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06)
706화. 위로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도울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연두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연두야.”
“.. 으응?”
“아빠 손 잡아볼래?”
알고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할 행동이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걸.
그리 교육적이지도 않을 테고.
하지만, 확실하다.
이미지.
그걸 선명하게 각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으로 기억하는 거다.
문득 떠오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의 일화가.
헬렌 켈러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설리반선생님이 선택한 건 다소 과격한 방식이었다.
물 펌프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에 무작정 손을 가져다대는 것.
‘그런 일화지.’
그렇게 배운 단어들을 헬렌켈러는 결코 잊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였다.
그 일화에서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어설프게 설리반선생님을 따라하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냐아..?”
별도의 준비는 필요없었다.
연두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니 의뭉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간에 어디 가냐고 묻기라도 하는 듯이.
끼익.
무작정 나선 집.
우산도 챙기지 않았다.
이쯤 되니 연두도 이상함을 느낀 건지 입을 뗀다.
“어디 가여, 아빠..?”
말없이 걸어가서 1층 문앞에 섰다.
방 안에서 창문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과격하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층 선명해진 이미지.
허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연두야.”
“네에.”
“잘 기억해야 해.”
그게 전부였다.
앞으로 발을 뻗기 전에 내가 한 말은.
“으, 응..?”
쏴아아!
몇 발자국이면 충분했다.
생각 이상으로 거센 빗줄기들이 몸을 강타했다.
“.. 꺅!”
온몸이 흠뻑 젖는 데에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소나기.
그 소나기를 비옷은커녕 우산 하나도 없이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놀라서 잔뜩 움츠린 연두.
“…”
천천히 고개를 든다.
살며시 손을 놓았지만 연두는 비를 피하러 들어가지 않았다.
되려 손을 뻗는다.
그 손바닥 위로 무수히 많은 빗방울이 쏟아진다.
“비…”
폭풍의 이미지를 각인하려 폭풍 속에 몸을 던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폭풍은 비를 동반한다.
“연두야.”
“네, 아빠.”
“눈을 감아봐.”
“.. 눈을요?”
“응. 그럼 많은 게 느껴질 거야.”
어느새 연두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눈을 감았다.
오감 중에서 시각은 가장 강력하다.
‘강력한 만큼 부작용도 확연하지.’
자칫하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치중해서 다른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잠시나마 오감 중에서 시각 하나를 지우는 것만으로 많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느껴진다.
지면에 닿아 부서지는 소리, 피부에 느껴지는 차가움, 상쾌하면서도 조금은 꿉꿉한 비의 향기.
아마 연두도 똑같이 느끼고 있겠지.
그런 채로 꽤나 긴 시간동안 눈을 감고 있는데 귓가에 들려왔다.
호들갑 섞인 목소리가.
“어머어머!”
눈을 뜨니 보이는 건 이웃 아주머니였다.
“여기서 뭐해요? 비 다 맞아서 어떡해? 어머, 연두야!”
우려한 상황이긴 했다.
나 혼자도 아니고 연두랑 같이 비를 맞는 걸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 아주머니를 향해 연두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여!”
“응?”
“아빠랑 연두는.. 비를 느끼고 있어요..!”
나 역시 덧붙였다.
“하하, 금방 들어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여기 가만히 계시면 신발 젖으실 거 같은데……”
“.. 아!”
우산을 써도 비를 전부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소나기였다.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네.”
해명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거 같았다.
“어때, 연두야.”
“아빠.”
“비는 충분히 느꼈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두.
그런데 그 순간, 착시현상을 보는 거 같았다.
눈앞이 두어 번 반짝였다.
‘.. 뭐지?’
그런데 착시라 하기에는 연두도 같은 걸 본 듯이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이건……
콰광! 쾅!
깨달은 순간에 귀를 울리는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비명과 함께 안겨드는 연두.
‘설마 천둥이 칠 줄이야.’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나를 끌어안은 연두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평소에 집 안에 있을 때도, 천둥이 치면 무서워하는 연두였으니까.
‘안 되겠어.’
천둥은 곤란했다.
번개를 맞는다면 이미지가 확실히 각인되기야 하겠지만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연두를 품에 안고서 재빨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괜찮아.”
“아, 아빠..”
두 눈가에 맺힌 물기.
잘 모르겠다.
이걸 재수가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 뭐, 일단 안 맞았으니까.’
비에 더해 천둥의 이미지까지 몸에 새긴 연두였다.
***
공포를 떨쳐내자마자 연두가 뱉은 단어가 있었다.
“.. 피아노.”
“응?”
“피아노가 치고 싶어요…”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연두가 뱉은 말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을지.
그건 일종의 영감이었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가장 선명할 때, 펜을 쥐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처럼.
‘날아갈 거 같으니까.’
조금만 지나도 그 이미지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방법은 하나였다.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냐, 냐아!?”
물에 빠진 생쥐꼴인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 방 안으로 피하는 누렁이.
연두를 피아노 앞에 앉혔다.
홀딱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였지만 괜찮았다.
피아노만 칠 수 있다면.
톡.
건반에 손을 올린다.
젖은 손으로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지금의 연주는 어떤 방식으로든 담아둬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곧바로 연주가 시작됐다.
딴. 따다단.
얼핏 듣기에는 아까와 비슷해보이는 연주.
허나 달랐다.
그저 악보에 맞춰 치는 연주와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슥.
눈을 감았다.
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
폭풍의 이미지였다.
집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바람이 불었고, 비가 내렸고, 비의 향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한순간.
눈을 감은 와중에도 눈앞이 반짝였다.
천둥번개의 전조.
따다단. 따단. 따다단.
닭살이 올라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연주에 온전히 몰입한 피아니스트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지금의 연두에게는 이미지가 보였다.
툭.
마침내 그친 연주.
처음이었다.
연두의 연주를 들으며 분위기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그런 나를 향해 연두가 고개를 돌렸다.
“아빠..”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괜히 긴장한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응, 연두야.”
“머리…”
“응?”
“비 맞고 빨리 안 씻으면.. 머리카락 빠져요..!”
“…”
생각지 못한 말.
그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연두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숱을 지키러.
***
다행히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다.
머리숱도 지켜냈고.
어제 씻고 난 뒤에 바로 연두랑 꼭 껴안고 잠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놀라울 정도로 개운했다.
내가 일어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도 눈을 떴다.
“잘 잤어, 연두야?”
“아빠..”
아파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잠에서 덜 깨서 비몽사몽한 것 뿐이지.
“우으으…”
이거 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세상 개운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말 아침.
연두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일정이 있었다.
‘데려다줘야 해.’
연두의 레슨날이었다.
학기가 시작된 만큼 주말은 귀중한 시간이었으니까.
대학교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도 얼마 안 남기도 했고.
그렇게 되면 레슨시간은 자연히 줄어들 터였다.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아무리 이은경이 연두를 아낀다지만, 학기가 시작하고 난 뒤에는 시간을 내기 힘들 테니 말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달라진 걸까.’
어제 연두의 연주는 분명히 달랐다.
그냥 잘 친다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연주였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분위기에 취해서일지도 모른다.
‘영상을 다시 보면 알려나.’
확신은 못한다.
여전히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니까.
엄밀히 말해 그 차이를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닌 이은경이겠지.
그래서 기대가 됐다.
오늘 레슨이 끝나고 난 뒤에 이은경이 보일 반응이.
‘참관수업이라도 하고 싶지만.’
한정된 레슨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슨이 끝날 때마다 이은경은 짤막하게나마 내게 말해주곤 했다.
그 날의 레슨에 대해.
“가자, 연두야.”
그게 답이 되겠지.
어제 내 돌발적인 행동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만약에 연두의 연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해도 후회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야, 즐거웠으니까.
‘흔한 경험은 아니지.’
홀딱 젖은 채로 피아노를 치는 딸의 모습을 홀딱 젖어서 감상하는 것.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해맑은 미소와 함께 연두가 대답했다.
“.. 네!”
금방 레나네 집에 도착했다.
“이따가 데리러 올게, 연두야.”
“네, 아빠..”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이은경이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러자 그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레나가 말한다.
“아저시도 와도 되는데……”
“응?”
“집에요. 꿀떡도 엄청 많아요!”
말이라도 고마웠다.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고마워, 레나야. 근데 다음에.”
“.. 왜요?”
“지금은 아저씨도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알겠서요.”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편집도 마저 끝내야 하고, 작화도 중간에 멈춘 게 있으니까.’
둘 다 마무리해두고 싶었다.
그런데 왜일까.
툭.
오늘따라 중간중간에 집중이 끊겼다.
신경이 쓰였다.
연두가 잘하고 있을지.
단순비교가 무의미하긴 하지만, 미술 공모전보다 콩쿠르가 주는 압박감은 더 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연주.’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연주로 그동안 쏟은 노력을 평가받는다.
그림은 실수하면 다시 그리면 되지만, 콩쿠르 무대에서는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수많은 관객들.
그 앞에서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한다.
‘그게.. 피아니스트.’
어느새 내 안에서 피아니스트의 이미지는 상당히 많이 바뀌어있었다.
그러다 보니 떠올랐다.
얼마 전의 통화에서 유리가 했던 말이.
‘콩쿠르에 나가거든요.’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유리도 콩쿠르에 나간다는 말이었다.
실소가 나왔다.
겉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유리같은 아이는 콩쿠르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을 거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연두를 옆에서 지켜보며 느꼈다.
콩쿠르 무대를 앞두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마음이 강하더라도.
유리가 말했던 ‘피아노가 미워진 적’이 있다는 얘기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다시금 유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저씨 전화도 위, 위…’
‘위?’
‘위로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아악, 몰라요!’
그 말 때문일까.
어쩌면 지금이 그 시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식 웃으며 발신버튼을 눌렀다.
뚜. 뚜.
은주아의 번호였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유리를 바꿔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 여보세요.”
놀랍게도 귀에 들어온 건 유리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