원화팀과 의견을 맞추는 것부터 애를 먹을 수도 있겠죠. 캐릭터들의 전반적인 그림체도 맞춰야 할 테고요.”
당연한 얘기였다.
47명의 캐릭터를 전부 다 다른 그림체로 그린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이질감이 들겠는가.
첫 프로젝트에 비해 작화의 유연함과 팀으로서의 호흡을 요구하는 셈이었다.
그래서였다.
‘재미있을 거 같아.’
극복해야 할 부면이 많은 만큼,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더 클 거 같았다.
한 걸음 나아가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믿었다.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기한은 충분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나가죠.”
“네.”
첫 미팅을 끝내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모 아니면 도.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모로 만든다.’
그 생각으로 프로젝트에 임할 생각이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스튜디오 초록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
캐릭터 설정집은 확실히 유용했다.
몰랐던 정보들을 알 수 있으니 훨씬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대충 이런 느낌인가.
사각. 사각.
종이 위에 끄적여보기도 했다.
그림체에 대한 감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그렇듯, 교본은 이미 유명한 여러 2D 캐릭터였다.
‘확실히 달라.’
단순히 잘 그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캐릭터 일러스트의 그림체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느낌을 파악하면서 종이 위를 끄적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감이 오는 거 같았다.
팀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겠지.
째깍. 째깍.
어느새 찾아온 휴식 시간.
펜을 내려놓은 나는 옆에 놓여 있는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 있었다.
별을 보러 갔던 날에 찍은 하늘 사진이 가득했다.
‘이것도 있네.’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꼭 붙어 있는 두 개의 별을 보니.
원래 별자리 같은 걸 믿는 건 아니지만, 이건 도저히 의미 부여를 안 할 수가 없다.
연두가 손수 골라준 별이니까.
‘저게 아빠 별이고, 저게 연두 별이에요.. 헤헤…’
잘 찍혔네.
사진으로 봐도 선명하게 보인다.
내 별, 연두 별, 그리고 그 옆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까지.
‘네 아빠 색시 될 사람 별이라도 되나 보지.’
아니, 갑자기 할머니 말이 왜 떠오르는데.
당치도 않은 소리다.
누렁이 별이겠지.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별이거나.
“하하…”
웃음이 나왔다.
안 믿는다면서 세상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그래도 진짜였으면 좋겠다.
다른 별은 몰라도, 꼭 붙어 있는 나와 연두 별만큼은.
‘보고 싶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잠깐만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나 보고 싶은 건.
이렇게 꼭 붙어 있는 두 개의 별처럼, 서로 끌어당기는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있어서가 아닐까.
***
한편 그 시각.
연두는 얼마 전에 아빠가 사 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선동이도 함께였다.
머리에 뿔이 세 개 달린 공룡모형을 들고서 연두가 중얼거렸다.
“트리.. 트리…”
헷갈리는 공룡 이름.
앞의 두 글자만 듣고도 선동이는 풀네임을 입 밖으로 뱉었다.
“트리케라톱스.”
“아! 맞아여..!”
뿌듯한 웃음.
공룡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선동이였다.
웬만한 공룡은 외견만 보고 이름을 맞힐 수 있는 정도였다.
“트리케라톱스는 초식공룡이야.”
“.. 초식공룡?”
“응. 공룡은 세 종류가 있거든. 초식공룡, 육식공룡, 그리고 잡식공룡.”
공룡박사에 빙의한 선동이는 설명을 시작했다.
“초식공룡은 풀을 뜯어 먹는 공룡이야.”
“풀이여?”
“응. 그럼 육식공룡은 뭘까?”
꼴깍.
침을 삼키는 연두.
그런 연두의 눈앞에 펼쳐진 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는 선동이였다.
“크르륵.. 크캬캬캬!”
“꺄악..!”
“흐흐.”
연두를 놀라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선동이는 말했다.
“바로 다른 공룡이나 동물을 잡아먹는 공룡이지.”
“…”
겁을 집어먹은 연두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 그럼.. 잡식공룡은여..?”
그런 와중에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연두였다.
선동이는 말했다.
“풀도 먹고 고기도 먹는 공룡이지.”
“아..”
“그리고 익룡도 있어.”
“.. 익룡?”
“응. 날개가 있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공룡이지. 봐 봐, 여기 날개가 있잖아.”
정말이었다.
선동이오빠가 손에 든 주황색 공룡은 커다란 날개가 있었다.
“디모르포돈이라는 녀석이야.”
“디모로……”
따라서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발음한 연두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요, 선동이오빠..”
“응.”
“선동이오빠는 어떤 공룡을 제일 좋아해여?”
최애 공룡에 관한 질문.
좋아하는 공룡이 넘쳐나는 선동이에게는 꽤나 어려운 물음이었다.
고민의 시간.
얼마 지나서 선동이는 입을 뗐다.
“엄청 많아. 엄청 셌던 티라노사우루스, 아까 말한 트리케라톱스도 좋아하고, 목이 엄청 긴 브라키오사우루스도 좋아해.”
“우아…”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선동이의 모습에 연두의 입이 벌어졌다.
허나 아직이었다.
사실상 지금 말한 공룡들은 최애 공룡을 말하기 전에 깔아두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씩 웃으며 선동이는 입을 뗐다.
“근데 제일 좋아하는 공룡은 따로 있어.”
“뭔데여..?”
“이 녀석.”
이름을 말하는 대신, 선동이는 공룡 하나를 들어 올렸다.
외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청나게 단단한 머리를 가졌다는 걸.
모든 공룡을 통틀어 생각해도, 머리의 단단함만큼은 그 어떤 공룡에게도 밀리지 않을 거 같았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야.”
발음할 엄두조차 안 나는 복잡한 이름.
선동이는 덧붙였다.
“박치기공룡이라 부르면 돼.”
“박치기공룡..”
한결 쉬워진 발음.
공룡을 빤히 들여다보며 연두는 입을 뗐다.
“선동이오빠는 왜 박치기공룡 좋아해여..?”
“박치기공룡은 초식공룡이야. 육식공룡에 비하면 크기도 작고 멋있게 생기지도 않았지.”
연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만도 했다.
장점을 말해야 할 타이밍에 단점을 늘어놓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겁먹지 않고, 강한 공룡 앞에서도 돌머리로 자기 몸을 지켰어. 박치기 하나로. 그래서 나는 박치기공룡이 좋아.”
실상은 다를지도 모른다.
육식공룡 앞에서는 박치기고 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선동이는 자신의 머릿속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이미지를 좋아했다.
약해도 강자에 굴하지 않고 꼿꼿이 머리를 세우는 모습.
사실 좋아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파키케팔로사우루스와 마찬가지로, 선동이도 둘째가라 하면 서러운 돌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었다.
단단해서였다.
없어 보이니까 연두한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박치기공룡..”
선동이의 말을 들은 연두는 중얼거리더니 생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연두도요!”
“응?”
“연두도 박치기공룡을 제일 좋아해여!”
정확히는 좋아하게 됐다고 해야겠지.
그 해맑은 미소를 본 선동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늘 이후로 박치기공룡을 더 좋아하게 될 거 같았다.
***
가을 촬영날짜가 잡혔다.
계절이 여름이다 보니 장소는 스튜디오 내부였다.
모두가 기다리는 촬영 날이었지만, 유독 그날을 고대하는 건 시은이였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주말을 제외하면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아침부터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있어야 했으니까.
따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퍼즐 맞추기로 지루함을 달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보고 싶어.’
연두랑 레나가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혼자 퍼즐을 맞추고 있던 방 안에 할머니가 들어온 건.
“우리 공주님, 또 퍼즐 맞추고 있었어?”
“네, 할머니.”
“아구, 예뻐라. 얼마나 더 똑똑해지려고 그래?”
늘 그렇듯 손녀바보의 면모를 선보인 윤인주는 입을 뗐다.
“그러지 말고 할머니랑 쇼핑 갈까? 예쁜 옷 사러.”
“저 예쁜 옷 많은데.”
살짝 멈칫한 윤인주는 말했다.
“아.. 그 이든 옷 말이니?”
“네.”
“호호, 꼭 이든 옷만 입어야 하는 건 아니잖니. 더 예쁜 옷들도 많단다.”
“저는 이든 옷이 좋아서요.”
호불호가 확실한 시은이였다.
좋다는데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말문이 막힌 윤인주는 애써 웃음을 띠며 얘기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아직 촬영이 남았다고 했나?”
“네.”
“언제였더라?”
거리낌 없이 시은이는 날짜를 말해줬다.
숨기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그런데 왜 벌써 가을 촬영을 한다는 거니? 지금은 여름인데.”
“노엘은 독일에서 왔거든요. 선동이오빠는 시골에서 왔고요. 둘 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돌아가야 해서요.”
“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윤인주는 말했다.
“그래서 미리 찍어야 한다는 거구나?”
“네.”
“시은이 입장에서는 힘들겠네. 그 두 아이 때문에 한여름에 가을옷을 입어가면서 고생해야 하니……”
혀를 차는 윤인주.
그런 할머니의 말이 시은이는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힘들기는커녕 좋기만 한데.
게다가 할머니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밖에서 찍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
“응?”
“가을 촬영은 스튜디오에서 하기로 했거든요.”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을옷 촬영인 만큼, 배경도 가을 풍경이어야 하니까.
지금 시즌에 그런 배경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은 스튜디오뿐이었다.
그때였다.
“흐응.. 그러니?”
의미심장한 표정.
시은이한테는 보이지 않지만, 웃음기가 지워진 얼굴로 윤인주는 던졌다.
의도가 불투명한 물음을.
“.. 어디 스튜디오인데?”
그건 다름 아닌 스튜디오의 위치에 관한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