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07)
707화. 변화
콩쿠르가 얼마 남지 않건 건 연두뿐만이 아니었다.
유리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그 시점이 좀 더 앞서있었다.
누군가 콩쿠르에 관해 물을 때면 유리는 항상 대답하곤 했다.
‘당연히 내가 1등이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
그러나 그 안에는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만 같은 유약한 내면이 있었다.
한 번씩 찾아왔다.
스스로의 연주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한 불안감은.
툭.
지금이 그랬다.
건반에서 손을 뗀 유리는 중얼거렸다.
“왜.. 왜…”
답답했다.
왜 이 정도밖에 칠 수 없는지.
만족이 되지 않았다.
이런 연주로 콩쿠르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하나도 기쁘지 않을 거 같았다.
늘 그랬다.
콩쿠르가 다가올수록 이런 생각은 강해져 갔다.
따단. 딴.
얼마 전에 들은 대화가 떠오른다.
우연히 방 안에서 엄마가 통화하는 걸 들었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유리가 동경하는 피아니스트 이은경이었다.
‘아, 정말?’
정확한 맥락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은 존재했다.
‘또 콩쿠르에 나간다고? 빠르네..’
‘그랬구나.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그 아이한테……’
‘하긴, 그렇지.’
처음에는 몰랐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거의 통화를 끝마칠 즈음에야 정확히 귀에 들어왔다.
‘실력 면에서 노엘은 또래 아이들의 수준을 몇 단계는 앞서 있으니까.’
노엘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피아노에 있어서만큼은 엄마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을 향해 그런 말을 한 적은.
‘.. 부족해.’
잘 친다는 말, 천재라는 말.
그런 속이 빈 강정같은 칭찬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정받고 싶었다.
스스로가 인정하고 동경하는 피아니스트로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또래보다 좀 더 잘 치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아..”
따라주지 않는 손이, 그리고 피아노가 미웠다.
찾아온 거다.
피아노가 미운 순간이.
‘.. 미쳤어, 민유리.’
그런데 왜일까.
그 순간에 떠오르는 건 우습게도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괜찮다며 토닥여주는 커다란 손.
휙. 휙.
고개를 세게 저어도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렇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괜히 그런 얘기를 해서 그래.’
얼마 전 통화에서 아저씨가 물었다.
피아노가 싫을 때가 있냐고.
그런 물음이 없었다면 절대로 이런 순간에 아저씨가 떠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살짝 고개를 돌렸다.
피아노 위에 놓아둔 핸드폰에는 일시정지된 쇼팽의 음악이 있었다.
‘.. 거짓말쟁이.’
손과 피아노에 이어서 미운 게 하나 추가됐다.
아저씨였다.
다음에는 먼저 전화한다고 했으면서.
실상은 그런 적 없었지만, 유리의 안에는 보정된 기억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들어보자.’
억지로 생각을 떨쳐낸 유리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몇 번을 들어도 부족했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뻗으려는 찰나.
“…?”
유리는 눈을 의심했다.
피아노가 있어야 할 화면에 난데없이 떠오른 글씨를 보고.
[연두 아버님]아저씨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일까.
전혀 감이 안 오지만 엄마한테 용건이 있어서 건 전화일 터였다.
이건 엄마 핸드폰이니까.
‘그래도……’
바로 엄마를 가져다주고 싶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가져다주는 동안 전화가 끊겨버리면 곤란하니까.
그래, 그런 거야.
톡.
“..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어.. 유리니?”
역시 당황한다.
엄마가 받을 줄 알았는데 내가 받아서겠지.
그런 생각을 한 유리는 괜히 심통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바꿔줄까요?”
“아니.”
“네, 잠깐만…… 응?”
의문을 갖자마자 들려오는 말.
“잘 됐다. 어머님이 받으면 바꿔달라 하려고 했는데.”
“.. 누구를요?”
“누구긴, 당연히 유리지.”
톡.
간질거리는 기분.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고서 입을 뗐다.
“저, 저는 왜요?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세요?”
“푸하하!”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리는 주원의 목소리에 유리는 괜히 소리쳤다.
“뭐, 뭐예요!”
“하하, 미안. 그냥 유리가 재미있어서 자꾸 웃음이 나네.”
“.. 네?”
이상하다.
웃기려는 말은 하나도 안 했는데.
혹시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난다는 말을 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화끈거린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요?”
애써 화제를 전환하니 들려오는 말.
“유리가 그랬잖아.”
“네?”
“피아노가 미울 때 내 전화 한 통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웃음 섞인 한 마디가 이어졌다.
“혹시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해서.”
“…”
말문이 막혔다.
완전히 정곡을 찔린 나머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기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알고, 정확히 지금 전화를 한 걸까.
“아, 아니거든요.”
“응?”
“저 지금 피아노가 엄청 좋은 때였는데요. 너무 좋아서 쉬지도 않고 치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거짓말이었다.
그런 유리의 말에 주원은 세상 멋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래? 이거 완전히 타이밍을 잘못 잡았네…”
“흐흣.”
웃음이 났다.
바로 풀죽어하는 아저씨의 모습에.
그 뒤로 얼마간 대화를 나눈 뒤에 통화가 종료됐다.
몇 분 간의 길지 않은 통화.
슥.
고개를 돌린 유리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울려퍼졌다.
유리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피아노의 선율이.
***
유리와의 통화를 마쳤다.
다행이었다.
비록 위로가 되지는 못한 거 같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담소를 나눴으니까.
유리도 꽤나 즐거워보였고.
‘나도 좀 환기가 됐어.’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화와 더불어 편집까지 끝마칠 수 있었다.
화면에 떠오른 연두튜브.
영상을 업로드하기에 앞서 최근 올린 영상을 클릭했다.
[스튜디오 초록에 출근한 연두!(feat. 간식 배달원!)]이번 영상은 방학기간에 나랑 같이 작화팀에 출근했던 연두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틈틈이 찍어뒀거든.
스르륵.
떠오르는 댓글창.
-직원복지 실화냐?
┖일하고 있으면 연두가 간식을 가져다주는 회사가 있다?
┖심지어 맞춤으로 가져다줌.
┖우영이 소시지 싫어하는 거 알고 아몬드 가져다주는 거 봐. 진짜 천사냐구…
┖그 와중에 우영이 호불호 확실하네 ㅋㅋㅋ
┖ㅇㅈ 막말로 연두가 주는 소시지면 알러지 있어도 먹는다. 먹고 병원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두는 진짜 사랑으로는 부족하다.
┖그럼요?
┖추앙한다, 연두야…
┖트렌드 반영 보소 ㅋㅋㅋㅋㅋㅋㅋ
┖무급으로 스튜디오 초록에서 일하고 싶다.
┖분위기 개좋아보임.
┖이게 진짜 가족같은 분위기지. 가 족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오우야..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정반대가 되는 마법…
오늘도 웃음이 번지는 댓글창이었다.
-님들아, 이제 여름방학 끝남.
┖미쳤다…
┖뭐가요?
┖개학 등굣길 브이로그, 이든 가을촬영, 초록님이 준비하고 있는 야심찬 콘텐츠, 거기다 콩쿠르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록님이 준비하고 있는 야심찬 콘텐츠는 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콩쿠르 나가는 거 오피셜 뜸?
┖ㄴㄴ 근데 원스타에 피아노 사진 올라왔자나. 초록님은 한 번도 이런 때에 연두부를 실망시킨 적이 없음.
┖초잘알이네.
┖콩쿠르 진짜 너무 보고싶다. 보고 싶어서 미칠 거 같다.
실소가 나왔다.
이러면 콩쿠르 영상은 안 올릴 수가 없잖아.
그나저나 놀라운 적중률이다.
‘다 예정된 거야.’
딱 하나만 빼면 말이다.
야심찬 콘텐츠라니.
생각한 게 없지는 않지만, 우선은 연두의 콩쿠르가 먼저다.
그나마 히읗은 없어서 다행이네.
‘좋아.’
연두부의 말대로 여름방학이 끝이 났다.
여름도 곧 끝날 테고.
새로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에 따라 연두튜브는 더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겠지.
나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기대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었다.
연두를 만난 뒤로는 반복되는 듯한 일상 속에서도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늘 다른 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말이다.
***
한편 레나네 집.
꿀떡을 먹으며 레나는 연두를 향해 말했다.
“연두야.”
“응.”
“이번 콩쿠르 1등하면 나랑 같이 나가야 돼! 꼭!”
아직 레나는 연두와 함께하는 콩쿠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입 안에 가득 찬 꿀떡.
그런 레나를 보며 이은경이 말했다.
“입 안에 있는 건 삼키고 얘기하렴, 레나.”
“.. 네.”
연두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꼭 같이 나가자..!”
이번에는 입 안의 꿀떡을 비운 뒤에 레나가 말했다.
“약속이다?”
“응!”
쉴 새 없이 오가는 대화.
콩쿠르 얘기 외에도 대화주제는 끝없이 많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친구들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그래서 내가 유준이오빠한테 메롱하고 도망갔는데……”
“.. 흣.”
지금은 음악동아리인 유준이 이야기였다.
세상 신나서 얘기하는 레나와 쿡쿡 웃음짓는 연두를 이은경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바라봤다.
조금은 걱정했다.
다소 강도가 높아진 레슨에 연두가 많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하고.
‘레나도 콩쿠르 준비에 들어갔고.’
우려와 달리 두 아이는 여느때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여전히 밝은 모습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이은경은 넌지시 입을 뗐다.
“연두야.”
“네, 선생님!”
“그럼 슬슬 시작할까?”
일어서는 연두의 옆에서 레나가 말했다.
“엄마, 나 옆에서 구경해도 돼?”
안 된다고 말하려는 순간에 어디선가 들려왔다.
하파엘의 목소리가.
“레나는 아빠랑 연습해야지.”
“아…”
하파엘.
레나의 아빠이기도 했지만, 바이올린 선생님이기도 했다.
결국 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연습 잘 해, 연두야.”
“레나도!”
연습실에 들어간 둘.
늘 그렇듯 레슨의 시작은 연주를 듣는 것이었다.
레슨 간격이 짧아진 만큼, 이은경은 저번 연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재능이 있어.’
이은경은 천재였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연두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발전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손가락은 유연했고, 음을 표현하는 부면에서 타고난 감각도 있었다.
‘저번 레슨 때 속도는 완전히 끌어올렸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시기였다.
비록 1차 관문을 막 통과한 셈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에는 도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연두야.”
“네에.”
“우선 한 번 연주해 볼래?”
뭘 가르치든간에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저번 레슨과 별개로, 지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
“.. 네, 선생님.”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연두.
그런데 이상했다.
‘.. 뭐지?’
눈을 감는다.
건반에 손을 올리자마자 바로 연주를 시작하던 평소와는 달랐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연두가 감은 눈을 뜬 건 10초가량이 지난 후였다.
딴. 따단.
연주가 시작됐다.
낮은음으로 묵직하게 깔리는 멜로디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아르페지오.
속도는 그대로였다.
얼핏 듣기에는 저번과 비슷해보이는 연주였으나 이은경은 느낄 수 있었다.
확연한 차이를.
톡.
연주가 끝났을 때.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흘러나온 건 한 마디였다.
“연두야.”
“.. 네.”
“무슨 일이 있었니?”
두 번째 관문을 말해줄 필요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