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17)
717화. 서막
콩쿨장에 입성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일행을 찾을 수 있었다.
전부 도착한 거 같지는 않지만.
“.. 유리야!”
유리는 내가 직접 초대했다.
저번에 콩쿠르를 보러 갔을 때 연두 콩쿠르에 와 달라고 부탁했으니까.
연두에게 힘이 되어달라고.
왠지 모르게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유리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유리야.”
“아, 아저씨..”
조금은 의아한 반응이었다.
어색한 건 둘째치고 살짝 붉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뭐, 별 일 아니겠지.
여러 의미로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아이니까.
“되게 멋지게 차려입고 오셨네요?”
그런 나를 향해 은주아가 말을 건넸다.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과한가요?”
“아뇨. 너무 잘 어울리시는데요? 연두는 말할 것도 없고.”
묘하게 쑥스러웠다.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옷을 입어서인지.
다행히 나에 대한 화제는 금방 연두에게로 옮겨갔다.
이은경이 말을 받았다.
“그러네. 엄청 예쁘게 입고 왔네.”
수줍은 듯 미소짓는 연두.
얼마 지나지 않아 레나와 하파엘도 일행에 합류했다.
“너도 왔니?”
조금은 긁는 듯한 유리의 물음에 레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나는 연두랑 환상의 파트너니까!”
“풋.”
“너는 왜 왔서?”
반대로 묻는 말에 말문이 막힌 유리.
“나?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거 같았다.
역시 솔직하지 못하다.
그냥 ‘친구니까’ 한 마디면 되는 일인데.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초대했어.”
그런 나를 향해 레나가 고개를 돌린다.
“.. 아저시?”
“유리도 단비음악대잖아. 단비음악대 멤버가 연두 콩쿠르에 빠지면 안 되지. 안 그래, 레나야?”
눈을 깜빡이는 레나.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유리를 향해 말한다.
“알겠서! 특별히 인정해 줄께!”
“뭐? 너한테 인정같은 거 안 받아도 되거든! 나도 정식으로 초대받은 거라고!”
“풋.”
“웃지 마!”
여전하구먼.
아무런 맥락없이 이렇게 다툴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아직 다 온 게 아니었다.
차례로 도착했다.
세연씨와 시은이, 수찬쌤 부부, 주연이를 제외한 고딩녀석들, 내 친구녀석들.
‘주연이는 못 오나 보네.’
자리를 만들어두긴 했다.
그러나 못 올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다.
가장 바쁜 시즌이니까.
활동기간이 1년으로 정해져 있는 만큼 쉴 새 없이 바쁘다고 했지.
‘할머니도 못 오셨고.’
그래도 어제 통화를 나누긴 했다.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연두튜브 공식 츤데레답게 마지막에는 건넸다.
힘이 되는 말을.
‘쥐방울.’
‘네에.’
‘쫄지 말고 잘 하고 와, 알겠어?’
그렇다.
나 말고도 연두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 오늘 우리 수형이 귀 호강하겠는데? 흐허허! 연두누나 연주니까 귀 바짝 열고 들어, 이 녀석아.”
수찬쌤의 말.
참고로 수형이는 내가 지어준 예명이었다.
굉장히 구리다고 한 반응과 달리 지금은 수형이로 픽스된 상태였다.
아내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는 모양이다.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하하, 아닙니다.”
“어머.. 연두 너무 예쁘게 하고 왔네?”
배가 나오신 걸 보니 수형이는 무럭무럭 잘 성장중인 모양이다.
다행이네.
곧 연두한테 귀여운 남동생이 생기겠군.
그렇게 차례로 도착하는 일행들과 인사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 연두를 바라봤다.
‘.. 어?’
옅은 미소.
그런데 아까와는 느낌이 달랐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떨고 있어.’
이유는 짐작이 갔다.
연두를 응원해주러 온 많은 사람들.
그건 힘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연두야.”
“.. 네.”
“괜찮아? 많이……”
많이 떨리냐고 물으려는 참이었다.
어디선가 다소 부자연스럽게 톤을 올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나를 향하는 건 아니었다.
“어머어머, 여기서 또 뵙네요?”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여자가 이은경을 보며 서 있었다.
“제자 연주 보러 오셨구나! 그렇죠?”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는 걸 보니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뒤에는 연두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어딘가 수척해보이는 얼굴이긴 하지만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이였다.
“전에 말씀드렸죠? 제가 가르치는 아이인 수호예요.”
“아, 그렇군요.”
“어서 인사드리렴.”
그 말에 남자아이가 고개를 숙인다.
“.. 안녕하세요.”
그제야 알았다.
기사에 연두와 함께 언급되던 아이라는 걸.
이은경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받아줬다.
“연두랑도 인사하고.”
그리고 내 눈에 들어왔다.
연두와 인사하라는 말에 차갑게 굳는 남자아이의 얼굴이.
착각인가?
먼저 연두가 인사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 응. 안녕.”
역시나 그랬다.
억지스럽게 인사를 받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런 수호의 손을 잡고서 이름 모를 여자는 호호 웃으며 얘기했다.
“그럼 또 봬요!”
***
대기실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뭐야, 무슨 일 있었어?”
유리와 함께 화장실에 다녀온 은주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
몇 번 고개를 내젓던 이은경이 대답했다.
“.. 만났어.”
“응? 누구를?”
“조희나교수랑 수호라는 아이.”
“뭐어!?”
화들짝 놀란 반응.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그래서 어떡했는데?”
“어떡하긴. 그냥 서로 인사했지.”
“그게 다야?”
“응.”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얼굴만 아는 사이는 아닌 거 같다.
뭐,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었다.
이은경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한 반응이고.
“슬슬 앉아야 할 거 같네.”
대기실로 향하는 건 나와 연두였다.
마지막으로 이은경은 말했다.
“연두야.”
“네에.”
“선생님이 말한 거 잘 기억하고.”
이은경의 역할은 끝이었다.
앞서 짧지 않은 대화도 나눈 데다가, 대기실에 따로 피아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였다.
대기실에 동행하지 않는 건.
“가자, 연두야.”
그때였다.
돌아선 등 뒤로 짤막한 한 마디가 들려온 건.
“어디 가, 유리야?”
은주아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흠칫 놀란 유리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이따가 올게.”
“어디 가는데?”
“할 말 있어, 얘한테.”
대기실에 따라오겠다는 말 같았다.
방해될까 봐 딸을 데려가려는 은주아를 향해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유리는 제가 이따가 같이 갈게요.”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연두를 방해하려 대기실에 따라가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정말 할 말이 있는 거겠지.
그건 내가 한 부탁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콩쿨장에 와서 연두한테 힘이 돼 달라고.’
유리는 콩쿠르 선배였다.
선배로서 힘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터였다.
“유리 너, 절대 연두 방해하면 안 된다?”
“방해 안 해!”
그렇게 우리 셋은 대기실로 향했다.
***
도착한 대기실.
콩쿠르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내부를 메우고 있었다.
악보를 보는 아이들도 있고, 앉은 채로 투명피아노를 만들어 연습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우리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큰일이네.’
아까부터 연두가 말이 없었다.
경직된 표정.
자연히 떠올랐다.
콩쿠르가 끝나고 난 뒤에 유리가 했던 말이.
‘적응되지 않는다고 했지.’
무대에 올라가기 전의 떨림과 부담감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물며 첫 콩쿠르였다.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보러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닌 로봇이었다.
“많이 떨려, 연두야?”
“네..”
중얼거리듯 연두는 덧붙였다.
“.. 무서워요.”
역시나.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연두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부담이 되어 다가오는 순간이다.
“아저씨.”
“응?”
“이럴 때는 차가운 물 마셔야 해요.”
“차가운 물?”
유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텔레파시가 통하는 기분이었다.
물은 핑계였다.
자리를 비켜주라는 거다.
“잠깐 기다려. 금방 떠 올 테니까.”
그렇게 나는 자진해서 물 셔틀이 됐다.
***
유리가 주원을 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말해줄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너무나 힘이 됐던, 콩쿠르가 끝난 뒤에 아저씨가 했던 말 그대로를.
‘유독 많이 떤다고 느낀다면, 그건 유리가 그만큼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는 거겠지.’
혼자서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반복재생하며 이불속에서 데굴데굴 굴렀던 말이었다.
쑥스러웠다.
그걸 아저씨 앞에서 얘기하는 건.
그냥 말하는 것도 낯간지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콩쿠르에 와서 연두의 힘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싫었다.
고작 이런 곳에서 무너지는 연두의 모습을 보는 건.
‘나한테 져야 해.’
그 전에 다른 누군가한테 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입을 떼려는 참이었다.
“.. 어?”
외마디 소리.
연두가 낸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연두의 앞에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아, 안녕..”
유리와 달리 연두는 초면이 아니었다.
아까 만났으니까.
인사를 건네는 연두를 바라보는 수호의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다.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
“.. 나한테 말 걸지 마.”
“으, 응?”
“나는.. 나는 네가 싫어.”
그 말을 끝으로 수호는 걸어갔다.
연두보다 벙찐 건 유리의 표정이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수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리가 입을 뗐다.
“뭐, 뭐야? 쟤 누구야?”
아무리 유리라도 반응이 늦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번 시비를 거는 연수도 저런 식은 아니었으니까.
다짜고짜 싫다니.
더더욱 황당한 건 그런 주제에 세상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쟤 너한테 차였니?”
“아니..”
그런 와중에 발로 찼냐고 알아들은 연두였다.
바로 그때였다.
차가운 물이 담긴 물통을 손에 들고 주원이 돌아온 건.
멋쩍은 얼굴로 말한다.
“.. 너무 빨리 왔나? 물 좀 더 떠 올까?”
그 모습을 보며 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한편 내부상황을 꿈에도 모르는 관객석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나란히 앉은 주원의 친구들.
“흐흐..”
성현의 웃음에 준수가 말했다.
“뭐냐. 왜 그렇게 음흉하게 웃어?”
“이게 얼마만의 연두냐고. 천사같겠지? 그냥 도레미파솔만 쳐도 천사같을 거야…”
“킥킥, 개웃기네.”
“연두는 너 온지도 모를 듯.”
“어, 아까 인사했으니까 억까 자제하고~ 너야말로 맨날 감자삼촌 도르마무해서 연두가 너 이름도 모를걸?”
“뭘 모르네. 그게 좋은 건데.”
“자강두천이네. 너네가 아무리 떠들어도 연두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은 나 최윤우고요.”
“어, 꿈에서 깨길 바라고요.”
언제나 그렇듯 세상 단순한 셋이었다.
그저 무대 위 연두를 볼 생각에 신이 난 삼촌들의 모습.
반대편은 조금 달랐다.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이던데 괜찮겠지?”
은주아와 이은경.
둘은 피아니스트로서 연두의 상황에 공감하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그래도 은경이 너는 대기실 같이 갔다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했어. 멘탈적인 부분은 나보다 아빠가 훨씬 더 힘이 될 거야. 유리도 같이 갔고.”
“.. 그럼 다행인데.”
그때였다.
둘의 옆에 그림자가 드리운 건.
“어머, 또 뵙네요. 시상식 때나 다시 뵐 줄 알았는데.”
은주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으니까.
조희나였다.
빈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말했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굳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옆에서 들려왔다.
은경이의 목소리가.
“네.”
우연이 아니었다.
기사도 그렇고, 이렇게 옆자리를 찾은 것도.
모두 조희나의 생각대로였다.
‘어떻게 놓쳐.’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제자 간의 압도적인 격차를 느꼈을 때도 그 잘난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또 하나.
사진이 찍힐 수도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기자 하나가 없을 리 없으니까.
‘투샷이 올라가는 거지.’
물론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다소 부자연스럽긴 해도 그런 미래를 생각하면 못 할 게 없었다.
이 정도쯤이야.
“기대되네요. 연두가 얼마나 잘 칠지.”
거슬리는 웃음소리.
심호흡을 통해 은주아는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화 내면 지는 거다.
다행히 한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사회자의 목소리였다.
“지금부터 제43회 중앙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경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시작되는 연두의 첫 콩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