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736)
736화. 비밀
녹음을 마친 뒤.
집에 도착한 나는 게임회사 넥스트로부터 온 메일을 확인했다.
[구민아 악보 파일]기다리던 메일이었다.
악보 파일.
정확히는 작중에서 민아가 피아노를 치는 파트에 흘러나오게 될 음악이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음악을 작곡한 사람의 이름을 전해 들었을 때.
‘이세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작곡가이자 세미클래식 음악가였다.
대중과의 거리를 생각할 때 어떤 면에서는 이은경보다 가깝다고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아는 곡들이 많았고.
정통 클래식보다는 좀 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많았으니까.
‘그런 거장의 곡이라니…’
얼마나 넥스트가 이 게임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심장이 벅차올랐다.
그 곡을 연주하게 될 사람이 다름 아닌 연두라는 사실이.
달칵.
파일을 클릭했다.
한참을 들여다본 나는 뭐라도 아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음악가가 만든 악보와, 멋대로 휘갈겨 쓴 악보의 차이를 조금도 구분하지 못할 자신이.
그런 주제에 왜 고개를 끄덕였냐고?
‘.. 쑥스럽잖아.’
보는 눈이 없다고는 해도 괜히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뿐이었다.
허나 괜찮았다.
무지한 나를 대신해 두 눈이 되어줄 사람이 있었으니까.
“연두야!”
이세준은 작곡가인 동시에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물론 연두도 그를 알고 있었다.
“네, 아빠!”
“이거 좀 볼래?”
그러나 곡에 대한 정보를 아는 상태는 아니었다.
작곡가가 이세준이라는 것도.
바로 말해줄까 했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더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에 연두의 시선이 악보를 향했다.
“…”
말없이 빤히 바라보는 게 나와 비슷했다.
느껴지는 바는 전혀 다르겠지만.
“아빠..”
“응, 연두야.”
“이게 뭐예여..?”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나를 향해 묻는다.
“악보야.”
“어떤 악보요?”
“연두가 민아가 돼서 연주하게 될 악보.”
그 말에 연두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이후에도 한참이나 악보를 바라보던 연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쳐 봐도 돼여?”
“당연하지.”
곧바로 나는 악보를 뽑아줬다.
악보를 품에 안은 연두는 그대로 방으로 달려갔다.
나도 잽싸게 따라갔다.
‘놓칠 수는 없지.’
이미 카메라를 손에 든 상태였다.
방 안에 들어간 연두는 곧바로 악보를 펼치고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눈을 감는다.
언젠가부터 굳어진 루틴이었다.
톡.
눈을 뜨는 동시에 시작되는 연주.
한 번도 쳐 본 적 없는 게 분명하지만 연두의 손가락은 곧잘 움직였다.
금세 나는 곡의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달라.’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과는 확연히 다르다.
저번 콩쿠르 때 연주한 폭풍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건 도전이었다.
연두는 이런 걸 할 거라는 모두의 생각을 뒤엎고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던 연주.
허나 이 곡은 달랐다.
딴. 딴. 따단.
시냇물이 흐르듯 유려한 선율이 이어진다.
서정적인 멜로디.
폭풍과는 달리 이 곡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연두의 장점을 완전히 끌어내는 곡이었다.
그때였다.
일순, 곡의 분위기가 전환됐다.
따다단.
조약돌이 굴러가듯 경쾌한 선율.
그에 따라 연두의 입가에도 조금은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진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미소라는 걸.
‘.. 구민아.’
그렇다.
단순히 악보를 따라 연주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연두는 작중에서 민아가 연주하던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확신했다.
성우와 별개로 민아의 피아노 연주만큼은 아무도 연두를 대신할 수 없을 거라고.
***
[드림 큐!(Teaser 1)]지금 보고 있는 건 ‘드림 큐!’의 티저 영상이었다.
그에 따라 일러스트 작화에 스튜디오 초록이 참여한다는 것도 밝힐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도 유서영 기자에게 먼저 소식을 알려줬다.
‘엄청 고마워했지.’
주연이 때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가고 있었다.
상부상조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쪽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좋은 인연이라면 이어가는 편이 좋으니까.
기사를 보기에 앞서 티저 영상의 반응부터 확인했다.
‘첫 번째 티저 영상.’
세 차례에 걸쳐 티저 영상을 공개한다고 들었다.
그런 만큼 첫번째 티저 영상에 연두의 모습이 담기지는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댓글들.
-퀄 미쳤는데?
┖티저만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 아님?
┖에이, 설마…
┖한국에 이런 장르 게임이 나온다는 것부터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이돌 육성 게임? 이런 게 재밌나??
┖이런 게임은 진짜 모 아니면 도임. 대박 아니면 쪽박.
┖근데 티저 퀄만 보면 대박의 냄새가 난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중간중간에 나오는 일러 퀄 왜 이렇게 좋나 했더니 스튜디오 초록이네.
┖ㄹㅇ?
┖ㅇㅇ 기사 뜸.
┖역시 초록… 믿고 있었다고!!
┖그리고 연두 성우 참여 + 피아노 연주
┖무조건 한다. 재미없어도 한다…
기대감을 드러내는 댓글이 많았다.
다소 생소한 장르에 우려를 표하는 댓글도 있었지만 게임을 해 본 입장이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런 의문은 불식될 거라고.
‘확실히 공들여 만든 티가 나.’
그러나 게임의 퀄리티도 티저 영상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기사로 이동했다.
스튜디오 초록의 작화 참여와 연두에 대한 내용이 올라와 있는 기사였다.
역시 중요한 건 댓글이었다.
-초록님은 진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ㅇㅈ ㅋㅋ
┖잊을 만하면 상상도 못 한 모습으로 나타남.
┖계속 쇼앤프루브 하는 게 멋있는 듯. 항상 새로운 거에 도전하는데 또 그걸 증명해냄 ㅋㅋㅋㅋ
┖과연.. 이번에도 미다스의 손은 적용될 것인가…
┖이쯤 되면 초록의 손으로 바꿔야 함 ㅋㅋㅋ
-연두 성우 참여 미쳤다..
┖일곱살 피아노 신동 천재소녀 구민아 ㄷㄷ
┖설정 맛있다…
┖이 정도면 연두 모티브 따서 만든 캐릭터 아니냐 ㅋㅋㅋㅋㅋ
┖난 게임 재밌을 거라 확신함.
┖왜? 연두 때매?
┖그것도 맞는데 작가가 ‘JUNE’임. 이 작가 잘 안 알려졌는데 업계에서는 그냥 초록님 같은 존재임.
┖무슨 뜻이야?
┖건드리는 거마다 족족 터트렸거든. 물론 좋은 쪽으로.
작가에 대한 언급이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라도 한 걸까.
‘보기는 어려울 거 같지만.’
지금껏 본인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래도 언젠가는 얼굴을 보고 인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
-이세준 작곡 미쳤다…
┖연두랑 이세준의 만남? 오우 쉣!!
┖드림 큐 최초 공개…
┖진짜 각 잡고 만들었네
┖그래서 출시가 언제라고요?
나 역시 기대됐다.
완성되고 난 뒤의 ‘드림 큐!’는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 조금이었다.
***
한편 그 시각.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한 여자가 노트북을 펼쳤다.
떠오르는 잠금화면.
타닥. 탁.
비밀번호는 0606, 그녀의 생일이었다.
동시에 떠오르는 배경 화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그녀의 딸인 시은이의 사진이었다.
그렇다.
그녀는 다름 아닌 신세연이었다.
[안녕하세요, JUNE님.]그녀가 가진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가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 이름을 사용하게 된 지도 어느덧 7년가량이 흘렀다.
‘.. 빠르네.’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에 가명을 쓸 생각을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숨고 싶어서였다.
무엇 하나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도망친 뒤.
그녀가 스스로를 되찾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JUNE.
딱 네 글자였다.
그 안에 모든 걸 감출 수 있었다.
본명부터 나이, 성별, 심지어 유약한 성격까지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됐다.
완벽히 숨기지 않는 이상, 그녀는 무언가를 숨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누군가 하는 일을 묻는다면 항상 똑같이 답했다.
‘직장인이에요.’
무려 7년이었다.
딸인 시은이에게조차 비밀로 한 채로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서 살아온 게.
가명을 쓰는 건 생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차곡차곡 쌓인 커리어와 별개로 사람들은 얼굴없는 작가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론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었다.
성별부터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JUNE’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름을 지은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그녀의 생일인 6월을 영어로 하면 ‘JUNE’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생각했다.
딸인 시은이의 생일인 7월을 영어로 해서 ‘줄라이’로 짓는 게 어떨까 하고.
허나 단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남자처럼 보였으면 했어.’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지금은 뭘 그렇게 조심스러워했나 싶지만, 당시로서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쓴다.
그 사실만으로 집에서 관여해 올 여지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
‘되찾고 싶었어.’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본가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서 지내는 동안.
남은 건 단 하나, 시은이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나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시은이를 키울 수 있을까.’
결론은 없다였다.
적어도 하나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였다.
모든 걸 딸인 시은이에 관한 것들로 정했지만 가명만큼은 자신의 생일에서 따 온 이유는.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들킬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모든 건 글을 통한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드러날 수 있는 요소는 지금 보고 있는 노트북뿐이었다.
즉, 외부로 드러날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었다.
먼저 공개하지 않는 한.
생각해본 적은 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상태가 좋았다.
-구종현 구민아 녹음본 전달 드립니다.
넥스트로부터 온 메일.
파일을 연 신세연은 헤드폰을 낀 채로 눈을 감았다.
“민아야!”
헤드폰 속으로 구종현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오빠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슥.
그리고 민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그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역시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민아와 연두의 싱크로율은.
적지 않은 파일을 신세연은 멈추지 않고 쭉 플레이했다.
연두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든 건 아니었다.
만들고 나니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쩌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헤드폰을 뺀 그녀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전달 감사합니다. 만족스럽네요.
신세연이 만든 캐릭터였다.
말이 길지 않고 본론만 짧게 이야기하는 과묵한 캐릭터.
실제 그녀와는 전혀 달랐지만.
‘기대되네.’
연두가 연주할 피아노 녹음본도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문득 떠올랐다.
우연히 주원씨를 마주쳤을 때 나눈 대화가.
‘게임 일러스트 작화를 하는데 되게 재밌어요.’
‘재밌다구요?’
‘네. 그 게임이 스토리 위주로 흘러가는 게임인데, 그래서 그런지 캐릭터 하나하나 설정도 되게 탄탄하거든요. 그래서 그리는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아……’
‘그런 궁금한 표정 지어도 안 알려줄 건데요.’
‘아, 아니거든요!’
자신이 그 게임의 작가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이야기하던 주원씨의 모습.
괜히 속이는 기분이 들어 미안하면서도 벅차오르는 기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설정도 되게 탄탄하거든요.’
사소한 칭찬이었다.
작가 생활을 하며 수없이 들은 말인데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건.
조금은 궁금해졌다.
자신이 ‘드림 큐!’의 작가인 걸 알게 된다면 주원씨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물론 상상에 불과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세연은 몰랐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녀의 비밀에 한 발자국 다가갔다는 사실을.