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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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화. 순수함
“연두야.”
“.. 네.”
“무슨 일이 있었니?”
애써 태연하게 물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들은 연주의 곡명처럼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야,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대체 뭐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보통 똑똑하거나 재능이 있는 대상을 칭찬할 때 쓰는 말이다.
확실히 연두는 그런 아이였다.
타고난 음감을 비롯한 음악적 재능으로 하나를 알려주면 쉽게 응용해내곤 했다.
자각도 못 하는 상태로.
그건 가능한 영역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은경의 시점에서는 확실히 그랬다.
그녀 역시 그런 부류였으니까.
재능이라는 게 그랬다.
제삼자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
따라서 이은경은 쉽사리 동요하지 않았다.
연두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과거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이기도 했으니까.
‘.. 달라.’
허나 이 경우는 달랐다.
애당초 알려주지 않았으니 응용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연두의 연주에는 저번 레슨 때는 찾아볼 수 없던 요소가 깃들어 있었다.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완벽한 건 아니야.’
표현에 있어서 아직은 미숙함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중요한 건 임팩트였다.
중간중간에 한 번씩 느껴지는 감각은 이은경조차 공명하게 만들 정도였다.
흉내 내는 게 아니라는 거다.
어설프게 감각적인 척하는 연주로는 절대로 그 느낌을 줄 수 없으니.
“.. 으응?”
“저번 레슨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선생님 말고 누구한테 피아노를 배웠다거나.”
따지려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걸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다면 묻고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한 건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연두의 표정에 이은경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면, 갑자기 피아노를 치는 느낌이 달라졌다거나.”
“아!”
반응이 왔다.
역시 어떠한 계기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게 무척이나 궁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두는 기억을 되살리는 듯한 표정으로 자그맣게 입을 뗐다.
“비가 많이 왔어요…”
“비?”
아리송한 말.
되묻는 이은경의 말에 연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비가 엄청 많이 왔는데.. 아빠가 이렇게 손을 내밀었어요.”
“.. 그래서?”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 뒤로 연두는 쭉 이야기했다.
거센 소나기를 우산도 없이 맞으며 눈을 감고서 비를 느꼈던 것.
그때의 느낌.
비의 냄새, 온도, 지면에 닿아 부서지는 소리.
“그런데 번개가 쾅 쳐서……”
갑작스레 천둥이 쳤던 것까지.
그런 일련의 이야기를 이은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집에 들어갈 때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은경은 입을 뗐다.
“그때 어떤 기분이 들었니?”
미소를 머금은 채로 연두는 답했다.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이은경은 실소를 터트렸다.
의문이 풀렸다.
연두에게 감각을 가르쳐준 건 자신도, 그 어떤 선생님도 아니었다.
소나기 그 자체였다.
‘생각도 못 했어.’
한 번쯤 영상을 보여줄 생각은 했으나 함께 비를 맞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야, 당연했다.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그게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이유였다.
‘보통 사람은 아니야.’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이주원이었다.
생각은 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한 번씩 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범상치 않은 면이 있다고.
그 생각이 맞았다.
다소 괴짜 같은 그 행동이 연두를 도약하게 만들었으니.
‘그런 발상도 누구보다 딸을 위하니까 할 수 있는 거겠지.’
부모로서도 느껴지는 바가 컸다.
평소에 쉽사리 연두로부터 눈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봐 왔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은경을 놀라게 만든 게 있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쳤을 때 기분이 어땠니?”
“너무……”
생각만으로 벅차오르는 듯 연두는 얘기했다.
“……너무 재밌었어요. 소리가 너무 예뻐서…”
이미지를 바로 연주에 녹여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실 그 어떤 테크닉보다도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게 감각이라는 요소였다.
그건 이은경조차도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큰일인걸.’
제자를 키우는 재미.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동치는 심장을 보니, 아직 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두는 그런 아이였다.
***
시간에 맞춰 연두를 데리러 갔다.
잠깐 할 얘기가 있다는 이은경의 말에 방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기다려, 연두야.”
“네에.”
문을 닫았다.
괜히 긴장이 됐다.
혹시나 할 얘기라는 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아닐까 하고.
‘괜한 짓을 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물론 그렇게 말할 리는 없다.
그런 뉘앙스의 얘기가 들려오면 어쩌나 걱정한 것뿐이지.
다시 생각해 보면,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답시고 비를 맞으러 나간 게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같이 비를 맞으셨다구요.”
예감은 적중했다.
멋쩍은 얼굴로 나는 답했다.
“하하… 연두가 말했나요?”
“제가 물어봤거든요.”
“아.”
“연두 연주가 저번 레슨 때랑 아예 달라졌어요.”
이쯤 되니 심장이 철렁했다.
무표정으로 얘기하는 걸 보니 좋은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쪽으로 더 기울었으니까.
나도 나지만 더 걱정되는 건 연두였다.
괜히 잘 가고 있던 연두의 발목을 잡은 게 아닐까 하고.
‘.. 내 귀가 틀렸던 건가.’
당시에 들었던 연두의 연주가 떠올랐다.
홀딱 젖은 채로 열중하는 모습에 보는 나조차 빠져들었던 그 순간이.
착각이었던 걸까.
그때 내가 느꼈던 심장의 고동은.
‘하긴, 내가 뭘 안다고.’
알다시피 나는 타고난 박치였다.
음치는 아니지만.
내 귀에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이 전문가의 귀에는 형편없이 들려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게 자책하는 와중에 들려오는 말.
“정말, 정말 달라졌어요.”
“.. 그렇게 많이 달라졌나요?”
“네.”
덧붙이는 말에 내 눈이 커다래졌다.
“좋은 쪽으로요.”
그제야 보였다.
살며시 올라가 있는 이은경의 입꼬리가.
어안이 벙벙한 나를 향해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역시 이길 수가 없네요.”
“네?”
“연두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피아노에 관해서 만큼은. 근데 역시 아빠를 이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녀는 실소와 함께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절대 못 하거든요. 같이 비를 맞을 생각 같은 건.”
“…”
잘은 모르겠다.
허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가 뱉는 모든 말이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연두 연주가 좋아진 건가요?”
“네.”
“하아..”
나도 모르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진심이었다.
혹여나 내 돌발행동이 악영향을 미친 건 아닐지 조마조마했으니까.
그런 나를 향해 이은경은 말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요.”
“네?”
“비를 맞고 느낀다고 그게 연주에 묻어나지는 않아요. 천둥이 치는 걸 본다고 그 정서가 묻어나지도 않고요. 그런데……”
“…”
“연두는 달라요.”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야기했다.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요.”
순수함.
이은경은 그 특성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녀는 덧붙였다.
“오늘 연주를 듣고 느낀 게 있어요.”
“.. 뭔가요?”
“아빠랑 같이 비를 맞은 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지, 그게 한 음 한 음에서 느껴지더라고요.”
그제야 입가에 번지는 미소.
나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알 수 있다면, 피아노는 얼마나 아름다운 악기인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에 따라 이든 홈페이지도 새롭게 단장했고.
‘예상은 했지만.’
여름옷과 달리 가을옷은 노엘이 입은 옷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핫했다.
특히나 베스트셀러는 트렌치코트였다.
그럴 만도 하다.
“햐아..”
이건 내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니까.
-와, 미쳤다…
┖이게 진정 여덟살의 분위기인 건가?
┖여름옷 특성상 입을 게 한정돼 있는데 가을옷은 다양해서 그런지 레전드네.
┖연두랑 투샷 미쳐따…
┖이쯤 되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떤 생각이요?
┖노엘의 겨울은 어떨까.
┖선동이도 겨울옷 입으면 개귀여울듯 ㅋㅋㅋㅋㅋ
동감이다.
승패를 따지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현 상태로는 1대 1이다.
여름은 선동이 승, 가을은 노엘 승.
‘겨울이 접전이 되겠군.’
이유는 간단하다.
둘 다 다른 의미로 매력이 있을 거 같거든.
생각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자기 몸보다 빵빵한 패딩을 입은 선동이의 모습, 두툼한 겨울코트를 입은 노엘의 모습.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잘 있겠지?’
선동이와 노엘.
문득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이 됐다.
조만간 연락을 해봐야겠다.
‘한 번씩 생각난단 말이지.’
모델 관리 차원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덟 살 아이들을 상대로 비즈니스적인 사고를 할 위인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한다.
단지, 녀석들에게 정이 들었을 뿐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노엘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던 선동이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했다.
그래서였다.
녀석들이 잘 지내기를 바랐다.
다시 만났을 때는 더 좋은 모습으로 웃으며 볼 수 있도록.
‘빨라야 겨울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든 촬영 말고는 명분이 없으니.
특히나 노엘의 경우는 한국과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독일에 거주하는 만큼 스케일이 더 컸다.
‘나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다시 만났을 때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려면 나 역시도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멈춰있어서는 곤란했다.
나도 나지만 연두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연두의 첫 콩쿠르가.
‘잘 모르겠어.’
이번 콩쿠르에 참가할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직접 봐야 알 수 있겠지.
그러나 확실한 건, 나는 쭉 지켜봐 왔다는 사실이다.
하루하루 변하는 연두의 모습을.
따단. 딴.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를 쳤다.
대학교 방학이 끝나고 자주 레슨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그 시간을 믿었다.
슥.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즐겨 입는 흰색 계열의 셔츠를 입은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나름 멀끔한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바로 외출하려다가 아차 하고 신발장을 열었다.
내용물이 얼마 남지 않은 병.
칙. 칙.
지혜씨한테 선물 받은 향수였다.
받은 지 꽤나 오래됐지만 자주 뿌리는 타입이 아니라 아직 남아있었다.
그것도 이제 거의 다 쓰긴 했지만.
“좋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겠지.
평소답지 않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향수까지 뿌린 뒤에 가려는 곳이 어디일지.
아마 친구 녀석들이 봤다면 온갖 호들갑을 떨었을 거다.
‘야! 이주원 여자 만나러 간다!’
뻔하다, 뻔해.
혀를 차며 집을 나섰다.
내 상상 속 녀석들의 생각과 달리 여자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장소.
덜컥.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앞에 보이는 건 커다란 건물이었다.
입구에 보이는 간판.
[제5회 한율음악콩쿠르]그렇다.
내가 찾은 곳은 콩쿨장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유리가 콩쿠르에 출전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