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14)
714화. 진인사대천명
“.. 가우스!”
유준이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두의 연주를 듣고, 가우스에 대한 일화를 접했을 때의 충격처럼 소름이 올라왔으니까.
‘등차수열.’
초등학생이 배우기에는 너무 이른 과정이었다.
교육과정에 따르면 등차수열은 고등수학에 해당하는 파트니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우스가 등차수열의 원리를 깨우친 건 초등학교 때였다.
‘1부터 100까지 더해 보렴.’
초등학교 수학 선생님의 지시였다.
그에 따라 꼬꼬마 아이들은 연필을 쥐고 차례차례 더하기 시작한다.
1 더하기 2는 3, 3 더하기 3은 6, 6 더하기 4는 10……
바로 그때였다.
‘계산 완료.’
모두가 놀랄 만한 상황이었다.
절반은커녕 1부터 10까지도 더하지 못한 상황에 천재 잼민이 가우스가 손을 들었으니까.
‘답은 5050입니다. 크크루삥뽕~’
심지어 정답이었다.
놀란 선생님이 어떻게 푼 거냐고 묻자 가우스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1과 100을 더하면 101입니다. 2와 99를 더해도 101이고요. 즉, 101을 더하는 게 정확히 50번 반복되죠.’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간단한 원리를 떠올리는 게 천재성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파생된 게 등차수열 공식이었다.
유명한 일화이다.
‘우와…’
그 일화를 접한 유준이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감탄과 아쉬움.
그런 생각을 해낸 가우스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화를 전해 듣기 전에 같은 지시를 받았으면 어땠을지.
‘나는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수학에 한해서 유준이는 무궁무진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처음이었다.
피아노 연주를 듣고 수학자를 떠올린 건.
“.. 풋.”
옆에 있던 유신애가 웃음을 터트렸다.
잘은 몰라도 유준이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건 알 수 있었으니까.
선재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처럼 랩을 뱉지도 못하고 입만 뻥긋대고 있다.
‘그럴 만도 하지.’
아이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유신애는 연주를 듣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문을 열었다.
동시에 귀에 들어오는 피아노 선율에 자연스레 발을 멈췄지만.
그 뒤로는 빨려들었다.
따단. 따다단.
음악 교사 유신애.
비록 피아노를 전공한 건 아니었지만 음악에 대한 조예는 있는 편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아이는 연두였다.
그러나 세상 순하고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연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 이 정도였어?’
눈앞에 있는 건 명백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였다.
중간에 아이들이 들어왔을 때 바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막았던 게.
끝까지 듣고 싶었다.
워낙 몰입한 탓일까.
연두가 선생님과 두 오빠를 본 건 연주가 끝나고 난 뒤였다.
정확히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을 때.
“.. 가우스!”
“응?”
고개를 돌린 연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럴 만도 했다.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을 지켜보는 선생님과 오빠들이 있었으니까.
즉, 관객이 있었다는 거다.
화악-
화끈거리는 얼굴.
괜한 쑥스러움이 몸을 감쌌다.
“여, 연습하고 있었어여.. 아무도 없는 줄 알아서……”
그제야 유신애가 가까이 다가갔다.
“이 곡이니?”
“.. 네?”
“콩쿠르에서 연주할 곡.”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두는 대답했다.
“네에.”
“흐응, 그렇구나.”
별도로 감상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유준이가 달려왔으니까.
“엄청났던 거야!”
“.. 응?”
“나, 나 이런 거 처음 듣는 거야… 킁!”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 뒤로 정신을 차린 선재도 입을 뗐다.
“멋진 연주였어~ Yo!”
“헤헤..”
수줍은 미소.
워낙 극찬이 쏟아진지라 유신애는 비교적 담백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이번 콩쿠르 기대해봐도 되겠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이 정도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초등학생은 극소수였으니까.
전 학년을 통틀어 생각해도.
정작 본인은 그 사실에 대한 자각이 그다지 없는 듯하지만.
‘뭐, 그게 연두의 매력이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납득은 가는 부분이었다.
주위에서 피아노를 치는 또래 친구가 유리와 노엘이고, 단짝 친구 중 하나인 레나는 바이올린 영재이다.
쉽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때였다.
“.. 연두야.”
상기된 얼굴로 유준이가 입을 뗐다.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는 연두를 향해 들려오는 말.
“나.. 피아노가 치고 싶어진 거야.”
그렇다.
쉽게 싫증을 내기도 하지만 쉽게 무언가에 빠져들기도 했다.
힙합도 그중 하나였고.
방금의 연주로 유준이는 피아노의 매력에 빠져든 상태였다.
“그럼.. 내가 가르쳐 줄까..?”
“정말?”
“응!”
세상 신이 난 얼굴.
폴짝폴짝 뛰며 피아노 앞에 앉은 유준이가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쿡쿡 웃으며 연두가 건반을 가리켰다.
“이건 도야.”
“도?”
“응. 여기부터 도레미파솔……”
기초부터 알려주는 연두 선생님.
“흐흐, 재밌다! 킁!”
정확히 이틀이었다.
그로부터 유준이가 피아노를 포기하는 데 걸린 시간은.
***
콩쿠르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 길지는 않은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시간은 쓰기 나름이었다.
자연히 머릿속에 고사성어가 하나 떠오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에는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최선은 다했다.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만이 남았을 뿐.
이미 콩쿠르 때 연두가 입을 옷도 정해둔 상태였다.
‘정해진 복장은 없어.’
무채색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고려할 점이라면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옷을 입혀야 한다는 것 정도겠지.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연두의 시그니처 옷이라 볼 수 있는 이든의 연두색 원피스였다.
‘예쁠수록 좋아.’
규정은 없다지만 옷에 신경 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연주는 귀로만 듣는 게 아니니까.
연주자의 모습은 관객과 심사위원의 눈에도 들어오고, 그 시각적인 요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였다.
고심 끝에 이 옷을 고른 건.
‘잘 부탁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그날 연두의 날개가 되어줬으면 했다.
이후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일주일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톡.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잘 지내셨죠, 선생님?”
그렇다.
내가 전화를 건 대상은 다름 아닌 수찬쌤이었다.
“목소리 잊어먹겠다, 이 녀석아.”
“하하…”
연두의 첫 콩쿠르.
모두를 초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주위 사람들은 초대하고 싶었다.
“이번에 연두가 처음으로 콩쿠르를 하거든요.”
“오! 정말이냐?”
“네.”
초대 의사를 전하자 수찬쌤이 말한다.
“근데.. 나한테 몇 번째로 전화한 거냐?”
“푸흣.”
이래서였다.
가장 먼저 수찬쌤한테 전화한 건.
너무 예상대로의 물음이라 웃음이 나왔다.
“첫 번째예요, 첫 번째.”
“으하하!”
호탕하게 웃은 수찬쌤은 이야기했다.
“그래서 콩쿠르 날짜가 언제라고?”
“일주일 후요.”
토요일이었다.
“오실 수 있으세요?”
“당연히 가야지! 연두 첫 콩쿠르인데!”
시원시원하구먼.
이로써 관객 한 명의 확보에 성공한 나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감사해요.”
응원해줄 사람은 많을수록 좋았다.
부담이 되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힘이 되기도 할 테니.
“아이는 잘 크고 있죠?”
“그럼. 와이프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
“다행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도 되냐? 와이프랑 아들 녀석이랑.”
“물론이죠.”
“흐하하, 좋구나. 우리 연두 연주로 태교 좀 해야겠어.”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태교에 좋은 음악은 아닐 텐데요.”
“엥?”
“이번에 연두가 칠 곡이 좀 파워풀하거든요.”
껄껄 웃으며 수찬쌤은 얘기했다.
“에이, 그런 것도 한 번씩 들어줘야지. 잔잔한 거만 들으면 잔잔바리가 나올 거 아니야. 나를 닮아서 좀 호탕한 면도 있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전에는 딸이 좋으시다면서요.”
“아니, 이 녀석이! 간신히 잊고 있었는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수찬쌤과 통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거의 다 올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좋아.’
축제가 됐으면 했다.
연두의 소망처럼 연두의 연주가 모두의 마음을 가득 채웠으면 했다.
나는 믿었다.
반드시 그런 날이 될 거라고.
***
당연한 얘기지만 콩쿠르에 참가하는 건 연두뿐만이 아니다.
따단. 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지옥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었다.
“다시.”
끝없는 반복.
이제는 헷갈렸다.
뭘 위해서 이 지옥 같은 시간들을 견디고 있는 건지.
‘콩쿠르 대상?’
알 수 없었다.
콩쿠르 대상을 받고 나면 과연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수호가 다시 블랙홀 같은 건반 위에 손을 올리게 만들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지키고 싶은 게 있었다.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표정을 지키고 싶었다.
또 한 번의 연주를 마치고 손을 멈췄다.
이제 또 들려오겠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수호의 귀에 들어온 건 예상 밖의 한 마디였다.
“흐음, 이제 좀 괜찮네.”
“…?”
귀를 의심했다.
콩쿠르 연습에 들어간 이후로 괜찮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으니까.
“오해하지 말렴.”
“.. 네?”
“좋다는 게 아니라 들어줄 만은 하다는 소리니까.”
“아……”
그렇게 말은 했지만 조희나는 마음속으로 웃고 있었다.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다.
초등학생의 수준은.
‘그럴 수밖에 없지.’
똑같은 곡을 매일같이 반복시켰다.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의 가치는 악보를 얼마나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개성을 철저히 배제했다.
‘나는.. 안수호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튀려는 부분이 보일 때면 그 말을 하도록 시켰다.
수많은 콩쿠르를 경험했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수준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질 수가 없다고 생각한 건.
‘실수만 안 하면 돼.’
그럼 이변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은경의 제자인 연두는 피아노를 접한 지 3년도 되지 않은 상태다.
조희나는 수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수호야.”
“.. 네.”
“내가 엄격하게 가르치는 건, 그만큼 너를 믿어서란다.”
원래 반복되는 채찍질 끝에 주는 당근 하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법이다.
조희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건네는 당근 하나가 수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번 콩쿠르에서 대상만 타면 돼. 그럼 내가 너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들어줄 테니까.”
“네, 선생님.”
“그럼 연습하고 있으렴.”
문을 닫고 나선 조희나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여보세요.”
“잘 지냈어요? 저 조희나예요.”
“아, 교수님!”
짧게 주고받는 인사.
그 뒤에 조희나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시답잖은 안부나 주고받으려 취한 연락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게 아니고요.”
“네.”
“내가 기자님한테 줄 소스가 하나 있는 거 같아서요.”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
기어코 일을 크게 만드는 조희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