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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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화. 따뜻함
스튜디오 내부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꺄악!!”
그건 마치 중생대에 살던 익룡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
박치기공룡에 빙의한 선동이.
있는 힘껏 정강이를 머리로 들이받은 뒤에도 분이 가시지 않은 듯 씩씩거린다.
머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으윽.. 너, 너……”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주저앉은 윤인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선동이를 노려봤다.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악에 받친 목소리로 그녀는 소리쳤다.
“미쳤니? 이게 어느 안전이라고……”
선동이는 또 한 번의 발돋움을 준비했다.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단순히 감정적으로 올라온 게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럴 줄 알았어! 촌구석에서 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이렇게 교양이 없어서야……”
이를 악무는 선동이.
자신을 욕하는 건 괜찮았다. 기분은 조금 나쁠지라도 혼자 분을 삭이고 넘어가면 되니까.
그러나 참을 수 없는 게 있었다.
“할머니.. 선 넘었어.”
“뭐?”
아직도 속이 울렁거렸다.
방금 들은 역겨운 멘트를 생각하면.
‘다리가 이래서 어떻게 모델을 한다는 건지…’
‘뭐, 하고 싶은 거 하는 건 좋다고 해도, 장애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건 모르는 걸까?’
아빠는 다리가 아팠다.
거동이 불편해서 늘 엄마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자주 짓궂은 장난도 치곤 하는 애어른 같은 아빠였다.
그러나 아빠는 선동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멋있는 사람이었다.
노엘도 마찬가지였다.
‘.. 부러웠어.’
녀석이 부러웠다.
잘생긴 외모가, 어른스러운 성격이, 잔디 같은 자신의 머리와 반대되는 찰랑거리는 금발이.
질투가 날 정도였다.
반대로 노엘의 입장에서 자신을 본다면 어느 하나도 부러울 게 없을 거 같았으니까.
‘다리가 불편해도.’
그건 사람을 구성하는 수없이 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수천, 수만, 수억분의 일.
고작 그 정도로 사람의 한계를 정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적어도 선동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촌구석에서 왔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이렇게 교양이 없어서야……’
촌구석.
그 안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아빠는 물론이고, 함께 서울에 올라온 할머니, 옆집에 사는 소윤이, 항상 밝게 인사해주는……
‘.. 교양?’
그딴 건 없어도 좋았다.
소중한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교양이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교양이라는 벽을 깨부술 준비가 되어있었다.
여전히 다리를 부여잡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윤인주.
또 한 번의 발돋움을 마치고 선동이가 돌진하기 직전이었다.
툭.
선동이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노엘의 얼굴이었다.
양옆으로 젓는 고개.
“@&₩@%₩.”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감이 왔다.
그만두라는 뜻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제야 선동이는 잠시 버려둔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 시은이 할머니야.’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노엘과 다투고, 시은이와 싸워서 촬영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시은이 할머니를 머리로 들이받기까지 했다.
전부 몇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런 자신을 모두가 어떻게 생각할지.
‘믿고 맡겨줬는데.’
그제야 선동이는 인정했다.
오늘 벌어진 일들은 순전히 시골에 돌아가기 싫었던 자신의 감정에서 비롯된 거라고.
그게 아니었다면 노엘의 웃음에 그렇게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때였다.
또각.
구두 소리.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윤인주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너 이리 와. 이런 짓을 하고도 아무 일 없을 줄 알았어?”
가까워질수록 선동이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막아야 돼.’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
그냥도 안 잡힐 텐데 저 절뚝거리는 다리로 자신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허나 뒤에는 노엘이 있었다.
자리를 피하면 애꿎은 노엘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선동이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선동이는 두 발을 딛고 자리를 지켰다.
퍽!
예고는 없었다.
바로 올라간 손아귀가 선동이의 머리를 강타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선을 넘어? 넘으면 어쩔 건데! 버르장머리하고는……”
선동이는 아무 반응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퍽! 퍽!
“Hör auf!”
그제야 정신을 차린 줄리가 손을 뻗어 윤인주를 막았다.
이어지는 실랑이.
“이거 안 놔!”
거의 행패나 다름없었다.
그런 윤인주를 멈추게 만든 건 뒤에서 들려온 한 마디였다.
“.. 할머니?”
시은이의 목소리였다.
***
아이스크림을 사서 올라간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펼쳐진 장면에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놓으라니까!”
웬 낯선 여자가 선동이를 앞에 두고 줄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봉투를 떨어트렸다.
그대로 달려가려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
“.. 할머니?”
그 말에 장내가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저 난동을 피우고 있는 사람이 시은이 할머니라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세연씨 어머니라는 건데.
‘대체 왜?’
말도 없이 찾아온 건 그렇다 치고, 선동이를 왜 때리고 있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단 중요한 사실은 하나였다.
한달음에 달려간 나는 그녀와 선동이 사이를 가로막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선동아?”
선동이는 말이 없었다.
그런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하.. 마침 잘 왔네. 그쪽이 촬영한다는 사람이죠?”
“네, 맞습니다.”
“들었지? 시은이가 할머니라고 하는 거.”
그녀는 선동이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손녀딸 촬영 잘하는지 보러 왔는데.. 글쎄, 저 꼬맹이가 다짜고짜 내 다리를 머리로 들이받았다니까?”
긴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덧붙인다.
“여기 빨갛게 멍든 거 보이죠?”
실제로 그랬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피부가 붉게 올라와 있었다.
아무래도 사실인 거 같았다.
선동이가 머리로 그녀의 다리를 들이받았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가 없네.. 저런 몰상식한 아이가 우리 시은이랑 같은 모델이라는 게…”
선동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무런 말이 없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멘탈에 있어서 타격이 커 보였다.
‘뭘 물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거 같네.’
어쩔 수 없었다.
이 상황은 내 나름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선동이를 뒤로하고 시은이 할머니와 마주 보고 선 나는 말했다.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저도 믿을 수가 없네요.”
나는 계속해서 호흡을 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왜냐고?
그러지 않으면 자칫하면 험한 말이 나올 거 같았으니까.
흠칫한 그녀가 대답했다.
“.. 뭐라고요?”
“다짜고짜 선동이가 들이받았다고 하셨죠.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요.”
예상 못 했던 반응이었던 걸까.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니,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네, 그런 거 같습니다.”
“…?”
이제는 거의 미친놈 바라보듯 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내가 앞뒤 안 가리고 이렇게 반응하는 건 오랜만이니까.
“선동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거든요. 아무 이유도 없이 연세 지극하신 할머니한테 박치기를 할 아이는 더더욱 아니고요. 그러니까 빼놓지 말고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잘 모르겠다. 이게 현명한 방법인지는.
허나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선동이가 맞던 장면이 맴돌았고, 나는 선동이 못지않게 감정적인 인간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하나였다.
‘알고 있어.’
나는 세연씨 어머니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허나 선동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안 그래요, 같은 논리가 아니었다.
장난기가 많고 때로는 선을 넘기도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선을 넘을 아이는 결코 아니라는 건 확신했다.
되려 선을 넘은 건 그녀였다.
“뭐? 연세 지극하신 할머니? 뭐, 이런 양아치 같은 인간이 다 있어?”
열을 올리는 그녀에게 말했다.
“사과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사과?”
“나중에 제 말이 잘못된 게 있으면 사과드리죠. 그러니까 우리 모델에 손찌검을 한 건 사과해 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이게 문제긴 했다.
때때로 나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 되곤 하니까.
우습게도 이 상황에 떠오르는 건, 외삼촌 장례식 때였다.
‘키우면 되잖아요, 제가!’
당시로서는 미친 짓이라 생각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연두를 만났으니까.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행동을 후회할지는 미래의 내가 알려주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당신, 나한테 이러고도 감당될 거 같아? 유투브나 하는 인간이 내가 누군 줄 알고……”
감당이 될지 안 될지도 미래의 내가 알려주지 않을까.
그보다 걱정이 됐다.
이 장면을 보며 마음의 상처를 입을 연두와 아이들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여기서 그만두는 편이 좋을 거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입을 떼려는데,
“.. 거짓말이에요.”
감정적이었던 탓일까.
뒤늦게 깨달았다.
현장에는 선동이와 노엘뿐 아니라 줄리도 있었다는 걸.
“할머니가 말했어요. 정말 나쁘게 말해서, 선동이 그런 거예요. 할머니, 나쁜 사람이에요..”
“그게 무슨……”
당황한 표정을 보아하니 줄리가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이로써 증인도 생겼다.
궁지에 몰린 그녀가 찾은 건 손녀였다.
“안 되겠다, 시은아.”
되레 큰소리를 치며 시은이의 손을 붙잡은 그녀는 말했다.
“이런 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당장 엄마한테 얘기해서……”
“.. 할머니.”
스윽.
“시, 시은아..?”
손을 놓은 시은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 채로 할머니를 향해 얘기한다.
“선동이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게 무슨……”
“알았어요. 엄마가 할머니를 왜 싫어하게 됐는지.”
그렇다.
내가 아는 시은이는 이런 아이였다.
***
집에 돌아가는 길.
뒷좌석에 앉은 선동이는 생각했다.
아까의 장면을.
‘글쎄, 저 꼬맹이가 다짜고짜 내 머리를 들이받았다니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모두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시은이 할머니에게 박치기를 한 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도 믿을 수가 없네요.’
아저씨의 입에서는 질책 대신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선동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거든요. 아무 이유도 없이 연세 지극하신 할머니한테 박치기를 할 아이는 더더욱 아니고요.’
자신을 믿어줬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침부터 꽁해있던 채로 노엘과 시은이와 싸우기까지 해서 촬영 분위기를 망쳤던 자신을 질책하기는커녕 감싸줬다.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나중에 제 말이 잘못된 게 있으면 사과드리죠. 그러니까 우리 모델에 손찌검을 한 건 사과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전히 우리 모델이라고 말해줬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선동이는 알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그야, 상대는 시은이 할머니였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놀라웠던 건 마지막에 시은이가 보인 반응이었다.
‘선동이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게 무슨……’
‘알았어요. 엄마가 할머니를 왜 싫어하게 됐는지.’
노엘의 편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잘생겨서 편을 드는 거냐며, 좋아하는 거냐며 비웃기도 했다.
그랬던 자신이었다.
한없이 유치하고 맞아도 싸다고 생각할 만한 모습.
그런 모습을 봤으면서도 시은이는 말해줬다.
‘선동이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다른 누구도 아닌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자신을 감싸준 거다.
부끄러웠다.
그런 시은이를 향해 했던 말이.
“선동이오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연두가 말을 건넸다.
“괜찮아여? 머리 안 아파여..?”
그 말을 들은 선동이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힘을 내야겠다고.
이대로 처져있는 상태로 주위를 걱정하게 만드는 거야말로 최악이었다.
“당연하지! 하나도 안 아파!”
“.. 진짜요?”
“응.”
씩 웃으며 말했다.
“알잖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룡이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인 거. 내 머리가 얼마나 단단한데. 간지럽지도 않았다니까?”
그때였다.
포옥.
안심한 듯 자그맣게 웃으며 연두가 양팔을 뻗어 감싸 안았다.
선동이의 머리를.
그런 채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안 아파서…”
왜일까.
그 중얼거림은 선동이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툭.
떨어지는 눈물방울.
그 한 방울을 시작으로 두 눈에서는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흑. 흐억.. 흐어엉!”
따뜻함이라는 감정의 온도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