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32)
732화. JUNE
즐거운 하굣길이었다.
언제나처럼 연두와 시은이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걸어갔다.
그런 두 아이를 보며 나와 세연씨도 대화를 나눴고.
“역시 하굣길은 이 조합이 최고인 거 같네요.”
“.. 인정이요.”
어린이집 때부터였다.
시은이와 연두.
두 아이의 앙증맞은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긴 했다.
그나저나 착각인가?
‘조금 큰 거 같은데.’
숨은 주어는 키였다.
그때에 비해 큰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체감이 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슥.
“.. 원래는 이 정도였던 거 같은데.”
손을 뻗어서 키를 가늠해보니 더 확연히 차이가 느껴졌다.
특히나 시은이 쪽이.
그런 나를 본 세연씨가 말했다.
“뭐 하는 거예요, 주원씨?”
“아니, 그냥……”
별생각 없이 느낀 바를 그대로 말했다.
“시은이가 키가 좀 큰 거 같아서요. 원래는 연두랑 별로 차이가 안 났던 거 같은데.”
뒤에 덧붙인 말이 문제였다.
툭.
걸음이 멈췄다.
덩그러니 선 채로 뒤돌아본 연두의 표정에는 충격이 묻어나고 있었다.
동시에 새어나오는 목소리.
“연두는.. 안 컸어여..?”
아차.
그제야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연두와 시은이의 키 차이가 벌어졌다는 건, 한쪽은 키가 거의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안 그래도 땅콩이라는 별명 때문인지 키에 민감한 연두였다.
서둘러 해명했다.
“아니야, 연두야.”
“…”
“연두도 많이 컸지. 시은이가 좀 더 많이 큰 거 같다는 거지.”
잠깐만.
이건 위로가 안 되잖아.
내 말에 연두가 시은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또 한 번 충격받은 표정.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진실을 마주했을 때의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그럴 만도 해.’
단짝답게 키 차이도 무척 근소했던 둘이었다.
원래 시은이가 연두보다 살짝 크긴 했지만, 조금만 차이가 나도 확 와닿을 수 있었다.
한편 세연씨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흐응.. 그런가?”
감이 잘 안 오는 모양이다.
뭐, 세연씨가 원래 눈썰미가 좋은 편은 아니니까.
“저는 매일 봐서 모르나 봐요.”
세연씨는 키가 큰 편에 속했다.
그런 엄마를 닮았다면 시은이도 충분히 키가 클 수 있겠지.
이럴 때가 아니다.
내 얘기로 인해 연두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괜찮아, 연두야.”
“아빠..”
“사람이 키가 크는 속도는 다 다르거든. 그리고 연두가 키가 작은 편도 아니고.”
실제로 그랬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작다고도 못 하는 키였다.
그럼에도 연두가 이렇게 충격을 받은 이유는 짐작이 갔다.
“시은이가 혼자 너무 많이 커버릴까 봐 겁나?”
“.. 네.”
역시 그랬다.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연두는 덧붙였다.
“시은이가 이렇게 커 버리면.. 언니처럼 되면 안 돼여…”
표현이 재미있었다.
키 차이가 많이 나면 친구가 아닌 언니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거리감이 들까 봐.
그때였다.
“괜찮아, 연두야.”
내내 듣고만 시은이가 연두를 감싸안으며 말했다.
“내가 천천히 클 테니까.”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너무 멋있어보였다.
이게 뭐라고 설레냐.
옆을 바라보니 세연씨도 딸의 멘트에 감탄한 표정이다.
“그리고 키가 더 많이 커도 나랑 연두는 친구야.”
“.. 진짜?”
“응, 진짜.”
“언니라고 부르라고 안 할 거야..?”
“당연하지.”
생각지 못한 물음에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는 장난으로 언니라고 잘도 부르더니 그게 겁이 났던 모양이다.
무언가 결심한 듯 연두는 입을 뗐다.
“알겠어!”
“응?”
“시은이는 천천히 안 커도 돼! 연두가 더 빨리 크면 되니까..!”
결의에 찬 표정.
그 뒤에 연두가 한 말이 또 나를 다른 의미로 웃게 만들었다.
“우유 마실 거야..!”
필살기는 우유였던 건가.
우유가 좋은 음식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나는 키는 유전이 90%라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왜냐고?
‘유성현.’
친구녀석 중 하나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그 녀석은 물 대신에 우유를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최종 키는 170 언저리였다.
작은 키라는 건 아니다.
단지, 또 다른 사례를 말하기 위해 언급하는 것 뿐이지.
‘박준수.’
달리 부르면 감자삼촌.
우유라면 질색을 하고 편식이 극도로 심했던 녀석이다.
최종 키는 183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거의 펜만 쥐고 학창시절을 보낸 나만 해도 성현이보다 컸다.
아직까지도 성현이가 세상 억울해하는 것 중 하나였다.
‘키는 유전이야. 우유같은 거 먹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고!’
그렇게 열변을 토하면서도 녀석은 틈만 나면 우유를 사 먹었다.
뭐, 모르는 일이다.
성현이가 우유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키가 지금보다 작았을 수도 있으니까.
어쨌거나,
‘키는 유전이다.’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키가 크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노력을 통해 유전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까지는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모르는 일이고.’
연두의 포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더 노력할 가치가 있다.
“좋아. 오늘부터 키 크기 특훈 시작이다.”
씩 웃으며 말했다.
“준비됐지, 연두야?”
“네!”
***
연두의 결심은 꽤나 단단해보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린 슈퍼마켓에서 소시지 대신 우유를 집어들 정도였으니까.
마트 아주머니가 물었다.
“소시지는 안 먹니?”
“네, 소시지는 다음에 먹을 거에요! 우유 먹고 키 크면…”
“호호, 그러니?”
옆에서 내가 아주머니께 말을 건넸다.
“저번에 소시지 선물로 주셨다는 말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그녀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
“더 커다란 선물을 받았는데요.”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연두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갔다.
“아빠..”
“응, 연두야.”
“여기.. 키 재 주세여!”
조금 놀랐다.
뭐든지 시작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건데.
그 전략을 구사할 줄이야.
“그래, 여기 서 볼까?”
연두가 벽에 발을 대고 섰다.
벽지에는 키를 잴 수 있도록 스티커 형식으로 붙여둔 게 있었다.
건네받은 자를 연두의 머리 위에 가볍게 얹으며 얘기했다.
“자, 허리 펴고.”
“이렇게여..?”
“응. 고개 들면 안 되고 시선은 정면을 바라봐야 해. 몸에 힘이 들어가면 키가 실제보다 더 작게 나오거든.”
그 말에 축 늘어지는 어깨.
“.. 연두야.”
“네!”
“지금은 너무 빠졌는데?”
양자택일 극단적이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다시 조금 힘이 들어가고 그제야 꼿꼿이 선 자세가 완성됐다.
장난스레 덧붙였다.
“까치발 하면 안 돼요.”
“안 했어여!”
“아빠 눈에는 다 보여요.”
“.. 진짜에여!”
장난은 여기까지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정확히 구십도로 직각을 만든 뒤에 숫자를 확인했다.
“백…”
7과 8의 중간.
120에는 아쉽게 못 미친다.
눈대중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8 쪽에 좀 더 가까워보였다.
그러나 나는 말했다.
“백십칠.”
이유는 간단했다.
백십팔은 입 밖에 뱉기에 어감이 정서상 그리 좋지 않을 거 같았거든.
그런 걸 신경쓰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인정한다.
할 말은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연두가 묻는다.
“백십칠이여..?”
“응.”
반응을 보니 생각한 것보다는 결과가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웃으며 얘기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백이십 될 수 있겠는데?”
“백이십?”
“응. 백십칠에서 3 센티미터만 더 크면 백이십이니까. 아마 시은이가 그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혹은 그것보다 조금 더 크거나.
그런 내 말에 연두는 반짝이는 눈을 한 채로 중얼거렸다.
“백이십…”
단기 목표가 생긴 듯했다.
다음은 부엌이었다.
의도를 읽은 나는 봉투에서 우유를 꺼내 뜯은 뒤에 컵에 한 잔 가득 따라줬다.
꼴깍. 꼴깍.
잘도 마신다.
문득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학교에서 매일 나눠주던 우유가 너무 먹기 싫어서 몰래 숨기기까지 했는데.
나중에는 없어서 못 먹었지만.
“.. 냐아.”
회상을 깬 건 누렁이 울음소리였다.
이제 소리만 들어도 느낌이 온다.
밥 달라는 신호였다.
“누렁이 밥 주고 올 테니까 천천히 마셔, 연두야.”
꼴깍.
그게 대답이었다.
누렁이 밥그릇을 채워주고 돌아온 내 눈에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 아빠..”
왜인지 힘에 겨운 표정.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우유팩을 든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가볍잖아!’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대체 그 사이에 몇 잔을 마신 거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연두를 바라보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아빠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배에 손을 올린 채로 말한다.
“키 재 주세여.. 백이십……”
“.. 프흣.”
웃으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연두의 머릿속에서 우유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음식인 거 같았다.
***
한편 시은이네 집에서는 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응? 시은이 우유 안 먹니?”
시은이는 우유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꼭 한 잔씩은 우유를 마시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이제 아침에만 마실래.”
신세연이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아까 연두랑 한 말 때문에 그래?”
“아니야.”
아니라고는 했지만 아닌 게 아니었다.
키가 너무 커서 연두를 내려다보게 되는 건 시은이도 싫었다.
지금처럼 눈높이가 맞는 게 좋았다.
그래야 연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는지 더 잘 볼 수 있으니까.
‘아침에만 마시면 괜찮을 거야.’
시은이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키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크게 될 거라고.
그런 딸의 모습이 세연은 마냥 귀여웠다.
‘뭐, 괜찮겠지.’
평소 식단 자체를 부단히 신경쓰는 그녀였다.
저녁에 우유 한 잔을 거른다고 이렇다 할 문제가 생길 소지는 없었다.
방으로 들어간 시은이.
스륵.
책을 꺼냈다.
여전히 시은이의 꿈은 작가였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꼭 멋진 책을 써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연두, 레나, 학교 친구들, 그리고……’
사락.
괜히 부끄러워진 시은이는 페이지를 넘겼다.
물론 엄마에게도 선물할 생각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은이의 꿈을 세연도 잘 알고 있었다.
‘시은아.’
‘응.’
‘그거 알아?’
한 번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뭐?’
‘시은이 꿈이 작가잖아.’
‘응.’
‘엄마 어렸을 때 꿈도 작가였다?’
‘정말?’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엄마 꿈은 요리사나 카페 사장님같은 직업이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글 쓰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
신기했다.
엄마 꿈도 똑같았다는 게.
‘글쓰기 대회에서 막 상도 타고 그랬다?’
‘…’
‘뭐지, 그 못 믿겠다는 표정은?’
‘보여줘.’
‘응?’
‘상 탄 거.’
‘잠깐만. 설마 엄마 의심하는 거야? 진짜라니까? 어디 간지 몰라서 지금 당장 보여줄 수는 없는데……’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말 그래도 엄마가 받은 상이 보고 싶었을 뿐이지.
‘근데.. 왜 글 안 썼어?’
‘.. 응?’
‘글 쓰는 거 좋아했는데 왜 지금은 글 안 써?’
‘에이.. 지금은……’
그렇게 끊긴 대화였다.
사락.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책을 읽던 시은이의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엄마의 노트북이었다.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노트북으로 엄마랑 같이 영화를 본 적도 있고, 마이크래프트를 한 적도 있으니까.
톡.
의자에서 내려간 시은이는 노트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륵.
위로 펼치니 화면이 떠올랐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되어있는데 그게 시은이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번호키로 된 자물쇠.
그런 걸 보면 한 번쯤은 풀어보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니까.
짐작이 가는 게 있다면 더더욱 그렇고.
‘0720.’
집 비밀번호이자 엄마 핸드폰 비밀번호이기도 했다.
7월 20일.
시은이의 생일이기도 했고.
달칵.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노트북 비밀번호는 어렵게 설정해 둔 모양이었다.
실패했다는 알림창을 바라보던 시은이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숫자 네 개가 떠올랐다.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이게 아니라면 짐작이 가는 건 없으니까.
톡. 톡. 톡. 톡.
그렇게 떠오른 숫자는 0606이었다.
6월 6일.
7월 20일이 시은이의 생일이라면 6월 6일은 신세연의 생일이었다.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엔터를 클릭했다.
툭.
동시에 떠올랐다.
실패했다는 알림창이 아니라 암호가 풀리고 난 뒤의 화면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꺼 놓지 않았는지 떠올라있는 화면이 있었다.
“이게 뭐지?”
시은이의 혼잣말.
이윽고 두 눈에 꽂히듯 한 단어가 들어왔다.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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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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