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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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화. 시상식
연주가 시작됐다.
거의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따다단. 딴.
서주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잠깐의 연주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확립해야 하니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연두가 치는 곡이 무엇인지는.
[J.F.Burgmuller – Op.109 no.13 L’orage (The storm)]부르크 뮐러의 폭풍.
추원예대 교수 김주연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연두를 응시하고 있었다.
선곡을 봤을 때 솔직히 의문이 들었다.
‘대체 왜 이 곡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첫 번째.
폭풍은 쉬운 곡이 아니다.
곡의 이름답게 과감한 표현이 필요한 건 물론이고, 그 표현에 필요한 손가락 힘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곡이다.
그리고 손가락 힘을 단기간에 기르는 건 불가능하다.
‘꽤 전이긴 한데 연두가 피아노 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동요였어요.’
앞서 듣기로 경력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꽤 전이라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 전은 아닐 터였다.
그래서였다.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자유곡 콩쿠르야.’
지정곡이면 몰라도 자유곡 콩쿠르였다.
어려운 곡을 택했을 때의 가산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곡은 많았다.
강점을 살릴 수 있는 곡을 선택해서 완벽하게 치는 게 더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대상도 충분히 가능하고.
자연히 두 번째 이유로 이어졌다.
모두가 생각하는 연두의 강점.
달리 말하면 모두가 기대하는 연두의 피아노연주와 ‘폭풍’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경험 부족으로 인한 선곡 미스가 아닌지.
‘.. 잠깐만.’
실소와 함께 바로 생각을 정정하긴 했지만 말이다.
왜냐고?
다른 사람도 아닌 이은경이었다.
비슷한 나이대로서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김주연을 절망에 빠트렸던 피아니스트.
넘을 수 없는 벽.
그 벽을 마주했을 때.
김주연이 보인 반응은 조희나와는 명백히 달랐다.
질투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월등히 앞서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같은 교수직이지만 둘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상반되는 건.
교수로서도, 그리고 피아니스트로서도.
‘.. 이은경.’
김주연에게 있어서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다른 심사위원도 마찬가지겠지.
한 순간이라도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스승인데, 경험 부족을 들먹이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단 몇 초였다.
선곡의 이유를 깨닫는 데에 걸린 시간은.
방금 인사를 하며 수줍어하던 소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
‘Con fuoco!’
(정열적으로!)
연주의 지시말.
그 말대로의 연주.
무대 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폭풍이 치고 있었다.
***
한편 대기실.
수호는 선 채로 무대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 꼭, 나를 이겨줘.’
그 말은 진심이었다.
대상을 타지 못하면 더는 선생님의 제자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사실.
그게 무서웠다.
모든 걸 잃어버릴까 봐.
그러나 앞선 연주로 수호는 깨달았다.
‘이미 잃어버렸어.’
지켜야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찾아야 한다.
되찾기 위한 방법은 하나였다.
끊어내는 거다.
‘.. 미안해.’
수호는 알았다.
자신이 겁쟁이라는 걸.
원하는 걸 깨달은 지금 이 순간조차 처음 보는 여자아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용기를 내는 게 어려웠다.
여기서 지게 된다면, 끊어내는 건 선생님 쪽이 된다.
해방될 수 있었다.
굳이 새장 속에서 탈출하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풀려날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수호는 다시 날아오르고 싶었다.
따다단. 딴.
그리고 연주가 시작됐을 때.
수호는 느꼈다.
머릿속의 모든 생각이 날아가는 걸.
두 눈에는 오직 연두의 모습밖에, 두 귀에는 피아노 선율밖에 들리지 않았다.
둥.
왼손의 낮은음으로 멜로디가 묵직하게 깔린다.
동시에 움직인다.
폭풍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는 오른손 아르페지오.
완벽히 제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두 개의 손이 건반 위를 춤추고 있었다.
점점 올라가는 속도.
쿵. 쿵.
그에 발맞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 맞아.’
이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저런 모습이었다.
수호가 되찾고 싶었던, 또한 꿈꾸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수호의 마음속에도 거센 폭풍이 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리 악보에 맞춰 실수없이 연주해도 남는 건 공허한 마음뿐이었다.
텅 비어있었다.
조금도 채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 하아.”
주먹을 꾹 쥐었다.
순수하게 피아노를 좋아했던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톡.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 방울.
그러나 웃고 있었다.
이윽고 자그맣게 열린 입술 사이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고마워.”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새장 속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는 걸.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걸 알게 된 지금은, 용기를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
관객석은 얼어붙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연두의 연주에.
“…”
그저 멍하니 무대 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무대를 감상하는 홍수찬도 자연히 알 수 있었다.
제자가 했던 말의 의미를.
‘태교에 좋은 음악은 아닐 텐데요.’
확실히 그랬다.
우습지만 이 연주 하나로 아들의 성격이 바뀌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파워풀한 연주였다.
“우와…”
마스크를 쓴 의문의 소녀 삼인방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주원이 있는 줄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게 말이 돼?’
다름아닌 은주아였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들은 연두의 연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생각했다.
앞선 수호라는 아이의 피아노연주를 듣고.
‘힘들겠네.’
적어도 콩쿠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흠잡을 데가 없는 연주였다.
간단한 이치였다.
만약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어떤 점수를 줬을지 생각해보면 되니까.
심사는 공정해야 한다.
아무리 얄미운 사람의 제자라고 해도, 그런 사적인 감정을 심사에 개입시킬 수는 없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만점.’
만점을 줄 거 같았다.
저학년 콩쿠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감점의 여지가 없었다.
와 닿지 않는다는 점?
그것만으로 감점을 주기에는 또래 아이들과의 수준차이가 명백했다.
‘비슷할 거라 생각했어.’
내심 생각했다.
연두도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휘어잡는 연주가 펼쳐지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은경이, 너……’
미소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은주아는 작게 웃음지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무대 위의 작은 피아니스트에게로.
그러나 이 순간에도 유일하게 웃지 못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
저절로 일그러지는 얼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금 콩쿨장 내에 흐르는 정적이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나빴다.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예상한 실력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단지 그 사실이 조희나의 표정을 일그러지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그럼 뭐냐고?
‘왜.. 대체 왜……!’
이를 악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희나의 두 눈에 비치는 연두의 모습은, 과거의 어떤 아이와 그대로 겹쳐보였으니까.
귀에 들어오는 피아노 소리.
따단. 따다단.
다시 한 번.
지독한 절망감을 경험하는 조희나였다.
***
연주가 멎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난 뒤에야 박수와 함성소리가 쏟아졌다.
“와아!!”
연두라서가 아니었다.
한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에서 쏟아부은 열정이 모두의 마음에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이었다.
오늘 콩쿠르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진 건.
막상 연주를 마친 연두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줍게 인사한다.
다행히 이번에는 입 밖으로 인사말을 뱉지는 않았다.
벅차오르는 얼굴로 관객석을 바라보다가 연두는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 어.”
그리고 마주쳤다.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수호와.
놀란 표정의 연두를 향해 수호는 전하고 싶은 마음을 입 밖에 뱉었다.
“고마워.”
“응?”
“그런 연주를 들려줘서.. 정말 고마워.”
“헤헤..”
두 피아니스트가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심사위원석은 또 한 번의 커다란 숙제를 마주한 상태였다.
더 어려워졌다.
연두는 앞선 수호와는 전혀 다른 연주를 보여줬으니까.
‘모두를 일어서게 만들었어.’
그런 연주의 가치를 김주연은 잘 알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지나면 악보대로 칠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많아진다.
그럼 그 속에서는 어떤 피아니스트가 빛을 낼까.
‘느낌을 전달하는 피아니스트.’
그렇다.
그게 차이를 만든다.
더욱 희소한 가치라는 뜻이다.
“와, 정말 어렵네요.”
“애초에 연두가 이렇게 잘 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솔직히 소름돋았어요.”
“동요 치던 때와는 아예 다른 사람인데요?”
“지금까지 콩쿠르 심사하면서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다들 비슷한 고민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심사 지침이라는 게 있으니까……”
“각자 판단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에 대한 권한은 개개인에게 있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심사위원도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인 거고.
‘.. 그래.’
추원예대 교수 김주연도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판단에 따라 점수를 표시했다.
이어지는 콩쿠르.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 수 있었다.
대상을 거머쥐는 건 수호와 연두 둘 중 하나가 될 거라는 걸.
***
하마터면 울 뻔 했다.
연주가 끝나고 기립박수가 터져나오는 순간에.
손을 펴니 땀에 젖어있었다.
‘최고였어.’
지금껏 수없이 들었다.
연두가 연주하는 폭풍을.
방금의 연주는 그동안 내가 들은 것 중에서 최고의 연주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유리야.”
나는 입을 뗐다.
우습게도 음알못인 내가 이 순간에 의지할 구석은 옆에 있는 유리밖에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분한테는 말 걸면 큰일날 거 같고.
‘걸 생각도 없긴 하지만.’
표정이 험악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우리 연두 잘한 거 맞지? 응?”
내 말에 유리는 실소를 지으며 답한다.
“.. 들어줄 만은 했어요.”
극찬이었다.
뒤늦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로 향했다.
연두를 데리러.
“.. 아빠!”
나를 보자마자 안겨드는 연두.
“연두야..”
꼭 껴안은 채로 앞을 보니 눈에 들어온다.
수호라는 아이.
그리고 부모님으로 보이는 두 분이.
“어머, 안녕하세요.”
조금은 어색한 듯 어머님이 인사를 건넸다.
“연두 아버님이시죠? 연주 너무 잘 들었어요.”
“아, 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받았다.
“저도 너무 잘 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버님도 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한다.
“괜히 기사가 이상하게 나와가지고……”
“하하..”
대화를 나눠보니 좋은 분들인 거 같았다.
무엇보다도 수호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부모라면 통하는 게 있으니까.
“잘했어, 수호야.”
“응.”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연두를 품에 안고서 자리로 돌아가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무 잘했어, 연두야.”
진심이었다.
오늘 연두의 연주는 평생 기억에 남을 거 같았으니까.
이후 자리로 돌아왔다.
“.. 왔니?”
짤막한 유리의 말에 연두는 대답했다.
“응!”
“그래도 실수는 안 했네.”
이후 나란히 앉아서 남은 콩쿠르 무대를 감상했다.
마지막 연주까지 끝이 났다.
남은 건 하나였다.
“지금부터 제43회 중앙음악콩쿠르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바로 시상식이 시작됐다.
“그럼 수상 후보를 발표하겠습니다. 호명된 학생은 무대 위에 올라와주시기 바랍니다. 대명초등학교 2학년 안수호 학생, 그리고……”
연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2학년이라는 걸 들어서인 거 같았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으니까.
“…… 선화초등학교 1학년 서연두 학생.”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란히 이름이 호명됐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올라가자, 연두야.”
“.. 네에.”
떨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