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피아니스트
“유, 유리야! 괜찮아?”
“아저씨..”
깜짝 놀랐다.
갑자기 주저앉는 유리를 보고.
다행히도 넘어지기 직전에 손을 뻗어 붙잡긴 했지만.
“.. 고마워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금만 해도 말도 없이 왜 왔냐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 이제는 또 고맙다 그러네.
역시 유리다.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래. 일어설 수 있겠어?”
“아!”
붉어진 얼굴.
그제야 스스로 중심을 잡는다.
“바, 방금 고맙다고 한 건 넘어질 뻔한 거 잡아줘서 고맙다 한 거예요!”
“그렇겠지. 또 고마울 게 있나?”
“.. 없죠!”
이게 무슨 대화람.
그나마 예상이 가는 건 유리는 연주를 잘했다는 자각이 없었던 거 같다.
오히려 그 반대지.
날 선 반응도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갔다.
“유리야.”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은주아가 입을 뗐다.
“혹시 연주를 망쳤다고 생각한 거니?”
“.. 응.”
역시나.
혼란스러울 만도 하다.
본인은 망쳤다고 생각한 연주가 관객이 듣기에는 최고의 연주였다고 한다면.
지금껏 들은 유리의 연주 중 최고였다.
그게 은주아의 감상평이었다.
‘똑같이 말하는 건 별로고.’
나름 유리를 응원하러 온 입장에서 코멘트 하나쯤은 남기고 싶단 말이지.
어떤 말이 좋을까.
“잘 들었어, 유리야.”
“네?”
나를 바라보는 유리를 향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짜 피아니스트 같더라.”
거창한 말은 필요 없었다.
순수한 감상이었다.
오늘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유리는 정말 피아니스트를 보는 거 같았으니까.
멍하니 서 있던 유리는 한발 늦게 반응했다.
“다, 당연하죠! 피아니스트니까 피아니스트 같죠!”
“하하, 맞는 말이네.”
그렇다.
유리는 피아니스트였다.
무대 위 모습과 달리 지금은 평소의 유리로 돌아온 상태였다.
“.. 진짜예요?”
“응?”
“제 연주, 아저씨가 듣기에도 좋았어요?”
그 물음에 나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아니.”
충격받은 표정.
또 주저앉기 전에 나는 말을 이었다.
“좋은 수준을 넘었지.”
“.. 네?”
“거짓말이 아니야. 유리 너도 알다시피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
그런 내 말에 유리가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 거짓말.”
“응?”
“거짓말이잖아요. 거짓말 못 하는 성격이라는 것도.”
“잠깐만. 크나큰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독일에 갔을 때 씌워진 거짓말쟁이 프레임이 아직도 안 벗겨지고 있었다.
대체 언제 벗겨지는 건데, 이거.
‘그래도 다행이네.’
유리가 웃어서 다행이었다.
잘 연주하고 내려와서 퀭한 얼굴이라 걱정했는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 유리를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은주아는 말했다.
“이제 좀 믿기니?”
“응?”
“최고의 연주였다는 거. 아직도 안 믿기면……”
그녀는 싱긋 웃으며 무대 위를 가리켰다.
“올라가 보렴.”
나와 유리는 동시에 무대 위를 바라봤다.
어느새 마지막 참가자의 연주가 끝나고 막이 내리고 있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래. 올라가 봐, 유리야.”
시상식의 막이 오를 차례였다.
***
이변은 없었다.
시상식에서 유리는 보란 듯이 대상을 거머쥐었다.
정작 본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긴 했지만.
짝. 짝.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금빛 트로피를 들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유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때. 이제 좀 믿겠어?”
아주 조금은 걱정했다.
나랑 은주아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1등을 못 하면 상황이 엄청 우스워질 거 같았으니까.
1등을 못 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연주이긴 했지만.
“아, 알았거든요! 1등 할지!”
“거짓말.”
“.. 네?”
“이제 보니까 거짓말쟁이는 내가 아니라 유리인 거 같은데?”
“우으…”
볼멘소리를 낸다.
분한 와중에도 반박은 못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런 유리를 향해 말했다.
“대상 축하해, 유리야.”
옆에서 은주아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해, 우리 딸.”
“.. 응.”
괜히 머쓱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뗀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 고마워요.”
오늘만 두 번째다.
유리 입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말인데.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다가 은주아는 나를 향해 말했다.
“죄송한데 잠깐만 유리랑 있어 주실 수 있나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아, 물론이죠.”
“감사해요. 금방 올게요!”
늘 바쁜 은주아였다.
처음 콩쿠르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으니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얌전히 있어야 한다?”
“나 애기 아니거든!”
“풋.”
뒤돌아본 그녀는 한 마디를 남기고 발을 옮겼다.
“그래. 오늘 연주는 애기 같지 않긴 하더라.”
“…”
얼어붙은 유리.
눈만 끔뻑이는 모습이 좋아하는 게 티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
애써 아닌 척하긴 하지만.
평소에 그렇게 티격태격해도 엄마한테 칭찬을 받으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그럼 앉을까?”
“네.”
관객들이 떠난 콩쿨장.
나와 유리는 나란히 앉아서 은주아를 기다렸다.
찰칵.
할 것도 없겠다.
카메라로 트로피를 든 유리의 모습을 촬영했다.
깜짝 놀란 유리가 말한다.
“뭐, 뭐예요?”
“기념으로 남겨둬야지.”
“아까 찍었잖아요.”
“그건 너무 딱딱하게 나왔어. 찍는다고 하니까 표정도 굳어가지고. 이거 봐. 예고 없이 찍으니까 완전 귀엽게 나왔잖아.”
“.. 어디요?”
귀엽다는 말에 고개를 쏙 내밀어 사진을 확인한다.
동그래지는 눈,
“뭐야! 완전 이상하게 나왔잖아요!”
“푸하하!”
그렇다.
내가 찍은 건 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리의 옆모습이었다.
“뭘 모르네. 그게 포인트인데.”
“빨리 지워요!”
“원스타그램에 올리면 안 돼? 저는 유리 말고 뚱이예요! 이렇게.”
“.. 아저씨?”
나는 입을 다물었다.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으니까.
아쉬웠다. 이런 거야말로 A컷 이상으로 가치 있는 사진인데.
“.. 알겠어.”
그런 내가 풀이 죽어 보였던 걸까.
유리가 입을 뗐다.
“아저씨.”
“응.”
“아저씨는 거짓말 안 한다고 했죠?”
“그랬지.”
“그럼.. 저 비밀 하나 말해줄까요?”
갑자기 비밀 얘기라니.
의외의 전개였다.
“어떤 비밀인데?”
바로 먹이를 물었다.
그야, 나는 호기심만큼은 여덟 살 아이 못지않은 스물여덟 살 어른아이였으니까.
“절대 안 말할 거죠?”
“안 말해.”
진심이었다.
이주원 28년 인생에 비밀이라며 한 얘기를 옮긴 기억은 없었다.
비밀이라고 안 한 건 다 옮기지만.
그 누구보다 가벼운 입과 동시에 무거운 입을 보유한 희소성 있는 녀석이 나란 놈이었다.
마침내 유리가 입을 뗐다.
“사실.. 저는 무대에 올라가는 게 무서워요.”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유리의 비밀 이야기라면 듣자마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스토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기에는 유리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목소리도 그렇고.
“.. 웃기죠.”
“응?”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치는 걸 무서워한다는 게.”
트로피를 쥔 두 손을 바라보며 유리는 말을 이었다.
“손이 떨려요. 눈 감고도 치는 악보가 안 떠올라요. 그럼 차가운 물을 마시는데, 어떨 때는 그래도 진정이 안 돼요.”
“…”
“오늘이 그랬어요.”
비로소 느낌이 왔다.
이게 왜 비밀 이야기인지.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유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가 느껴졌으니까.
“망칠 거라 생각했어요. 피아노를 치면서도 너무 힘들어서, 완전히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최고의 연주였다는 거구나.”
“네.”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유리는 말했다.
“신기해요.”
“뭐가?”
“어떻게 웃으면서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지, 하나도 안 떨 수 있는지. 그리고 무서워요.”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렇게 겁쟁이인 내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건지.”
처음이었다.
유리가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표현한 건.
진심을 드러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건 나와 유리 둘만의 비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톡.
향한 곳은 유리의 머리 위였다.
“.. 아저씨?”
놀라서 나를 바라보는 유리를 향해 얘기했다.
“힘냈구나.”
“.. 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으니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 나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웃기지 않냐고 했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치는 걸 무서워하는 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웃길 리가 없잖아.”
“…”
“무서운 게 당연한데.”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이건 아저씨 생각인데.. 피아니스트 중에 안 떠는 사람은 없어.”
“그게 무슨……”
“지기 싫으니까, 인정받고 싶으니까, 실망시키기 싫으니까,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그 노력을 단 한 번의 연주로 평가받는다.
떨지 않는 게 이상했다.
“유독 많이 떤다고 느낀다면, 그건 유리가 그만큼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는 거겠지.”
“…”
떨리는 유리의 눈동자.
이거 곤란한데.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지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마 쇼팽이랑 베토벤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떨었을걸? 이렇게.”
동시에 나는 손을 달달 떠는 흉내를 냈다.
두 거장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하며.
효과는 상당했다.
“.. 흣.”
웃음을 터트리는 유리.
이제 비밀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건지 생각하면서 무서워할 필요 없어.”
끝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유리는 이미 피아니스트니까.”
“아저씨..”
잘 모르겠다.
조금은 위안이 됐을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유리의 몫이니까.
그런데 별안간 홱 고개를 돌리는 유리.
‘.. 뭐지?’
은주아가 온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두 눈에 보이는 건 유리의 뒤통수뿐이었으니까.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 돼요.”
“응?”
“올려도 된다구요. 아까 사진.”
입꼬리가 씩 올라가게 만드는 한 마디였다.
***
집에 돌아가자마자 원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유리의 사진을.
-축하해, 유리야!
멘트는 원만히 합의를 봤다.
‘유리 말고 뚱이예요!’로 하고 싶었으나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연두를 데리러 간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 아빠!”
안겨드는 연두.
배시시 웃으며 물어온다.
“일하다가 왔어여?”
“아니.”
“그럼요..?”
“유리 콩쿠르 보러 갔다 왔어.”
놀란 듯 벌어지는 입.
그런 채로 멍하니 서 있다가 목소리를 낸다.
“오늘 유리 콩쿠르 했어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
말해주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지.
웬만하면 함께 가고 싶었으나 학교를 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보고 싶었는데……”
이런 반응도 예상했다.
말도 없이 혼자 다녀왔다는 말을 듣는다면 서운한 게 당연하다.
연두를 꼭 끌어안고서 말했다.
“미안해, 연두야.”
“…”
단단히 삐졌군.
미안하다는 말에도 대답을 안 할 정도면 상당히 많이 삐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귀에 속삭이듯 얘기했다.
“대신 아빠가 가져왔어.”
나름 필살기였다.
주어 빼놓고 말하기.
이렇게 말하면 삐진 와중에도 궁금해서라도 반응이 온단 말이지.
“뭐를요..?”
“이거.”
손에 든 건 카메라였다.
“유리가 연주하는 거 다 찍었거든. 연두 보여주려고.”
전부 풀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접 보고 온 입장이라 더 그렇지만 영상을 통해 보는 거랑 직관은 상당한 차이가 있으니까.
연두도 실제로 보고 싶었을 테고.
그 마음을 알기에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약속할게. 다음에는 꼭 연두랑 같이 보러 가기로.”
“진짜여..?”
“그럼, 진짜지.”
다행히 새끼손가락이 겹쳤다.
이윽고 도착한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연두는 달려가서 컴퓨터를 켰다.
‘똑똑하다니까.’
카메라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보려는 게 분명하다.
빙긋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됐다.”
연두를 콩쿨장에 데려가고 싶었던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콩쿠르를 앞두고 있는 상황인 만큼, 그 분위기를 느끼고 오길 바랐으니까.
영상이라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빨리 봐여, 아빠..!”
“하하, 그래.”
달칵.
클릭과 동시에 재생되는 영상.
곧이어 나는 볼 수 있었다.
보물을 찾기라도 한 듯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의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