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92)
692화. 멋진 녀석
울음이 터진 선동이.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잠깐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러는 편이 나을 거 같았으니까.
“.. 흑.”
잦아드는 울음.
어느 순간 뚝 울음을 그친 선동이가 두 눈을 번쩍 뜬다.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본 내가 입을 뗐다.
“다 울었어?”
“.. 예?”
“그럼 연두 품에서 좀 나오지?”
장난스레 던진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선동이가 연두 품에서 스르르 빠져나온다.
그리고 깜짝 놀란다.
연두의 눈에 맺혀있는 물기를 보고.
“야, 왜 그래..”
“서, 선동이오빠…”
“나 운 거 아니야. 그냥……”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흐느낀 정도면 몰라도 오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울음이었으니까.
지금도 눈은 빨갛게 부어있고.
‘당연한 거지.’
울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불안했을 거다.
오늘 있었던 일은 여덟살의 선동이가 아닌, 스물여덟살의 나에게 있어서도 부자연스러웠으니까.
아직 자초지종을 모두 전해들은 건 아니었다.
‘촬영은 중단됐고.’
그 상태로 촬영을 더 이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 역시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촬영할 수 없었을 테니.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얘기해야지.’
촬영 책임자로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하는 건 의무였다.
숨길 생각은 없다.
만약에 질책하는 반응이 돌아온다고 해도, 그건 그거대로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보호자로서 내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특히 선동이의 경우는 말이다.
“에이, 나 진짜 괜찮다니까? 뚝!”
“.. 흑.”
“이거 봐! 내가 엄청 웃긴 거 보여줄게! 아브라 카타브라 코브라!!”
선동이녀석.
언제 울었냐는 듯이 울음이 터지려는 연두를 웃겨주느라 정신이 없다.
손을 흐느적거리며 코브라의 몸짓을 연기한다.
“.. 흣.”
효과가 있었다.
톡 건드리면 울 거 같던 연두의 입가에서 자그마한 웃음이 새어나왔으니까.
선동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뿌슝! 삐슝! 빠슝!”
“흐흣!”
필사적인 선동이의 몸개그에 결국 웃음을 터트리는 연두.
그 모습을 본 선동이도 덩달아 웃음짓는다.
다행이었다.
‘어른스럽다니까.’
그렇다.
내가 아는 선동이는 이런 아이였다.
순간순간 감정적이 되긴 하지만, 항상 자신보다 주위를 먼저 생각하는 아이.
끼익.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 아저씨.”
그때였다.
연두의 눈을 피해 선동이가 나한테 다가왔다.
“저랑 단둘이 얘기 좀 해요.”
세상 진지한 표정이었다.
***
마침 나도 선동이에게 들을 얘기가 있었다.
아까 상황의 전말에 대해.
“그래.”
집에 도착한 나는 할머니께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선동이를 데리고.
단둘이 방에 들어오는 건 ‘진실의 방’으로 초대할 때 뿐이었는데 지금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했지?”
“네.”
“아저씨도 선동이한테 듣고 싶은 얘기가 있거든. 내가 먼저 얘기할까, 아니면 선동이가 먼저 얘기할래?”
선택지를 줬다.
잠깐 고민하던 녀석은 각오를 다진 듯이 말했다.
“.. 아저씨 먼저요.”
“그래.”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시은이 할머니를 향해 내가 들이받은 건 선동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 이유없이 그랬을 리가 없다는 믿음.
만약 그 믿음이 산산조각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믿은 건 나니까.’
처음 보는 할머니와 선동이.
둘 중에 어느 쪽을 믿을지 선택한 건 나였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역시 내 몫이었다.
마침내 선동이가 입을 뗐다.
“…… 있어요?”
“뭐라고?”
“노엘한테는 비밀로 해 줄 수 있어요? 그럼 얘기할게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이건 내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동의의 제스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할머니가 노엘을 보고 얘기했어요. 다리가 아픈데……”
그 뒤에 들려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뒤에서도 해서는 안 될 얘기를 처음 보자마자 면전에서 쏟아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자연히 떠올랐다.
선동이 아버지가 가진 장애에 대해서도.
‘.. 미쳤군.’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고작 정강이를 한 번 들이박힌 거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정도의 망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순간조차 선동이는 노엘을 생각하고 있었다.
“.. 그랬구나.”
거짓일 리는 없었다.
이런 질 나쁜 거짓말을 선동이가 생각해 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현실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가 선동이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열이 받았다.
나는 허리를 굽혀 선동이와 눈을 맞췄다.
“미안하다, 선동아.”
“.. 아저씨?”
“서울에 와서 그런 일을 겪게 만들어서 미안해. 혼자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해서.”
진심이 담긴 사과였다.
그런 내 말에 녀석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에이, 아저씨까지 왜 그래요.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요. 만져보세요, 저 완전 돌머리에요.”
“하하, 그래.”
더 심각하게 분위기를 끌고 가는 건 선동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 거 같았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야.. 진짜 단단한데?”
“그쵸!”
신이 난 녀석은 아빠와 박치기대결을 해서 이긴 썰을 들려줬다.
한참 이어지는 무용담.
끝까지 얘기하고 난 뒤에 녀석은 또 한 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아저씨.”
“응?”
“저도 죄송해요.”
“뭐가?”
선동이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 어색한 듯 말을 이었다.
“집에 돌아가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괜히 노엘한테 짜증도 냈고, 연시은이랑도 싸웠어요. 그리고.. 노엘한테는 그 얘기도 했어요.”
“어떤 얘기?”
“제가 입은 옷 판매량이 더 높다는 거요… 알아듣지는 못 했겠지만.”
결국 얘기했구나, 이 녀석.
갑자기 약이 바짝 오르네.
이런 입이 가벼운 모습 역시 내가 아는 선동이였다.
“그리고……”
뭐야, 또 있어?
그런 내 귀에는 생각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할머니한테 박치기한 것도요.”
“응?”
“할머니한테 박치기해서 촬영도 못하게 되고, 아저씨랑 연시은도 불편해졌으니까……”
역시 똑똑한 아이였다.
그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그런 생각이 선동이를 얼마나 괴롭힐지 알기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녀석을 향해 말했다.
“잘못된 거 같은데.”
“.. 예?”
“사과의 대상이 잘못된 거 같다고. 노엘한테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노엘한테 사과하고, 시은이한테 잘못한 건 시은이한테 사과해야지.”
“아……”
납득한 표정으로 녀석은 말했다.
“그럼 박치기한 건……”
선동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 말의 흐름상 박치기한 건 할머니에게 사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천히 나는 입을 뗐다.
“선동아.”
“네.”
“그러면 돼. 잘하고 있는 거야.”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을 향해 덧붙였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어. 그럴 때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돼.”
“…”
“방금 선동이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 거야.”
잔잔한 수면에 파동이 일듯, 선동이의 눈동자가 일렁인다.
그러나 아직이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남아있었다.
“폭력은 나쁜 거라는 말 들어봤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도.”
“.. 네.”
“그런데 말이야.”
빙긋 웃으며 엄지를 추켜세운 나는 말했다.
“최고의 박치기였어.”
“…?”
물음표가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이.
“선동이 너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앞서 한 말과 모순되는 이야기였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간디를 표방하는 비폭력주의자인 나 역시도 동의하는 말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선동이가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최고로 통쾌한 박치기였을 테니까.
어느 정도냐고?
파키케팔로사우르스가 티라노사우르스를 박치기로 쫓아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도 못 미칠 정도다.
그런 내 말에 뒤늦게 선동이가 입을 뗐다.
“아저씨…”
이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우..”
“왜 그래?”
“진짜 사과하기 싫었거든요, 그 할머니한테는. 잘못한 거 아니면 사과 안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 안 해도 돼.”
내 할 말은 끝났다.
이제 선동이의 얘기를 들을 차례였다.
“집중해서 들어주세요. 이건 남자 대 남자로서 하는 부탁이니까……”
대체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 똥폼을 잡는 걸까.
이윽고 들려오는 말.
“오늘 있었던 일 말인데요..”
“응.”
“엄마아빠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 얘기를 하려고 단둘이 얘기하자고 했던 거라니.
부탁이라기보다는 애원에 가까웠다.
부탁이든 애원이든 내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안 돼.”
이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
안 돼, 돌아가.
모 판사님의 명언처럼 내 입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으니까.
‘마음은 알겠어.’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일 터였다.
어쩌면 아빠의 장애와 관련된 일이라 더더욱 숨기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그래서 더더욱 들어줄 수 없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만약에 연두가 어디선가 선동이와 같은 일을 당했는데 그 사실을 내가 모른다면 어떨까.
입장을 바꿔보면 답은 간단히 나왔다.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선동이.
“그럼요, 아저씨……”
다시 ‘안 돼, 돌아가.’를 시전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고려의 여지가 있는 부탁이었다.
“제가 말하게 해 주세요.”
직접 얘기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떠넘기듯 선동이에게 맡길 생각은 없다.
그러나 가능했다.
직접 얘기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건.
“대화를 나눈 다음에는 나도 부모님이랑 통화를 할 거야. 그건 괜찮지?”
“네.”
그 정도로 합의에 이르렀다.
무작정 안 된다고 말하는 게 미안하긴 했는데 잘 된 일이었다.
타협의 여지가 있어서.
방을 나오니 보이는 건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고개를 돌리니 연두가 보인다.
괜히 찔린 표정으로 연두는 고개를 휙휙 저으며 얘기한다.
“연두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연두가 이렇게 말하면 진짜 아무 말도 안 한 거다.
원래 어른의 촉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집에 돌아와서 인사할 때부터, 평소와 다른 낌새를 눈치챈 표정을 짓고 계시긴 했다.
촬영하러 나간 거 치고는 우리가 너무 빨리 돌아오기도 했고.
숨길 수는 없었다.
“.. 뭐? 누가 누구를 때려? 이런 썩을 년이……”
살벌한 단어가 쏟아진다.
잘 모르겠다.
그 자리에 할머니가 없었던 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확실한 건.’
그쪽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할머니가 있었다면 박치기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테니.
이러면 안 되지만 조금은 재미있었다.
선동이 등짝을 그렇게 때리시더니,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건 용서 못 한다는 건가.
“그래서 넌 어떻게 했어? 가만히 있었어?”
“에이, 제가 누구 손주인데요.”
능청스레 말을 받았다.
“당연히 들이받았죠.”
그러자 들려오는 말에 켁 헛기침이 나왔다.
“머리로?”
설마 진짜 들이받았다고 알아들으실 줄이야.
스케일이 다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고작 그 정도로 끝냈냐면서 나를 나무란다.
“뭐, 폭력이 능사는 아니니까요.”
손녀인 시은이조차 그런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막돼먹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걸 보고 깨닫는 게 없지는 않을 터였다.
없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안타까운 일이고.
“염병.. 그런 년은……”
수위조절을 위해 생략하겠다.
내 귀를 막는 대신에 조용히 연두의 귀를 막았다.
선동이는 자주 들어서 그런지 딱히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 걸게요.”
“그래.”
틱.
선동이가 수신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얘기할 거라면, 미룰 필요 없이 최대한 빠르게 연락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몇 번의 수신음 끝에 통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 아빠.”
아들의 음성에 세상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아들! 서울생활은 잘 즐기고 있냐!”
“응.”
“쇼핑몰 촬영은!”
멈칫한 선동이는 자그맣게 입을 뗐다.
“아빠..”
그렇게 선동이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긴 이야기를 선동이 아버지 오대수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통화가 끊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용하게.
“듣고 있어, 아빠?”
“.. 그래.”
다소 침체된 목소리.
당연했다.
아무리 호탕한 성격이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
부모로서 그 심정이 백분 공감이 갔다.
슥.
넌지시 선동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이 전화를 이어받을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 아들아.”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선동이가 대답했다.
“응.”
잠깐의 정적.
그 뒤에 들려온 건 생각지도 못한 한 마디였다.
“역시 너는 최고로 멋진 녀석이다!”
비로소 알 거 같았다.
선동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