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04)
704화. 개학
간만의 등굣길.
화창한 날씨가 등교를 반기는 것만 같았다.
“연두야.”
“네에.”
“오랜만에 친구들 보는 기분이 어때?”
방학 기간 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걸까.
“헤헤..”
배시시 웃으며 연두가 중얼거리듯 얘기한다.
“빨리 보고 싶어여…”
문득 드는 생각.
어렸을 적의 나는 어땠더라.
방학이 끝나는 걸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후자였던 거 같다.
‘숙제를 안 했으니까.’
나가 놀기 바빴다.
집에 있을 때는 뭐라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던 거 같고.
손에 뭐가 쥐여 있지 않으면 따분해서 못 견디는 성격이었으니까.
‘레고, 샤프심총, 나무젓가락총.’
차례로 관심사가 옮겨갔다.
그 과정 속에서 ‘유성초 스나이퍼’라는 닉네임도 탄생한 거고.
왜 그렇게 총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군대에서도 총을 쥐었지만 다행히 말뚝을 박지는 않았다.
‘펜을 쥐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일평생 총을 쥐다가 꽤나 건전한 놈으로 정착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 아빠!”
연두는 거리낄 게 없었다.
문제아였던 나와 달리 숙제를 전부 끝마쳤으니까.
“하하, 그래. 빨리 가자.”
“네!”
무거운 가방을 메고도 잘도 달려간다.
그러다 돌아본다.
마치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절로 번지는 웃음.
“같이 가, 연두야.”
다시 시작인 느낌이었다.
***
개학을 가장 반기는 건 선화초의 그 어떤 학생도 아니었다.
교사도 아니었고.
다름 아닌 교장 강덕호였다.
“흐허허.”
자꾸만 흘러나오는 웃음.
“드디어 개학이구나.”
그는 학교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한다는 표현을 써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교직에 몸담은 수십 년.
교사로 일하며 수많은 학생을 만났고, 또 교장으로 일하며 수많은 학생을 만났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교사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삶의 낙이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건.
교사 생활이 끝난 뒤에도 교장으로서 학생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건 그에게 축복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방학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고 가자니까?’
‘허허, 됐대도. 이 나이 먹고 무슨.’
‘아, 몰라. 아빠 거까지 예약할 거야. 안 오면 진짜 삐진다?’
딸의 손에 이끌려 호캉스라는 녀석을 다녀오긴 했지만 마음속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그렇다.
그 충족감은 학생들 곁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었다.
‘.. 재밌긴 했어.’
짧은 호캉스 후기.
딸이 본다면 서운함과 황당함을 동시에 느낄 만한 장면이었다.
왜냐고?
호텔 수영장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서 아이처럼 첨벙첨벙 물장구치던 건 다름 아닌 강덕호였으니까.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즐거웠으면 된 거지.’
잔잔한 미소.
보다시피 가장 즐거워한 게 본인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어쨌거나,
“좋아. 2학기도 파이팅해 보자고.”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이 성장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나쁜 건 버릴수록 좋지만, 좋은 건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법이었으니까.
최고의 학교.
그 타이틀은 어려울지 모른다.
허나 적어도 학부모의 입에서 ‘선화초 보내지 말 걸 그랬어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길 바랐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걸 위해서라면 해야 할 게 산더미였다.
‘그전에 잠깐 학교 좀 돌까.’
슬슬 등교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학생들과 인사도 나눌 겸, 강덕호는 교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나둘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
“안녕하세요!”
“어, 교장 선생님이다!”
“쌤, 안녕하세요!”
강덕호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이 기분이야.
이제야 마음 한구석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방학은 잘 보냈고?”
“네!”
“선생님, 저 방학 숙제 안 했어요!”
당돌한 학생.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강덕호가 그만큼 학생들과 가깝다는 방증이었다.
“허허, 우리 동근이가 숙제를 왜 안 했을까?”
“너무 많아서요..”
동근이가 말했다.
“담임쌤한테 말해주시면 안 돼요?”
“응?”
“혼내지 말라고..”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선생님이 안 혼내실 거 같지는 않은데?”
“왜요? 교장 선생님이 더 세잖아요.”
그 말에 강덕호는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세 보이니?”
“네.”
“아니야. 동근이 이도경 선생님 반 맞지? 동근이 담임쌤한테는 교장 선생님도 꼼짝을……”
그런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동근이와 헤어지고 복도를 따라 걷던 강덕호의 얼굴에 아리송함이 떠올랐다.
‘.. 뭐지?’
충만함 속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진다.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잊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허전함의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잔상.
‘.. 교장 선생님!’
그건 환히 웃는 연두의 미소였다.
어쩌다 복도와 마주칠 때면, 그렇게 자신을 부르며 환하게 웃곤 했으니까.
복도에 멈춰선 채로 중얼거렸다.
“정신 차려, 강덕호..”
전부 똑같은 선화초 학생이다.
특정 학생을 콕 집어서 보고 싶어 하는 건 교장으로서 적합한 태도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무려 한 달 이상의 공백으로 연두성분이 고갈된 상태였으니까.
“안 돼, 안 돼, 안 돼, 돼, 안 돼, 돼, 돼, 돼…”
그래.
교장으로서 학생의 얼굴을 보러 가는 것뿐이다.
특별히 아끼는 게 아니라,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1학년 5반을 지나치는 것뿐이다.
하나도 문제는 없다.
그런 생각으로 강덕호는 다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걷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또 연두에 관해서였다.
‘자주 왔는데.’
1학기 때는 쉬는 시간마다 자주 교장실에 놀러 왔던 연시레였다.
그럴 때마다 차를 타 줬고.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 안 오면 어쩌지?’
여름방학.
무려 한 달 이상의 공백이 있었다.
2학기가 되며 자연스레 발길을 끊어도 이상할 건 없다.
‘안 돼!’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교장실에 와서 자신이 손수 타 준 차를 마시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을 보는 건.
그게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패닉이 올 지경이었다.
‘차도 잔뜩 사 놨는데……’
울상이 된 강덕호.
지나가다 그를 본 학생 두 명이 말을 주고받는다.
“교장 선생님, 이상해..”
“응..”
그때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발을 떼려는 강덕호의 귀에 들어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듣자마자 흠칫하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 교장 선생님!”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두 눈에 들어오는 환한 미소.
비로소 마음속을 가득 채우는 충만감이었다.
***
개학날이라서일까.
이른 등교였지만 반에 도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연두다!”
“꺄, 어떡해.. 연두 더 예뻐졌어…”
“방학 잘 보냈어?”
어쩔 수 없었다.
선화초 학생들도 연두성분이 고갈된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그러다 교장 선생님도 만났다.
뒷모습만 봐도 교장 선생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교장선생님!”
담소를 나눈 뒤에 연두는 비로소 5반으로 향했다.
힘찬 발걸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교실에는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발을 뗐다.
“아, 안녕..”
조금은 어색한 인사.
“우와!”
“서연두 왔다!”
“연두다!”
반갑게 맞이하는 친구들.
저마다 반응이 조금씩 다르긴 했다.
방방 뛰며 반기는 석호와 재호, 괜히 쑥스러워하며 인사하는 현우, 보고 싶었다며 안겨드는 여자아이들까지.
담임교사 김수희도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 연두야.”
“안녕하세여, 선생님…”
“방학 잘 보냈니?”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대답했다.
“.. 네! 잘 보냈어요!”
“흐흣.”
이윽고 전부 도착한 5반 학생들.
교탁에 선 김수희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인사했다.
“다들 방학은 잘 보냈나요?”
“네, 선생님!”
“숙제도 잘 했구요?”
방금의 우렁찬 대답과는 달리 잠잠했다.
흘러나오는 실소.
예상은 했지만 전부 끝마치지 못한 아이들이 더 많은 거 같았다.
장난스레 그녀는 입을 뗐다.
“흐음.. 재호는 갑자기 왜 선생님 눈을 피할까..?”
“…!”
깜짝 놀란 재호가 크게 몸을 들썩인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5반 아이들.
‘.. 내 개그가 통했어.’
올해 처음 담임으로 부임한 김수희였다.
처음에는 로봇처럼 긴장했지만 아이들과 한 학기를 보내며 조금은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
괜히 감격스러웠다.
자신의 말이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다는 게.
“석호도 그렇게 웃을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
깔깔 웃던 석호가 뜨끔한 표정으로 덩달아 몸을 들썩인다.
또다시 터지는 웃음.
그렇게 연타를 터트린 김수희는 말했다.
“다들 방학을 잘 보냈다니까 다행이에요. 새 학기는 새로운 마음으로, 더 즐겁게 보내기로 해요. 알겠죠?”
“네, 선생님!”
2학기의 시작이었다.
***
작화팀 미팅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팀 전원이 모여서 하는 미팅은 주에 한 번 진행했다.
“지금껏 완성한 일러스트는 오늘 한 번 정리해서 보내줄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메인 시나리오 작가분도 굉장히 궁금해하신다는 거 같더라고요. 진행이 어느 정도 됐는지.”
결과만 말하자면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작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도연씨가 감을 잡은 뒤로 더 탄력을 받기도 했고.
그나저나 나도 궁금하다.
‘June.’
메인 시나리오 작가의 명칭이다.
내가 이주원이 아닌 초록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거겠지.
얼굴은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게임의 스토리 완성도가 무척 높다고 생각하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꽤나 궁금했다.
‘꼭 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이 게임의 작화에 참여하기로 한 건 게임 그 자체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요소가 아니라.
따라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걸로 차고 넘쳤다.
“또 할 얘기가 있을까요? 없다면 이건 여담인데……”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지금 제가 그리는 캐릭터 말인데요. 보면 볼수록 우영님을 닮은 거 같더라고요.”
“어떤 캐릭터인데요?”
“진성준이요.”
큰 의미는 없었다.
그냥 내가 느낀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팀원들 사이에서 미간을 찡그리는 우영이.
“.. 어디가요?”
“네?”
“저는 안 닮은 거 같은데요. 저는 그 캐릭터 싫어하거든요.”
그럴 거라 생각했다.
닮은 점이 너무 많으면 거부감이 드는 법이니까.
“하하, 그래요?”
“네.”
“제가 보기에는 닮았는데. 음악밖에 모르는 것도 그렇고, 성격도……”
순간 흠칫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도 모르게 성격도 더럽다는 말을 덧붙일 뻔했으니까.
“성격도..?”
“성격도 매력 있고요.”
“.. 그래요?”
수습하려 꺼낸 매력 있다는 말에 내심 좋아하는 표정을 보니 더 찔리는 기분이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날카로운 성격이 매력 포인트인 건 사실이니까.
우영이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어쨌든 저는 별로였어요. 애가 말을 너무 함부로 하잖아요. 열심히 하는 애 보고 재능이 없으니까 포기하라느니, 발버둥 치지 말라느니……”
“…?”
나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듣는 팀원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영이를 바라봤다.
“왜, 왜요?”
왜긴 왜야.
그거 네가 밥 먹듯이 하던 말이잖아.
한경우가 묻는다.
“그럼 ‘드림 큐!’에서 우영님이 생각하는 매력 있는 캐릭터는 뭔데요?”
“.. 예리요.”
반전의 연속이다.
성준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였다.
재능이 없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아이돌의 길을 고집하는 캐릭터.
‘.. 뭐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우영이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은 건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물어본다고 알려줄지는 미지수이긴 하지만.
“다들 수고했어요.”
미팅이 끝난 뒤에 나는 미리 정리해 둔 일러스트 파일을 전송했다.
게임회사 넥스트에.
달칵.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에 보내는 첫 작업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