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25)
725화. 무뚝뚝 연두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
나는 곧바로 샌들을 걸치듯 신고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틱.
버튼을 누르자 1층부터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발을 동동 굴렀다.
계단으로 뛰어내려갈 걸 그랬나?
아니, 냉정하게 생각해서 아무리 빠르게 뛰어내려가도 엘리베이터보다 빠를 수는 없다.
‘어디 간 거지?’
연두에게 심부름이 처음이듯 나 역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초조함이 몸을 감쌌다.
“13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안내 음성이 나오는 동시에 열리는 문.
바로 탑승하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빨리.. 빨리…’
1층까지 내려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차라리 연두가 사라진 순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면 어땠을까.
충분히 들렸을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했다.
스르륵.
몇 번 있긴 했다.
시야에서 연두가 사라진 경우는.
동물원에 갔을 때 분수대에서도 그랬고, 시골에서는 선동이와 함께 사라진 적도 있으니까.
왠지 모르겠지만 그때보다 더 불안했다.
완전히 안심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하아..”
아파트 밖으로 나온 나는 바로 주위를 훑었다.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을 여유는 없었다.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기에 연두가 어느 방향으로 향한지는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했다.
‘이쪽이야.’
다시 또 달렸다.
아파트를 경계로 모퉁이를 돌면 가지처럼 뻗어있는 길이 있었다.
그렇게 모퉁이를 도는 순간에 보이는 장면.
“.. 어?”
연두였다.
정확히는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는 연두의 발끝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파앗-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눈 깜빡할 새에 도달한 나는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연두야!”
숨이 차서 고개를 들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연두가 놀란 얼굴로 목소리를 낸다.
“아, 아빠..?”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우선 안심이었다.
안전한 걸 확인했으니.
그런 상태로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년의 여성이었다.
물론 내가 놀란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선글라스, 지팡이, 그리고 큰 개.’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딘가 익숙한 조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따로 보면 몰라도 그 세 개가 더해지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으니까.
‘.. 시각장애인.’
바로 알 수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확고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확신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존재했다.
‘골든 레트리버인가.’
개의 생김새.
다른 건 둘째치고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있다.
널리 알려진 안내견의 증표였다.
시각장애인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알고 있는 정보가 없는 건 아니니까.
“.. 아빠?”
고개를 돌린 여성이 말한다.
“아빠가 계시니?”
“네.”
내가 워낙 거칠게 숨을 몰아쉰 탓일까.
주인의 앞에 서서 나를 경계하는 듯한 안내견의 모습.
여자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괜찮아, 윌리.”
그 한 마디에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다.
확실히 안내견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자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신기하게도 그녀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앞이 보이지 않을 텐데.
앞서 그녀가 말한 ‘아빠가 계시니?’라는 물음에서 확신했다.
시각장애인이 틀림없다고.
‘정작 연두는 눈치 못 챈 거 같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여전히 의문은 있었다.
왜 연두가 그녀를 따라가고 있던 건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여자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입을 뗐다.
“잠깐 얘기 좀 나누시겠어요?”
“네?”
“많이 놀라신 거 같은데, 설명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으니까.
아빠로서 알아야 했다.
그건 그녀가 시각장애인인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마침 옆에 정자가 있었다.
“정자로 갈까, 윌리?”
놀랍게도 그녀의 한 마디에 윌리는 움직였다.
정자를 향해.
새삼 감탄하며 나는 연두의 손을 잡고서 그녀를 따라갔다.
“아빠..”
연두의 목소리에 돌아보니 왜인지 눈이 반짝거린다.
이어지는 목소리.
“윌리 진짜진짜 똑똑해여..!”
“하하..”
흘러나오는 실소.
내 마음도 모르고 세상 해맑은 연두였다.
***
정자에서의 대화.
먼저 그녀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최은경이라고 해요. 이번에 플로리아로 이사를 오게 됐고요.”
바로 납득이 갔다.
지금껏 단지 내에서 보지 못한 이유와 최근에 이삿짐 트럭을 본 일까지.
이후 나는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산책 중이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간단히 장을 보고 산책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그만 발을 헛디뎠다는 모양이다.
들고 있던 자두는 여기저기 흩어졌고.
아니나 다를까.
봉투 속에 들어있는 자두는 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저는 시각장애인이거든요.”
그 말에 연두가 흠칫했다.
눈치는 못 챘지만 시각장애인이 뭔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차근히 말을 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윌리가 제 눈이 되어주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랬군요.”
“몸을 일으켜는데 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그렇다.
그때 그 모습을 연두가 봤던 거다.
창문 밖으로 내가 본 건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연두의 모습이었고.
굳이 확인할 것도 없었다.
지금의 모든 대화내용은 연두가 옆에서 듣고 있었으니까.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걱정해줘서 감사해요. 다행히 무사하네요.”
옅게 웃으며 그녀는 덧붙였다.
“생각이 짧았어요. 걱정하실 아버님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봉투가 망가져서 자두를 주워담을 수 있는 건 연두가 들고 있던 봉투뿐이었으니까.
그녀는 옆 동 1층에 거주했다.
자두만 두고 바로 연두를 데려다 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해는 가.’
뿌듯한 마음도 든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볼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설 수 있는 연두의 착한 마음에.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놀이터에서 지우와 친해진 것도, 반 친구인 하연이와 친해진 것도 그게 계기가 됐지.
‘하지만……’
한번 더 일러둘 필요는 있을 듯했다.
지금은 특수한 경우라고 해도 늘 지금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변수는 존재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무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위안이 됐다.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왜 아까 나를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형태는 분간이 가능한 약시.’
차마 상상도 하기 어렵다.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삶에 대해서는.
시각을 잃는다면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림도 제대로 그릴 수 없겠지.
무엇보다도 연두의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윌리가 정말 얌전하네요. 근엄하다고 해야 할까요.”
반쯤은 화제 전환 식으로 말을 돌렸다.
없는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윌리는 조금도 짖지 않고 주인 곁을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었으니까.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여.. 윌리 엄청 멋져요..!”
외부에서 안내견을 만지거나 쓰다듬어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연두에게는 미리 일러둔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윌리의 근엄한 표정을 그대로 따라하는 연두의 모습.
“.. 흡.”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호위무사 윌리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호위무사 연두가 보인다.
이윽고 들려오는 최은경의 말.
“밖에 있는 동안에는 저를 돕는 데에만 집중하거든요. 저한테는 그 누구보다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아이죠.”
당연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에게 눈만이 아닌 손과 발이 되어주는 존재니까.
“우리 윌리.. 이렇게 무뚝뚝해 보이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가면 애교도 부린답니다?”
눈이 동그래진 연두가 반응한다.
“우아.. 윌리가여?”
“그럼. 나중에 아줌마 집에 놀러오면 볼 수 있을 거야.”
“놀러가도 돼요..?”
“물론이지. 이렇게 도움까지 받았는데.”
배시시 웃는 연두.
즐거운 대화가 더 이어지고 최은경이 입을 뗐다.
“아, 참. 아까 못 물어봤는데 따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연두예요.”
“연두.. 예쁜 이름이네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분명히 마음씨랑 이름처럼 얼굴도 예쁜 공주님이겠죠.”
매일같이 듣는 칭찬이지만 묘하게 울림이 있는 한 마디였다.
자그마한 연두의 목소리.
“고맙습니다..”
이웃이 된 그녀와의 짧은 만남이었다.
***
대화를 끝내고 자두를 가져다드린 뒤에 집으로 향했다.
초대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준비하던 음식도 있고.’
오늘은 이 정도의 대화로 충분할 거 같았다.
이제 막 이웃이 됐으니 앞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넘치도록 많았다.
그나저나 궁금했다.
저렇게 무뚝뚝한 윌리가 집 안에서 부린다는 애교는 과연 무엇일지.
‘상상이 안 간단 말이지.’
그걸 궁금증으로 남겨두는 것도 나름의 재미요소였다.
그건 그렇고,
“연두야.”
“네에..”
아주머니를 도와준 게 대견하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연두의 잘못은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일러두지 않은 게 크니까.
그런 나를 바라보던 연두가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내민다.
“여, 여기 감자에요. 심부름..”
봉투가 든 감자였다.
순간 왜인지 모르겠지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까부터 했던 긴장이 방금의 한 마디에 녹아내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봉투를 받아들고 말했다.
“연두야.”
“네, 아빠.”
“앞으로 아까같은 상황이 생기면 꼭 아빠한테 전화부터 하는 거야. 알겠지?”
그 말에 연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빠.. 연두 잘못했어요..?”
“아니.”
꼭 껴안으며 얘기했다.
“혹시라도 연두가 다치거나 위험해지는 게 싫어서 하는 말이야.”
그 뒤에 귀에 속삭이듯 덧붙였다.
“있잖아, 연두야. 아빠는 엄청 기쁘다?”
“.. 왜 기뻐여?”
“연두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나서는 사람이라는 게. 그런 사람이 내 딸이라는 게.”
진심이었다.
나는 연두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살짝 연두를 놓아준 뒤에 봉투를 들고서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 연두 심부름 잘했는지 확인해 볼까?”
그 말과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 엥?”
감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손에 집혔다.
익숙한 촉감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꺼내서 보니 예상 그대로였다.
“호오.. 이건 뭘까, 연두야?”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연두가 소리친다.
“아, 아니에여!”
“응?”
“연두는 안 산다고 했어요! 그리고 안 샀어요..!”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봉투 속에 들어있는 소시지는 뭘까.
하나도 아니고 두 개다.
당연한 얘기지만 산 거라고 해도 혼을 내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소시지 정도야.’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 정도 보상은 줘야지.
그때였다.
어쩔 줄 몰라하던 연두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꺼낸다.
천 원 짜리였다.
“감자는 사천원이에여!”
알고 있다.
한두 번 사 본 게 아니니까.
“아빠는 연두한테 오천원 줬어요..!”
“그렇지.”
“이건 천 원.. 오천원으로 감자 사면 천 원 남아요!”
“그것도 그렇고.”
확실히 그랬다.
우리 연두,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지?
훌륭한 계산이었다.
“그럼.. 소시지는 어디서 난 거야?”
“선물…”
“응?”
“첫 심부름이라고.. 아주머니가 선물로 줬어여…”
“선물로?”
“네에. 그런데……”
“그런데?”
“연두는 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없어서?”
연두는 여덟살이 됐지만 여전히 이 화법은 유효했다.
끝말 따라 말하기.
연두의 말이 술술 이어지게 하는 화법이었다.
그런 내 말에 조금은 수줍은 표정으로 연두가 입을 뗐다.
“아빠가 좋아하는 선물 줬어여..”
“내가 좋아하는 선물?”
“으응..”
감이 안 잡혔다.
내가 좋아하는 선물이라니.
“그게 뭔데?”
“.. 뽀뽀.”
“응?”
“뽀, 뽀뽀해줬어요..!”
쿵.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
동시에 생각했다.
꼭 일러둬야 할 게 하나 더 생긴 거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