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03)
703화. 그림자
스튜디오 초록의 두 번째 프로젝트.
본격적인 작화에 착수한 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드림 큐!]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작화 대상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게 장점이었다.
지루할 틈이 하나도 없다는 것.
하나의 캐릭터를 그리고 나면 전혀 개성이 다른 또 다른 캐릭터가 등장한다.
새로움의 연속.
작화가에게 있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는 무척 중요한 요소였다.
즐기면서 그린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의 차이는 명확하니까.
‘전자의 압승이지.’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또 하나의 장점을 꼽자면 작화에 있어서의 자유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신경 써야 할 건 크게 두 가지였다.
그림체가 동떨어지지 않게, 설정에 충실하게 그리는 것.
그게 왜 자유도가 높은 거냐고?
간단하다.
달리 말하면, 그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는 거니까.
설정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내 자유라는 뜻이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캐릭터를 떠올린다.
지금 내가 그리려는 캐릭터의 이름은 콩이였다.
‘동그란 눈, 역삼각형 모양의 코, 커다란 귀와 갈색 피부.’
외관 묘사를 보면 감이 오겠지만 콩이는 사람이 아닌 강아지다.
큐브의 마스코트.
아이돌 육성 전문학교인 큐브 내에 거주하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비중도 상당했다.
‘알! 알!’
그런 울음소리가 유일한 대사긴 하지만.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데다가, 한 번씩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귀여운 외모 덕에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지어지는 건 덤이고.
천천히 눈을 떴다.
스윽.
펜을 쥐었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콩이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가 맴돌았다.
욕심은 금물이었다.
설정에 없는 요소를 멋대로 추가했다가는 이질감이 드는 그림이 나오게 되니까.
설정에 충실하게,
사각. 사각.
얼마나 지났을까.
숨 쉬는 것도 잊고 그림에 몰두하던 나는 펜을 내려놨다.
가득 찬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책상 위에는 콩이의 스케치가 끝나있었다.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그린 것 치고는 상당한 성과였다.
마침 들려오는 인기척.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경리 유하나였다.
“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란 얼굴로 말한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당연히 제가 1등일 줄 알았는데…”
“하하, 어서 와요.”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와… 콩이네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직 채색도 시작하지 않은 그림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는 사실이.
“너무 귀엽다.. 진짜 상상하던 이미지랑 똑같은 거 같아요.”
극찬이었다.
작화팀 내에서 유하나는 작화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장 플레이어에 가깝다는 뜻이다.
‘더한 칭찬은 없어.’
결국 중요한 건 플레이어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상상하던 이미지 그대로라는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었다.
빙긋 웃으며 입을 뗐다.
“다행이네요.”
하나둘 들어오는 팀원들.
업무 시작 전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좀 어떤가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캐릭터잖아요. 설정집에도 나와 있고. 빽빽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잔머리를 그려서 가볍게 연출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진 장면이었다.
팀원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건.
대부분 나도 참여하긴 하지만, 가끔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드는 생각이 있었다.
‘.. 뭐지, 이건?’
그건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이었다.
진짜 팀이 된 느낌.
그런 아이디어 공유를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감격에 찰 정도였다.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내색은 안 했지만.’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우리는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마지막으로 도착한 팀원은 서도연이었다.
“.. 안녕하세요.”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또 밤을 새운 걸까.
한동안 상태가 괜찮아 보였기에 유독 걱정이 됐다.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뭐야, 또 밤새웠냐?”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팀플하는데 밤새워서 팀원들 몫까지 다 하고 뻗었을 때 표정이구만.”
피식 웃으며 서도연이 대꾸한다.
“좀 참신한 비유 없냐?”
“뭐?”
“저번에 그 비유 똑같이 썼잖아. 그럴 거면 아예 쓰지를 말든가.”
한경우의 얼굴에 벙찐 표정이 떠오른다.
“와., 너 지금 나한테 참신을 논한 거냐? 이 한경우한테?”
“어, 논했다. 왜.”
가만 보니 이상했다.
피곤한 표정이다.
그런데 전에 짓던 피곤에 젖은 얼굴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웃고 있어.’
그렇다.
서도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올라있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알게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한경우를 톡 건드린 서도연이 말했다.
“이거 좀 봐주라.”
대뜸 봐 달라는 말에 한경우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이해는 간다.
나라도 그럴 거 같으니까.
“가, 갑자기 뭘 봐줘? 다크서클?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잠깐만.”
서도연이 꺼낸 건 다름 아닌 태블릿이었다.
떠오른 화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한경우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이는 각도였다.
그 상태로 몇 초의 시간이 흘렀다.
꼴깍.
찰나의 순간이었다.
침을 삼킨 한경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손에는 태블릿이 들려있었다.
“까, 깜짝야!”
고정된 팀원들의 시선.
전혀 개의치 않고 한경우는 입 밖에 뱉었다.
“완전.. 완전 한유라잖아!!”
한유라.
드림 큐에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였다.
“아, 알겠으니까 좀 앉아. 왜 오버를……”
붉어진 얼굴.
뒤늦게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주위에는 가득했으니까.
비유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먹잇감을 포착한 하이에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타닷.
한달음에 달려간 나는 태블릿을 바라봤다.
화면에 떠올라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오싹할 정도로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한유라가.
“.. 흣.”
입가에 번지는 웃음.
마침내 벽을 깬 서도연이었다.
***
서울의 한 연습실.
내부에 있는 건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 하나뿐이었다.
딴. 따단.
벌써 다섯 시간째, 똑같은 음의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반복 재생을 틀어놓은 건 아니었다.
연주하는 건 안수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다시.”
끝없이 반복되는 단어.
그 말이 귀에 꽂히듯 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다시, 다시, 다시!”
얼마 전부터였다.
안 그래도 엄격했던 선생님의 지도가 더 날카로워지고 무서워진 건.
‘수호야.’
‘네, 선생님.’
‘이제부터는 매일 선생님 집으로 오렴. 어머니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그때부터 시작됐다.
끝이 보이지 않은 연습지옥이.
그전에 조희나와 수호의 어머니가 나눈 대화가 있었다.
‘워낙 중요한 콩쿠르라서요. 콩쿠르 때까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옆에서 수호를 지도하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물론 레슨비 같은 건 일절 없을 거고요.’
‘어머.. 너무 폐를 끼치는 게 아닌지……’
‘호호, 폐는요. 아끼는 제자인데 당연한 일이죠.’
수호 어머니로서는 자세한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순전히 조희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고.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그렇게나 아끼는구나 하고.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겉으로 보기에 조희나는 대학교수였고, 그 안의 새카만 속을 볼 수는 없었으니까.
결국 그녀는 조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정말 감사드려요.’
수호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연습지옥이 시작됐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거 같던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는 엄마가 있었다.
‘아구구.. 오늘도 고생 많았어, 우리 아들.’
‘엄마..’
‘많이 힘들었지?’
그녀는 덧붙였다.
‘그래도 너무 힘들면 꼭 말해야 한다?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서 레슨시간 조절하면 되니까. 콩쿠르 대상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아들 건강인 거 알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만하고 싶다고, 더는 못 견디겠다고.
핑 도는 눈물을 꾹 참아내며 수호가 하는 대답은 늘 똑같았다.
‘괜찮아, 엄마.’
그 이유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온 말 때문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수호 너는 복 받은 줄 알아야 해.’
귀에 딱지가 들도록 들은 말이었다.
‘나한테 배우고 싶어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니? 돈을 얼마를 줘도 못 받는 게 선생님 레슨이야. 그런데 수호 너는 그걸 그냥 누리고 있으니……’
‘…’
‘그러니까 잘하렴. 내가 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도록.’
‘.. 네, 선생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한테 버림받게 됐을 때 엄마가 지을 표정이 무서웠다.
그래서였다.
매일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는 건.
‘콩쿠르 때까지만.. 콩쿠르 때까지만 버티면 돼.’
전에도 힘들긴 했지만 지금에 비할 바는 못됐다.
콩쿠르 때까지였다.
수호는 생각했다. 그날까지만 버티면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그때였다.
“하아, 정말 미치겠네. 왜 그렇게밖에 못 치는 거지?”
답답하다는 듯 조희나가 입을 뗐다.
“이게 벌써 몇 번째니?”
“..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은 잘해요. 다시 말하지만 이번 콩쿠르에서 네 연주는 완벽해야 해. 잘 치는 거로, 1등으로는 모자라. 완벽해야 한다고.”
그녀의 말은 계속됐다.
“악보대로 치는 게 어렵니?”
“..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자신을 버리란 말이야.”
무언가 떠오른 듯 조희나는 말했다.
“자, 따라 하렴.”
“네?”
“나는 안수호가 아니다.”
“…”
“어서!”
떨리는 입술 틈이 벌어졌다.
“나, 나는.. 안수호가 아니다..”
“명심하렴.”
그 말과 함께 돌아서려다가 조희나는 독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혹시 그 애한테 지기라도 했다간.. 끝이라고 생각하고.”
알 수 없었다.
그 애가 누구인지.
심장이 내려앉게 만드는 건, 끝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전부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계속 연습하고 있으렴. 내가 없다고 쉴 생각은 하지 말고.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까.”
“.. 네, 선생님.”
덜컥.
문이 닫혔다.
그런 수호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건반 위에 올라가 있는 두 손이 비쳤다.
이상했다.
‘.. 즐거웠는데.’
마냥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악보 같은 건 하나도 몰라도, 멋대로 건반을 두드리는 게 즐거웠던 때가.
그런데 왜일까.
피아노가 싫었다.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손도 싫었다.
딴. 따단.
그래도 수호는 건반을 두드렸다.
모든 걸 지키기 위해서는, 콩쿠르 1등을 차지해야 했으니까.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수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림자는.
***
여름방학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다사다난했지.’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선동이의 박치기도 그중 하나고.
그래도 돌이켜보면 즐거운 방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방학 전에 연두가 세운 계획표는 어떻게 됐냐고?
놀랍게도 거의 다 이뤘다.
딱히 계획표에 집착한 건 아니었지만, 나중에 보니 이룬 것들이 많았으니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여행다운 여행을 못 간 거.’
여러 일이 겹쳤다.
작화팀이 두 번째 프로젝트에 들어간 것과, 연두가 콩쿠르 준비를 시작한 것.
그래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게 옥에 티다.
아마 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건 콩쿠르 이후가 되겠지.
‘딱 기다려.’
뒤로 미룬 만큼 제대로 즐겨 줄 생각이었다.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돌리니, 앉아서 가방을 챙기고 있는 연두가 보인다.
“연두야.”
“네, 아빠.”
“준비는 다 했어?”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가 말한다.
“여기 일기장도 있고, 독후감 노트도 있고, 수학 교과서도 있어여..!”
“가방이 엄청 무겁겠는데? 아빠가 들어줘야겠네.”
“아니에요!”
번쩍 가방을 들어 올린다.
“연두가 들 수 있어요!”
“우와, 연두 힘 엄청 세네?”
“헤헤..”
뿌듯한 미소를 짓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근데 연두야.”
“네에.”
“뭐 하나 잊은 거 없어?”
“잊은 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는 눈치다.
당연하다.
진짜로 잊은 게 없거든.
톡. 톡.
손가락으로 볼을 건드리며 말했다.
“아빠한테 뽀뽀하는 걸 잊은 거 같은데?”
“아, 아빠..!”
기어코 뽀뽀를 받아냈다.
그러자 연두가 쿡쿡 웃더니 나를 보며 말한다.
“아빠도..”
“응?”
“아빠도 잊은 거 있는 거 같아여…”
하마터면 터질 뻔했다.
잊은 거 없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잊은 게 있는 거 같다니.
그게 뭔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응? 아무것도 안 잊은 거 같은데?”
“아니에여!”
“뭘 잊었는데?”
“…”
뾰로통한 얼굴.
더 놀렸다가는 개학 날부터 울려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지, 안 돼.
쪽.
“..!”
깜짝 놀라 나를 보는 연두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걸 잊은 거 같아서.”
“.. 헤.”
“그럼 가볼까?”
책가방 줄을 양손으로 꼬옥 잡은 연두가 대답했다.
“네!”
간만의 등굣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